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맞아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루카는 주환에 대해서 질문했다.
“주환은 지금 어떻게 된 거죠?”
“지금 경비대의 감옥에 갇혀 있소. 경비대원들이 입은 피해는 거의 없지만 어찌 되었던 간에 경비대를 공격한 것은 사실이니. 그리고 장례식에서 난장판을 벌인 일도 있었으니 감옥에 갇히는 것을 피할 수는 없소.”
“이해해요.”
“그런데 나를 찾아온 이유는 당신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요?”
“주환을 구하고 진실을 알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진실?”
“저희가 광장에서 했던 말들은 전부 사실이니까요.”
루카의 말에 갈레오스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솔직히 이제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졌소. 오늘 보았던 안토니오의 모습은 내가 알던 그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지. 안토니오는 좀 괴팍한 면이 있는 아이였지만 본심은 착한 아이였소. 그렇지만 오늘 광장에서 그 아이가 보였던 그 모습은…….”
“저희는 그 움막에서 로렌조에게 모든 진실을 들었어요. 우리가 로렌조에게 같이 마을로 내려가자고 설득한 순간 밖에서 은 말뚝이 날아와서…….”
“그만.”
로렌조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생각하기도 싫었는지 갈레오스는 손을 들어서 루카의 말을 막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갈레오스는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움집의 밖에서 로렌조를 공격한 장본인을 직접 본 것인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그럼 그 범인이 안토니오라고 어떻게 단정을 지을 수가 있지?”
“그 움집의 존재는 로렌조와 안토니오밖에 모르니까요.”
“그렇지만 당신들도 그 움집에 있었지.”
루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갈레오스는 결론이 나지 않자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해하지 마시오. 지금 당신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아주 조금이라도 당신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말이오. 그렇지 않았으면 당장 경비대를 불렀겠지. 그렇지만 지금 이 일은 내 아들의 운명이 걸려 있는 아주 중대한 일이오. 그런 중요한 일에 대해 고발하면서도 증거도 없이 무조건 믿어 달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소.”
“증거는…….”
루카는 생각을 거듭했다. 안일한 방법으로는 갈레오스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그때, 루카는 생각을 정리하여 다시금 설득에 나섰다.
“증거가 있을지도 몰라요.”
“확실하지는 않은 이야기로군.”
“듣고 싶지는 않으시겠지만, 다시 한번 로렌조가 살해당한 순간에 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루카의 말에 갈레오스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말해 보시오.”
“로렌조는 은 말뚝으로 살해당했죠. 그 은 말뚝의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저조차도 대처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어요. 너무 갑작스러웠던 것도 있었겠지만요. 그리고 말뚝이 로렌조를 관통한 깊이 역시 비정상적으로 깊었기도 했고요. 안토니오가 직접 말뚝을 던졌다면 그런 속도와 힘은 낼 수 없었을 거예요. 안토니오와 직접 대련도 해봤으니 틀림없겠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즉. 그 말뚝을 안토니오가 직접 던진 게 아니라면 그 은 말뚝을 발사할 수 있는 기구가 있었을 거예요. 그 기구는 안토니오에게 죽은 괴물 사냥꾼에게서 빼앗은 것일 테고요. 아마 그 괴물 사냥꾼의 짐 자체를 안토니오가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만약 안토니오가 그 은 말뚝을 발사할 수 있는 기구를 가지고 있다면 그 아이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로군.”
“그렇죠.”
루카의 이야기를 듣던 갈레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바로 다녀오도록 하지.”
“어디로 가는 거죠?”
“안토니오의 방이오.”
“방에는 안토니오가 있지 않나요?”
“아까 외출했소. 금방 돌아오지는 않겠지. 나는 이제부터 안토니오의 방에서 수상해 보이는 물건을 찾아볼 생각이오.”
그렇게 말하며 갈레오스는 고개를 돌려 루카를 바라보았다.
“당신도 같이 가도록 하지.”
* * *
안토니오의 방문은 잠겨 있었으나 갈레오스는 안토니오의 방을 열 수 있는 여벌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여벌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들 녀석은 모르오. 만약 알면 노발대발을 하겠지.”
갈레오스는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철컥.
잠금장치가 풀어지면서 안토니오의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갈레오스를 따라서 안토니오의 방으로 들어간 루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토니오의 방은 그야말로 하나의 무기 전시실에 가까웠다.
기사들이 입는 갑옷들 여러 개가 방 안에 전시되어 있었으며 벽에는 다종다양한 검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방 안에는 기름 냄새가 진동했기에, 후각이 예민해져 있는 루카는 코가 맹맹해지는 것을 느꼈다.
갑옷이나 검은 관리를 위해서 기름으로 닦아내는데, 안토니오는 방에 있는 모든 갑옷과 검들을 거의 매일매일 기름칠을 해주었기에 방 안이 그 특유의 냄새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안토니오는 확실히 특이한 면이 있는 아이였소. 강함과 기사들의 무기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지. 스스로 이러한 무기들을 모으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좁은 방을 이렇게 가득 채워 버리더군.”
