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루카는 좀 어때?”
엘레나가 루카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주환은 그렇게 물었다.
“깨어났다가 다시 기절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어. 더 큰 문제는 기억 상실인데.”
“기억 상실?”
“응. 깨어났을 때 물어본 건데. 지금 루카는 몸이 변화한 다음에 일어난 일들을 아주 드문드문 기억하고 있는 상태야. 기억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야.”
“그것도 그 변신의 영향일까?”
“그럴지도?”
“그런데. 그건 대체 뭘까?”
엘레나는 주환이 묻고 싶어 하는 부분을 파악했다.
“루카는 아마도 늑대 인간의 후손일 거야. 완전 변이상태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피가 어느 정도나 진하게 흐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늑대 인간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
“역시 그렇구나.”
“평범하지 않은 피가 흐르고 있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곤 있었어. 이상할 정도로 특출한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었잖아.”
“그게 이번에 극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발현된 거다?”
“그렇겠지. 죽음에 가까운 상처를 입으면서 잠들어 있던 그 피가 깨어난 거지. 그게 깨어나지 않았다면 루카는 죽었을지도 몰라. 아. 아마 너도 죽었겠지. 너는 루카가 구해 줘서 그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온 거니까.”
“운이 좋았어. 그나저나 분명히 상처는 다 아물었는데 왜 계속 기절해 있는 걸까?”
“아직은 몸의 변이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흔히 성장통이라는 게 있잖아. 갑자기 몸이 커지게 되면 온몸이 아파져 오는 것처럼 저것도 루카의 몸이 변이에 적응하는 과정일 거야. 거꾸로 말하면 계속해서 변신을 해나가면 저런 일도 없어질 거란 이야기지.”
“그렇군.”
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다시 시작하려고?”
“응. 일을 일찍 끝내고 다녀올 곳이 있어서.”
“데스티나랑 이온에게 말이지?”
“응.”
주환의 대답에 엘레나가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바람의 정령이 소환되면서 정령의 힘으로 인쟁기가 저절로 일어섰다.
“일은 내가 하고 있을 테니까 다녀와.”
“그래. 고맙다.”
엘레나의 배려에 주환은 데스티나와 이온을 보기 위해서 그 자리를 떠났다.
* * *
텃밭을 벗어난 주환이 향한 곳은 로즈버드 빌리지의 옆에 있는 새 정착지로, 정착지의 안에 들어간 주환은 사람들을 도와서 필요한 건물들을 세우고 있는 갈로스를 만날 수 있었다.
“갈로스.”
주환이 부르자 일을 하고 있던 갈로스는 잠시 손을 멈추고 주환을 바라보았다.
“아. 주환 씨.”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네?”
“네. 저는 지치지 않으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요. 저 하나로 이곳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그것도 기쁜 일이죠.”
갈로스의 말마따나 갈로스는 현재 새로운 정착지를 만드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갈로스는 청동 인간이기에 지치지 않으며 힘도 엄청났기에 수십 명분의 일을 혼자서 해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루카는 괜찮은 건가요?”
갈로스의 물음에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엘레나한테 들었는데 아직은 깨어났다가 잠들었다 하는 것을 반복한다고 하더라.”
“다행이네요. 데스티나 님과 이온 님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으니까요.”
“루카가 깨어나면 네가 잘하고 있다고 전해 줄게.”
“오늘도 아르테어 님을 찾아가시는 건가요?”
“맞아. 데스티나나 이온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니까.”
“제가 보니까 점점 치료소의 환경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곧 두 분 다 깨어나실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갈로스와 헤어진 주환은 곧장 치료소를 향했다.
치료소는 아르테어가 담당하고 있었으며 치료소의 건물은 정착지의 그 어떤 건물보다도 크고 견고한 외형을 하고 있는 데다가 정착지의 건물 중 가장 먼저 완성된 곳이었다.
“이 정도 건물을 그렇게 금세 짓다니.”
주환은 정착지를 짓고 있는 사람들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치료소로 간 주환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안쪽에서 아르테어의 목소리가 들리자 주환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주환은 치료소의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갈로스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치료소의 안은 주환이 살던 세계의 병원의 내부를 비슷하게 본뜬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다.
사실 병원보다는 연구소에 더 가까운 모습이긴 했다.
물론, 인테리어의 재료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주 같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주환으로서는 무엇을 본뜬 인테리어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대체 이런 것들은 어디서 본 걸까? 스스로 생각해 낸 건가?’
아르테어는 오르페우스호의 실험실에 들어가 그 안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아 왔기에 그러한 인테리어가 가능했던 것이지만, 주환으로서는 그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오늘도 오셨군요.”
