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쾅!
공격을 막아 내긴 했지만, 워낙 강렬한 공격이었기에 바닥을 딛고 있던 타마두크의 발이 자국을 남기면서 뒤쪽으로 밀려 버릴 정도였다.
‘강하다.’
그것이 타마두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공격이 막히자 이온은 타마두크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 인간이 아니로군요. 그런 이상한 날개를 가진 인간은 본 적이 없어요.”
“네.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이쪽 세계에서는 마족이라고 불리는 종족에 속해 있죠.”
“마족?”
“그냥. 사악한 자들의 집단이라고 생각해 주십쇼. 그렇게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으니까요.”
“정말로 당신이 사악한 자라면.”
그때, 이온의 팔과 관절 부분에서 초진동 블레이드들이 솟아올랐다.
“거리낌 없이 당신의 존재를 소멸시킬 수 있겠네요.”
“그렇게 무섭게 말씀하실 것까지야.”
그때, 이온의 블레이드가 허공을 갈랐다.
타마두크는 그 공격을 피했지만, 연속적으로 들어오는 공격은 차마 다 피해 낼 수가 없었기에 날개로 공격을 받아 낼 밖에 없었다.
블레이드와 타마두크의 날개가 닿았을 때, 블레이드의 날이 타마두크의 날개를 조금씩 파고들어 갔다.
‘평범한 칼이 아니로군.’
타마두크는 이온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반대쪽 날개를 휘둘렀다.
날개의 바깥 부분이 칼처럼 날카로워 지면서 그의 날개는 방패이자 동시에 치명적인 무기로 변화했다.
이온은 공중으로 몸을 날려서 그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 그녀의 뒤쪽에서 있던 나무들이 우수수 잘려 나가면서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공중에 뜬 이온은 찍어차기를 타마두크의 정수리에 날렸다.
그녀의 뒤꿈치에는 길쭉한 초진동 블레이드가 튀어나와 있었다.
타마두크는 날개를 위쪽으로 모아 우산처럼 만들었다.
캉!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이온은 타마두크의 날개를 발로 디딘 다음 더욱더 위로 높게 솟구쳤다.
이온은 근처에 있는 나무를 발로 디딘 다음 계속해서 위로 몸을 날렸다.
최대한 몸을 높게 띄운 그녀는 공중에서 물구나무를 서는 것처럼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그녀의 양손에 에너지 권총이 창작되었다.
이온은 아래쪽으로 떨어지면서 밑에 있는 타마두크에게 에너지 권총을 난사했다.
타마두크 역시 날개를 펼치면서 빠르게 그 자리를 피했다.
그가 있던 자리에 레이저 광선이 폭사 되었다.
타마두크는 날개를 가지고 있었기에 미끄러지듯이 아래쪽을 날다가 곧장 위로 올라갔다.
타마두크가 날아오르자 이온은 분사구를 개방해 에너지를 분사하며 떨어지지 않도록 타마두크와 보조를 맞추면서 날았다.
두 사람은 빠르게 날면서 서로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계속해서 공격을 날렸다.
둘의 움직임은 점점 원을 그리게 되었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가 숲을 삼키는 것처럼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나무들에 잘린 자국이 생기면서 그 나무들은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져 갔다.
만약 그들의 싸움을 공중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무들이 쓰러지면서 미스터리 서클과 비슷한 문양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물론, 우연한 일치였지만 그만큼 두 사람의 움직임은 정교하기 그지없었다.
챙!
두 사람의 공격이 맞닿은 어느 한순간, 두 사람이 만들어 내고 있던 팽팽한 균형은 깨지고 각자 숲의 바닥으로 착지했다.
이온은 관성 때문에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태클을 날리는 축구선수처럼 착지하자마자 바닥으로 미끄러지면서 겨우 자세를 잡았으며, 타마두크는 중력이 적은 곳을 떠다니는 우주비행사처럼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타마두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이 싸웠던 반경 수 미터에는 서 있는 나무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장난으로 했던 일인데, 이건 너무 지나치게 일이 커져 버렸군.”
타마두크는 이제 싸움을 멈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온 쪽에서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온은 타마두크가 주환의 원수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온의 머리에서 뿔이 솟아나면서 그녀는 파괴자 모드에 돌입하였다.
그녀의 주변에서 맴도는 에너지를 느낀 타마두크는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타마두크는 날개를 거두면서 앞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잠깐.”
그 말은 이온에게 들리지 않았다.
파괴자 모드로 들어간 이온은 온몸에 번개를 두른 채 타마두크에게로 돌진하였다.
“당신의 주인인 주환 님은 살아 계십니다.”
이온의 공격이 타마두크에게 닫기 일보 직전에 이온은 공격을 멈췄다.
그녀의 초진동 블레이드가 앞쪽으로 내밀어진 타마두크의 손바닥까지 단 1mm 정도를 남겨 둔 채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타마두크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닿았기에 멈출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당신의 주인님, 그리고 저의 주인이신 이브 님의 손님이자 친구인 주환 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렇지만.”
이온은 우선 일반 모드로 돌아온 다음 신체 바깥으로 사출된 모든 무기를 다시 신체의 안쪽으로 수납했다.
이온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타마두크에게 물었다.
“아까는 분명 주인님을 죽였다고 했잖아요?”
“그건 농담입니다.”
타마두크의 말에 이온은 힘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대체 왜 그런 농담을 하신 거죠?”
“실례지만 이온님의 실력을 한번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거든요. 나쁜 뜻은 없었으니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상하긴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어요. 저는 주인님이 무사히 살아 계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으니까요.”
