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그때, 두 사람은 딛고 있는 바닥의 각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깨달았다.
거대한 차원의 문의 흡입력이 점점 강해지다 보니 오르페우스호의 선미가 위쪽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마치 하늘을 향해서 곧장 솟아오르는 것 같은 모습을 취한 오르페우스호.
루카는 추락하지 않게끔 손톱을 벽처럼 일어서 버린 갑판에 박은 다음에 다른 손으로는 주환을 붙잡았다.
“앗!”
기울어지는 바닥에서 더는 버틸 수가 없었던 주환은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떨어졌지만, 루카가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의지한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으윽!”
한쪽 팔로 매달려 있는 고통을 견디면서 고개를 든 주환의 눈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 오르페우스호는 수만, 아니 수억 개의 조각으로 분해되어서 허공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소용돌이의 안에는 엄청나게 거대한 크기의 살덩이 괴물이 떠다니고 있었다.
계속해서 성장하여 오르페우스호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그 살덩이 괴물이 오르페우스호가 분해되면서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엄청나게 크고…… 엄청나게 못생긴 감자같이 생겼는데?”
주환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 바로 이곳을 빠져나가야겠어. 지금이 아니면 빠져나갈 기회가 없을 거야.”
“그렇지만 어떻게 나가지?”
“뛰어내리는 거지.”
당연하다는 듯한 루카의 말에 주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잘못하면 둘 다 죽을 수도 있어.”
“걱정 마. 내가 다치지 않게 해줄 거니까.”
루카가 장담하자 주환은 그녀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단숨에 뛰어내릴 거야. 내가 널 계속 잡고 있을 테니까. 걱정할 건 없어.”
루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환은 순간 오르페우스의 잔해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보았다.
품에 무엇인가를 안고 있는 한 소년.
주환이 그 소년의 모습을 눈으로 좇으려고 할 때 루카는 매달린 갑판의 바닥에서 손을 떼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루카는 주환의 몸을 잘 붙잡은 다음 주변에 있는 오르페우스호의 파편들을 발로 하나씩 디디면서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었다.
그렇기에 아래를 향해서 떨어지고 있으면서도 속도를 줄일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파편들은 거대한 차원의 문을 향해서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기에 그것들을 밟으면서 끝까지 안전하게 바닥으로 내려올 수는 없었다.
루카는 어느 순간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로 주환은 안은 채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 *
거대한 차원의 문이 만들어지면서 오르페우스호가 점점 떠오르고 있을 때, 루드비히는 사방에서 달려드는 살덩이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촤악!
살덩이 괴물 하나하나의 공격력이나 내구성은 약했지만 금방 그 수를 늘려서 다시금 공격해 왔기에 아무리 루드비히라도 곤란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벌레 같은 놈들이!”
루드비히가 기합을 내지르면서 사방으로 불꽃을 발사하자 그를 향해서 달려드는 작은 살덩이 괴물들이 불타 버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살덩이 괴물을 상대하던 다른 이들은 살덩이 괴물의 재생력을 감당하지 못했지만 루드비히는 달랐다.
넘치는 힘으로 살덩이 괴물들이 재생하지 못할 정도로 불태워 버렸기에 적어도 그에게 한번 당했던 괴물이 다시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
“하찮은 놈들.”
클레이브는 여전히 잘린 가스파르의 팔에 붙잡혀 있었다.
루드비히가 그것을 붙잡았을 때 이미 오르페우스호는 공중으로 부유하면서 거대한 하늘에 있는 차원의 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것은.”
루드비히의 말에 클레이브의 시선도 하늘을 향했다.
“저게 무엇이지?”
클레이브의 물음에 루드비히는 심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것은 아마도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구멍일 것이다.”
“어째서 저런 통로가 갑자기 나타난 거지? 루드비히, 네가 연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나 역시도 저것을 누가 만든 것인지 그리고 어디로 통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군.”
말을 마친 루드비히는 자신의 검을 휘둘러서 클레이브를 잡고 있는 거대한 손을 조각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떨어지자 손을 뻗어 불꽃을 내뿜어서 재생하려는 살덩이들을 단숨에 소각시켜 버렸다.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 없으니. 우선 몸을 피하는 게 좋겠군.”
“그나저나 저 정도의 차원문을 만들어 내다니, 그 정도로 강한 녀석은 없었는데 말이야.”
루드비히가 클레이브를 부축하려고 하는 순간 오르페우스가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차원의 문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통에 발생한 회오리 때문에 오르페우스호의 조각들이 두 사람에게로 날아들었다.
“흠!”
그렇지만 그 정도는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듯 루드비히는 검으로 날아오는 조각들을 베거나 다른 곳으로 쳐 냈다.
루드비히는 클레이브를 붙잡고는 날개를 움직여서 회오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차원의 문과 너무 가까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벗어날 수가 없는 건가?”
클레이브의 물음에 루드비히는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 있나. 이런 곳은 금방 빠져나갈 수 있지.”
루드비히가 호언장담을 하면서 사방에서 돌아다니는 오르페우스호의 파편들을 피해서 날아갔다.
그가 회오리의 권역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그들은 앞을 막고 있는 거대한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오르페우스호의 안에서 성장을 계속하고 있던 엄청나게 거대한 살덩이 괴물.
“네놈!”
