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이브가 이온을 다시 재가동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동안 주환은 혼자서 이브의 별장에서 머물렀다.
항상 대가를 원하던 이브가 별다른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이온을 고쳐 주겠다고 나선 것은 두 가지의 이유일 것이다.
첫 번째로 이온을 고치는 과정 그 자체를 통해서 아티팩트에 대한 지식을 흡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두 번째로 그들이 클레이브를 상대하여 클레이브를 곤경에 빠뜨린 것에 대한 암묵적인 대가를 지급하는 것.
고맙게도 이브는 그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더 손봐주겠다고 했기에 주환은 이브에게 자신의 무기들까지 맡긴 상태였다.
별장에서 혼자 생활하던 주환이 어느 날 자신의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을 때.
그는 범상치 않은 살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뭔가 있어….’
주환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누운 채로 귀를 기울였다.
저벅.
그가 자고 있던 방 안에는 누군가가 이미 침입한 상태였다.
상대는 건장한 체격에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감싸고 있었으며 얼굴 역시 검은 두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는 한 손에 단검을 쥐고 있었는데, 지금 그것으로 주환을 해치기 위해서 다가오는 중이었다.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달빛이 그가 들고 있는 단검의 날카로운 날을 비추었다.
누가 봐도 그의 행동은 주환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자객은 단검을 역수로 잡았다.
누워 있는 주환의 목을 향해서 단숨에 내리찍을 생각인 것이 분명했다.
상대가 단검을 위로 올린 순간.
주환은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그러자 상대가 내리찍은 단검이 그가 누워 있던 자리에 그대로 박혔다.
“제길!”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자 상대는 당황한 듯 그렇게 외쳤다.
주환으로서는 들어 본 적이 없는 목소리였다.
상대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 사이에 주환은 침대의 반대쪽으로 내려오면서 머리맡에 올라가 있던 권총을 집어 들었다.
주환은 상대에게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러나 놀랍게도 상대는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 이전에 이미 한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주환이 발사한 총알은 빗나가고 말았다.
자객의 빠른 판단에 주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노련한 암살자라면 주환이 공격하기 전에 단련된 반사 신경으로 공격을 피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주환이 사용하는 무기가 이세계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권총이라는 것.
주환이 그 무기를 들자마자 어떠한 공격이 이어질지 눈치를 챘다는 점에서 주환은 그 자객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했다.
‘저자. 이 무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
주환은 고민할 새가 없었기에 연속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분명 초집중 모드 통해서 정확하게 사격하려 노력했지만, 상대가 이미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갔기에 맞히는 것이 불가능했다.
주환은 권총을 든 채로 자객을 쫓아서 자신의 방을 빠져나갔다.
스윽!
주환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얼굴 쪽에서 날카로운 고통을 느꼈다.
날붙이가 피부를 가르는 소름 끼치는 감촉.
주환은 자객이 별장의 밖으로 도망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는 방 밖의 복도에서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주환의 방을 빠져나가자마자 바로 문 옆의 벽에 붙어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자객은 주환이 방문을 빠져나올 때 그의 목 부분을 향해서 단검을 찔렀다.
자객의 공격을 피한 주환은 권총을 들어서 상대에게 발사했다.
그러나 상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에 정확하게 사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몇 발의 총알이 발사되고 자객은 민첩한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피하다가 다시 한번 단검을 휘둘렀다.
이번의 공격은 주환의 손목을 노리고 있었다.
손목 공격이라도 주요 혈관과 신경을 절단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환은 권총의 손잡이 부분으로 단검의 날을 받아 낸 뒤, 발을 들어서 상대의 무릎 관절을 차면서 뒤로 물러섰다.
주환의 발차기에 타격을 받았지만, 상대는 주환을 살려 둘 생각이 없는 듯 계속해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주환은 권총을 거꾸로 돌려 망치처럼 들어서 권총의 손잡이 부분으로 상대를 때릴 수 있게끔 하였다.
샥!
자객이 단검을 휘두르자 주환은 그에 맞서서 권총을 휘둘러 그의 단검을 막아 냈다.
그리고 주환은 상대에게 붙어서 단검을 들고 있는 오른팔을 눌러 제압한 후에 들고 있는 권총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권총의 손잡이가 자객의 얼굴을 강타하자 자객이 얼굴을 가리고 있는 두건의 아래쪽으로 부러진 이빨들이 떨어졌다.
주환은 곧바로 상대의 오른팔의 겨드랑이 안쪽으로 팔을 집어넣은 다음 아래쪽으로 강하게 눌렀다.
그러자 상대의 자세는 마치 한쪽 날개만을 위쪽으로 펴고 있는 닭처럼 될 수밖에 없었다.
주환은 들고 있는 권총의 손잡이 부분으로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단검을 쳐 냈다.
뎅그렁.
자객이 들고 있는 단검은 복도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환은 자신이 상대를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객은 제압되지 않은 왼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더니 다른 단검을 한 자루 더 꺼내어 다시 주환의 목을 노렸다.
주환은 그 공격을 피하면서 제압하고 있던 오른팔을 꺾어서 탈골시켜 버렸다.
“크윽!”
자객은 고통을 참으면서 주환에게서 물러섰다.
주환의 실력을 확인한 자객은 근접전투에서는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고 파악했는지 들고 있던 단검을 주환을 향해서 던졌다.
