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11화 (111/182)

111화

자객의 습격이 있던 날의 아침.

주환이 자객에게 죽을 뻔했다는 사실은 당연하게도 이브와 타마두크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럴 수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타마두크는 놀랍다는 듯 그렇게 말하면서 주환의 빈 컵에 음료수를 더 보충해 주었다.

“어쩐지 새벽에 소란스러움이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그 일 때문이었군요.”

그리고 그는 주환의 맞은편에서 식사하고 있던 이브를 바라보았다.

이브 역시 주환의 이야기를 제법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주환은 타마두크가 가져다준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브에게 물었다.

“혹시 이브 씨는 어제 이상한 것을 감지하거나 한 일이 없었습니까?”

“딱히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사람들을 헤매게 하는 라비린토스의 술식은 여러분이 별장에 출입하는 것을 허가하기 위해서 걸어 두지 않았고, 또 탑과 별장 사이의 거리 왜곡 마법도 스승님이 깨버리신 후에 굳이 다시 걸어 두지도 않았죠. 지금 별장은 누구라도 출입이 가능한 상황이긴 해요. 단지.”

“단지?”

“저는 수정 구슬을 하나 가지고 있어요. 그 수정 구슬은 불청객이 이 탑에 가까이 오면 그들의 모습을 보여 주게 되어 있어요. 제가 예전에 여러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수정구 덕분이죠.”

“그럼 어제는 그 수정구가 반응했나요?”

“아뇨. 반응하지 않았어요.”

“수정구가 고장 났다거나?”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당장 떠오르는 이유는 한 가지 정도네요.”

“그게 뭐죠?”

“실력이 있는 마법사라면 이 탑 주변에 걸려 있는 마법들을 무효화시킬 수가 있어요. 어제 주환 씨를 죽이기 위해서 온 사람은 마법사였나요?”

“아뇨.”

주환은 기억을 더듬었다.

새벽에 그를 습격한 자객은 오로지 단검만을 사용해서 주환을 죽이려고 했다.

주환이 그의 방식을 떠올렸을 때 자객이 마법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검으로 죽이려고 했더라도 불리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는 마법을 사용했겠지.’

주환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객의 동료를 떠올렸다.

‘그럼 동료 쪽이 마법사인가?’

주환은 이브와 타마두크에게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의문점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것도 이상하군요.”

타마두크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두 명이 동시에 공격해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저도 궁금한 게 그겁니다. 어째서 한 사람만 저를 공격하러 왔는지 말이죠.”

“그것에 대해서는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이브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들었다.

“첫째, 그 동료는 망을 보고 있었다.”

“이런 첩첩산중에서 무엇을 위해?”

“망을 보고 있었다면 당연히 이곳 검은 탑을 주시하고 있었겠죠. 별장과 탑은 그다지 멀지 않으니까요.”

“그럼 자객들은 당신들의 존재도 알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고요. 그리고 두 번째. 기다리고 있던 동료는 마법사이긴 하지만 전투 능력은 전혀 없는 마법사였다. 그럴 가능성도 있어요. 마법사들이 무조건 공격 마법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만 해도 마도 과학을 통해서 이것저것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공격 마법은 딱히 선호하지 않거든요.”

이브는 이어서 손가락을 펴나갔다.

“세 번째, 당신을 직접 죽이러 들어왔던 칼잡이가 주동자고 밖에 있던 마법사는 살인까지는 동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차마 거기까지 협조하지는 못하고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 거겠죠.”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마지막 네 번째.”

“네 번째도 있어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아무튼, 네 번째, 대체 무슨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마법사는 별장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별장 혹은 검은 탑 주변으로는 가까이 오려는 생각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죠. 그 마법사는 저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탑 근처의 숲에 걸려 있는 경보 마법은 저에게 들키지 않고 풀 수 있었지만, 별장에 들어가거나 탑에 가까워지면 자신이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적당한 거리에 머물러 있던 거죠.”