루드비히는 분노를 터뜨리면서 방향을 바꾸어 그를 피하려고 했지만, 살덩이 괴물에게서 수도 없이 많은 팔이 만들어지면서 루드비히와 클레이브를 붙잡았다.
“놔라!”
루드비히는 몸의 주변에서 불꽃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그를 잡고 있던 팔들이 불타서 사라져 버렸지만, 살덩이 괴물이 너무나도 거대했기에 괴물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온몸을 다 이용해서 두 사람을 덮쳤다.
와락!
루드비히가 불꽃을 발사하면서 저항했지만, 어느새 살덩이 괴물의 거대한 손이 두 사람을 붙잡았다.
그러자 살덩이 괴물의 몸통에서 거대한 가스파르의 얼굴이 솟아오르면서 자신의 양손에 잡혀 있는 루드비히와 클레이브를 내려다보았다.
“드디어 잡았다.”
그 둘이 가스파르에게 잡혀서 옴짝달싹 못 하는 사이 가스파르의 몸과 오르페우스 함선의 조각들이 격렬하게 회전하면서 거대한 차원의 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안쪽으로 사라져 가자 거대한 차원의 문은 곧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 * *
비를 쫓는 자들과의 싸움을 끝나고.
그 싸움을 통한 가장 큰 성과는 단연 비를 쫓는 자들에게 납치되었던 수백 명의 사람을 구출해 낸 일일 것이다.
함선 오르페우스와 클레이브와 루드비히, 그리고 가스파르가 다른 차원으로 사라져 버린 뒤 성전 기사단은 납치되었던 사람들을 이끌고 로즈버드 빌리지로 돌아왔다.
납치되었던 사람 중 많은 이들은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로즈버드 빌리지, 혹은 성전 기사단이 보호하는 생존자 공동체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성전 기사단은 로즈버드 빌리지의 바로 옆에 자신들의 정착지를 세우고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촌장이 데미안에게 자신의 권리를 위임하였기 때문에 그 두 정착지는 사실상 하나의 정착지와 다를 것이 없었으며, 로즈버드 빌리지의 이름은 그대로 두었지만 두 정착지를 합쳐 ‘나이츠 빌리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일을 통하여 성전 기사단의 이름은 더욱더 높아져서 데미안은 사람들의 사이에서 영웅으로 회자되었다.
그에 비하여 주환의 기분은 우울했다.
그는 상황이 안정화되는 동안 나이츠 빌리지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의 대접은 나쁘지 않았기에 편안히 쉴 수 있었지만, 그가 우울한 이유는 자신의 동료들 때문이었다.
그들이 로즈버드 빌리지로 복귀를 했을 때 정상적인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이는 오로지 주환뿐이었다.
탈진 상태에 빠져서 며칠간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엘레나.
자신의 동생을 데려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루시아.
가장 심각한 것은 루카와 이온, 그리고 데스티나였다.
루카는 로즈버드 빌리지로 돌아온 휘 몸이 예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갔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기절해 버린 채 지금까지도 일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이온은 완벽한 가동 중지에 들어간 상태였으며 그녀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다시 움직일 수나 있을지 판단할 수 있는 이조차 없었다.
데스티나는 여전히 혼수상태였다.
툴레오의 힘을 빌린 그 대가가 절대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성한 몸으로 귀환한 주환은 지금 정착민들을 도와서 텃밭을 가꾸는 중이었다.
정착민들은 그 역시 사람들을 구한 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일을 돕는 것을 만류하였지만, 그는 자진해서 작업에 나섰다.
그는 나름대로 정착지의 분위기를 읽고 있었다.
비를 쫓는 자들의 손에서 사람들을 구출한 것은 좋았지만 원래 구출하려던 로즈버드 빌리지의 정착민들에 더해 그 이전에 납치되었던 피해자들까지 더해져서 정착지의 물자와 생필품의 소모가 급작스럽게 빨라진 것이 문제였다.
원래 생존자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물자, 그리고 로즈버드 빌리지에서 보유하고 있던 물자를 통해서 그러한 피해자들을 구호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물자가 풍족하지 않은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장기화할수록 원래 인원과 유입 인원 간의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기에 아직 그런 마찰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로서도 로즈버드 빌리지의 물자를 축내는 처지인 이상 나름대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착민들이 흔히 입는 작업복 차림을 한 주환은 바퀴가 달려 있는 인쟁기를 통해서 텃밭을 갈고 있었다.
커다란 밭은 큰 쟁기를 소나 말에 매어서 갈아야 하지만 작은 텃밭은 외바퀴와 작은 쟁기날이 날려 있어 사람이 손잡이를 잡고 밀어서 사용하는 인쟁기가 더 효과적이었다.
작업을 하던 주환은 잠시 쉬기 위하여 농기구를 내려놓고 텃밭의 한쪽으로 나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주환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렇게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고 있어?”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주환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있는 엘레나가 서 있었다.
“그냥 이것저것 좀 생각할 게 있어서.”
“생각해 봐야 답이 안 나오는 표정인데?”
엘레나는 주환에게 다가와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방울토마토였다.
“이건 어디서 난 거야?”
“촌장이 주던데?”
마침 목이 마르던 차였기에 그것을 받아 든 주환은 곧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방울토마토의 시큼하면서도 농축된 액체가 그의 목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