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새롭게 개량된 플레이트 캐리어의 시연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타마두크가 다른 쪽 문으로 들어오더니 새로운 허수아비들을 주환의 앞에 깔았다.
주환이 못 쓰게 된 방탄조끼를 벗고 있는 동안 이브가 돌격 소총을 들고 오더니 주환에게 내밀었다.
총을 받아들면서 주환은 이브에게 물었다.
“이것도 바뀐 게 있습니까?”
“있죠.”
이브는 반대쪽 손에 들려 있는 돌격 소총의 탄창을 보여 주었는데, 그녀는 마치 마술사가 손안에서 카드를 부채처럼 펼치듯 여러 개의 탄창을 펼쳐서 보여 주었다.
“다른 속성탄들을 만들어 보았어요. 드릴 테니까 하나씩 사용해 보세요.”
이브가 탄창들을 주자 주환은 그 중 손에 잡히는 것을 하나 총에 삽입하고는 허수아비에 겨누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자 작은 불꽃 화살들이 총구에서 발사되어 허수아비에 명중했다.
그러자 명중한 허수아비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화염탄이에요.”
주환은 탄창을 분리하고 두 번째 탄창을 삽입한 다음 다른 허수아비에 발사했다.
이번에는 얼음 화살이 발사되면서 허수아비를 얼어붙게 했다.
“이건 얼음탄이겠네요.”
“맞아요.”
다음 탄창의 교체.
그리고 발사.
이번에는 번개 화살이 날아가 허수아비의 일부를 태우면서 그 몸 전체에 충격을 가했다.
“다 속성탄들인가 보군요?”
“대부분은 그렇죠.”
주환은 마지막 탄창으로 교체했다. 그러자 이브는 주환에게 다른 주문을 했다.
“이번에는 저쪽 끝에 있는 허수아비에 쏴 보세요.”
이브가 가리킨 허수아비는 다른 허수아비와는 다르게 앞부분이 나무판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주환이 방아쇠를 당겼다.
퍽!
이번 탄은 허수아비의 앞에 있는 나무판을 맞춘 후 가루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과녁용 허수아비의 몸이 거세게 흔들리긴 했지만 다른 속성탄들과는 다르게 눈에 띄는 파괴력이 보이지 않았기에 주환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브에게 물었다.
“방금 쏜 건 무슨 속성탄인 거죠?”
“그건 속성탄이 아니에요. 비살상탄이죠.”
이브의 설명에 주환은 방금 총을 쏘았던 허수아비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탄이 상대에게 명중하면 부서지면서 파괴력을 줄이는 식으로 설계가 돼 있죠. 방금 허수아비를 쓰러뜨리지는 못했지만 아마 사람이 맞으면 뒤로 넘어지면서 단시간 동안 무력해질 정도의 파괴력은 있을 거예요.”
주한은 이브의 준비성에 감탄했다.
“이번에 준비한 것은 이 정도예요. 플레이트 캐리어는 방어 패드들이 망가졌으니까 다시 고친 다음에 드리도록 할게요. 여분의 탄창들도 드려야 하니까 오늘은 좀 기다리세요.”
이브가 플레이트 캐리어를 챙기면서 그렇게 말하자 주환은 그녀에게 물었다.
“이온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의 물음에 이브는 모호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있다가 직접 확인하러 가실래요?”
* * *
이온은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검은 탑의 손님방 중 하나이며 지금 주환은 이브와 같이 이온의 상태를 살피는 중이었다.
“전과 달라진 점은 없군요.”
주환은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저도 섣불리 손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이 이온이라는… 그때 주환 씨가 뭐라고 하셨죠?”
“안드로이드.”
“네. 안드로이드는 제가 지금까지 만난 아티팩트 중 가장 정교한 형태를 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적절한 치료를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죠.”
“다시 깨어날 수는 있을까요?”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들은 있어요. 저도 ‘자동 인형’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상당히 높거든요. 구조를 어느 정도 파악하면 그때에는 적절한 해법이 보일 거예요. 그리고.”
이브는 주환에게 이온의 팔을 가리켰다.
“한번 눌러 보시겠어요?”
이브의 권유에 주환은 손가락을 들어서 이온의 팔을 눌러보았다.
부드럽다.
그게 주환이 느낀 인상이었다.
분명 인간의 피부보다는 조금 단단했지만, 인간의 피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랑 비슷하네요.”
“그게 이 안드로이드의 놀라운 점 중 하나예요. 그리고 잘 보세요.”
이브는 갑자기 단검을 꺼내더니 이온의 팔을 내리찍었다.
주환은 깜짝 놀랐지만, 그가 막을 새도 없었다.
“잠깐만요! 대체 뭐 하는 겁니까?”
뒤늦게 주환이 막으려고 할 때, 이브는 손을 들어서 주환을 제지했다.
“잘 보세요.”
이브의 말에 주환은 이온의 팔을 찌르고 있는 단검을 바라보았다.
이브가 들고 있는 단검은 날이 매우 날카롭게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온의 팔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단검의 끝이 닿은 부분이 아주 단단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상처도 없어.”
주환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이브는 단검을 치우면서 말했다.
“느끼셨겠지만 지금 이온은 완벽히 죽었거나 가동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본인은 반응이 없을지언정 피부의 방호 시스템은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죠.”
“그러면 혹시 잠을 자는 게 아닐까요?”
