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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14화 (114/182)

114화

데미안과의 회의가 끝난 후 아르테어는 치료소로 돌아왔다.

치료소의 안에 기다리고 있는 환자는 없었다.

단지 안쪽에 데스티나가 누워 있을 뿐이었다.

데스티나에게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아르테어는 이윽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아르테어의 침실이자 그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실험 재료와 도구들이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는 곳이었다.

바로 녹색의 비에 대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재료와 도구들.

그녀가 하는 연구는 녹색의 비를 이용한 연구였으며, 그녀가 그러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비밀이었다.

그녀가 오르페우스호에서 가져왔던 실험 도구들과 설계도는 연구를 진행하는 데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실험을 할 수 있는 도구들은 침대 옆에 있는 실험대의 위에 있었으며, 녹색의 비와 그것을 실험한 시약들은 다른 곳에 감추어져 있었다.

아르테어는 실험대의 옆에 있는 서랍장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대로 손잡이를 잡고 당기면 서랍이 딸려 나오게 되는데 그 안에는 그녀가 입는 옷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렇지만 손잡이의 안쪽에 있는 비밀 버튼을 누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버튼을 누르고 손잡이를 당기게 되면 서랍의 밑판이 분리되게 되는데, 그 상태에서 밑판만을 꺼내면 그 안에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는 시약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르테어는 버튼을 눌러 비밀 공간을 노출한 다음 그 안에 들어 있는 시약들을 꺼내 실험대로 가져와 연구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연구와 그 과정에 대한 기록.

그녀가 원하는 형태의 결과물이 완성된다면 그녀는 2차 치료라는 명목으로 로즈버드 빌리지와 나이츠 빌리지의 정착민들에게 그 약물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할아버지보다 더 빨리 녹색의 비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성질을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특히 아르테어는 일전에 괴목에서 채취한 과일의 성분이 시약과 섞이면 더욱더 극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걸 밝혀낸 상황이었다.

비를 쫓는 자들의 연구 기록을 아무리 뒤져도 그러한 기록이 없었으니 이번에 아르테어가 발견한 것은 순수한 그녀의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연구를 마무리한 아르테어는 실험 도구를 정리하고 시약들을 숨긴 다음 자신의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는 얌전히 침대에 누워있는 데스티나에게로 다가갔다.

데스티나는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아르테어는 데스티나의 몸을 잡고 마사지를 해주면서 그녀의 자세를 점차 바꾸어 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데스티나의 몸에 욕창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아르테어는 데스티나의 몸을 풀어 주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은 당신이 죽기를 바랐어요.”

놀라운 고백이었지만 혼수상태인 데스티나의 귀에 그 말이 들릴 리는 없었다.

“당신이 나타난 이후로 데미안 님이 변해 가는 것 같았거든요. 그만큼 당신이라는 존재가 데미안 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렇지만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았죠. 당신과 데미안 님의 생각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과 같았으니까요. 언젠가는 데미안 님이 당신을 포기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아르테어는 한쪽에 세워져 있는 자신의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지금 당신을 죽이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겠죠. 심지어 저는 당신이 그 싸움에서 죽기를 원했으니까요. 당신이 죽는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르테어는 데스티나를 안은 채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성전 기사단에게 돌아온 데미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의 목숨을 바친 당신의 자기희생은 사뭇 감동적이었죠. 당신의 그런 행동 때문에 데미안 님은 당신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더 강해진 것처럼 보였어요. 만약 그런 상황에서 당신이 죽기라도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그분의 마음속에서 당신은 영웅으로 남을 수밖에 없겠죠.”

아르테어는 정성을 다해서 데스티나를 마사지해 주었다.

“제가 당신이 죽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당신은 지금 상태에서 죽으면 안 돼요. 당신은 죽음으로서 영웅으로 거듭나면 안 돼요. 그러면 당신은 그분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당신은 좀 더 살아서. 좀 더 살아서 타락한 채로 죽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제가 반드시 당신을 일어나게 해드리죠.”

마사지를 마친 아르테어는 데스티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이 잃어버린 팔도 제가 되돌려 드릴게요. 그게 당신의 목을 조르게 될 거라는 걸 당신은 모르겠지만요.”

똑똑.

그때, 누군가가 치료소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아르테어의 말에 문이 열리면서 주환이 치료소의 안으로 들어왔다.

“주환 님.”

아르테어는 주환이 무엇 때문에 온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데스티나 님을 보러 오신 건가요?”

“아. 네.”

주환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까 아르테어 씨한테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게 되었네요.”

주환은 데스티나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왔다.

“방금은 마사지하고 있었어요.”

“네. 고생하시네요.”

누워 있는 데스티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주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르테어는 슬쩍 옆에 있는 자신의 지팡이를 잡았다.