이온의 말을 들은 타마두크는 재미있다는 듯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이온에게 말했다.
“저와 이온 님은 닮은 구석이 좀 있는 것 같군요.”
* * *
“이럴 수가.”
지금 안토니오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상황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검을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어림없지.”
안토니오가 일어서려고 하자 주환은 번개 속성탄을 안토니오에게 발사했다.
파지직!
“으앗!”
안토니오는 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안토니오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망상 속에서 그는 누구도 다치게 할 수 없는 무적의 용사에 가까웠다.
검도, 활도, 창도, 그 어떤 것도 그를 다치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툴레오의 갑옷이 제공하는 마나 방어막은 마법에 취약한 면이 있었다.
물론, 방어막을 이루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마나였기에 마법에 대한 방호 역시 제공했지만, 물리적 공격만큼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방어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주환이 발사한 번개 속성탄은 안토니오의 방어막에 맞아 그 효과가 반감되긴 했지만, 그 방어막을 파고들어 가 내부에 있는 안토니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어!”
안토니오는 쓰러진 상태에서 발악하듯 주환을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렇지만 주환은 그의 검이 닿는 범위의 바깥에 있었다.
그가 기세를 잃자 툴레오의 검을 길게 연장해 주던 마나의 칼날 역시 짧아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포기해!”
주환은 안토니오의 의지를 꺾어 버리기 위해서 계속해서 총을 발사했다.
속성탄으로 안토니오를 잠시 제압하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안토니오에게서 툴레오의 갑옷을 벗기는 일이었다.
그가 다시 싸울 의지를 되찾는다면 다시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주환이 온 힘을 다해서 안토니오를 제압하고 그가 완전히 꺾였을 때 모두가 달려들어서 그의 무장을 해제시킨다면 그들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었기에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비대원들이 안토니오의 주변으로 가까이 가고 있었다.
그때, 탄창에 총알이 바닥이 나고 말았다.
주환은 재빨리 다른 탄창으로 교체하려고 했지만, 그 틈을 놓칠 안토니오가 아니었다.
안토니오는 몸을 일으키면서 주환에게 검을 휘둘렀다.
다른 탄창을 집어 든 주환은 반사적으로 검을 피했다.
주환은 검을 피할 수 있었지만, 안토니오가 휘두른 검이 주환이 들고 있던 탄창을 스치고 지나갔다.
슥.
그러자 날카로운 검기 때문에 주환이 들고 있던 탄창이 반으로 잘려 나가며 그 안에 있던 총알들이 바닥으로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주환이 떨어지는 총알들을 보면서 당황하는 사이, 안토니오는 우선 자신의 몸을 추스르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안토니오가 도망가자 이번에는 루카가 안토니오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안토니오는 검을 들어서 루카의 손톱을 막아 냈다.
“그따위 공격은 이제 먹히지 않아!”
안토니오는 루카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을 느끼자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러자 루카는 마치 격투가가 로우킥을 차듯이 안토니오의 다리를 걷어찼다.
강력한 손톱 공격까지 막아 낼 수 있기에 안토니오는 루카의 하단 차기 공격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다리에서 살이 찢겨 나가는 고통을 느꼈다.
그는 놀라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루카의 신발의 앞쪽 부분이 터져 있었는데, 그 밖으로 날카로운 발톱이 튀어나와 있었다.
어느새 인지 루카가 손톱뿐만 아니라 발톱까지도 변화시켰던 것이다.
자신의 공격이 먹혀들어 가자 루카는 안토니오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마나 보호막이 얇아져 안토니오는 루카의 공격을 온전히 막아 낼 수가 없었다.
“젠장! 젠장!”
안토니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혹시라도 자신이 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안토니오는 검을 휘두르면서 루카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힘이 빠져 있는 그의 공격이 루카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팍!
루카의 손이 그의 팔목을 치자 안토니오는 버티지 못하고 툴레오의 검을 떨구었다.
“떨어져! 이 괴물아!”
검을 떨어뜨리자 패닉 상태에 빠진 안토니오는 본능에 따라서 움직였다.
그는 다리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피를 손에 묻히고는 루카의 눈 쪽으로 튕겼다.
루카의 양 눈에 피가 들어가자 루카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으면서 양손으로 눈을 비볐다.
루카가 아주 잠깐 무력해지자 안토니오는 떨어진 검을 챙길 새도 없이 허겁지겁 그들의 곁을 떠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다리에서 밀려오는 통증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사냥꾼에게 쫓기는 꿩이 머리만을 숨기듯 안토니오는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괜찮아?”
재장전을 마친 주환이 루카에게 달려가서 묻자 루카는 손으로 눈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대답했다.
“응. 난 괜찮아. 그냥 기분이 좀 더러울 뿐이야.”
루카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주환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툴레오의 검을 발견했다.
주환이 그 검을 만지려고 하자 루카가 손을 들어서 그를 제지했다.
“잠깐만. 그 검을 만졌다가 저주받을지도 몰라. 안토니오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봤잖아?”
“그랬지.”
그렇지만 주환은 멈추지 않고 툴레오의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안토니오는 그랬지만 데스티나는 그렇지 않았어. 분명 무조건 이 검에 저주를 받는 것은 아닐 거야. 이 무기에 대해서 파악한다면 안토니오를 더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지 몰라.”
주환이 툴레오의 검을 들어 한 번 휘둘러보았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갑옷이랑 검이 같이 있어야 발동을 하는 건가?”
주환이 툴레오의 검을 파악하고 있을 때, 루카가 주환을 불렀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놈이 다시 힘을 회복하기 전에 빨리 붙잡아야 해.”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