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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08화 (108/182)

108화

“당신은 주환 씨에게 자신들이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준다면 그곳에 숨어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는군요.”

“주환? 아. 그때 그 청년 말이로군.”

레브는 데미안의 뒤에 있는 단원들을 보면서 데미안에게 물었다.

“주환이라는 청년은 같이 오지 않은 건가?”

“그렇습니다. 일부러 저희만 왔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해결과 제가 생각하는 해결의 방법이 다른 것 같아서 말이죠.”

“그렇군. 그때 그 친구와 다른 동료는 분명 우리를 죽일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런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자신의 양심을 챙기려는 어리숙한 친구였어. 그렇지만 그렇기에 무모한 부탁이지만 한번 걸어 볼 수가 있었던 거지.”

거기까지 말한 레브는 자신의 뒤에서 얌전히 모여 있는 변이체들을 돌아보았다.

“결국은 우리를 다 죽이겠다는 말인가?”

“어쩔 수 없습니다. 모여 살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있을 수가 없겠죠. 당신은 유일하게 인간적인 의식이 남아 있지만, 저들은 다릅니다. 인간적인 의식이 남아 있지 않은 자들을 세상에 풀어놓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바라는 것은 그저 자신의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현실에서 눈을 돌려 버리는 것이죠.”

“현실적이로군. 역시 당신 같은 기사는 현실적인 판단을 할 줄 알긴 아는구만.”

“모든 것은 사람들은 안녕을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좀비와 괴물들이 판치는 세상. 당신들까지 이 세상에 풀어놓아서 세상을 더욱더 혼란에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진 잘 알겠네. 그렇지만 이해가 안 되는군. 모두를 죽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이렇게 나와 한가롭게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을 텐데.”

“저는 주환 씨에게 당신의 능력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 능력을 사용해 주길 원합니다.”

“무슨 말인가?”

“당신은 인간적인 의식이 남아 있죠. 그렇기에 인간의 의식이 있는 당신은 살려 두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가 뒤에 있는 변이체들을 처리할 때 그들이 공격적이지 않도록 당신이 온 힘을 다해서 조종해 주시면 당신만큼은 원하는 곳으로 보내드리도록 하죠.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데미안의 제안에 레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음을 눈치챈 데미안은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약속 지킬 수 있겠나?”

“지켜 드리겠습니다.”

다시금 침묵에 빠진 레브는 겨우 입을 열었다.

“빨리 끝내야 하네. 나 역시도 언제까지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니.”

“그렇게 하도록 하죠.”

레브가 거래를 받아들이자 데미안은 손을 들어서 옆에 있는 싱클레어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싱클레어는 뒤에 있는 단원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성전 기사단의 조직적인 움직임과 레브가 내뿜는 정신조종음파로 인해서 변이체들은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사체가 되어서 동굴의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창으로 찌르는 소리.

칼로 베는 소리.

죽어 가는 변이체들의 비명과 신음 소리.

그들이 그 많은 변이체를 전부 다 사체로 만드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부단장님. 전부 다 끝냈습니다.”

온몸에 변이체들의 체액을 묻히고 있는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 돌아와 보고하였다.

“잘하셨습니다.”

데미안은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있는 레브에게 다가갔다.

“이제 끝났습니다.”

“다… 끝난 겁니까?”

“그렇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리며 저희를 따라서 이 동굴을 나가도록 하시죠.”

데미안은 단원 중 몇 명을 불러서 레브를 동굴에서 나갈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레브가 동굴을 빠져나가는 단원들을 따라가는 것을 보면서 데미안은 몸에 묻은 체액을 닦고 있는 싱클레어에게 말했다.

“저자는 나중에 싱클레어 님이 처리해 주십시오.”

“원하는 곳으로 보내 주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래서는 안 됩니다. 확실하게 없애 주시라는 이야기입니다.”

데미안의 말에 싱클레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저자의 옷을 보셨습니까? 그리고 주환 씨의 말에 의하면 저자는 우리가 방금 죽인 변이체들이 태어나는 일에 일조한 장본인 중 한 명입니다. 저런 모습으로 변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업자득일 뿐 제대로 된 벌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죠.”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약속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약속하긴 했습니다. 인간의 의식이 있다면 살려 둘 생각을 했다고 말했죠. 그렇지만 저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의식을 제대로 유지를 못 하는 자입니다. 가두어 두었다가 인간적 의식을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 없애면 됩니다. 저런 자는 반드시 없애야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데미안은 그렇게 말하며 싱클레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럼 돌아가도록 하죠.”

* * *

새벽까지 실험 기구들을 만들고 있던 아르테어는 피곤해진 자신의 눈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손수건에 물을 적신 후에 그것을 잠시 눈앞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잠시 쉬어도 피로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느낀 아르테어는 잠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하여 치료소의 밖을 나섰다.

사방은 어둠과 침묵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가 간이 숙소에서 자고 있을 시간.

아르테어는 밤 산책을 위하여 잠시 정착지의 밖으로 나섰다.

