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주환과 루카가 마구간을 떠나서 도착한 곳은 그들이 마구간을 감시하고 있던 바로 그 다락방이 있던 건물이었다.
“여기에 놓고 온 게 있는 거야?”
주환이 그렇게 물었지만, 루카는 대답하지 않고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주환도 그녀를 뒤따라서 올라갔는데, 다락방으로 올라간 루카는 다락방의 바닥을 살폈다.
“아까 그 양젖.”
루카는 계속해서 바닥을 살피면서 주환에게 물었다.
“그거 어디로 갔어?”
“양젖?”
루카의 물음에 주환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거 안토니오가 다시 챙겼던 것 같은데.”
“그래?”
안토니오가 가져왔던 바구니는 여전히 바닥에 남아 있었다.
루카는 바구니 안에 있는 빵을 조금 떼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야. 가지러 온 게 그 빵이야? 그 빵이 그렇게 맛있어 보였어?”
“확실히 맛은 있네.”
루카는 순순히 그렇게 대답하더니 이번에는 다락방의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컵을 집었다.
그 컵에는 주환이 마시다가 만 양젖이 조금 남아 있었다.
“루카. 그거 상했어. 그거 먹을 거 아니지?”
“먹을 건데?”
“야, 그러지 마. 그렇게 배고프면 숙소에 대기하고 있는 하인들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새벽이라서 부탁하고 싶지 않으면 우리가 가져온 장기 보존식들도 있고.”
주환의 만류에도 루카는 양젖의 냄새를 맡아 보더니 그대로 그 양젖을 마셔 버렸다.
“배탈 나도 난 모른다.”
양젖을 입에 넣은 루카는 주환의 예상대로 그 양젖을 뱉어 버렸다.
“내가 분명히 경고했잖아.”
루카는 입을 닦으면서 주환에게 말했다.
“이 양젖은 상한 게 아니야.”
“뭐? 내가 먹었을 때 분명 상했었는데.”
“너는 왜 이게 상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야 입에 넣었을 때 엄청나게 이상한 맛이 났으니까. 동물의 젖은 잘 보관하지 않으면 금방 상하잖아. 그래서 상했다고 생각했지.”
“이 양젖에는 독이 들어 있었어.”
“뭐?”
주환은 루카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 그때 양젖 입에 넣자마자 뱉어 버렸잖아.”
“그랬지. 맛이 너무 이상했으니까.”
“그래서 네가 무사할 수 있었던 거야. 입안에 상처가 있어서 거기로 독이 들어가면 모를까, 입에 넣자마자 뱉었으니 중독될 일은 거의 없었던 거지.”
“대체 누가 독을 넣은 거야?”
주환은 그 음식을 가져온 이를 떠올렸다.
“설마 안토니오가?”
“그럴 수도 있지만, 아직 속단할 수는 없어. 안토니오가 그랬잖아. 그 야식을 가져다주라고 시킨 사람은 갈레오스라고.”
“그렇지만 영주가 우리를 죽일 이유가 아무것도 없잖아? 우리에게 일을 시켜놓고 곧바로 죽인다? 만약 일이 끝난 다음에 보수를 주기 싫어서 그런 음모를 꾸몄다고 하더라도 말이 안 돼.”
“그렇게 치면 안토니오도 동기가 약하지. 나한테 모욕을 받은 게 너무 화가 나서 독을 썼다면 얼추 끼워 맞출 수는 있지만 그건 설득력이 부족해.”
“그런데 정말로 그 양젖에 독이 들어 있던 것은 확실한 거야?”
“나를 뭐로 보고 하는 소리야? 나는 온갖 약초에 통달해 있다고. 약초와 독초는 한 끗 차이일 뿐이거든.”
루카는 들고 있던 컵의 안쪽을 들여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독을 쓴 사람은 독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일 거야.”
“어째서?”
“독을 쓸 때는 그 독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맛을 없애 줄 수 있는 음료를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거든. 그렇지 않으면 아까 너처럼 먹자마자 뱉어 버리게 될 테니까. 이 양젖에 들어간 독의 맛은 양젖으로는 감출 수도 없거니와, 이렇게 강한 맛이 난다는 것은 독을 쓴 사람이 무턱대고 많은 양의 독을 넣었다는 이야기거든.”
“그렇게 많은 독을 넣었다는 건 독에 대한 지식은 부족해도 우리를 죽일 마음만큼은 넘쳤다는 이야긴데.”
“정답이야.”
“바깥에도 적이 있고 내부에도 적이 있는 상황이군.”
“둘 다 위험한 적이긴 하지만 우선 내부의 적을 찾으려면 좀 더 조사해볼 필요가 있어.”
* * *
다음 날. 주환과 루카는 일찍 갈레오스의 집무실에 들러 새벽에 있었던 사건의 경과를 보고했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주환과 루카를 보면서 갈레오스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안토니오가 여러분보다 일찍 집무실을 들린 터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소.”
갈레오스의 목소리에는 탐탁잖음이 묻어나왔다.
“안토니오의 이야기를 들으니 두 사람은 그 늑대 인간을 잡는 데 있어서 그다지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던데. 물론, 그 이야기를 온전히 다 믿는 것은 아니오. 걸러 들을 것은 걸려들었지만 경비대원들의 증언도 일치하고 있으니 이에 대해서 나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로군.”
“늑대 인간이 너무나 멀리 도망쳤기 때문에 쫓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쫓아갔던 안토니오와 경비대원들도 결국에는 그 늑대 인간을 찾지 못했겠죠.”
갈레오스는 주환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당신들이 합류를 해주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오. 그리고 늑대 인간을 죽이기보다 생포하는 것에 더 혈안이 되어 있다던데 그게 사실이오?”