자객이 물러서면서 거리를 벌리자 주환은 그에게 다시 권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갑자기 날아온 단검 때문에 주환은 황급히 권총을 든 손을 휘둘러 날아오는 단검을 떨쳐 냈다.
탕!
주환이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통에 발사된 탄환은 허무하게 천장에 박혔다.
자객은 몸을 돌려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상대를 놓칠 수 없었기에 주환은 그를 쫓았다.
복도를 벗어난 자객은 아래층으로 단숨에 뛰어내렸다.
그는 아래층에 놓여 있던 테이블의 위에 떨어져 테이블을 박살 내며 한 바퀴를 구르고는 곧장 별장의 문을 향해 뛰어갔다.
주환 역시 아래층으로 뛰어내려서 부서진 테이블 위에 착지했다.
그사이 자객은 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주환은 바로 그의 뒤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이미 자객은 별장의 밖에 묶어 둔 말에 올라탄 상태였다.
주환은 말에 탄 자객을 향해서 권총을 겨누었다.
그때, 주환은 자신을 습격하기 위해서 온 사람이 단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준비되어 있던 말은 두 필.
자객은 그중 한 필에 말에 올라탔으며 나머지 한 필에는 이미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
어둠 속의 그림자만으로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환이 문에 기대선 채로 권총을 발사하자 두 사람의 자객들은 황급히 말을 몰아서 산길의 아래쪽으로 사라져 갔다.
찰칵!
탄환을 다 소비하여 권총의 슬라이드가 뒤로 밀리자 주환은 그제야 사격을 멈췄다.
“대체 어떤 녀석들이 나를…….”
자객들이 멀리 사라져 버린 것을 확인한 주환은 별장의 문을 닫은 후 거실에 있는 소파에 지친 몸을 던졌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이었지? 그나저나 자객이 두 명이라면 왜 둘 다 들어오지 않았을까? 솔직히 아까 그 사람 정도의 실력자가 두 명이 있었으면 내가 이기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주환은 소파에 앉은 채 그를 죽이러 온 자객들이 누구였는지에 대해 추리해 보았다.
‘분명 그 자객은 내가 사용하는 무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어. 내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이미 피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
주환은 아까의 상황을 되새겨 보았다.
‘그런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 추려 낼 수 있을 거야.’
주환은 상대의 정체에 대해 추리하면서 그들이 다시 올 것을 대비했다.
* * *
“잠시…… 여기서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을 달리던 자객은 뒤에 따라오고 있는 동료에게 그렇게 말하며 달리던 말을 멈췄다.
“문제가 생긴 건가요?”
뒤에서 따르던 동료 역시 말을 멈추게 한 후 말을 천천히 몰아서 자객의 옆으로 다가갔다.
“어깨가 탈골되어서 제대로 말을 몰기가 힘들군요. 더구나.”
자객은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을 몰고 도망칠 때 주환이 발사했던 총알 중 하나가 그의 허벅지에 명중한 모양이었다.
“그가 우리를 쫓지 않을 테니 잠시 멈추고 치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시죠. 상처를 제가 봐 드릴게요.”
“부탁합니다.”
자객이 말에서 내리자 동료도 같이 말에서 내렸다.
고통이 심한 듯 자객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큭!”
“기다리세요. 가방에서 필요한 걸 꺼낼 테니까요.”
동료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자객의 뒤로 이동했다.
“아르테어 님. 아무리 아르테어 님의 부탁이지만 부단장님에게 비밀로 하고 이렇게 온 것은 잘못된 일인 것 같습니다. 그것도 기사답지 않은 암살 일이라니요.”
자객의 말에 그의 뒤에서 치료제를 찾는 척을 하고 있던 아르테어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지팡이를 잡았다.
“그런가요?”
주환을 죽이려고 했던 자객은 성전 기사단의 단원 중 한 명으로, 그가 주환의 무기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은 아르테어가 준 정보 덕분이었다.
“데미안 님이 아시면…… 저는 문책을 면하지 못하겠죠. 그런데도 제가 아르테어 님의 부탁을 왜 거절하지 않았는지 아십니까?”
“모르겠네요.”
아르테어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팡이 안에 숨겨져 있는 붉은 검을 뽑았다.
“그건…… 사실 그건 제가 아르테어 님을…….”
푹!
아르테어는 그의 뒤에서 붉은 검을 단숨에 그의 몸에 관통시켰다.
“커억!”
붉은 검은 정확히 그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맙소사…….”
자객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그 한마디를 남기면서 앞으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아르테어는 죽은 그의 몸에서 검을 뽑아냈다.
그러자 자객의 시체는 마치 미라처럼 말라 가기 시작했다.
“임무에 실패한 주제에 말이 너무 많아요, 당신은. 당신 같은 사람은 지금 입을 막아 놓는 게 더 좋겠죠.”
아르테어는 시체에서 관심을 거두고는 자객이 탔던 말의 고삐를 잡고는 그대로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주환 씨. 확실히 실력은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르테어는 자신들이 도망 왔던 길을 돌아보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잠시 더 살려 두도록 하죠.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을 거예요.”
그 말만을 남긴 채 아르테어는 천천히 두 마리의 말을 몰면서 버려진 시체에서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