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루카는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상처는 깊었다.
지금 반수인(獸人) 형태였기에 상처 자체는 금방 회복되겠지만 지금 루카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그보다 더한 마음의 상처였다.
“개자식! 반드시 죽여 주겠어!”
루카는 눈물을 흘리며 방에서 나오는 안토니오를 노려보았다.
안토니오는 갑옷과 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갑옷과 검을 루카는 알고 있었다.
바로 데스티나가 입고 다니던 ‘툴레오 갑옷’과 ‘툴레오의 검’.
데스티나가 혼수상태에 빠진 이후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바로 그 무기가 지금 안토니오의 손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그 갑옷을 본 루카는 자신이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천에 싸인 갑옷이 바로 그 툴레오의 갑옷이었음을 깨달았다.
* * *
“잡아라!”
“저기 잡어!”
주환은 뒤에서 들리는 고함을 들으면서 마을을 질주했다.
‘역시 벌써 쫓아온 건가?’
지금 주환은 다수의 경비대원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그가 총을 이용한 속임수로 감옥을 빠져나온 이후 주환은 그 경비대원의 안내를 받아 경비대의 창고에서 자신의 짐을 수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환은 잠시라도 시간을 끌 수 있게 그 경비대원을 창고에 가두어 두고 경비대에서 몰래 빠져나갔지만, 그 경비대원이 생각보다 빨리 탈출을 한 것인지 이미 다수의 경비대원이 주환을 쫓고 있었다.
“석궁을 쏴!”
그때, 뒤에서 그렇게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석궁의 볼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냈다.
퍽!
주환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석궁을 떠난 볼트는 주환의 등에 명중했다.
주환은 등을 망치로 때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 앞쪽으로 굴렀다.
“크윽!”
주환은 위쪽을 향해 돌격 소총을 난사했다.
그것은 경비대를 공격할 의사가 없는 위협 사격이었다.
투다다다!
어둠 속에서 돌격 소총이 불을 뿜자 주환을 쫓고 있던 경비대원들이 추격하는 것을 멈추고 몸을 낮추었다.
그들 대다수는 주환이 가진 무기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경비대의 추격이 순간 느슨해지자 주환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면서 다시 달렸다.
그의 목적지는 바로 갈레오스의 집.
주환이 멀어져 가자 경비대원들은 비로소 다시 주환을 쫓기 시작했다.
갈레오스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도달한 주환은 갈레오스의 집 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누군가와 마주쳤다.
“아이고! 깜짝이야!”
주환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자 상대방은 깜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 미안합니다!”
주환은 반사적으로 사과하다가 상대방의 낯이 익음을 깨달았다.
그는 바로 갈레오스의 집에서 보았던 하인이었다.
“어. 당신?”
상대방을 알아본 것은 그 하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때, 주환을 쫓던 경비대원들이 그 자리에 도착했다.
“그만둬!”
갑자기 경비대원들이 주환에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인질을 풀어 줘라!”
경비대원들이 그렇게 외치자 주환은 하인과 서로 마주 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하인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지만, 주환으로서도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지금 경비대원들은 주환이 갈레오스의 하인을 인질로 잡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질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
“대체 원하는 게 뭐냐!”
경비대원들이 멋대로 요구하기 시작하자 어이가 없어진 주환은 경비대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때, 경비대원들의 틈에서 경비대장이 나와서 주환에게 말했다.
“이봐!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도망가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 빨리 인질을 풀어 주고 경비대로 돌아가도록 하자! 그렇게 계속해서 죄를 범하다가는 감옥에서 몇 년을 썩어야 할지도 몰라!”
주환은 골치가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하인을 놔두고 갈레오스의 집으로 달리려던 그때, 그 하인이 주환을 놔두고 경비대원들 쪽으로 걸어갔다.
“오오. 인질이 풀려났다!”
“역시 대장님! 대단한 설득이셨습니다!”
경비대원들이 경비대장을 칭송하자 경비대장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듯 어깨를 높이며 폼을 잡았다.
“이 정도는 기본이지. 진심으로 이야기한다면 듣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경비대원들이 서로 자화자찬을 하는 동안 하인은 경비대장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저는 인질이니 뭐니 그런 것은 잘 모르겠는데 마침 잘됐네요. 저는 지금 경비대로 가던 중이었거든요.”
하인의 말에 경비대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로 경비대에?”
“아. 영주님의 명령을 전달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영주님은 우선 가둬 두고 있던 주환이라는 분을 풀어 주시라고 하셨습니다.”
“뭐라고?”
경비대장은 놀란 눈으로 갈레오스의 집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주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영주님의 집으로 오셔서 안토니오 도련님을 연행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건 또 대체 무슨 소리야?”
경비대장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갈레오스님의 말씀으로는…… 안토니오 도련님이 진짜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자백하셨다고 하시더군요.”
하인의 말에 경비대장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안토니오…… 너.”
갈레오스는 안토니오를 보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안토니오는 툴레오의 갑옷을 두른 채로 갈레오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어때요, 아버지. 대단하지 않아요?”