“그것보다는 더 심각한 상황이겠죠. 인간으로 치면 가사 상태에 빠진 것에 가까울 수가 있어요.”
바뀐 것은 없었지만 주환은 안도하는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만족한 건가요?”
이브가 그렇게 물었을 때 주환은 문득 엘레나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온이 부유체를 다루었을 때 그 부유체에 에너지를 주입하던 그 모습을.
엘레나는 분명 이온이 주입한 에너지가 번개를 닮았다고 주환에게 설명을 했었다.
그리고 이어서 주환은 아까 이브가 자신에게 주었던 번개 속성탄을 기억해 냈다.
‘잠깐 그럼 이브도 번개 즉, 전기를 다룰 수가 있다는 거잖아.’
“이브 씨, 잠깐 할 말이 있는데요.”
주환의 설명을 들은 이브는 주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 수 없지만 이온에게 에너지를 다시 주입하면 움직일 수도 있다는 거죠?”
“네.”
“그 에너지는 마나 같은 게 아니라 번개 에너지고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제가 살던 세상에서는 번개 즉, 전기가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원이었으니까요.”
“흠.”
이브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럼 대체 어느 정도의 번개 에너지가 필요할까요?”
“글쎄요. 저도 감이 잡히질 않는데요.”
두 사람은 서로 고민을 해보았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 부분은 제가 한번 방법을 찾아볼게요. 그래도 어느 정도 실마리가 잡혀서 다행이에요.”
“꼭 좀 부탁하겠습니다.”
주환의 말을 듣고 있던 이브는 궁금하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온과 주환 씨는 대체 어떤 관계인 거죠?”
“관계라. 뭐라고 콕 찝어서 정의하기가 좀 힘드네요.”
“그래도 가장 가까운 개념 정도는 있지 않겠어요? 친구라든가.”
“제 쪽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온은 저를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주인?”
주환의 말을 들으며 이브는 자신과 타마두크와의 관계를 떠올렸다.
“무슨 사정이 있는 모양이네요.”
“저에는 별다른 사정은 없어요. 단지.”
주환은 침대에 누워 있는 이온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에게는 무언가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죠.”
* * *
이브에게 새롭게 개량된 무기와 방어구 탄약을 받은 주환은 더 이상 검은 탑에서 머물지 않고 로즈버드 빌리지로 향했다.
현재 로즈버드 빌리지는 나이츠 빌리지에 흡수된 상태였지만 주환은 나이츠 빌리지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구역은 편의상 로즈버드 빌리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데스티나의 몸 상태, 로즈버드 빌리지에 남아 있을 루카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자신을 습격한 자객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주환은 로즈버드 빌리지에 도착한 뒤 곧바로 루카를 만나러 갔다.
“꽤 시간이 걸렸네?”
주환이 루카가 묵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루카는 주환을 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좀 사정이 있어서.”
주환은 방의 한쪽에 짐을 내려놓으면서 의자를 끌고 와 루카의 옆에 앉았다.
루카는 방금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는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침대의 한쪽 끝에 걸터앉았다.
“몸은 좀 어때?”
“거의 다 나았어. 좀 피곤하긴 하지만. 바로 움직여도 별 상관 없을 정도야.”
“잘됐네.”
“이브한테 가보니까 해결책은 있었어?”
“그게.”
주환은 검은 탑에서 있었던 일을 루카에게 말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루카의 표정이 대단히 심각해졌다.
“자객이 있었단 말이야?”
“응. 누가 벌인 일인지 아직 감을 못 잡겠지만.”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째서 널?”
“나도 모르겠어.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노림수가 있는 건지.”
“비를 쫓는 자들의 잔당이 아닐까? 비를 쫓는 자들은 사방에 퍼져 있다고 했잖아.”
루카의 말에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일 것이다.
그렇지만 주환은 왠지 모르게 비를 쫓는 자들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놈들일까?”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 않아?”
“있긴 한데. 뭔가 느낌이……. 아무튼 놈들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만약에 놈들이라면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썼을 것 같거든. 아니면 괴물 군대를 이끌고 찾아온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말이야. 이번에 찾아온 자객은 분명 강했지만 뭔가 어설프면서도 급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어.”
주환의 말에 루카는 잠시 눈을 감은 다음 주변의 소리에 집중했다.
늑대 인간으로 변신한 이후로 루카의 청각은 변신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더욱더 강해져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엿듣는 사람이 있는지 찾고 있어.”
루카가 주의를 기울였지만, 문밖에서 듣고 있는 이는 없었다.
“너 혹시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범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주환의 물음에 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비를 쫓는 자들이 아니라면 생각할 수 있는 건 여기 있는 사람들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너를 노리고 있다면 나 역시도 노리고 있을 수도 있고. 물론, 우리는 로즈버드 빌리지의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원한은커녕 우리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겠지. 그렇지만 우리와 깊숙하게 관계를 맺은 이들을 추려 보았을 때 우리가 전혀 예상할 수 없거나 알지 못하는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이 로즈버드 빌리지나.”
루카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창문의 바깥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나이츠 빌리지의 모습이 보였다.
“저 나이츠 빌리지에 있을 수밖에 없어.”
거기까지 말한 루카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가자.”
갑작스러운 루카의 말에 주환은 어리둥절해졌다.
“갑자기 어딜?”
“말이 나온 김에 나이츠 빌리지로 가보자는 거지. 때마침 데미안에게서 전갈이 있었거든. 네가 돌아오면 자기를 찾아와 달라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