135화
[어때? 결정했나? 내 도움을 받는 것으로 결정했느냔 말이야.]
‘도와줄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 도와준다는 거지?’
[충분히 유용한 도움을 주도록 하지.]
‘그럼 당장 안토니오의 몸에서 힘을 빼앗아 줘.’
[그럴 순 없어.]
‘잠깐. 우리를 도와준다고 했잖아.’
[이봐. 나도 명색이 신인데 한번 내려 준 가호를 갑자기 빼앗아 갈 수는 없잖아. 안토니오는 아직은 내 충실한 종복이라고. 그러니 그에게도 마지막 기회 정도는 줘야지.]
‘그럼 대체 뭘 어떻게 도와준다는…….’
[조심하라고.]
“조심해!”
툴레오와 루카의 동시 경고에 주환은 고개를 들었다.
이리저리 잘 피하는 루카를 상대하는 것이 버거워진 것인지 안토니오는 이번에는 주환을 향해서 공격하고 있었다.
주환으로서는 한 손으로는 돌격 소총을 조작할 수 없었기에 돌격 소총은 놔둔 채로 왼손으로 권총을 뽑아 든 다음 안토니오를 향해서 난사했다.
안토니오는 이번에도 검들을 방패처럼 앞세우는 방법으로 주환의 공격을 막아 냈다.
주환이 발사하던 권총의 탄환이 이윽고 다 떨어지자 안토니오는 다시 검의 날개를 펼쳐 공격 태세로 들어갔다.
주환은 그 틈을 노려 오른손에 장착된 은 말뚝 발사기를 재빨리 들어 안토니오를 조준했다.
놀란 안토니오가 다시 검 방패를 만들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주환이 더 빨랐다.
팅!
안쪽에서 발사 장치가 작동하는 느낌과 함께 두 개의 말뚝이 한꺼번에 발사되었다.
말뚝들은 안토니오의 복부 쪽에 명중했다.
안토니오를 보호하고 있는 마나 보호막이 약해진 상태였기에 두 개의 은 말뚝은 간신히 보호막을 통과했지만, 안토니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때, 틈을 보고 있던 루카가 번개처럼 튕겨 안토니오의 복부에 명중한 은 말뚝의 뒤쪽에 강력한 옆차기를 날렸다.
퍽!
두 사람의 강렬한 합동 공격에 안토니오는 벽을 박살 내면서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집을 받치고 있는 벽들이 무너지자 건물 자체가 크게 흔들렸다.
“무너질 거야! 여기서 나가야 해!”
주환이 그렇게 외치며 일어서려고 할 때, 천장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그를 덮쳤다.
그리고 그가 그 잔해에 깔리기 직전, 루카가 그의 몸을 잡고는 바깥쪽을 향해서 집어 던졌다.
쨍그랑!
주환은 루카에 의해 던져져 창문을 박살 내며 바깥으로 굴러떨어졌다.
몸을 굴려서 충격을 최소화한 주환은 재빨리 자세를 잡고 갈레오스의 집 쪽을 바라보았다.
와르르!
그의 눈앞에서 갈레오스의 집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주환으로서는 루카가 집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루카가 주환을 구하였지만 정작 자신은 빠져나오질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루카!”
주환은 무너진 집의 잔해 쪽으로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한편, 루카의 발차기 탓에 집의 바깥으로 튕겨 나간 안토니오는 복부 쪽에서 끔찍한 통증을 느꼈다.
그에게 명중했던 두 개의 은 말뚝이 툴레오의 갑옷을 뚫고 그의 복부 쪽에 박혀 있었다.
로렌조처럼 몸을 완전히 관통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꽤나 위험할 정도로 깊게 박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툴레오의 갑옷이 없었다면 더욱더 깊게 박혔을 것이다.
안토니오는 손으로 말뚝들을 잡고 간신히 뽑아냈다.