안토니오의 말에 푸른색의 마나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처음에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사람을 한 명 한 명 죽일수록 점점 더 빛이 강렬해지더군요. 그만큼 힘도 강해졌고요.”
“대체…… 그건 어디서 난 거냐?”
갈레오스의 물음에 안토니오는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이건 신이 저에게 주신 선물인걸요. 이걸 입고 있으면 신님과 한층 더 가까워질 수가 있어요. 그분은 항상 저에게 말씀하시죠.”
안토니오는 고개를 돌려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루카를 바라보았다.
“죽이고 또 죽여라. 무고한 자를 한 명씩 죽일 때마다 너에게 더 큰 힘을 줄 것이다.”
“네놈…….”
루카는 당장에라도 안토니오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상처가 벌어지려고 했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럼 그까짓 이유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을 죽인 거냐?”
갈레오스는 허탈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까짓 이유라뇨. 저는 강해지는 것이 제 인생 최고의 목표였어요. 강해질 수 있다면 제 영혼도 팔 수 있었다고요.”
갈레오스는 안토니오를 막기 위해서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안토니오. 잘 들어라. 정말로 그 갑옷에 너에게 말을 건다면, 그리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다면 그건 저주받은 갑옷이기에 그런 것이다. 당장 그 갑옷을 벗어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게 돼!”
“돌이킬 수 없다라…….”
안토니오는 비웃음을 흘렸다.
“아버지.”
안토니오는 증오가 담긴 눈으로 갈레오스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신 거 아시죠?”
“뭐라고?”
“저는 분명히 아버지께 이 일을 덮어 주시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제가 잡혀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죠. 그렇지만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 마을의 영주야! 영주는 언제나 공명정대해야 하는 법이다!”
“아니에요, 아버지. 아버지는 영주님이시기 이전에 저의 아버지시라고요. 아버지라면…… 당연히, 당연히 자기의 자식을 지켜 줘야 하는 게 맞는 거잖아요.”
갈레오스는 치가 떨린다는 듯 분노로 몸을 떨었다.
“어떻게 네놈의 입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저는 자신의 형까지 죽였지 않느냐. 그러면서 자신이 위급할 때에만 혈육의 정에 기대려고 하느냐!”
“아아…….”
안토니오는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천장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 아버지. 방금 또 신탁이 들어왔어요. 신님께서 또 말씀을 해주셨다고요.”
“그건 신이 아니라 악마다. 그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갈레오스는 양손으로 안토니오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억지로라도 안토니오의 몸에서 툴레오의 갑옷을 벗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때, 갑자기 안토니오가 갈레오스를 껴안았다.
“신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싶으면 말이죠.”
그는 갈레오스의 귀에 속삭였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라고요.”
슥!
그와 동시에 툴레오의 검이 갈레오스의 몸통을 꿰뚫었다.
“커억!”
날붙이가 몸을 관통하자 갈레오스는 피를 토하면서 경악에 빠진 얼굴로 안토니오를 바라보았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그렇게 말하며 안토니오는 갈레오스의 몸을 밀었다.
그러자 갈레오스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검이 빠져나가면서 갈레오스는 뒤쪽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갈레오스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이 자식!”
루카는 온 힘을 다해서 안토니오를 향해 달려들었다.
루카가 그의 등 쪽을 들이받자 안토니오는 크게 휘청거렸지만 금세 자세를 다잡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벽에 처박힐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지만, 툴레오의 갑옷이 주는 가호가 안토니오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까불지 마!”
안토니오는 몸을 돌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마나가 실린 날카로운 공격이 루카를 향해서 쇄도했다.
루카는 뒤쪽으로 눕듯이 몸을 날리면서 그 공격을 피한 뒤 몸을 튕겨 재빠르게 일어나 안토니오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루카의 손가락에는 길고 날카로운 발톱이 솟아나 있었다.
안토니오는 검을 들어서 그 공격을 막았다.
챙!
툴레오의 검과 루카의 발톱이 만나자 그 사이에서 작은 불꽃이 튀었다.
안토니오는 놀랍다는 듯 루카를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이거 놀랍네. 너의 발톱 따위는 단번에 잘라 버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루카는 밀어차기로 안토니오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그러자 두 사람이 떨어져 나가면서 서로의 거리가 벌어졌다.
안토니오는 루카에게 걷어차인 부분을 내려다보다가 손으로 그 부분을 툭툭 털어 냈다.
“아버지까지 희생시켰는데도 이 정도 힘뿐인가?”
안토니오가 실망스럽다는 듯 그렇게 말하자 루카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 더러운 입 다물어! 내가 반드시 너를 죽여 줄 테니까!”
안토니오는 검을 들어서 루카를 겨누었다.
“네 아버지도 아니잖아. 어째서 그렇게 화가 나 있는 거야? 너희 괴물들은 항상 그렇게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거지?”
“할 말은 그게 끝이냐!”
루카는 안토니오에게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