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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02화 (102/182)

102화

절벽 밑에 있는 모든 이들까지 전부 다 죽여라.

클레이브가 루드비히에게 한 요구에 그 자리에 있던 주환 일행의 몸이 굳어 버렸다.

“그만둬!”

주환이 소리치자 클레이브는 입가에 흐르고 있는 피를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열심히 모은 실험체들을 없애는 게 아깝긴 하지만 어차피 실험체들이야 얼마든지 더 구할 수 있거든. 중요한 것은 너희가 한 짓이 아무 쓸모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지.”

클레이브의 말에 데스티나는 분노에 찬 일갈을 날렸다.

“네놈은… 네놈은 정말로 미치광이 괴물이로군. 너는 인간이 아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썩어 버린 괴물이다!”

“칭찬 고맙군. 자, 루드비히. 오랜만의 부탁이다. 어서 이행을 해주었으면 좋겠군.”

“알았다. 전부 죽이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

클레이브의 말에 루드비히는 그 말만을 남긴 채 날개를 움직여 하늘 높이 올라갔다.

“당신!”

주환이 클레이브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클레이브는 비웃을 뿐이었다.

“나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루드비히의 공격은 멈출 수가 없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달려가든 아니면 날아가든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는 것이 어떤가?”

클레이브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뭐, 이제는 늦었지만 말이야.”

하늘에 올라간 루드비히의 주위로 클레이브의 몸을 두르고 있는 것과 똑같은 보랏빛의 불꽃이 일렁이며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몸의 주변만을 두르고 있는 클레이브와는 달리 루드비히에게 모여든 불꽃들은 그야말로 하늘을 가득 채울 수준이었다.

그 정도 양의 불꽃이 절벽과 그 아래쪽으로 떨어진다면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무사할 수가 없었다.

“데스티나!”

주환은 데스티나에게 소리쳤다.

“우선 이 함선 안으로 들어가야 해! 그러면 저 불꽃에 당하지 않을 거야!”

주환은 재빨리 갑판의 아래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해치를 찾아보았다.

그렇지만 데스티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만 도망치면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아래에…… 아래에 동굴이 있어. 위험한 일이 일어나면 모두 그 동굴에 들어가서 숨으면 돼!”

주환의 말을 들은 클레이브는 쿡쿡 웃었다.

“동굴? 너희들이 갇혔던 그곳을 말하나 보군. 너희가 그곳을 나왔다면 그 문을 열었다는 말인데. 그곳이 열려 있다면 그 안으로 도망가도 소용없어. 이 불꽃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서 그 동굴의 안까지 쫓아가 완벽하게 태워 버리거든.”

클레이브는 광기에 젖은 눈으로 주환을 노려보았다.

“저들이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

클레이브의 말이 끝나는 순간 루드비히는 끌어모은 보랏빛의 불꽃을 아래쪽으로 폭사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엄청난 양의 불덩이.

그것이 절벽의 아래쪽으로 떨어진다면 그곳에 있는 성전 기사단들과 감염자들, 그리고 로즈버드 빌리지의 정착민들까지 그 누구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음은 자명했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있는 어떠한 이도 그런 거대한 공격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데미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불덩이가 폭사되는 그 짧은 순간 안에서 데미안은 주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타죽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

그는 이 자리에서 최소한 데스티나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시간이 부족했지만, 그는 자신의 몸으로 데스티나를 덮어 그녀를 살릴 각오까지도 하고 있었다.

“단장님!”

데미안이 그녀를 불렀지만 데스티나는 데미안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그들을 향해서 떨어지는 보랏빛의 불꽃에 못 박혀 있었다.

데스티나는 단지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그 상황에서 모두를 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데스티나는 지금 비장의 수를 마음속에 품은 상태였다.

* * *

조금 전 클레이브가 루드비히를 소환했을 때 그에 맞추어서 그녀의 머릿속에 말을 걸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힘을 가지고 싶나?]

데스티나는 그 목소리가 자신이 감염자들과 싸우고 있을 때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바로 그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그 목소리를 접했을 때는 난전 속에서 순간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착각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당신은 누구지?’

데스티나가 머릿속으로 묻자 그는 곧장 자신이 누구인지를 소개했다.

[나는 툴레오다.]

‘툴레오?’

[그래. 네가 입고 있는 갑옷은 나의 가호를 받고 있지.]

그제야 데스티나는 지금 툴레오 신이 갑옷을 통해서 자신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음을 깨달았다.

‘놀랍군요. 당신이 직접 말을 걸어오다니.’

[시간이 없으니 한 번 만 더 묻도록 하지. 자네는 힘을 가지고 싶나?]

툴레오의 물음에 데스티나는 주변 상황을 둘러보았다.

클레이브가 강력한 마족을 소환한 절망적인 상황.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루드비히를 막을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신이 힘을 빌려 주시면 여기 있는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겁니까?’

[그것은 자네 하기 나름이겠지. 그렇지만 희망을 걸어볼 수 있지 않나?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이 있네.]

‘조건이라면?’

[힘을 얻고 싶다면 대가가 필요한 법. 너에게 힘을 주는 대신 너의 신체 일부를 받아가도록 하지.]

