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이상한 점?”
주환은 어젯밤의 싸움에 대해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잘 생각해 봐. 늑대 인간을 잡으러 마구간에 들어갔을 때 양 한 마리가 죽어 있었잖아. 그 양은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긴 상태였지. 그것만 보더라도 그 늑대 인간은 매우 야성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어.”
“양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 것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거야?”
“양을 죽인 거에는 문제가 없어. 이상한 것은 경비대원들이 몰려온 다음에 늑대 인간이 보인 행동이지.”
“뭐가 이상했는데?”
“양은 그렇게 잔인하게 해쳤으면서 경비대원들에게는 그다지 위해를 끼치지 않았어. 단지 경비대원들의 수가 많아서 겁을 먹었다고 볼 문제가 아니야. 늑대 인간은 경비대원들을 두 번이나 공격했지만, 그때마다 손발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손등을 사용해서 마치 밀어내듯이 공격을 했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마치 경비대원들에게 최대한 해를 입히지 않으려던 듯이 말이야.”
“그건 좀 이상하긴 하네. 그렇지만 도망칠 생각이어서 굳이 경비대원을 도발하지 않기 위해 그랬던 것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서야 영주에게 들었던 늑대 인간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 이야기의 늑대 인간은 인간을 죽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였거든. 경비대원들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해서 경비대원들이 그를 봐줄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럼 그 늑대 인간은 이 마을 사람들과 연관이 있다는 뜻이야?”
“거기까지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리고 그 다락방으로 돌아와서 양젖에 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 이 사건에는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을 했지. 이곳에 연고도 없고 분명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 마을에 온 우리가 독살 위험에 빠져야 할 어떤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이는 영주 아니면 안토니오였지.”
“결론이 나왔어?”
“응. 거의 나왔어.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안토니오야.”
“영주는?”
“영주는 아마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거야. 아무튼, 나는 내 생각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늑대 인간에게 당한 시체를 확인해 보려고 했어. 그들이 매장되어있다면 몰래 무덤까지 파낼 생각이었지.”
“그건 고인 능욕이야.”
“어쩔 수 없잖아. 시체가 더 상하기 전에 확인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영주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지. 늑대 인간에게 당한 시체는 전부 화장을 하고 있다고 말이야. 심지어 매장을 전통으로 유지하는 마을에서 말이지. 게다가 그러한 장례를 발의한 것은 바로 안토니오였고.”
“불에 시체를 태운다는 건…….”
그때, 주환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의도적으로 시체를 훼손하려는 건가?”
“맞아. 안토니오는 일부러 시체를 태워서 없애려고 한 거지. 그것은 늑대 인간에게 살해당한 시체들에 남아 있는 어떤 증거를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없애 버려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거야.”
“그럼 루카 너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합동 장례식을 찾아간 거고?”
“어. 합동 장례식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시체는 실시간으로 훼손되고 있었고 말이야. 안토니오가 필사적으로 우리를 막으려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장례식을 욕되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시체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는 거였어. 갑자기 장례식에 아무런 관련도 없는 우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눈치를 챘겠지.”
“그리고 너는 억지로 그 시체 중 하나를 확인했고 말이야.”
“응. 그리고 모든 게 확실해졌어.”
“진실이?”
“늑대 인간에게 당한 인간 중 모두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부가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늑대 인간에게 당한 사람들은 사실 안토니오에게 죽은 사람들일 거야.”
“잠깐. 안토니오가 살인자란 말이야?”
“맞아. 시체에 남아 있는 상처를 살펴보았는데, 잘 꿰매어져 있었어. 그 상처는 얼핏 보면 늑대의 발톱에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발톱의 상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죽은 양의 사체에 남아있는 상처는 진짜 늑대 인간이 만든 거라서 비교할 수가 있었거든. 그리고 살해당한 인간의 몸에는 발톱에 베인 상처는 남아 있었지만 물린 상처는 하나도 없었어.”
“그럼 발톱의 상처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난 상처야?”
“주환 너 안토니오가 차고 다니는 단검을 기억하고 있어?”
안토니오가 루카와의 대련 중에 꺼낸 적이 있기 때문에 주환은 그의 단검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상하게 생긴 단검?”
“응. 살해당한 인간들의 몸에 나 있는 늑대 인간의 발톱 자국은 사실은 발톱이 아니라 안토니오가 가지고 있는 단검으로 만들어진 거야. 그 단검의 특이한 형태를 이용해서 마치 늑대 인간에게 당한 것 같은 상처를 만들어 낸 거지.”
“그럼 우리를 독살하려고 한 것도?”
“안토니오가 맞겠지.”
“대체 무엇 때문에?”
“그건 아직 알 수 없어. 지금까지 알 수 있었던 안토니오가 늑대 인간의 소행을 빙자해서 마을 사람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하고 있다는 거야.”
“그럼 거기까지 파악했다면 왜 아까 합동 장례식에서 바로 그 사실을 밝히지 않은 거야?”
“증거가 부족하니까. 안토니오는 영주의 아들이야. 마을 사람들은 다 그의 편일 거고 우리가 어떠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어떤 식으로든 그에 맞는 변명을 하겠지. 아까 시체를 보존해 달라고 말하지 않은 것도 안토니오가 발뺌할 수 없는 증거를 찾으면 끝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은 거야.”