“그럼 그 괴물 사냥꾼의 무기도 여기 어딘가에 전시해 놨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거요. 로렌조가 은 말뚝에 살해당했기 때문에 자신이 그 무기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의심받을 것이 뻔하니 분명 어딘가에 숨겨 놓았을 거요. 문단속하고 다니지만, 혹시나 모를 일이니까.”
갈레오스의 말에 루카는 안토니오의 방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물건은 없었다.
그러던 중 루카는 특이하게도 검은 천으로 덮여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다.
천으로 가려져 있었기에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형태로 보았을 때 루카는 그것이 갑옷임을 알 수 있었다.
천을 벗기기 위해서 루카가 손을 대려고 했을 때, 뒤쪽에서 갈레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이쪽으로 와서 나를 도와주겠소?”
갈레오스의 부탁에 루카는 천에 덮인 갑옷에 관한 관심을 거두고 갈레오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갈레오스는 안토니오가 사용하는 침대맡에 서 있었다.
“이제 이것을 같이 옮겨야 하오.”
갈레오스의 말에 루카는 침대를 붙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침대를 들어서 한쪽으로 옮겼다.
침대가 놓여 있던 자리의 바닥에는 당겨서 여는 작은 문이 있었다.
“아들 녀석이 사용하는 비밀 수납장이오. 안토니오는 이것도 내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법이지.”
거기까지 말한 갈레오스는 자조적인 웃음을 띠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참으로 우습구려. 만약 정말로 안토니오가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로렌조까지 죽인 거라면 나는 안토니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갈레오스는 손잡이를 잡고 당겼다.
그 안에는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 안은 여러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다.
루카는 그중 눈에 띄는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팔에 장착하는 발사 기구로, 기본 원리는 석궁과 비슷했지만, 석궁보다 전체적인 외관은 더 날렵하면서도 훨씬 복잡한 기계 장치가 달려 있었다.
루카는 그 발사 기구가 놓여 있던 옆에 같이 놓여 있는 화살통을 꺼내서 갈레오스에게 건네주었다.
갈레오스는 화살통을 열었다.
그 안에는 로렌조를 죽인 것과 같은 은 말뚝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그 물건을 확인한 갈레오스는 탄식을 내뱉었다.
“안토니오……. 어째서.”
갈레오스가 복잡한 심경으로 은 말뚝을 확인하는 동안 루카는 작은 가방을 찾아냈다.
루카가 그 가방을 열었을 때, 그 안에서는 괴물을 사냥하는 데 쓸 만한 여러 가지 물품이 들어 있었다.
루카는 그중에서 약병을 하나 꺼내 들어서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그녀가 늑대 인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만들었던 약과 같은 효과를 내는 약물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안토니오는 그 약물을 사용해서 루카와 로렌조에게 들키지 않고 움집의 근처에서 숨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가방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은 루카는 그 안에서 작은 책자를 하나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괴물 사냥꾼의 일기였다.
그녀가 일기를 찾아냈을 때 루카는 누군가 안토니오의 방으로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오고 있어요.”
루카의 말에 갈레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에 이 방으로 올 사람은 한 명밖에 없소. 안토니오가 이제 돌아온 모양이로군.”
“어떻게 할 생각이신 거죠?
“이런 증거가 나왔으니 이제 안토니오도 쉽게 발뺌을 할 수 없을 테지. 그리고 그 장의사를 경비대로 데려가 추궁을 하면 진실을 실토할 테고.”
갈레오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말뚝 발사기와 은 말뚝들을 챙겼다.
“이제부터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생각이오. 칼데브의 영주로서 위엄을 보여야 하겠지. 죄를 지은 자가 내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죄가 명명백백히 밝혀지는 순간, 그 죄를 숨겨 줄 수야 없는 노릇을 테니까.”
그때,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상대는 방의 안으로 들어오면서 문이 잠겨 있지 않음에 당황한 듯했다.
저벅저벅.
발소리와 함께 안토니오는 방 안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침대 쪽에 서 있는 루카와 갈레오스를 보면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버지.”
“어서 오너라, 아들아.”
갈레오스는 더할 나위 없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안토니오를 맞이했다.
* * *
안토니오가 사라져 버리자 주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최대한 오랫동안 안토니오를 붙잡아 둘 생각이었지만 안토니오는 약삭빠르게도 주환을 허를 찔러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강한 건 아닌데 상대하기 힘든 녀석이야.”
주환은 혀를 내두르며 그렇게 말했다.
주환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처지에 서 있었다.
안토니오가 오기 전까지 주환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 갈레오스의 면담을 기다리는 것.
두 번째, 루카가 구하러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
세 번째, 스스로 감옥을 탈출하는 것.
그 세 가지 선택지 중 마지막 선택지는 주환으로선 큰 비중을 두질 않았었다.
탈출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도 없었거니와 갈레오스가 이른 시일 내에 그를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오늘 밤. 이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깡그리 다 죽일 거야. 그 정도의 피가 흘러야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거든. 이제는 눈치 볼 필요가 없어. 나는 죽이면 죽일수록 강해지니까.]
주환은 안토니오가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