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주환과 루카, 그리고 안토니오는 본격적으로 싸우기 위해서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조금 더 넓은 공간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은 이동하면서도 서로에 대해 눈을 떼지 않았다.
경비대원들의 일부는 동료의 시체를 수습하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뒤에서 거리를 두고 안토니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단지 지금은 때가 아닐 뿐이었다.
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을 때, 그 팽팽한 긴장의 끈을 먼저 끊은 이는 바로 안토니오였다.
“으아!”
안토니오는 괴성을 지르면서 주환에게 달려들었다.
주환은 그에 맞추어서 그를 향해 돌격 소총을 연발로 난사하였다.
퍼벅!
탄환들이 달려오는 안토니오의 몸에 계속해서 명중했다.
처음 몇 발이 명중했을 때, 안토니오는 그 충격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느 순간 그 공격들을 버티면서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달렸다.
아까 주환이 발사하여 안토니오에게 명중했던 탄환은 마나 방어막에 튕겨 나갔지만 이번에는 튕겨 나가지 않고 마나 방어막에 박혀 있었다.
“이거나 먹어라!”
안토니오는 루카를 날려 버렸을 때처럼 마나를 순간적으로 폭발시켰다.
이번에는 마나의 폭발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 주환이 있는 방향으로 집중되었다.
그러자 그의 마나 방어막에 박혀 있던 수십 발의 탄두가 역으로 주환에게 발사되었다.
그것은 안토니오가 발사하는 산탄총과도 같았다.
위험을 느낀 주환은 바닥으로 몸을 날리면서 그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 그가 서 있던 곳을 탄두들이 지나가면서 뒤쪽에 있던 건물의 벽에 박혔다.
안토니오가 주환을 노리는 틈을 타 루카는 발톱으로 안토니오의 다리를 노렸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예상했다는 듯 검을 회전시키며 검끝을 아래쪽으로 내리찍었다.
안토니오의 검이 루카의 손등을 관통했다.
“악!”
루카는 재빨리 위쪽으로 발을 올려 안토니오의 팔을 걷어찼다.
검을 잡고 있던 안토니오의 팔이 루카의 발차기에 밀려 위쪽으로 올라가자 비로소 루카의 손바닥을 관통하고 있던 검이 뽑혀 나갔다.
루카는 몸을 굴려 안토니오와의 거리를 벌렸다.
루카는 피가 흐르고 있는 손등을 부여잡았다.
지금 주환과 루카를 상대하고 있는 안토니오의 싸움 방식을 보면서 루카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안토니오의 싸움 방식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을 죽이면 죽일수록 강해진다는 것은 분명 허풍이 아니었다.
주환 역시 싸움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주환은 재빨리 탄창을 분리한 다음 속성탄을 골라서 돌격 소총에 삽입했다.
주환은 이브의 설명을 기억해 냈다.
주환이 원래 사용하던 5.56mm 탄환은 갑옷과 같이 물리적인 방어구를 상대할 때는 아주 효율적이지만 마법, 혹은 마나로 보호되는 방어구에는 그 효율성이 떨어진다.
반대로 속성 탄환은 물리적 방어구에 줄 수 있는 타격이 5.56mm 탄환보다는 떨어지지만 마나로 보호받는 방어구를 상대하는 대에는 더 효율적이었다.
주환이 탄창을 교체하고 있는 사이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비대원들이 일제히 안토니오에게 석궁을 겨누었다.
“쏴라!”
경비대장의 명령에 수발의 볼트가 안토니오를 향해서 날아갔다.
샥!
그때, 안토니오가 몸을 돌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날아오던 볼트들이 반으로 잘려 나가면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보이지 않는 사각까지 느껴질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졌어. 이제는 정말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아. 난 무적이라고!”
파직!
안토니오는 갑자기 온몸을 관통하는 찌릿한 느낌에 몸을 떨면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길! 대체 이번에는 뭐야!”
안토니오가 분노를 터뜨리고 있을 때, 그를 향해서 여러 발의 번개 속성 탄환을 발사했던 주환이 여전히 그를 겨눈 채로 중얼거렸다.
“무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 * *
“여기쯤 세우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겠네요. 잘 묶어 두면 넘어지지도 않을 겁니다.”
이브와 타마두크는 대화를 나누면서 이온의 몸을 기둥에 고정했다.
이온을 깨우기 위해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번개의 힘을 이용하기로 한 이후, 이브와 타마두크 두 사람은 검은 탑의 옥상에 이온을 고정할 수 있는 기둥을 세우고는 이브의 몸을 옥상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지금은 이온을 기둥에 묶는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중이었다.
이온의 몸을 다 묶자 타마두크는 몸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구름이 몰려오는군요.”
“저 정도로 짙은 먹구름이면 벼락이 떨어질 수도 있겠는데?”
“맞습니다. 정말로 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위험할 수 있으니 아래로 내려가도록 하시죠.”
타마두크의 권유에 이브는 묶여 있는 이온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타마두크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두 사람이 사라진 후 이온의 몸은 탑의 옥상에 혼자 남겨졌다.
멀리서만 보이던 비구름은 점차 검은 탑 쪽으로 몰려와 하늘을 온통 뒤덮었다.
투둑.
그리고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더욱더 거세지고 옥상에 묶여 있는 이온의 머리로 떨어져 머리칼의 아래쪽으로 흘러내렸다.
