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로렌조는 동생인 안토니오가 원하는 대로 연극을 하기 위하여 칼데브 마을로 향했다.
“이렇게 말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지. 시체를 입에 물고 있는 거대한 늑대 인간. 그걸 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 목격자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삽시간에 근처에 있던 경비대원들의 몰려들었지. 내가 생각해도 우리 마을의 경비대원들은 꽤 유능한 편이야. 경비대원들은 내 뒤를 쫓았고 나는 도망쳤지. 그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으니까. 물론, 그들이 내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달렸어. 적당한 순간이 오면 속도를 올려서 도망칠 생각이었거든.”
그렇지만 경비대원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갑자기 석궁의 화살들이 등에 박히더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야. 그 고통에 입에 물고 있던 시체를 놓쳐 버렸어. 늑대 인간이 된 이후로 그렇게 큰 상처를 입어 본 적이 없었으니 겁이 났지. 그래서 시체를 집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줄행랑을 쳐 버렸어.”
다시 움집으로 돌아온 로렌조는 동생의 일을 걱정했다.
그가 시체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면 완벽하게 증거가 없어졌겠지만, 그가 시체를 두고 와버렸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그 시체를 발견한다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다음 날에 동생이 나를 찾아왔어. 내 예상과는 달리 동생의 표정은 밝았어. 내가 사정을 물어보니 시체는 수거되었지만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다고 하더군. 자신이 사용하는 단검이 만든 상처가 마치 괴물의 발톱 자국 같은 흔적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어. 나는 시체를 직접 보았지만, 그것까지는 눈치채지 못했거든. 사람 시체를 보는 게 무서워서 시체를 꺼낸 다음에 억지로 물고 돌아다녔을 뿐이니까.”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해.”
루카의 말에 주환 역시 동의했다.
“확실히 그러네.”
“무슨 말이야?”
로렌조가 루카에게 물었다.
“혹시 안토니오가 그렇게 특이한 단검을 사용하는 걸 그 전에 본 적이 있어?”
“아니.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 단검은 그 살인 사건을 은폐하려고 일부러 만든 단검이야. 그 단검을 가지고 살인을 저지른 거지. 처음부터 늑대 인간에 의한 살인으로 보이기 위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안토니오가 벌인 첫 번째 살인은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야. 실수로 사람을 죽인 뒤 그 해결책으로 로렌조를 생각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로렌조, 너에게 뒤집어씌울 계획을 하고 일을 벌인 거지.”
“아.”
로렌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시체를 놓고 갔기 때문에 마을에서 시체를 가져간 거잖아. 그런 상황까지 계획을…….”
거기까지 말한 로렌조는 말을 멈추었다.
그것은 의미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제 알겠어? 안토니오는 그저 두 가지 방향 모두를 생각했을 뿐이야. 당신이 계획대로 시체를 물어갔으면 자동으로 범인은 네가 되는 거고. 만약 계획이 실패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시체가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는 것까지 계산을 해둔 거지. 마을 사람들이 시체를 가져간 건 당신이 실수해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 계획 자체가 실행되기 전에 우연히 사람들이 숨겨져 있는 시체를 발견해 버릴 수도 있어. 그때에 시체에 발톱 자국 같은 상처들이 남아 있으면 늑대 인간의 짓이라고 설득을 해볼 수 있으니까.”
“그럼…… 동생은 처음부터 나를 이용하려고 한 건가?”
“그리고 안토니오의 살인이 우발적이지 않았다는 증거는 더 있지. 안토니오의 살인이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쇄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것.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안토니오는 살인을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 없는 거야.”
루카의 말에 로렌조는 입술을 깨물었다.
혼자 있는 것이 한없이 외로울 때면 그는 가끔 마을로 내려가곤 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다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머리칼과 수염을 길게 기르고 온몸에 흙을 덕지덕지 바른 채 병자 거지의 분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마을 근처에서 지나다니던 사람들에게 구걸하던 로렌조는 늑대 인간에 의한 살인 사건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몰래 듣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범인은 다른 사람 외에는 있을 수가 없었다.
바로 자신의 동생 안토니오 외에는.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었는데 몇 가지 궁금한 게 생겼어.”
주환은 그렇게 말한 뒤 말을 이었다.
“어째서 안토니오는 처음 살인을 했을 때 시체를 파묻어 버리지 않았을까? 그런 연극을 하는 것보다 그편이 더 안전할 것 같은데. 어차피 마을 사람들은 로렌조가 늑대 인간에게 물려가서 실종된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같은 일이 반복되어도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시체를 완전히 없애 버린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야. 만약 안토니오에게 공범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사람을 죽였을 때 마을 안에서 처리할 수 없으니 혼자서 시체를 가지고 마을 바깥으로 나가야 해. 들쳐 메고 가든지 수레를 이용하든지 해서 말이야. 하지만 입구는 전부 경비대원들이 지키고 있어. 그런 안토니오의 모습은 경비대원들에게 엄청나게 수상하게 보이겠지.”
“솔직히 이런 생각은 하고 싶지는 않지만. 토막을 내서 조금씩 밖으로 가지고 나간다면?”
“우선 안토니오가 그런 작업장을 가졌는지 미지수거니와 그렇게 조금씩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너무 많은 반복 작업이 필요해. 그러면 그것 역시도 의심을 살 수 있어.”