“그 확실한 증거에 대해서 생각해 둔 게 있어?”
“내 예상이지만 그 늑대 인간을 찾으면 모든 게 명백해질 거야.”
* * *
“여긴 것 같아.”
루카가 늑대 인간의 냄새를 찾아서 그의 은신처를 추적했지만 숲속에서 냄새만으로 상대방을 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냄새는 너무 옅었고 숲속에서는 온갖 냄새들이 진동하면서 늑대 인간의 냄새를 지워 주었다.
그렇기에 주환과 루카는 숲속에서 한참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너무 오랜 시간을 숲속에서 보낸 두 사람은 이윽고 수상해 보이는 한 움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가에서 이렇게 나 멀리 떨어져 있는 움집이라니.”
그 움집은 벽이 전부 진흙을 발라 만들어졌으며 짚과 나뭇잎을 엮어서 만든 지붕이 그 위에 올려져 있었다.
“여기가 확실한 거야?”
“냄새가 이곳이 가장 강해. 지금 저 집 안에 있든지 최소한 이 근처에는 있을 거야.”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뒤 조심스럽게 움집으로 다가갔다.
움집에는 입구와 창 역할을 하는 구멍이 있었지만, 딱히 문이나 창문은 없었으며 각각 갈대를 엮어서 만든 발이 달려 있을 뿐이었다.
주환과 루카는 서로 신호를 보낸 뒤 곧장 발을 밀어젖히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침대와 불을 피울 수 있는 흙으로 된 작은 아궁이뿐이었다.
벽의 한쪽에는 야생동물로 보이는 동물들의 뼈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이곳이 정말 늑대 인간의 거처라면 저 안에는 늑대 인간이 납치한 가축들의 뼈도 섞여 있을 것이다.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주환이 그렇게 말했을 때 루카는 갑자기 손가락을 들어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쉿!”
루카의 손짓에 주환은 문의 옆쪽에 몸을 숨겼다.
루카는 주환과 반대쪽에서 서서 벽에 몸을 붙였다.
저벅저벅.
어느 순간, 주환의 귀에서 상대방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휙!
발이 걷히면서 집 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는 바로 옆에 숨어 있는 루카와 주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집 안으로 들어온 자는 반쯤은 헐벗은 남성으로, 부스스하고 긴 갈색 머리칼에 덥수룩한 수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온몸은 상당히 더러웠는데, 몸에서 지독한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기에 냄새에 민감한 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코를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의 손에는 두 마리의 죽은 토끼가 들려 있었다.
주환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면서 남자의 머리 쪽을 향해서 총을 겨누었다.
그가 정말 늑대 인간이라면 어젯밤의 기억 때문에 주환의 무기가 가진 무서움을 알고 있을 것이다.
루카와 주환은 남자의 뒤에 있었기 때문에 남자는 두 사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주환과 루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꼼짝 마!”
주환이 그에게 경고를 날렸다.
주환과 루카를 본 남자는 손에 든 토끼를 떨어뜨리며 경악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루카는 놀란 남자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손을 들었다.
“우리는 당신을 해치러 온 게 아니야. 오히려 당신을 도우러 온 거야. 정말이야.”
루카의 말에 남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 * *
주환과 루카, 그리고 정체불명의 남자는 잠시 대치 중이었다.
상대방은 지금 겁을 먹고 있다.
주환은 분명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로서는 방심할 수는 없었다.
상대가 정말로 늑대 인간이라면 언제 그 흉포한 본성을 드러낼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당신의 적이 아니야.”
루카가 그를 설득할 때 남자는 갑자기 루카에게로 조금씩 다가갔다.
“이봐. 잠깐.”
남자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기에 주환은 여전히 남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때, 루카가 괜찮다는 듯 손을 들었다.
남자는 루카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루카에게 얼굴을 들이밀고는 그녀의 냄새를 맡았다.
루카는 그가 냄새를 다 맡을 때까지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루카의 냄새를 맡은 남자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남자는 더듬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조금이지만 당신에게서 나와 비슷한 냄새가 나고 있어.”
루카가 몸에 뿌린 약의 효능이 떨어지기 시작한 듯 그녀의 몸에서 희미하게 나는 동족의 냄새를 맡은 남자는 웃는 것도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지었다.
“당신도 나와 같은?”
남자의 말에 루카는 몸을 변화시켰다.
머리 위쪽으로 솟아오르는 귀.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
그리고 야수의 그것과 흡사한 눈동자.
그것을 본 남자는 탄성을 내질렀다.
“완전한 변신은 아니지만 분명 당신도 나와 같은 동족이로군.”
“맞아. 나도 당신의 냄새를 쫓아서 이곳까지 왔으니까.”
“여기까지 나를 쫓아왔다면 결국에는 나를 죽이겠다는 뜻이잖아? 어제 당신들을 보았어. 특히.”
남자는 주환이 들고 있는 돌격 소총을 가리켰다.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엄청나게 아팠어.”
남자의 말에 주환은 미안함을 느꼈다.
“공격한 건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안토니오를 공격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안토니오를?”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동생을 공격할 리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