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퍽!
늑대 인간이 벽을 때릴 때마다 상자가 심하게 흔들렸지만, 겉보기보다는 견고하게 제작되었기 때문에 상자가 부서지지는 않았다.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어.”
“조금만 더 버티면 돼. 방금 경비대원들에게서 신호를 받았어. 금방 올 거야.”
으직!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주환의 말이 무색하게도 늑대 인간의 무지막지한 괴력에 상자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나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잠깐. 이래서는 더 못 버티겠는데?”
주환이 루카를 바라보자 루카는 손을 들어서 마구간의 바깥을 가리켰다.
“플랜B로 가자!”
“알았어!”
두 사람은 마구간의 밖으로 뛰어나간 다음 문을 닫고 바깥에서 나무로 된 걸쇠로 문을 막았다.
그렇게 문단속을 해놓으면 늑대 인간이 나무 상자 함정에서 빠져나온다고 하더라도 마구간에 갇힌 상태가 되기 때문에 더욱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빠직!
나무 상자 함정이 박살 나는 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우리 예상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두 사람은 마구간에서 조금 더 물러섰다.
“괜찮습니까?”
주환과 루카가 뒤를 돌아보자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 경비대장이 수십 명의 경비대원을 이끌고 두 사람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놈을 저 마구간 안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주환이 그렇게 말하자 경비대장은 잘했다는 듯 주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했소. 이제 뒤는 우리가 맡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경비대는 마구간을 포위했다.
주환은 경비대원들이 액체를 담는 거대한 오크통들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건 뭐지? 저건 계획에 없었던 건데?’
주환이 의아해하는 사이 그들은 오크통의 마개를 열었다.
마개를 열자마자 루카가 사색이 되어서 주환에게 달려왔다.
“주환. 저거 다 기름이야.”
“기름?”
‘설마 마구간을 불태울 작정인가?’
주환과 루카는 경비대장에게 다가갔다.
“지금 마구간을 불태울 생각입니까?”
주환의 물음에 경비대장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소.”
경비대원들은 오크통을 들고 가 마구간의 벽에 기름을 뿌리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분명 계획을 짤 때에는 늑대 인간을 사로잡는 걸로 합의를 했잖습니까.”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소. 그렇지만 계획이 바뀐 것뿐이오. 늑대 인간같이 위험한 괴물을 사로잡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부담이 너무 크오. 놈을 죽일 수 있을 때 확실하게 죽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오.”
“그렇지만.”
“무슨 생각 하는지 압니다. 당신들 같은 괴물 사냥꾼들은 괴물에게서 나온 신체 일부분을 수집하는 게 취미라죠. 늑대 인간을 잡아서 상처가 없는 가죽을 얻고 싶은 마음은 잘 알지만, 저놈은 마을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했소. 당신들의 공을 인정하지만, 놈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들의 판단에 달린 거요. 우리로서는 놈을 놓칠지도 모르는 도박을 할 순 없소.”
경비대원들의 각오는 단단했다.
주환과 루카로서는 늑대 인간을 산 채로 잡아야 하는 확실한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루카가 늑대 인간이라는 사실을 밝혀야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루카 역시 마을 사람들의 배척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늑대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깊숙하게 박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경비대원들이 횃불을 던지자 마구간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주환과 루카는 타오르고 있는 마구간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으직!
갑자기 늑대 인간이 불타고 있는 마구간의 벽을 박살 내면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크아악!”
“으앗!”
늑대 인간이 빠져나오자 경비대원들의 사이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늑대 인간의 온몸에는 불이 붙어 있었으며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놈을 잡아라!”
경비대장의 명령에 경비대원들은 창을 앞세우고 늑대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슉!
온몸이 불타고 있었지만, 늑대 인간은 늑대 인간.
늑대 인간이 손을 휘두르자 그 손에 맞은 경비대원들의 창이 한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으악!”
경비대원들이 겁을 먹자 경비대장이 소리쳤다.
“검으로 싸워!”
창을 놓친 경비대원들이 검을 뽑기 위해 허둥지둥할 때, 루카는 경비대원들의 어깨를 밟고 공중에 뛰어오르며 늑대 인간에게로 단숨에 도약했다.