“끄윽.”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뱉은 안토니오는 손에 들고 있는 말뚝을 바닥으로 내던지고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사방에서 통을 들고 달려드는 경비대원들의 모습이었다.
수명의 경비대원들이 그에게로 달려와 들고 있던 통들을 던져댔다.
안토니오는 고통을 참으면서 검의 날개를 휘둘러 그 통들을 베어 버렸다.
그를 괴롭히고 있는 고통 때문에 그의 정신력이 약해졌기에 검의 날개를 움직이는 것도 겨우겨우 행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통이 잘려 나가면서 그 안에 있는 액체들이 안토니오의 온몸에 뿌려졌다.
안토니오는 그 액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름이었다.
안토니오의 몸에 기름이 뿌려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경비대원들이 준비하고 있던 불화살을 안토니오에게 발사하기 위해서 장전했다.
‘큰일이다!’
안토니오의 머릿속에는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평소라면 그 툴레오의 갑옷이 가진 방어력이 불길의 뜨거움을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로서도 더는 그러한 방어력을 장담할 수 없었다.
계속되는 상처의 누적에 의한 정신력의 약화.
수십 개의 검을 부리는 기술에 의한 빠른 마나 소모.
그리고 툴레오의 검의 부재 때문에 충전되는 마나량의 손실.
그 모든 것이 그가 가진 방어력을 극도로 약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경비대원들의 손에서 불화살이 떠나가고, 안토니오는 그 공포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의 날개를 이루고 있던 검들을 사방으로 발사했다.
“으악!”
“크악!”
검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면서 그를 포위하고 있던 경비대원들에게 명중했다.
퍼벅!
그리고 빗나간 검들은 근처에 있는 건물들의 벽에 박혔다.
그가 반격함으로써 활을 쏘는 경비대원들의 조준이 틀어졌기에 그를 향하고 있던 불화살들이 기적적으로 안토니오의 몸을 빗겨 나가게 되었다.
“안토니오!”
그때, 경비대를 지휘하고 있던 경비대장이 안토니오를 향해서 달렸다.
그의 오른손에는 도끼가 들려 있었으며 반대쪽 손에는 횃불이 들려 있었다.
경비대장의 기백은 대단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있었다.
그렇기에 안토니오는 쉽게 반격을 가할 생각 자체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더 약한 상대임에도 반응이 마비될 만큼 정신력이 떨어진 것이다.
경비대장은 도끼를 치켜들고 안토니오의 머리를 찍을 듯이 몸을 날렸다.
안토니오는 자신이 조종하고 있는 얼마 남지 않는 몇 개의 검들을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그것은 검술이라기보다는 죽어 가는 야생동물이 보이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 검들은 거리를 좁힌 경비대장의 온몸을 베었다.
경비대장은 죽어 가면서도 온 힘을 다해 들고 있는 횃불을 안토니오의 몸에 붙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노력이 빛을 보기 일보 직전이었다.
닿을 듯 말 듯한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안토니오가 마구잡이로 휘두른 검 중 하나가 운 좋게도 횃불의 머리 부분을 잘랐다.
불이 붙어 있는 횃불 머리가 바닥으로 쓰러지자 너무 많은 공격을 받아 낸 경비대장 역시 뒤쪽으로 서서히 쓰러져 갔다.
“막았어. 막았다고!”
안토니오는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그는 자신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방금 죽인 사람들을 제물로 삼아서 스스로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토니오가 기뻐하는 그 순간.
화륵!
안토니오는 자신의 등 부분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안토니오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주환이 돌격 소총의 탄창을 화염 속성탄으로 교체한 뒤 그의 등 쪽으로 탄을 난사하는 중이었다.
화염 속성탄으로 인한 불꽃 공격들이 안토니오의 몸을 지키고 있는 미약한 마나들을 깨부수고 그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으아아악!”
안토니오는 그 작열통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온몸을 덮고 있던 기름에 불이 붙어 그의 전신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그가 조종하고 있던 나머지의 검들마저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봐. 이제 나를 사용해서 공격하라고.]