그렇게 비가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으로 강한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콰광!
자신의 연구실에서 다른 연구를 진행하고 있던 이브는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이브는 번쩍거리며 떨어지는 번개에 시선을 빼앗긴 듯 멍하니 창문의 밖을 응시했다.
한편, 마치 검은 탑에 묶여 있는 이온에게 이끌리듯 거대한 번개들이 그녀의 주변에 지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그렇지만 아직 그녀에게 곧바로 치는 번개는 없었다.
그때, 이온의 머리에서 두 개의 뿔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쾅!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번개가 검은 탑 위쪽의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마치 하늘을 날고 있던 용이 떨어지는 듯한 형상의 번개는 단숨에 이온의 뿔이 있는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번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이온의 뿔을 통과하여 그녀의 전신을 달려 구석구석을 채워 나갔다.
번개가 가진 힘이 어찌나 컸던지 이온이 묶여 있던 기둥이 말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그렇기에 그 기둥에 묶여 있었던 이온은 그 기둥에서 풀려나 마치 던져진 돌처럼 포물선을 그리면서 탑의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추락하는 이온의 모습은 연구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이브의 눈에도 포착되었다.
이온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던 이브는 즉시 타마두크를 호출했다.
* * *
이브의 명령을 받은 타마두크는 탑의 바깥으로 나가 옥상에서 추락한 이온을 찾기 시작했다.
번개에 의해 튕겨 나간 것이라도 그리 멀리 날아간 것은 아니었기에 타마두크는 어렵지 않게 이온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온은 검은 탑의 근처에 있는 숲속의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었다.
이온을 발견한 타마두크는 이온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이온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온은 인간이 아니었기에 타마두크로서는 그녀가 다시 가동 중인지 판단할 방법이 없었다.
타마두크는 이온의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 다음 손바닥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짝 툭툭 두드렸다.
“깨어난 겁니까?”
이온은 반응하지 않았다.
타마두크가 다시 한번 깨우려고 시도하려 할 때, 이온은 서서히 눈을 떴다.
오랜 미가동 상태에서 깨어난 이온은 눈을 뜨고는 눈동자만을 움직여서 주변의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바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타마두크의 얼굴이었다.
“정신이 듭니까?”
이온은 타마두크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없었기에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이온은 반사적으로 한쪽 손을 바닥에 짚으면서 마치 카포에라의 자세처럼 발차기를 날렸다.
타마두크는 손을 들어서 그녀의 발차기를 막았다.
그사이에 이온은 몸을 튕겨서 공중에서 한 바퀴를 둔 후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이온은 타마두크를 경계하면서 싸울 수 있는 자세를 잡았다.
“당신은 누구죠?”
“저는…….”
이온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서 사정을 설명하려던 타마두크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는 이온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안드로이드라는 존재를 본 적이 없었다.
이브에게 고도로 발달한 지동 인형이라는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그로서도 이브는 그야말로 미지의 존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미지에 존재가 이제 눈을 떠서 막 활동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타마두크는 호기심이 발동했기에 짐짓 표정을 바꾸면서 말을 이었다.
“방금 당신을 죽이려고 했는데 그것을 눈치챈 모양이군요.”
타마두크가 그렇게 거짓말을 하자 이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역시 그랬군요. 당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당신이 악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이온의 말에 타마두크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제 얼굴에 뭔가 문제라도?”
“뭔가 알 수 없는 사악함이 가득해요.”
“그렇게 보였다니 유감이로군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상처를 받네요.”
“처음 본다면서 왜 저를 죽이려고 한 거죠?”
거기까지 말한 이온은 끊어졌던 기억이 되살아난 듯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제 주인님은 어디 계시죠?”
“주인이라면 주환 님 말씀이신가요?”
타마두크의 입에서 주환의 이름이 나오자 이온은 곧장 반색하였다.
“맞아요. 대체 어디 계신 거죠?”
“당신의 주인님은.”
타마두크는 손을 들어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 처리했습니다.”
이온은 상황 파악이 되질 않는 듯 의아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처리했다뇨?”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죽였다는 겁니다.”
“죽였…다고요? 제 주인님을?”
“네. 다른 말로는 숨이 끊어졌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퍽!
순간, 타마두크는 복부에 대단한 충격을 느꼈다.
타마두크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온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주먹으로 그의 배를 가격한 것이었다.
이온이 딛고 있던 땅바닥은 깊게 패 있었다.
“윽.”
타마두크는 작게 신음을 내면서 뒤쪽으로 튕겨나갔다.
이온의 속도는 그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감히 주인님을!”
이온은 재차 타마두크를 공격해 왔다.
그렇지만 타마두크 역시 만만치 않았다.
처음의 공격은 막지 못했지만, 그는 곧 자세를 가다듬고는 중심을 잡으면서 등에서 날개를 펼쳤다.
박쥐의 그것을 닮은 마족의 날개.
이온의 상단 차기가 타마두크의 얼굴에 닿기 직전에 그 날개가 움직여 이온의 공격을 방어해 냈다.
그의 날개는 마치 금속처럼 단단해 지면서 그의 몸을 지켜 주는 방패처럼 변화했다.
그러자 이온은 재빠르게 다리를 거두고는 이번에는 그에게 뒤차기를 날렸다.
타마두크는 양 날개를 겹쳐서 두 번째 공격까지 막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