지금 주환의 심장이나 목을 찌르면 그는 단 한 번에 절명하게 될 것이다.

주환이 나이츠 빌리지에 방문할 때 아르테어에게는 그를 죽일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주환을 죽인 다음의 일 처리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나이츠 빌리지 안에서 갑자기 주환이 살해당하면 데미안은 자체적으로 조사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아르테어의 소행이라는 것이 밝혀질 수도 있었다.

물론, 데미안은 주환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에 그러한 조사에 열성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주환의 동료인 루카가 로즈버드 빌리지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환이 죽은 것을 알면 루카는 분명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그녀가 처음 암살을 시도했을 때 아르테어는 주환의 능력을 얕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혼자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자신이 포섭한 기사단원 한 명의 힘으로도 그를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계획은 어이없이 실패하고 말았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아르테어는 지팡이에서 손을 뗐다.

지금 이곳에서 주환이 죽거나 실종될 경우 생길 문제, 그리고 공격에 실패하였을 때 주환에게서 돌아올 반격 등의 요소를 고려하였을 때 섣불리 행동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르테어가 주한을 없애려고 한 이유는 데스티나의 측근들을 제거하여 깨어난 데스티나를 심리적으로 몰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때, 아르테어는 주환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새로운 방침을 생각해 냈다.

데스티나를 심리적으로 무너뜨리는 일이라면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데스티나에 의해서 주환을 포함한 그 동료가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

거기에 생각이 미친 아르테어는 당분간 주환에 대한 암살 문제를 보류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 * *

칼데브 마을 돕기 위해서 로즈버드 빌리지를 나선 주환과 루카는 중간중간 만나는 좀비들을 퇴치해 가면서 순조롭게 목적지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북동쪽에서 한 마리.”

루카는 방향을 보지 않고도 어디에서 좀비들이 오는지를 파악해 냈다.

루카가 그렇게 말하자 주환은 타고 있는 말의 고삐를 놓고는 곧바로 그녀가 말한 방향으로 총을 겨누었다.

그곳에서 좀비 두 마리가 두 사람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키에엑!”

달리고 있는 말의 위에서 움직이는 상대를 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초집중 모드에 능숙해진 주환으로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환이 방아쇠를 당기자 두 발 다 각각 좀비들의 이마에 명중하며 좀비들은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좀비들이 스코프를 통해서 죽은 것을 확인한 주환은 루카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는 아예 보지도 않고 알 수가 있는 거야?”

주환의 물음에 루카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저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미친 듯이 달려오는데 모를 수가 없잖아. 물론, 지금은 냄새나 소리에 엄청나게 민감해져서 눈에 의지하지 않고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말이야.”

칼데브 마을을 돕기 위해서 로즈버드 빌리지를 나선 주환과 루카는 여행 도중 지금처럼 중간중간 만나는 좀비들을 퇴치해 가면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나 남았나?”

“조금만 더 달리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역시 말이 있으니까 편하긴 하네. 엉덩이는 엄청 아프지만.”

두 사람은 성전 기사단에게 말을 빌려 칼데브 마을로 향했다.

데미안이 부탁한 일이었기에 기사단은 두 사람에게 흔쾌히 말을 빌려 주었다.

주환은 승마 경험이 없었지만, 워낙 훈련이 잘되어 있는 말들이었기에 그는 그럭저럭 익숙해질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이 말을 달리면서 한참을 나아갔을 때, 그들은 비로소 목적지인 칼데브 마을에 도달했다.

“저기가 칼데브 마을인 것 같아.”

루카의 말에 주환은 멀리서 보이는 칼데브 마을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곳은 피난민들이 모여서 만든 정착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을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돌로 만든 담벼락들이 마을의 치안을 효과적으로 유지해 주고 있었다.

“여기는 제법 방비가 잘되어 있는데?”

주환은 칼데브 마을의 주변을 돌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런 담벼락을 통해서 좀비들은 잘 막아 냈지만, 늑대 인간을 막아 내기에는 무리가 있겠네. 나조차도 순식간에 뛰어서 넘을 수 있을 것 같은걸.”

두 사람이 칼데브 마을을 바깥에서 살피고 있는 사이, 갑자기 마을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경비병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창을 들고 달려 나왔다.

주환과 루카에게로 달려온 경비병들은 두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경비원들은 공격적이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두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경비원들이 가까이 오자 루카는 말에서 내린 뒤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 그들에게 내밀었다.

“이 편지를 보고 온 건데.”

경비병들은 편지를 읽어 보더니 놀라며 주환과 루카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성전 기사단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주환이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자 루카는 다시 말에 올라타면서 경비병들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를 영주님에게 데려다주겠어?”

루카의 말에 서로 마주 본 경비병들은 두 사람을 이끌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영주님께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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