툴레오가 주환에게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그럴 필요가 있어? 지금 놈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야.’
[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안토니오는 지금 밖으로 나와 살인을 저질렀어. 너도 알고 있잖아. 저 갑옷을 입고 있는 자는 살인을 저지르면 저지를수록 강해진다는 것을. 그 강함에는 생명력도 포함되지. 안토니오가 지금 고비를 넘기면 그다음에도 제압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그럼 널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여기서 나만이 내 갑옷을 뚫을 수 있으니까. 뭔가 말이 이상하긴 하지만 사실이니 어쩌겠어.]
툴레오의 말이 끝나자 주환은 손을 뻗어서 툴레오의 검을 들었다.
그리고 주환은 툴레오의 검을 잡고 자신의 몸에 붙을 불을 끄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안토니오를 향해서 달렸다.
안토니오는 주환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것이 주환이 공격을 성공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었다.
푹!
주환은 툴레오의 검으로 안토니오의 등을 찔렀다.
주환의 예상보다도 툴레오의 검은 너무나 쉽게 그의 등을 파고들어 앞쪽으로 관통했다.
안토니오가 빠르게 몸을 돌렸다.
주환은 순간 잡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등에서 뚫고 들어온 검의 끝이 그의 가슴을 뚫고 나와 있었다.
“개새끼가!”
안토니오는 욕설을 내지르며 손을 들어 주환의 목을 붙잡았다.
안토니오는 주환의 목을 부러뜨릴 참이었다.
그리고 주환은 방탄조끼의 한쪽에 손을 집어넣어 당김줄의 끝부분을 잡았다.
꽉!
안토니오가 주환의 목을 강하게 졸랐기에 주환은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 와중에도 겨우겨우 아래쪽으로 손을 뻗어서 방탄조끼의 안쪽에 숨겨진 선을 잡았다.
그가 그 선을 당긴다면 방탄조끼의 패드들이 일제히 폭발하면서 단 한 번에 수십 발의 산탄총을 발사하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손가락을 선의 끝에 달린 고리에 건 주환은 그것을 망설임 없이 당겼다.
쾅!
고막을 찢어 버리는 듯한 엄청난 크기의 폭음.
주환이 선을 당기자마자 패드들의 폭발이 안토니오를 덮쳤다.
안토니오의 비명마저도 그 폭음에 묻혀 버렸으며 주환은 그 반동 때문에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역시 폭발의 반동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토니오의 손에서 벗어나서 바닥을 구르고 있던 주환은 제대로 숨이 쉬어지질 않았기에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거세게 두드렸다.
“커억!”
그리고 어느 순간 숨이 돌아오자 그는 무릎을 꿇은 상태로 고개를 들었다.
주환은 저만치 튕겨 날아가 버린 안토니오를 볼 수 있었다.
주환은 안토니오가 죽었거나 빈사의 상태에 빠졌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엄청난 공격들을 여러 차례 받았음에도 안토니오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안토니오는 비틀거리면서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안토니오의 몸은 정말 만신창이에 가까웠다.
온몸에는 화상과 폭발로 말미암은 상처가 가득했으며 은 말뚝과 툴레오의 검이 만든 상처들은 그 자체로도 치명상이었다.
그가 입은 그 상처 중 단 하나만으로도 일반인은 사망에 이르고 말 것이다.
다시 일어서는 안토니오를 보면서 주환은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일어난 안토니오는 더 이상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그가 중얼거리고 있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에 가까웠으며 몸짓은 마치 좀비에 가까웠다.
그리고 안토니오는 자신의 몸을 관통해 있는 툴레오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툴레오의 검을 잡아서 빼내려고 했지만, 검의 손잡이가 그의 등 쪽에 있었기에 쉽게 뽑아내질 못했다.
안토니오가 앞쪽에 나와 있는 검날을 붙잡고 자신의 몸에서 빼내려고 할 때, 갑자기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