찰싹!
루카는 늑대 인간의 목에 매달린 다음, 늑대 인간의 목을 자신의 팔꿈치 안쪽으로 집어넣고 강하게 졸랐다.
그것은 경동맥을 졸라 상대를 기절시키는 기술이었다.
늑대 인간에게 붙어 있던 불이 루카에게 옮겨붙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잠들어! 잠들란 말이야!”
그렇지만 늑대 인간의 목이 워낙에 굵었기에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늑대 인간이 몸을 거세게 흔들자 루카는 그의 목을 놓쳐 버렸는데, 늑대 인간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공중으로 몸을 솟구쳤다.
그사이 주환은 돌격 소총의 탄을 얼음탄으로 교체한 뒤였다.
주환이 방아쇠를 당기자 몇 발의 얼음 화살이 하늘로 뛰어오른 늑대 인간의 하반신에 명중했다.
얼음 화살이 명중한 곳이 급속하게 얼어붙으면서 늑대 인간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쿠웅!
그 덕분에 늑대 인간은 얼마 뛰어오르지 못하고 곧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때, 늑대 인간이 있는 곳으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양들을 다른 곳으로 인도한 다음 다시 돌아온 안토니오였다.
“뭐. 뭐야!”
당황한 안토니오를 본 늑대 인간은 그를 향해서 달려갔다.
탕!
주환이 발사한 실탄이 늑대 인간의 다리를 맞췄다.
안토니오가 위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환은 어쩔 수 없이 실탄을 발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잡아!”
늑대 인간이 상처를 입자 경비대원들이 늑대 인간을 향해서 일제히 달려들었다.
“크앙!”
그러나 늑대 인간의 괴력은 아직도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늑대 인간은 팔을 휘둘러서 앞에 달려드는 경비대원들을 단숨에 때려눕히더니 놀라운 몸놀림을 보이면서 방향을 바꾸어서 담벼락을 향해 달렸다.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늑대 인간을 잡기 위해서 이동했지만, 늑대 인간은 탄력적인 점프력으로 칼데브 마을의 높은 담을 뛰어넘어 그 앞에 펼쳐진 널따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가 뛰어넘은 담벼락에는 늑대 인간의 다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떨어져 선명한 붉은색의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늑대 인간이 도망쳐 버리자 주환과 루카는 그를 따라서 마을의 담을 뛰어넘었다.
루카는 담을 단숨에 넘을 수 있었지만, 주환은 담벼락에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붙잡은 다음 발로 담벼락을 디디면서 간신히 올라갔다.
경비대원들은 무거운 무장을 하고 있었기에 날렵하게 담을 오를 수가 없어 다른 입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담벼락을 넘은 루카와 주환은 늑대 인간의 그 뒤를 쫓았지만, 결국 늑대 인간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고 말았다.
루카도 몸이 날쌘 편이었지만 완전히 몸을 변화시킨 늑대 인간과 속도를 겨룰 수는 없었다.
늑대 인간의 무서운 점 중 하나는 놀라운 수준의 회복력.
분명 도망치고 있는 늑대 인간은 다리를 심하게 다쳤지만 도망치는 속도는 거의 느려지지 않았다.
반면에 루카는 아직 몸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현재로서는 늑대 인간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추격 능력을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루카는 걸음을 멈추고 차분히 어둠 속을 꿰뚫어 보았다.
그 능력이 무한대는 아니었기에 아주 멀리까지 밝게 볼 수는 없었지만, 도망치고 있는 늑대 인간의 희미한 실루엣은 분명히 분간할 수 있었다.
멀리까지 도망치던 늑대 인간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늑대 인간은 몸을 돌려서 루카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거리가 멀어서 알 수는 없었지만, 루카는 순간 서로의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환은 루카보다도 속도가 느렸기에 루카가 발걸음을 멈추었을 때에야 비로소 루카를 따라잡을 수가 있었다.
“놓친 거야?”
주환이 루카에게 그렇게 묻자 루카는 코를 킁킁거렸다.
