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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98화 (98/182)

98화

이온은 고민을 거듭했다.

‘지금 차원이동장치에 에너지가 어느 정도 충전된 상태야. 지금 차원 이동을 발동시키면 확률은 낮지만, 목적하는 차원으로 보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주환 일행을 대피시킬 시간이 없었다.

특히 갑판 위에 있는 주환 일행은 운이 좋아서 차원 이동에 말려드는 것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엔진실에 갇혀 있는 엘레나와 루시아는 반드시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그냥 차원 이동은 포기하고 모두의 힘을 합쳐서 가스파르를 물리쳐야 하나?’

이온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는 감시카메라를 통해서 엘레나가 차원이동장치에 가까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의도적으로 그곳에 다가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괴물과의 싸움에서 공격을 피하고자 움직였던 것이 그곳까지 밀려간 것뿐이었다.

“잠깐! 그쪽으로 가면!”

이온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괴물이 내뻗은 팔이 부유체가 들어 있는 차원이동기에 충돌하였다.

쾅!

다행히도 부유체는 빠져나가지 않았지만 차원이동기의 일부가 부서지고 말았다.

지잉.

그리고 그 순간, 이온이 조종하지 않았음에도 차원이동기가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안 돼. 지금 작동하면 너무 빨라!”

이온은 조종실에서 차원이동기의 작동을 멈추려고 했지만 차원이동기는 그 명령을 듣지 않았다.

차원이동기는 지금까지 충전된 불완전한 에너지만을 가지고 차원이동을 실행했다.

이온은 오르페우스호가 차원 이동을 하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 조종간을 꽉 붙잡았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에너지가 부족해서 실행되지 않은 건가?’

그렇지만 지금 메인 조종간의 계기판에서는 분명 차원이동기가 작동을 하는 것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다만 차원의 좌표를 표기하는 숫자의 배열이 이온이 해석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폭주하면서 계기판에 표시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어.”

이온은 조종간에서 코드를 뽑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직접 엔진실로 내려갈 작정이었다.

그곳으로 가려면 다시 조종실의 밖으로 나가 가스파르의 살덩이 괴물들을 수도 없이 죽여야 했지만, 그녀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조종실을 나가기 위해서 몸을 돌린 이온은 깜짝 놀랐다.

지금 그녀의 앞에는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작은 차원의 문들이 수도 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각각의 차원문들은 사람 한두 명이 통과할 수 있는 정도로 크기가 작았지만, 그 숫자는 조종실의 한 면을 가득 채울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차원문들이 통하는 건너편 차원의 모습은 다 제각각이었으며, 마치 반딧불의 불빛이 점멸하듯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했다.

“이런 상태는 처음이야.”

이온은 그 차원문들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그 차원문들을 자세히 관찰하려고 한 순간.

이온은 자신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

마치 바닥이 사라진 것처럼 이온은 아래쪽으로 하염없이 추락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기에 그녀로서도 추진기를 사용해 다시 떠오를 생각조차 못 하고 말았다.

떨어지는 순간에도 이온은 고개를 들어서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위에서 작은 차원문들 몇 개가 점멸하고 있었다.

즉, 그녀가 보았던 차원문들이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발밑에서도 생성되었던 것이다.

추락하던 이온은 그대로 다른 차원문을 하나 더 통과하였다.

이온은 공중에서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은 다음 추락에 대비했다.

쿵!

차원문을 통과하자마자 이온은 자신이 바닥에 닿은 것을 깨달았다.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대체 어떤 차원으로 와버린 거야?”

이온은 곧장 몸을 일으키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익숙한 장소에 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떨어진 그녀를 바라보는 다수의 시선.

살덩이 괴물과 싸우고 있던 엘레나.

그리고 페드로를 부축하고 있던 루시아.

심지어 엘레나와 치고받고 있던 살덩이 괴물의 크고 둥글둥글한 눈까지.

그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이온은 자신이 차원을 두 번 넘어서 엔진실로 넘어갔음을 깨달았다.

* * *

한편, 클레이브와 맞서고 있는 주환은 클레이브의 주의를 자신 쪽으로 끌어야 했기에 클레이브에게 총을 겨누고는 계속해서 사격을 이어 나갔다.

지금 루카가 크게 다친 상황인 데다가 데스티나가 루카를 보호하고 있었으니,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그로를 끌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주환의 생각이 들어맞은 것인지 클레이브의 시선이 주환에게 닿았으나 여전히 주환의 공격은 클레이브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하시죠.”

주환의 옆에 있던 데미안이 주환을 향해서 그렇게 말했다.

“뭐라고요?”

“그 시끄럽기만 한 물건. 써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것 같군요. 차라리 나서지 않아 주시는 게 더 나을 듯싶군요. 뒤로 빠져 주시죠. 단장님은 제가 지킵니다.”

갑자기 데미안에 주환에게 디스를 걸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단한 성전 기사단의 부단장님이 클레이브를 감당 못 하시니 제가 계속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주환이 그렇게 말하자 데미안은 그야말로 레이저를 쏠 수 있을 수준의 날카로운 눈으로 주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주환도 지지 않고 그를 마주 보았다.

그들이 다투는 동안에도 클레이브는 여전히 두 사람에게 다가오고 있었기에 주환은 우선 싸움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닙니다. 하나 묻죠. 그 무기로는 도저히 클레이브를 벨 수 없는 겁니까?”

“벨 수 있습니다. 단지 그의 불꽃을 한 번 베고 나면 제 하르페의 검날까지 순간 소멸하기 때문에 그다음 타격을 넣을 수 없을 뿐이죠.”

