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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24화 (124/182)

124화

로렌조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간신히 조금 몸을 일으켰다.

“무리하지 마.”

“걱정할 필요 없어. 어차피 나는 죽을 테니까…… 만약 내가 죽으면, 내, 내 시체를 마을로 가져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이 알면 안토니오가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날 거야. 어떻게든 내 동생을 막아 줘……. 어떻게든 막아 줘. 제발.”

온 힘을 다하여 두 사람에게 부탁을 남긴 로렌조는 힘이 다한 듯 서서히 눈을 감으면서 다시금 바닥에 누웠다.

“……이걸로 내가 지은 죄를…… 갚을 수 있는 거겠지?”

“죄를 갚아야 하는 건 당신이 아니야. 당신의 동생이지.”

로렌조는 대답하지 않았다.

루카는 로렌조가 숨을 거두었음을 확인했다.

적이 이미 도망갔음을 확인한 주환이 루카와 로렌조에게 다가왔다.

“로렌조는?”

“이미 죽었어.”

“그럴 수가.”

주환이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루카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로렌조의 가슴에 박혀 있는 은 말뚝을 바라보았다.

“안토니오가 어째서 저런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 나중에 로렌조를 처리해야 할지 모르니 미리 준비해 놓은 걸까?”

루카의 물음에 주환은 그들 이전에 찾아왔다가 늑대 인간에게 당했다던 괴물 사냥꾼을 떠올렸다.

“지금까지의 살인이 안토니오가 벌인 일이라면 안토니오가 괴물 사냥꾼을 죽이고 그 무기를 빼앗은 게 아닐까?”

주환의 말에 루카는 어째서 자신이 안토니오의 냄새를 맡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괴물 사냥꾼에게 은 말뚝을 얻었다면 그가 가지고 있었던 다른 사냥 도구들도 안토니오가 빼돌렸을 거라는 가정이 가능했다.

“그 괴물 사냥꾼이라면 나처럼 늑대 인간의 코를 속이는 약품을 가지고 있었을 거야. 안토니오가 그걸 썼다면 내 코를 속이는 것도 할 수 있었겠지.”

루카는 바닥에 놓여 있는 로렌조의 시체를 번쩍 들더니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렸다.

“가자.”

“칼데브 마을로 돌아갈 거지?”

“그래. 지금 안토니오의 죄를 증명할 방법은 오로지 이 로렌조의 몸밖에는 없어. 가서 갈레오스와 안토니오를 만나 담판을 짓는 수밖에.”

로렌조의 시체를 챙긴 채로 주환과 루카는 움집을 벗어나 산에서 내려갔다.

* * *

두 사람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무슨 명령이 내려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칼데브 마을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대원들은 두 사람을 보자 체포하기 위해 창을 앞세우고 접근했다.

“잠깐. 이걸 좀 보세요.”

주환은 다가오는 경비대원들을 제지하면서 루카가 둘러메고 있는 로렌조의 시신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누구인지 알아보겠습니까?”

주환이 경비대원들에게 그렇게 물었다.

시신의 얼굴을 자세히 본 경비대원들을 경악했다.

아무리 머리칼과 수염을 길렀어도 이 정도로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본다면 알아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이건…….”

“큰 도련님이야. 큰 도련님의 시체라고!”

경비대원들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루카는 경비대원들에게 일갈했다.

“지금 큰일이 벌어졌으니까 당장 영주님에게 우리를 안내해!”

루카의 압력에 기가 눌린 경비대원들이 머뭇거리자 루카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지금 당장.”

* * *

주환과 루카는 경비대원들과 함께 마을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광장 쪽으로 나아갔다.

로렌조의 시신을 메고 있는 루카와 주환을 본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들의 주변을 몰려들었다.

그렇게 루카와 주환이 선두에서 걷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행렬이 만들어졌으며 그들이 광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마을 사람들이 광장의 주변을 가득 메우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경비대원이 출동하여 웅성거리고 있는 마을 주민을 진정시켰다.

루카와 주환은 광장의 가운데로 걸어가 그곳에 로렌조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광장에 있는 수많은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예전에 늑대 인간에게 죽었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던 로렌조가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주환과 루카는 갈레오스와 안토니오가 광장으로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갈레오스와 안토니오가 같이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환과 루카는 안토니오를 주시했다.

갈레오스의 뒤에 서 있던 안토니오는 곧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피식.

순간적이었지만 안토니오의 입에는 두 사람을 향한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

광장에 도착한 갈레오스는 황망한 얼굴로 주환과 루카에게 그렇게 말했다.

“당신의 아드님이 돌아왔습니다.”

루카의 말에 갈레오스는 바닥에 누워 있는 로렌조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갈레오스가 자기 아들의 시체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아…….”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로렌조의 시신에 다가간 갈레오스는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은 갈레오스는 비통한 얼굴로 숨진 로렌조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아들아……. 아들아…….”

갈레오스는 숨죽여 오열했다.

그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방울이 로렌조의 얼굴에 떨어져 광장의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어이하여. 어이하여. 이렇게 돌아왔느냐…….”