“괜찮아. 냄새는 기억해 두었으니까.”
“쫓아갈까?”
주환은 루카가 곧바로 늑대 인간의 뒤를 쫓을 거로 생각했지만, 루카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멈추어 서서 어둠 속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것보다 좀 확인해 볼 것이 있어.”
주환은 루카의 반응이 의아했지만 혼자서는 늑대 인간을 쫓을 방법이 없었기에 그녀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루카와 주환은 칼데브 마을로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는 도중 두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서 쫓아온 경비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안토니오도 섞여 있었다.
“놈을 잡은 거야?”
안토니오가 두 사람에게 묻자 주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라져 버렸어.”
“잠깐만. 왜 여기서 멈추는 거야? 끝까지 쫓아가야 할 거 아니야.”
“지금 쫓아가도 소용없어.”
루카의 말에 안토니오는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끝까지 쫓아서 놈을 붙잡는 게 너희의 할 일이잖아?”
“지금 하지 않아도 기회는 있어. 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마을로 돌아가 봐야 해.”
안토니오는 자신의 손을 이마에 대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너희 둘 다 그래도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느낀 내가 어리석었어. 그렇게 할 마음이 없으면 마을로 돌아가. 그렇지만 내일 너희들의 행동을 아버지에게 다 보고드릴 테니까.”
주환과 루카에게 신경질을 내던 안토니오는 경비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이 겁쟁이들을 놔두고 추격을 계속한다. 모두 다 나를 따르라!”
안토니오는 경비대원들을 이끌고 늑대 인간이 사라진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것을 보고 있던 주환은 루카에게 물었다.
“안 따라가도 괜찮을까?”
“어차피 저들이 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나는 다른 방법으로 놈을 추적할 생각이고. 우선 마을로 돌아가자.”
칼데브 마을로 돌아간 루카와 주환은 늑대 인간을 가두어 두었던 마구간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는 경비대장이 남아 있는 경비대원들을 지휘해서 마구간에 붙은 불을 끄고 있었다.
두 사람이 돌아오자 경비대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돌아왔군. 빈손으로 돌아온 것을 보니 추적은 실패한 거요?”
“늑대 인간은 이미 멀리 도망쳤습니다. 안토니오는 경비대원들을 이끌고 계속해서 추적하고 있고요.”
“그렇구먼. 뭐, 도련님은 실패할 거요. 아마 같이 갔던 녀석들이 적당한 곳까지 따라갔다가 돌아가자고 설득을 하겠지. 만약 도련님이 다치기라도 하면 깨지는 것은 우리거든.”
“어차피 아마추어가 쫓아서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어설픈 상대가 아니에요.”
루카의 말에 경비대장은 동의한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었다.
“우리도 늑대 인간이 사는 곳을 여러 번 추적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지. 지금 안토니오 도련님이 하는 것은 병정놀이랑 비슷한 거거든. 의욕은 넘치지만 제대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지. 그래도 패기가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 아니겠소? 어차피 경험이 쌓이면 진짜 현명한 사람이 될 테니까.”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마구간의 불은 사그라졌다.
경비대원들이 주변 정리를 하고 있을 때, 루카는 주환을 이끌고 불타 버린 마구간의 안으로 들어갔다.
“거의 다 타버렸네.”
“응. 여기 죽어 있는 양의 사체도 불타 버렸어.”
루카는 마구간의 바닥에 남아 있는 양의 사체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마구간의 불길 때문에 양의 사체는 그 겉 부분이 불타 있는 상태였는데, 경비대원들이 금방 불을 진압했기 때문에 뜻밖에 원형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루카는 죽어 있는 양의 사체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뭔가 알아냈어?”
주환의 물음에 루카는 양의 사체를 살피던 것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이것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어. 그저 늑대 인간에게 당한 불쌍한 가축일 뿐이니까.”
“그야 그렇겠지.”
“여긴 이제 볼일이 없어.”
“이젠 어떻게 할까? 숙소로 돌아가서 좀 쉴까?”
“아니. 그 전에 확인을 좀 할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