“그렇군요.”

주환은 하르페의 검날과 클레이브의 불꽃이 맞붙을 때마다 소멸한 불꽃이 얼마나 빠르게 재생되는지를 아까부터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환이 내린 결론은 도저히 그 틈을 노릴 수가 없을 만큼 빠르게 회복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초집중모드로 시간을 느리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포착하기 힘들 정도의 회복 속도였다.

“더는 나를 즐겁게 해줄 게 없는 건가?”

클레이브는 즐겁다는 듯이 데미안에게 말했다.

“이 정도라면 왕국 최고의 검사도 별것 없군.”

클레이브의 도발에 데미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성전 기사단의 부단장이 그 정도라면.”

클레이브는 고개를 돌려 루카를 돌보고 있는 데스티나를 바라보았다.

“성전 기사단의 단장은 더 재미있게 해줄 수 있나?”

그렇게 말하며 클레이브는 데스티나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런!”

데미안이 달려 나가려고 할 때, 주환이 그를 붙잡았다.

“데미안 씨.”

주환은 데미안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당신과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단장님을 도와야 합니다!”

“저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이 있다는 말에 데미안의 표정 역시 진지해졌다.

“만약 당신이 클레이브의 불꽃 일부를 단 2초 아니, 1초라도 소멸시켜 줄 수 있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주환의 말에 데미안은 자신의 하르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환은 재차 그에게 물었다.

“방법이 있습니까?”

“당신의 말을 듣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단장님을 지켜야 하므로 어쩔 수가 없군요.”

데미안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걸어 나가며 클레이브를 불렀다.

“클레이브 공!”

데미안의 부름에 데스티나 쪽으로 가려던 클레이브는 다시금 몸을 돌렸다.

“아직 나를 재미있게 해줄 것이 남아 있는가?”

클레이브의 물음에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마수 돌렉을 쓰러뜨린 일에 대해서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들은 적이 있지. 자네가 처음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기념비적인 사건이니까.”

클레이브의 대답에 데미안은 하르페를 들어서 클레이브 쪽으로 그 끝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그때 제가 무엇으로 그 돌렉을 쓰러뜨렸는지 이 자리에서 보여 드리도록 하죠.”

“마수 돌렉을 죽인 기술이라?”

데미안의 말에 클레이브는 흥미가 돋는 듯 자신의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그거 재미있겠군. 마수 돌렉을 죽인 정도라면 분명히 범상치 않은 기술이겠지.”

“실망하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상태에서 데미안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데미안의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오오라가 방출되면서 그의 머리칼과 망토가 점차 위쪽으로 솟아올랐다.

그에 맞추어서 하르페의 검날이 점차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 넓이가 데미안의 몸을 거의 가릴 정도로 넓어졌다.

기술을 준비하면서 데미안은 주환에게 작게 속삭였다.

“이 기술을 쓰면 저는 당분간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데미안은 곁눈질로 주환을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뭘 하든 반드시 성공하십시오.”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해진 하르페의 날에 반응하던 주변의 공기가 하르페의 녹색 검날에 모여들어 휘감겼다.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느낀 데미안은 하르페를 쳐들고는 클레이브를 향해서 돌진했다.

“그래. 와라!”

그렇게 외치면서 클레이브는 자신의 등 뒤에 달린 여섯 개의 검을 하나로 합쳤다.

그러자 여섯 개의 검은 하나의 검으로 변화하면서 지금 데미안이 들고 있는 하르페와 흡사한 형태가 되었다.

클레이브 역시 거대한 불꽃의 검을 들고 데미안을 향해서 그 검을 휘둘렀다.

파직!

두 검이 부딪치면서 두 에너지의 경계선 사이에서 무시무시한 공명이 이루어졌다.

데미안이 온 힘을 다해서 하르페를 밀었지만 클레이브의 불꽃검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인가? 마수 돌렉을 쓰러뜨렸다는 그 기술이?”

클레이브가 비웃자 데미안은 더욱더 클레이브를 강하게 압박해 들어갔다.

데미안의 압박이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달은 클레이브는 진지한 표정으로 데미안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하르페의 날이 불꽃검의 날 부분을 파고들어 간 상태였다.

“하압!”

데미안의 기합과 함께 하르페의 날이 클레이브의 불꽃검을 두 동강 내버렸다.

그렇지만 데미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여세를 몰아서 하르페를 완전히 앞쪽으로 휘두르면서 클레이브의 상체를 사선으로 베어 버렸다.

클레이브를 베어 버린 데미안은 자신의 손안에 있는 하르페의 상태를 확인했다.

너무나도 힘을 많이 쓴 탓인지 하르페의 검날은 소멸하였으며 다시 생성되지 않았다.

하르페의 검날을 다시 생성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편, 데미안과 클레이브의 싸움을 눈으로 좇고 있던 주환은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친 순간, 클레이브를 향해서 총을 겨눴다.

처음에 하르페가 클레이브의 불꽃검에 막혔을 때 주환은 다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윽고 하르페의 날이 불꽃검에 박힌 다음 그 불꽃검을 완전히 잘라 버렸을 때, 주환은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지금 그의 집중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불꽃검을 잘라 버린 다음 클레이브의 몸통 쪽을 베어 버리는 데미안의 움직임.

역시나 하르페의 날이 클레이브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보라색의 불꽃에 닿자 마치 검으로 물 위를 가르듯 파장을 만들어 내면서 하르페의 날 역시도 소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하르페의 날이 지나간 바로 그 자리.

그 자리에 작게 일직선으로 보호막이 사라진 빈틈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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