“만약 당신에게 들키면 당신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그렇게 보는 게 합리적이긴 한데 그렇다면 상대는 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저도 그들의 정체가 아주 궁금해지는데요. 제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네요.”

이브의 설명을 들으면서 주환은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직접 들어온 자는 나의 무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는 이브를 알거나 서로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그 자객들은 분명 나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모든 식사시간이 끝나고 타마두크가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이브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듯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주환에게 말했다.

“지금 계속 고민하더라도 해결이 나진 않으니까 우선 기분 전환을 좀 하는 게 어때요?”

“기분 전환 말입니까?”

주환은 이브의 평소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항상 탑 안에만 갇혀서 사는데 기분을 전환할 만한 게 있나?’

* * *

이브의 안내를 받은 주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브가 그를 끌고 간 곳은 바로 그녀의 연구실이었다.

“이런 곳에서 기분 전환이 돼요?”

“그럼요. 저는 제 연구실 안에 있어야 비로소 힐링이 되거든요. 여기 있는 것들 좀 보세요.”

이브는 연구용 탁자에 올라가 있는 무언가를 집어서 주환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심벌즈를 치는 원숭이 장난감과 매우 흡사하게 생긴, 그러한 나무로 만든 장난감이었다.

“심심할 때는 이런 것도 만들곤 하죠. 여기에 달린 줄을 당기면 일정 시간 동안 계속 손을 움직여요.”

이브가 시키는 대로 줄을 당기자 나무 원숭이 인형이 움직이면서 심벌즈를 치기 시작했다.

“지금은 반복적인 움직임뿐이지만 나중에는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기능도 넣으려고요.”

이브의 설명을 듣고 있던 주환은 문득 궁금한 것을 그녀에게 물었다.

“전에도 한 번 물었던 적이 있긴 한데, 이제 사람에 대한 공포증은 없어진 건가요?”

주환의 물음에 이브는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가식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손을 자신의 이마에 댔다.

“아아. 현기증이…….”

이브가 뒤로 쓰러지려고 하자 주환은 그녀의 팔을 잡아서 넘어지지 않게 해주었다.

“장난치지 말고요.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니까요.”

주환의 말에 이브는 그의 손에 잡혀 있는 자신의 팔을 보면서 얼굴을 붉혔다.

“솔직히 자의든 타의든 이 탑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져서 이제는 좀 익숙해진 것 같아요. 데스티나 씨나 루카 씨는 아직 가까이 다가오는 게 부담스럽지만 주환 씨는 완벽하게 온몸이 밀착되는 수준이 아닌 다음에야…….”

“온몸이 밀착되면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아무튼 주환 씨는 어느 정도 다가오는 게 허락되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아. 유일한 사람은 아니죠. 타마두크가 있으니까.”

“트라우마가 좀 극복된 모양이군요.”

“트라우마라…….”

이브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저도 궁금한 게 있었어요. 애당초 타인을 싫어하는 게 어째서 저의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무언가 계기가 있지 않아요?”

“있긴 하겠죠. 그렇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단지 제가 타인과의 접촉을 싫어한다는 감각만이 남아 있을 뿐이죠.”

“좁은 식견이지만 제가 알기엔 너무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머리에서는 그것은 다시 기억나지 않도록 무의식에 가두어 버린다고 해요. 이브 씨도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그런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이들과의 접촉이 자유로워진다고 해봐야 진정으로 해방된 거라고 할 수 있을지.”

이브는 잘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타인과 접촉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녀가 가문의 자객들에게 당한 시달림이었다.

제물로 바쳐져야 할 그녀가 제물의 신세에서 벗어나자 클레이브는 여러 번이나 이브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내었다.

그녀는 그때마다 자신의 능력과 타마두크의 도움으로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가 짐작하는 두 번째 이유는 그녀의 토끼 인형과 관련이 있었다.

다만 이 경우는 기억이 없기에 자신의 공포증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이브는 쓴웃음을 지었다.