툴레오의 제안에 데스티나는 자신이 부축하고 있는 루카를 내려다보았다.

루카는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였는데, 그녀의 입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송곳이나 튀어나와 있는 상태였으며 등줄기에 나 있는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고 있었다.

데스티나는 루카가 평범하지 않은 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데스티나는 루카에게 작게 속삭였다.

“루카. 만약 네가 우리가 모르는 힘이 지니고 있다면 내가 실패했을 시에 그 뒤를 부탁한다.”

말을 마친 데스티나는 루카는 갑판의 바닥에 눕힌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결정한 거로군.]

‘저의 일부를 바쳐 다른 이들을 구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일 테니까요.’

[하긴 그렇겠지.]

툴레오와의 대화가 거기에서 끊어졌을 때, 루드비히는 자신의 끌어모은 불덩이를 아래로 던졌다.

그리고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데미안의 목소리.

데스티나는 그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다.

데스티나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었다.

데스티나는 하늘을 향해서 자신의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가 입고 있던 툴레오의 갑옷이 조각조각 벗겨지면서 공중에 뜨더니 그 조각들이 하늘을 향해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다시 합쳐졌는데, 그 모습은 갑옷과는 달랐다.

마치 직쏘 퍼즐처럼 갑옷의 조각들이 스스로를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으로 완성된 형태는 커다란 방패에 가까웠다.

공중에 떠 있는 방패를 중심으로 돔 형태의 마나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그 방어막은 오르페우스 함선의 일부와 절벽 전체를 덮어 버릴 만큼 컸다.

그 방어벽의 바깥으로 밀려난 클레이브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힘이 개입한 거지?”

그리고 루드비히의 공격과 툴레오의 방어막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쾅!

천지를 뒤엎는 듯한 엄청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절벽의 밑에 있던 이들 중 기절해 있는 감염자들을 제외한 성전 기사단과 로즈버드 빌리지의 정착민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거대한 규모의 마법적 힘겨루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편, 루드비히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는 데스티나는 그의 공격이 방어막에 닿는 순간 직감할 수가 있었다.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막아 낼 수 있는 방어막이 생성되었다면 자신의 목숨을 바치지 않고서는 그 방어막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건!”

공격을 하고 있는 루드비히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지만, 곧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떤 경위인지는 모르지만, 위선자들이 이 일에 개입하기 시작했군. 꽤 재미있어. 그렇지만 너희들이 직접 강림하지 않는 이상 밑에 있는 벌레들을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루드비히는 자신의 힘을 끌어모아 계속해서 불꽃을 내려보냈다.

방어막에 부딪힌 불꽃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절벽의 주변에 있는 숲에 옮겨붙자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야말로 그들은 불지옥 안 한가운데에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으윽!”

루드비히가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나가자 버티기 힘들었던 데스티나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루드비히의 공격이 만들어 내는 엄청난 힘과 압박이 그녀의 몸에 대단한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단장님!”

“데스티나!”

주환과 데미안이 동시에 외치면서 그녀에게 다가오려고 하자 데스티나는 고개를 돌리고 소리쳤다.

“다가오지 마!”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는 루카를 챙겨서 이 배의 안으로 내려가라! 내가 막고 있을 동안.”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단장님만을 남기고 저희만 피신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쿵!

그때, 큰 소리와 함께 오르페우스호가 작게 흔들렸다.

‘뭐지?’

그 흔들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계속되는 흔들림과 발의 아래에서 들리는 작은 진동들.

마치 그들은 거대한 괴물의 심장 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였다.

“누군가. 아래에서 미친 듯이 두들기고 있어!”

빠각!

그리고 갑판의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해치들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 구멍의 안에서 징그러운 살덩이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성장하고 있는 가스파르의 몸이 오르페우스호의 내부를 대부분 점령하고 그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게 뭐야!”

놀란 주환이 달려들어서 해치의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안쪽에서 살덩이들이 그 문을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여의치가 않은 상황이었다.

“크윽!”

주환은 해치의 바깥으로 나오려고 하는 살덩이들을 향해서 총을 발사한 다음 다시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살덩이들이 재생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기에 도저히 그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주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열려 있는 해치의 수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을 닫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때, 주환은 자신이 닫으려고 했던 해치의 안쪽에서 솟아오르는 살덩이가 자신을 공격하려 하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슥!

섬뜩한 감각에 주환은 고개를 돌렸다.

그를 공격하려던 살덩이가 조각조각 잘린 채로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으며 그의 옆에 서 있는 데미안은 짧은 검날을 생성한 하르페를 들고 있었다.

“멍하니 있으면 바로 죽는 겁니다.”

데미안에게 뭔가 말하려던 주환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해치에서 튀어나온 살덩이 괴물이 뱀처럼 길게 이어지면서 누워 있는 루카에게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카!”

주환은 곧바로 달려가 살덩이 괴물을 향해서 총을 쏴 더는 루카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주환은 루카의 팔을 붙잡은 다음 우선 살덩이 괴물들과 거리가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끌고 오던 루카의 몸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주환은 루카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의 입에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길게 튀어나온 송곳니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대체…….”

지금 루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주환은 우선 사방에서 다가오는 살덩이들에 침착하게 총을 발사해서 최대한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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