산책을 하면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던 아르테어는 문득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어디서 나타난 거지?’

아르테어는 상대방을 경계하긴 했지만,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지는 않았다.

상대방 쪽에서도 살기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르테어는 상대방이 서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환한 달빛 덕분에 아르테어는 그가 입고 있는 옷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비를 쫓는 자들이 입는 검은색의 로브.

그 로브를 입고 있는 자가 고개를 들어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거대한 차원의 문 너머로 사라졌던 클레이브였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아르테어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할아버님.”

아르테어가 그렇게 말하자 클레이브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너였구나.”

클레이브의 말에 아르테어 즉, 아르테어 알케비젼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는 할아버님이 다른 차원으로 사라지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맞아. 지금 이상한 차원의 안쪽을 떠돌고 있지. 지금 내 모습은 내 정신체의 일부란다. 사라지기 전에 이쪽 세계에 남겨 둔 거거든.”

“정신체라면 저의 손짓 한 번에도 사라져 버릴 신세이시로군요.”

아르테어가 손을 올리자 클레이브는 손을 내저었다.

“너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그저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지.”

“뭐가 궁금하신 거죠?”

“그나저나 너 파루시아 교단에 들어간 거냐? 절벽 위에서 봤을 때 파루시아 교단의 성직자가 한 명 껴 있는 걸로만 생각했는데 왠지 낯이 익다고 생각했거든. 역시나 그게 바로 너였어. 흑마법 가문이 싫다고 뛰쳐나간 녀석이 결국에는 신에 귀의하다니.”

“그건 제 자유예요. 그래서 알케비젼이라는 성도 버렸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제가 알케비젼의 사람인지 모르죠.”

아르테어가 데미안을 돕기 위해서 오르페우스호의 갑판에 올라가지 않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녀가 갑판에 올라가면 필연적으로 클레이브와 만나게 되고 클레이브가 그녀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녹색의 비를 가져간 게 너였나 보구나.”

클레이브의 물음에 아르테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로 무엇을 할 생각이지?”

“그건 할아버님과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

“너는 총명하니까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가져가지 않았을 테지. 너는 출중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어. 너라면 그 물건을 보았을 때 그게 가지고 있는 가치를 이해했을 거다.”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어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뿐.”

“네가 원한다면 내가 너를 도와줄 수도 있단다.”

“그건 거절하겠어요.”

“어째서지?”

“할아버지는 야망의 덩어리이니까요.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의 앞날에 방해될 뿐이에요.”

“우리? 하하, 그렇군. 이제 알았어. 이제 보니 너는 지금 사랑에 빠진 거로구나.”

“그런 저급한 감정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에요.”

“아니지. 사랑이야말로 제 세상을 바꾸는 힘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할애비도 사랑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란다.”

그러면서 클레이브는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오로지 나에 대한 사랑으로 움직이는 거긴 하지만 말이지.”

“아무튼 돌아가 주세요. 할아버님과는 더 할 이야기가 없으니까.”

“그래? 너는 이 할애비가 영원히 다른 차원을 떠돌 거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큰 오산이란다. 내가 귀여워하는 내 후계자가 아주 재미있는 물건을 가지고 나를 따라서 왔더구나. 그 물건이 있으면 그 어느 차원이든 이동할 수 있지.”

클레이브의 말에 아르테어는 오싹함을 느꼈다.

아르테어는 클레이브가 얼마나 끈질기고 지독한 인간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돌아오게 된다면 그냥 빈손으로는 돌아오지 않아. 이 세상에 더욱더 재미있는 것들을 풀어놓을 생각이란다. 그리고 그 차원 이동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황제의 뒤를 칠 수 있지. 그때에 우리가 너희의 적으로 나서면 너희가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이번에도 그 주환이라는 녀석이 없었다면 데미안은 나에게 흠집 하나 내지 못했을 거다.”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뭐죠?”

“너희와 우리. 한번 힘을 합쳐 보는 게 어떻겠니?”

“어째서 그런 생각을?”

“네가 녹색의 비와 연구 자료들을 가져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직 너에게는 우리 가문의 피가 완전히 희석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거든. 그리고 그 데미안이라는 자. 나랑 제법 닮은 점이 있더구나. 할애비는 그 녀석이 좀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그의 후원자가 될 생각이다.”

“데미안 님이 할아버지의 계획을 망쳐 버렸는데도요? 그리고 그분은 기사예요. 할아버님과 같은 범죄자와는 손을 잡지 않을 거라고요.”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될 거다. 처음에는 주환이라는 녀석을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녀석은 우리 편이 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데미안이라면 오늘의 적이 내일의 아군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이해할 거다.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중간에서 다리를 놔주는 거지. 너는 데미안에게 신뢰를 받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클레이브는 아르테어에게 다가가면서 손을 내밀었다.

“만약 너희가 내 손을 잡는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너희를 지원할 거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 너는 알 거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클레이브라면 누구보다도 가치 있는 후원자가 될 수 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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