“그건.”
주환은 옆에 앉아 있는 루카를 슬쩍 바라보았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카는 관심이 자신에게 쏠린 것을 느꼈는지 비로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무엇이오?”
“가장 최근에 늑대 인간에게 당했던 피해자들의 시체는 다 매장을 하신 건가요?”
주환과 갈레오스는 루카가 던지는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매장은 하고 있지 않소. 안토니오의 말로는 괴물에게 당한 시체는 매장하지 않고 완전히 불태워 버려야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더군.”
“그래요?”
갈레오스의 말에 루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갈레오스는 루카가 어째서 죽은 사람들의 장례 방법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갔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원래 죽은 이를 보내는 데 있어 매장이 원칙이지만 좀비 사태 때부터 시신을 화장하는 방법이 한동안 주를 이루기 시작했지. 그것은 감염에 대한 방역, 그리고 죽었던 시체가 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심리적인 공포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방책이었소. 처음에는 시신을 태운다는 것에 대해 반발이 있기는 했지만, 곧 모두가 적응할 수밖에 없었지. 좀비에 대한 위협은 실재하고 있었으니까.”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화장을 한다고 해서 무작정 시신을 태워서 없애는 게 아니오. 고인의 시신을 정성껏 염하고 시신이 올라가는 제단을 준비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고인의 시신을 제단에 올리고 불을 붙이면 그 시신이 전부 탈 때까지 가족들과 친지들이 기도를 올리오. 시체를 태운다는 그 부정함을 씻어내는 것이지.”
“그럼 칼데브 마을의 장례 방법은 완전히 화장법으로 고정된 겁니까?”
“그렇지 않소. 좀비 사태가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자 다시 매장법으로 돌아갔소. 그 이후 늑대 인간의 습격으로 희생자가 생기자 안토니오가 늑대 인간에게 당한 시체들은 화장법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건의를 했지. 나로서는 잘 모르지만, 늑대 인간에게 당한 사람도 늑대 인간이 될 수가 있다더군. 마치 좀비처럼 전염성이 있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죽은 사람이라도 화장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말이오.”
늑대 인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주환으로서는 그것이 옳은 일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럼 가장 최근에 늑대 인간에게 시체들은 다 화장처리가 된 건가요?”
루카의 물음에 갈레오스는 손가락을 꼽으면서 뭔가를 계산하였다.
“요즘에 늑대 인간에게 당한 시체들이 꽤 있어서 합동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하였소. 그날이 때마침…… 오늘이로군.”
갈레오스의 말에 루카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기가 어디죠?”
* * *
합동 장례식은 칼데브 마을에서 멀지 않은 들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들판에는 시신을 태우는 제단들이 여러 개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위에는 각각 시신들이 올라가 있다.
합동 장례식이 이미 시작된 뒤였기에 제단은 불타오르고 있었고 그에 따라 제단과 시신이 타면서 만들어지는 연기가 하늘을 메웠다.
갈레오스에게 들은 장소를 찾아서 마을 밖으로 나온 주환과 루카는 곧 그 연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시작했는걸.”
주환의 말에 루카는 급히 합동 장례식이 이루어지고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루카가 그곳을 찾아가는지 알 수 없었던 주환은 그저 루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수밖에 방도가 없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현장에 도착했다.
제단들에서 불꽃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으며 제단마다 각각 가족과 친지들이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시신의 근처에 모여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제단들 중 아무도 모여 있지 않은 제단도 하나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제단이 칼데브 마을에서 죽은 괴물 사냥꾼이 올라가 있는 제단임을 깨달았다.
그는 칼데브 마을에 가족이 없을 테니 그의 죽음을 추모해 줄 사람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든 장례 절차는 안토니오가 주관하고 있었으며, 그는 경비대원들과 함께 제단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화장식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안토니오를 발견한 루카는 곧장 그에게로 다가갔다.
안토니오 역시 루카와 주환을 발견하고는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여기는 무슨 일이야?”
“지금 제단들의 불을 꺼줘. 빨리.”
다짜고짜 내지르는 루카의 요구에 안토니오와 주환 둘 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무슨 소리야?”
두 사람은 동시에 그렇게 말했다.
“말 그대로야. 빨리 불을 꺼줘. 확인할 게 있어.”
“헛소리하지 마. 장례식을 방해하는 건 고인을 모독하는 일이야. 어제는 태업하더니 오늘은 장례식까지 방해할 참이야?”
안토니오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길길이 날뛰었다.
그렇지만 루카는 그런 안토니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해주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하겠어.”
그렇게 말하며 루카는 제단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제단들은 고인의 가족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기에 그녀가 목표로 한 것은 바로 괴물 사냥꾼이 올라가 있는 제단이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만둬!”
안토니오는 불타고 있는 제단으로 다가가는 루카에게 달려갔다.
루카는 제단 위에 있는 시체를 직접 꺼내려고 했지만, 불길이 워낙에 셌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루카는 제단의 불을 끌 만한 것을 찾아보았지만 불을 끌 수 있는 도구는 없었다.
애당초 불이 옮겨붙을 곳이 없는 허허벌판에서 이루어지는 장례식이었던 데다가, 화장을 하면서 중간에 불을 끌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환. 네 무기로 얼음을 발사해서 제단의 불을 꺼줘.”
루카가 주환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주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얼음탄은 어제 늑대 인간을 상대하면서 다 써버렸어.”
그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 주환은 실탄과 비살상탄, 그리고 속성탄 4종까지 해서 다종다양한 탄들을 준비했기 때문에 개개의 탄약의 수는 상당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루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제단을 만들다가 남은 굵은 통나무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그 통나무로 제단을 무너뜨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