“기분 전환하자고 했으면서 또 진지한 이야기로 돌아갔네요.”

“어차피 제가 꺼낸 이야기잖아요.”

“잘 보면 주환 씨는 제법 사려 깊은 사람이에요.”

이브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주환은 쑥스러워졌다.

“제가 말입니까?”

“네. 그때 스승님이 저의 탑으로 쳐들어오셨을 때 주환 씨만이 스승님에게 동조하지 않으셨죠.”

“확실히 그렇긴 했는데…….”

“그렇게 사려 깊은 주환 씨이기 때문에 이걸 맡길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브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 구석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환의 앞에 내밀었다.

“이건.”

그것은 바로 주환의 개량형 플레이트 캐리어였다.

“이번에 또 성능을 업그레이드했어요. 검과 활을 막아 주고 약한 폭발과 낮은 수준의 마법을 막아 주는 기능은 그대로 있죠.”

“설마 업그레이드 기능이 또 저를 조종하는 기능인 건 아니죠?”

“아니에요. 걱정 말고 입어 보세요.”

주환은 반신반의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브의 권유대로 플레이트 캐리어를 입었다.

“느낌이 어때요?”

“저번이랑 다를 게 없군요.”

“착용감은 똑같을 거예요. 그러면 실제로 한번 사용해 보도록 하죠.”

이브는 주환을 연구실의 옆에 딸려 있는 실험장으로 이끌었다.

주환이 그 뒤를 따라서 들어가자 이브는 그를 이끌고 실험장의 한쪽에 서게 했다.

그의 맞은편에는 몇 개의 허수아비가 그를 보면서 서 있다.

주환은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의 뒤에는 연구실과 실험장을 나누는 벽이 서 있었으며, 무슨 일인지 이브가 쿠션들을 가지고 와서 벽에 세우기 시작했다.

쿠션 쌓는 것을 끝마친 이브는 주환의 옆에 다가왔다.

“우선 저 허수아비들을 마주 보세요.”

주환이 시키는 대로 하자 이브는 플레이트 캐리어의 허리쯤에 손을 넣어서 작은 줄을 하나 꺼냈다.

이브는 그 줄을 살살 당겨 주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 줄은 평소에는 플레이트 캐리어 안쪽에 숨겨져 있을 거예요. 이 줄은 정말 필요할 때만 당겨야 해요.”

“그 필요한 때라는 게 언제죠?”

“한번 사용해 보면 알 거예요. 제가 셋을 셀 테니까. 숫자를 다 세면 그 줄을 세게 당겨요. 알겠죠.”

이브는 주환이 마음의 준비를 할 틈을 주지 않고 수를 세기 시작했다.

이브가 셋을 모두 세자 주환은 속는 셈 치고 줄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쾅!

그러자 엄청난 소리, 그리고 자욱한 연기와 함께 주환은 뒤쪽으로 튕겨 나가 벽에 쌓여 있던 쿠션에 쑤셔 박혔다.

그것을 위해서 이브가 준비한 쿠션인 모양이었다.

가슴과 배 쪽을 두들기는 듯한 충격을 받은 주환은 헛구역질을 하면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앞을 가리고 있는 자욱한 연기가 사라졌을 때, 그는 자신의 앞에 서 있던 허수아비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허수아비들은 그야말로 갈가리 찢겨서 사방으로 흩어진 채였다.

얼이 빠진 주환을 보면서 이브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주환 씨가 가져온 산탄총의 탄환을 보다가 그 탄환을 그 조끼에 설치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그대로 설치할 순 없고 조끼에 붙어 있는 방어패드들을 전부 발사될 수 있는 형식으로 만들었죠. 그 줄을 당기면 패드들이 폭발하면서 앞쪽으로 무수한 쇠 구슬을 발사하는 구조예요. 물론 일회용이죠. 패드가 폭발하면 방어 기능이 사라질 테니까요.”

이브의 설명을 들은 주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 폭죽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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