실험 기구를 만들고 있던 아르테어가 주환에게 다가왔다.
주환은 아르테어를 잘 알지 못했다.
오르페우스호에서 있었던 싸움에서 주환은 단 한 번도 아르테어를 보지 못했었다.
모든 일을 마친 후에야 만날 수 있었을 뿐.
“데스티나 님과 이온 님을 만나러 오신 거겠죠?”
“네. 그렇습니다.”
주환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아르테어가 만들고 있는 실험 기구들을 눈여겨보았다.
그러한 물건들은 겉보기에 이쪽 세계의 기술력을 아득하게 능가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뭘까?’
“두 사람의 상태는 어떤가요?”
“안타깝게도 큰 차도는 없습니다.”
아르테어의 안내를 받은 주환은 데스티나와 이온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데스티나와 이온은 서로 환자용 침대를 붙인 채로 서로 나란히 누워 있었다.
주환은 데스티나에게로 다가갔다.
데스티나는 그저 시체처럼 누워 있을 따름이었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으며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데스티나…….”
그는 이번에는 이온에게로 다가갔다.
이온 역시 데스티나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그녀가 데스티나와 다른 점이라곤 숨조차 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 다, 언제쯤 깨어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겁니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네요. 이온 님은 인간이 아니므로 저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고 데스티나 님 역시 지금 살아 계신 게 기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죠.”
아르테어는 데스티나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들어 그녀의 몸 위에 올렸다.
“지금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데스티나 님의 몸은 조각조각 난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만약 루드비히가 클레이브를 구하기 위해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면 데스티나는 정말로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똑똑.
그때, 또 다른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기에 아르테어는 주환에게 묵례를 한 후 문을 열어 주러 나갔다.
아르테어와 손님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주환은 그들이 하는 대화는 들을 수 있었다.
“아르테어 님.”
“네. 무슨 일이시죠?”
아마도 정착민 중 한 명이 아르테어에게 볼 일이 있어서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때 몸에서 벌레가 나온 것 때문에 2차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2차 치료라는 거, 그거 언제부터 받을 수 있는 건가요?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하루하루 불안해서요.”
“준비할 게 있어서 아직은 해드릴 수가 없네요. 그렇지만 조만간 준비가 끝날 테니 그때에 받으실 수 있도록 조치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차 치료?’
주환으로서는 그들의 대화에서 등장한 ‘2차 치료’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벌레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니까 감염자들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때 치료액을 맞고 모든 치료가 끝난 게 아닌가? 이온은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 더구나 지금 이온은 그 이후로 한 번도 깨어난 적이 없어서 아르테어에게 그 어떤 정보를 전달한 적도 없을 테고.’
주환은 찜찜함을 느꼈지만 큰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곧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 * *
기진맥진해 있던 레브는 다수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동굴 속의 어둠 속에서 여러 개의 횃불이 일렁이며 그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위쪽으로 길게 뚫려 있는 기다란 구멍.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곳은 오르페우스호가 막고 있었기에 오르페우스호의 바닥에 달린 문이 열리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에만 그곳으로 작은 빛이 들어왔지만, 지금은 그 구멍을 통해서 하늘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오르페우스호가 사라져 버렸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로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리 만무했다.
주환과 이온이 동굴의 문을 열고 나간 이후 레브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변이체들을 이끌고 동굴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온 정신을 다하여 그들이 동굴의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레브는 의식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초인적인 의지력으로 자신의 의식이 사라져 가는 것을 막았다.
그것은 변이자들이 바깥으로 나간다면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레브는 주환과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들을 도와서 숨어 살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레브는 어떻게든 자신의 의식을 유지하여 끝까지 협조할 생각이었다.
‘그때 그 친구가 약속을 지킨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레브의 앞에 다가온 이는 바로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의 옆에서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은 싱클레어였으며 두 사람의 뒤에는 성전 기사단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이건.”
동굴 안쪽의 상황을 마주한 싱클레어와 단원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동굴의 안쪽에 모여 있는 변이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기괴했기 때문이었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레브의 물음에 데미안이 앞으로 나섰다.
“성전 기사단의 부단장 데미안이라고 합니다.”
“아. 당신이 그 데미안? 소문으로만 듣던 전설의 검사를 여기서 다 보게 되는군.”
“바깥의 상황을 알고 계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모르오.”
“당신이 따르던 클레이브는 이제 없습니다.”
“그렇군. 사실 그럴 것으로 생각했소. 소란스러움도 사라지고 위의 구멍을 막고 있던 그 거대한 철갑 배도 사라졌지. 그렇다면 남은 것은…….”
레브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뿐인 건가?”
“예. 이제는 당신들뿐이죠.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온 겁니다.”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