“하긴 그렇겠네.”
“그리고 무사히 밖으로 가지고 나가도 문제야. 시체를 파묻으려면 생각보다 아주 깊이 파야 해. 얕게 파서 묻으면 바로 들짐승들이 파내 버리거든. 그것도 굉장한 중노동인데. 아까도 말했듯이 안토니오의 첫 번째 살인이 우발적 살인이라면 주환, 네가 말한 것처럼 시체를 완전히 없애 버리는 방법을 선택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내가 봤을 때 안토니오는 첫 번째 살인이 있기 전부터 계속 살인이 이어질 거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었어. 그러면 직접 시체를 유기하기보다 더 쉽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체 처리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지.”
“그래서 나를 끌어들인 거로군.”
로렌조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안토니오가 살인을 저지르고 그 죄는 로렌조가 뒤집어쓴다. 그리고 안토니오는 아버지에게 시체들을 태워 버릴 것을 건의했어. 아무리 늑대 인간의 공격을 모방했다고 하더라도 괴물에 정통한 사람이 있다면 그 시체를 보고 이상함을 느낄 수 있거든. 그래서 아무 증거도 남지 않게 태워 버리는 것을 선택한 거지. 아마 안토니오는 마을 밖으로 나간 사람들을 죽여서 그곳에서 시체까지 처리하고 싶었겠지. 그렇지만 마을 밖에는 좀비들과 늑대 인간이 출몰하기에 혼자서 밖에 나가는 이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마을 안에서 희생양을 찾았을 거고.”
“그다음 궁금한 건, 왜 안토니오는 우리 같은 괴물 사냥꾼을 노린 걸까?”
“아마 로렌조가 죽는 것을 막으려는 게 아닐까?”
“날?”
로렌조는 손을 들어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안타깝지만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니겠지. 당신이 죽는다면 더는 살인의 방패막이로 내세울 수 있는 존재가 없어지는 거니까.”
서로의 이야기가 끝난 뒤. 움집은 침묵에 잠겼다.
루카와 주환은 로렌조가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려 주었다.
아무리 안토니오가 악인이라고 하더라도 로렌조의 동생이다.
그가 끝까지 동생을 보호하려고 한다면 두 사람으로서는 그의 뜻을 이해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속았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안토니오의 공범이었다.
“마을로 내려가겠어.”
로렌조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을 만나 뵙고 모든 사실을 말씀드릴 거야. 아버지께 용서받거나 할 욕심은 없어. 동생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을 속이고 일이 이렇게 악화할 때까지 방관만 했던 게 사실이니까. 모든 사실이 낱낱이 밝혀져서 동생이 처벌을 받는다고 하면 나 역시도 벌을 받을 거야.”
“결심을 굳혔나 보네.”
“그래. 마음을 먹으니까 훨씬 홀가분해진 것 같아.”
로렌조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침대에서 일어섰다.
푹!
그 순간, 커다란 무언가가 움집의 창문을 넘어서 안쪽으로 쏘아져 들어왔다.
“컥!”
그리고 그것은 로렌조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러자 로렌조는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들어온 정제불명의 물체를 내려다보면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뭐야!”
루카와 주환은 움집의 바닥에 쓰러진 로렌조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주환은 재빨리 창문 쪽으로 붙은 후에 살짝 고개를 내밀어 바깥 상황을 살폈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멀리 있는 수풀이 파르르 흔들릴 뿐이었다.
타다당!
주환은 수풀이 흔들린 방향을 향해서 총을 발사했다.
그렇지만 상대방은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난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편, 루카는 쓰러져 있는 로렌조를 부축했다.
‘어째서 내가 냄새를 맡지 못한 거지?’
루카는 움집의 주변까지 숨어 들어온 적의 냄새를 어째서 자신이 맡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선 루카는 로렌조의 상태를 살폈다.
로렌조의 심장에 박혀 있는 것은 바로 거대한 은 말뚝이었다.
“으윽…….”
로렌조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조금만 참아. 이걸 뽑아 줄 테니까.”
루카는 은 말뚝을 뽑으려고 했다.
로렌조가 보통의 인간이라면 뽑는 순간 과다출혈로 죽겠지만, 그는 다행히 늑대 인간이었다.
말뚝을 뽑아내면 다시 몸을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루카가 은 말뚝을 잡았을 때 로렌조가 손을 들어서 루카의 손목을 잡았다.
“소용없어…….”
로렌조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나는 지금 죽어 가고 있어. 이건 늑대 인간의 재생력으로도 소용없는 일이야.”
“그건 모르는 일이잖아!”
“들은 적이 있어……. 늑대 인간은 은에 약하다는 걸. 은에 당한 상처는 오랜 시간 동안 재생하는 것이 불가능해. 심지어 나는 지금 심장을 당했으니까. 살아남는 것은 무리야.”
루카는 로렌조의 몸에서 급속도로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 나를 습격한 건…… 분명 안토니오일 거야. 이 움집의 존재는 나와 안토니오밖에 모르니까. 밖에서 우리 이야기를 엿듣고 있다가 내가 변심했다는 것을 알자 나를 죽이기로 마음먹었겠지.”
그렇게 말한 로렌조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아니…… 늑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가져왔으니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