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처음에는 두 조각.
그다음은 네 조각.
다음에는 여덟 조각.
그런 식으로 오르페우스호는 무수한 조각으로 잘려 나가고 있었는데, 그런 속도로 계속해서 조각이 난다면 곧 모든 조각이 분자 수준으로 분해될 판이었다.
시간을 더 끈다면 오르페우스호의 안에 있는 그들까지도 분해되게 될 처지였다.
원래 차원 이동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나 현재 차원 이동을 통제하고 있던 이온이 가동 중지 상태에 근접했기에 차원 이동 자체가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어서 엘레나와 루시아는 자신들의 몸이 점점 공중에 떠오르는 걸 느꼈다.
그것은 무중력의 우주선 안에서 선원들이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이온의 옆쪽에서 작은 차원의 문이 하나 열렸다.
그리고 이온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빨리…… 저 안으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온은 가동을 멈추면서 뒤쪽으로 쓰러졌다.
이온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엘레나는 루시아를 이끌고 바람의 정령을 소환하여 작은 차원의 문 쪽으로 날아갔다.
이온의 옆에 내려선 엘레나는 주환에게 데려가 달라는 이온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가동이 멈춘 이온의 몸을 들어 올렸다.
지금은 오르페우스호의 내부는 무중력 상태에 가까웠기에 이온의 몸을 들어 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작은 차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루시아는 여전히 부유체에 에너지를 주입하고 있는 페드로를 붙들었다.
“페드로. 이제 됐어.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야 해.”
그러나 페드로는 부유체를 놓지 않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부족해.”
“뭐?”
“나는 느낄 수 있어. 지금 에너지를 주입하는 게 끊어져 버리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아. 나는 여기에 남겠어.”
“무슨 소리야! 빨리 같이 여기서 나가자. 그걸 들고 같이 나가면 되잖아.”
“그러면 안 돼. 차원 이동은 이 기계가 중심이야. 이 기계가 자리를 벗어나게 된다면 모든 작업이 중지되고 말아. 누군가는 이것을 끝까지 책임져야 해.”
“페드로…….”
“누나도 알잖아. 나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줬어. 인제 와서 그들을 따라가 그들의 틈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거야.”
페드로가 말을 마치자 잘려 나갔던 오르페우스호의 틈새가 단숨에 벌어지면서 마치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먼지들처럼 하늘에 열린 커다란 차원의 문으로 잔해들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루시아는 필사적으로 페드로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페드로는 루시아의 팔을 억지로 떼어 놓은 후 커다란 차원의 문 쪽을 향해서 떠올라 갔다.
“페드로!”
“루시아! 안 돼! 지금 움직이면 너도 저 차원의 문에 빨려 들어가고 말아!”
엘레나는 루시아를 붙잡고는 그렇게 외쳤다.
이제 그들이 딛고 있는 바닥마저도 사라져 가고 있었다.
지체했다가는 두 사람 다 단숨에 커다란 차원의 문에 빨려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엘레나는 팔로 루시아의 몸을 감은 다음 단숨에 자신들의 옆에 있는 작은 차원의 문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루시아는 닫혀 가는 작은 차원의 문 너머로 그들 쪽을 바라보고 있는 페드로 모습을 눈으로 좇았지만, 무정하게도 작은 차원의 문은 금세 닫혀 버리고 말았다.
* * *
“저게 뭐지?”
주환은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까 루드비히가 소환이 될 때는 하늘에 보라색의 거대한 마법진이 생겼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그런 것과는 달랐다.
마치 하늘의 일부를 그대로 오려 낸 것 같은 커다란 검은 구멍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환은 루카를 보호할 수 있도록 그녀의 위에 엎드렸다.
지금 그가 올라가 있는 오르페우스호는 점점 공중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함선의 이상을 감지한 것인지 주환에게 다가오고 있던 살덩이 괴물들 역시 행동을 멈추었다.
“함선이 떠 오르고 있잖아?”
주환은 갑판의 바깥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이미 오르페우스호는 상당한 높이를 떠 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제대로 조종을 하는 있는 인물이 없는 것인지 위로 떠 오르고 있는 오르페우스호는 주환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함선은 하늘의 구멍 쪽으로 점점 가까워졌다.
주환은 다시금 갑판의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가 뛰어내리기에는 높이가 너무나 높았다.
“뛰어내릴 수는 없겠어.”
주환은 하늘에 생긴 구멍이 대체 무엇인지를 빠르게 추리해 보았다.
그때, 그는 이온과의 대화에서 오르페우스호가 원래는 우주 탐사용이었지만 차원 이동용 함선으로 개조되었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럼. 설마 저 구멍은 차원 이동용 통로인 건가?’
주환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잠시 행동을 멈추었던 살덩이 괴물들이 다시금 주환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뒤늦게 그것을 눈치챈 주환이 그들에 권총을 겨눴지만 이미 그것들이 너무 가까이 온 상황이었다.
‘아차!’
샤삭!
주환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까지 다가온 살덩이 괴물의 몸이 조각조각 나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대체 누가?’
놀란 그의 앞에는 은발을 휘날리고 있는 작은 키의 소녀가 어느새 서 있었다.