루카는 앞으로 나서며 멀찍이 서 있는 안토니오에게 일갈했다.

“형이 이렇게 돌아왔는데 놀란 척도 하지 않는 거냐?”

안토니오는 그저 보일 듯 말 듯한 웃음만을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너는 분명히 늑대 인간이 형을 죽여서 끌고 갔다고 이야기했었지. 어째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이 자리에서 설명해 보실까?”

루카의 요구에 마을 사람들과 경비대원들의 시선이 안토니오에게 향했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나는 거짓말한 적이 없어. 늑대 인간이 우리 형을 습격해서 데려간 것은 사실이거든. 내가 분명히 경고한 적이 있지? 늑대 인간에게 죽은 인간은 불에 태워야 안전하다고 말이야. 그래서 우리 형도 늑대 인간에게 물려서 죽었지만, 늑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던 거지. 내가 어째서 너희에게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거지? 이건 내 가설이 맞았다는 게 증명된 거잖아.”

안토니오는 마치 연극을 하는 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루카와 주환을 농락했다.

“헛소리하지 마! 로렌조가 죽기 전에 모든 진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어.”

루카는 이어서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로렌조가 했던 이야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루카의 이야기 끝났을 때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이야기를 들은 대다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로렌조의 시신을 얼싸안고 슬퍼하던 갈레오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려 안토니오를 바라보았다.

“아들아. 이 이야기가 사실이냐?”

“아버지는 저런 거짓말을 믿으십니까?”

안토니오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광장의 가운데로 걸어가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마치 연설가가 관중을 홀리는 듯한 제스쳐가 이어졌다.

“지금 제가 그러한 모욕을 받았으니 이 자리를 간이 재판장으로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군요. 재판장을 해주실 아버님도 계시고 또 배심원을 맡아 줄 여러분도 있으니까 말이죠.”

안토니오는 루카에게 물었다.

“지금 당신들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고발을 하고 있는데. 증거는 있는 건가?”

“증거는 네가 다 없애 버렸잖아!”

주환의 호통에 안토니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증거도 없이 나에게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우는 건가?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는군. 여러분 들으셨습니까?”

안토니오는 모여 있는 마을 주민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하지? 이곳은 우리 아버지의 영지고 나중에 나는 이 영지를 자연스럽게 물려받게 되어 있어. 그런데 내 영지의 주민들을 죽여 가면서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한다고? 그런 일을 걸렸다가는 아무리 영주의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극형을 면할 수 없어. 그런 일을 해서 내가 얻는 게 뭐가 있지?”

루카와 주환은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부분은 두 사람도 짐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사이코패스 살인마이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로는 갈레오스와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역시 대답을 못 하는군. 대체 왜 그런 장황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거지? 그 이유에 대해서 내가 한번 추리해 볼까? 자, 한번 들어봐. 너희는 제법 유능한 괴물 사냥꾼이야. 비록 태업하고 우리 마을의 장례식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긴 했지만 말이지. 너희는 결국에는 늑대 인간을 끝까지 잡아서 처리했어.”

안토니오는 로렌조의 가슴에 박혀 있는 은 말뚝을 가리켰다.

“저런 은 말뚝은 너희 같은 괴물 사냥꾼들이 사용하는 거겠지. 늑대 인간은 은에 약하니까. 그런데 죽이고 나니 저렇게 본 모습으로 돌아온 거야. 아니면 본 모습일 때 죽였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보상을 받기 위해서 마을로 돌아왔는데 그 시체를 본 누군가가 너희에게 일러 주었겠지. 죽은 저 시체는 바로 칼데브 영주의 첫째 아들이라고 말이야.”

마을에 있는 모두가 안토니오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너희는 당황했어. 임무는 완수하였지만, 영주의 아들을 죽인 셈이 되어 버렸거든. 그래서 너희는 없는 머리를 짜내고 짜내서 그런 요상한 핑계들을 만들어 낸 거지. 내 말이 틀린가?”

“우리가 하는 말은 진실이야.”

“도저히 말이 통하질 않는군.”

안토니오는 고개를 젓더니 주머니를 하나 꺼내어 두 사람의 앞으로 던졌다.

짤그랑.

주머니가 바닥에 떨어지자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건 수고비야.”

“뭐?”

“너희가 내 형을 죽여서 아주 가슴이 아프지만, 너희는 그저 우리의 의뢰를 따랐을 뿐이지. 그래서 너희에게 보복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나는 아주 자비로운 사람이라서 너희들에게 수고비까지 얹어 주려는 거지. 이 정도면 만족하고 이 마을 떠나는 게 어때?”

안토니오는 그렇게 말하며 갈레오스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갈레오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던 로렌조의 귀환.

안토니오를 고발하는 주환과 루카.

그리고 그것을 방어하는 안토니오의 모습.

그 모든 것들이 갈레오스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주환이 눈치 없이 떨어진 주머니를 주워서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을 때 루카는 그 주머니를 빼앗아서 안토니오의 가슴팍에 던졌다.

“우리는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진실을 바로잡으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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