머리 위쪽에 솟아올라 있는, 개과 동물의 그것을 연상하게 하는 한 쌍의 동물 귀.
열 손가락 빼곡하게 솟아올라 있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
소녀는 그 손톱으로 주환에게 달려드는 괴물들을 전부 다 베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등에 나 있던 깊은 상처는 지금 거의 다 아물어 가는 상태였다.
“루카…….”
놀란 주환의 목소리와 함께 루카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오래 기다렸지?”
루카는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웃음을 지었다.
“루카. 너…….”
주환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루카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루카가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물론, 그녀의 모습은 주환이 알고 있던 루카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바뀐 게 있다면 겉모습 일부와 분위기.
그리고 그녀의 전신에 흐르고 있는 숨길 수 없는 야성이었다.
“루카.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주환의 물음에 루카는 손톱이 길게 자라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나도 사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지금 알 수 있는 건 몸에 힘이 넘친다는 거야.”
“확실히 그래 보이긴 하네.”
“아직은 이 몸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내가 이 몸을 어느 정도나 컨트롤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야.”
루카는 다시금 그들을 향해서 달려드는 살덩이 괴물들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들을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되겠지?”
루카는 동물처럼 몸을 낮추면서 네발로 엎드렸다.
그 모습을 보던 주환은 문득 루카의 작업복 바지의 엉덩이 부분이 불룩하게 솟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게 대체 뭐야?’
불룩. 불룩.
주환은 튀어나온 부분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울룩불룩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지금 루카의 머리에 달린 동물 귀와 그것을 매치시켜 보았다.
‘설마. 저거 꼬리?’
주환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루카는 네발짐승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녀는 발톱을 앞세운 채로 살덩이 괴물들에게 달려갔다가 갑자기 긴급 유턴을 하는 자동차처럼 갑판 위를 미끄러지더니 다시 주환에게로 돌아왔다.
“왜?”
“머리!”
“응?”
“머리 쓰다듬어 줘!”
“뭐?”
주환은 놀랐지만 간절해 보이는 루카의 눈빛에 어쩔 수 없이 루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다녀올게!”
평소보다 훨씬 텐션이 업되어 있는 루카를 보면서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는 다시 방향을 바꿔서 살덩이 괴물들에게 달려들었다.
루카가 팔을 휘두르자 그녀의 손톱이 괴물들의 몸을 파고들면서 몸을 조각조각 내버렸다.
그녀의 손가락 하나마다 강력한 손톱이 하나씩 달려 있었으니 그녀가 한 번 손을 휘두를 때마다 상대방은 여러 토막으로 조각이 나버릴 수밖에 없었다.
푹!
이번에 루카는 팔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검처럼 상대에게 찔러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의 손톱은 상대의 몸을 쉽게 관통해 버렸다.
루카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입을 벌려서 살덩이 괴물의 몸체를 깨물었다.
으직.
그리고 루카가 힘을 주자 살덩이 괴물의 몸이 찢어지면서 몸이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루카는 자신의 손톱에 꽂혀 있는 살덩이 괴물의 몸 일부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조각난 살덩이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본 루카는 잠시 으르렁거리더니 주환에게로 돌아왔다.
“저 괴물들 이상한 녀석들이야. 이래서는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겠는걸?”
“나도 아까부터 그걸로 고생하고 있었어.”
으지직!
그때, 두 사람이 서 있는 오르페우스호가 조각조각 나기 시작했다.
그 조각나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주환과 루카가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곳이 금세 줄어들어 버렸다.
“이러다가 떨어지겠어!”
주환은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갑판의 바닥들이 서로 벌어져서 마치 징검다리처럼 되었기 때문에 루카와 주환은 서로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주환! 이쪽으로 뛰어!”
루카가 손을 뻗으면서 주환에게 말했다.
주환은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의 틈새로 보이는 아래쪽은 그야말로 하염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낭떠러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주환은 재빨리 앞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루카가 주환의 팔을 잡고 자신과 같은 바닥을 밟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점점 더 많이 조각나고 있어.”
“이러다가는 모래알만 해지지 않을까? 그런 걸 밟고 버틸 수는 없을 거 아냐?”
콰칭!
주환은 기압 차 때문에 귓속이 멍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늘에 나 있는 거대한 차원의 문이 오르페우스호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루카는 하늘에 있는 차원의 문을 바라보면서 주환에게 말했다.
“이제는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는걸.”
“그렇지만 지금 함선의 안에는 이온이랑 엘레나, 그리고 루시아가 남아 있을 수도 있어. 그 녀석들을 버리고 갈 수 없잖아.”
주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절벽의 위쪽에서 작은 차원의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방금 주환이 말했던 세 명이 쏙하고 빠져나왔다.
그들은 오르페우스호의 엔진실에서 작은 차원의 문을 통과해 다른 차원의 문을 통해서 이쪽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었다.
절벽의 아래쪽으로 추락하고 있던 엘레나는 바람의 정령의 힘을 빌려서 이온과 루시아, 두 사람을 붙잡고는 최대한 속도를 줄이면서 낙하산을 탄 사람처럼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무슨 방법을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우리 두 사람만 탈출하면 될 것 같아.”
루카의 말에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