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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96화 (96/182)

96화

온 힘을 다해서 문을 들이받았던 괴물은 어지러운지 비틀거리면서 뒤쪽으로 물러났다.

“소용없는 짓을….”

괴물이 다시 엘레나와 루시아를 잡으려고 할 때,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실프가 엘레나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한 것이다.

끼기긱!

그러나 괴물이 문에 충돌하여 금속 문에 뒤틀림이 생겼기 때문에 문은 마치 고장 난 자동문처럼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루시아! 이리로!”

엘레나는 루시아를 손을 잡고 문 쪽으로 이끈 다음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번에는 살라만더를 소환했다.

불의 매질이 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큰불을 낼 수는 없었지만, 엘레나가 노리는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눈을 공격해!”

엘레나의 명령에 살라만더는 불꽃의 화살을 만들어서 괴물의 눈 쪽으로 발사했다.

괴물의 눈은 하나였지만 그 크기가 매우 컸기 때문에 불꽃 화살의 과녁으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화륵!

“크악!”

눈이 불태워지자 괴물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한순간 움직임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금세 재생이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엘레나는 루시아를 이끌고 조금 열린 문의 틈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갔다.

“빨리 들어와!”

엘레나와 루시아, 두 사람 다 몸집이 작았기에 보통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틈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쪽으로 들어온 엘레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문의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두 사람을 잡기 위해서 다시 다가온 괴물의 앞에서 금속의 문이 닫히면서 문은 다시 잠금 상태로 돌아갔다.

“됐어.”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문의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그것이 일시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문이 잠겨 있다고 하더라도 내구성에 한계가 있는 한 그 괴물은 계속해서 문을 공격하여 결국에는 열고 말 것이었으니까.

“괴물이 들어오기 전에 곧바로 다른 길을 찾아야 해.”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앞장서서 루시아를 이끌었다.

엘레나의 말에 루시아는 불안해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찌 된 일인지 괴물이 문에 부딪히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포기한 게 아닐까?”

“그러면 좋겠지만, 놈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원한을 보았을 때 절대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앞서서 걸어가고 있던 엘레나는 어느덧 그곳이 나갈 수 있는 복도가 아니라 그곳이야말로 진짜 막다른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은 거대한 방이었으며 사방에는 엘레나가 본 적도 없는 엄청난 기기와 설비들이 가득했다.

엘레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곳을 나갈 수 있는 다른 문은 없었다.

“나갈 수 있는 곳이 없어.”

엘레나는 계속해서 돌아다니면서 나갈 수 있는 문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엘레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두 사람이 들어온 곳은 이 함선 오르페우스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실이었다.

문을 찾던 엘레나는 문득 눈에 띄는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

엔진실의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투명색의 원통.

그것은 무언가를 보관하기 위한 기계 장치처럼 보였는데, 원통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으며 그 아래쪽에는 복잡하게 생긴 기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엘레나는 알 수 없는 힘에 홀린 듯 그 기계 장치로 다가갔다.

투명 원통의 안에는 어떠한 물체가 부유하고 있었다.

그것의 크기는 축구공만 했으며 모양은 팔면체 주사위를 닮아 있었다.

그리고 겉면은 검은색의 금속 재질이었는데, 그 금속판들의 이음매에서는 주황색의 빛줄기가 새어 나왔다.

“저건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걸까?”

루시아의 물음에 엘레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그 부유체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의 힘으로 원통의 안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떠한 힘으로 떠 있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판을 살펴보던 엘레나는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버튼을 한번 눌러 보았다.

그러자 부유체를 가두고 있던 원통형의 방어 유리가 아래쪽으로 점차 내려가면서 부유체를 바깥의 공기와 접촉할 수 있게 해주었다.

부유체는 제법 높은 높이에서 날고 있었지만, 방어 유리가 사라지자 점차 고도를 낮추어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가장 아래쪽에 내려왔음에도 부유체의 가장 아래쪽은 초전도체처럼 여전히 바닥에 닿지 않았다.

엘레나는 조심스럽게 그 부유체에 손가락을 댔다.

화악!

그 순간, 엘레나는 자신의 몸을 통과해서 지나가는 수많은 비전을 체험했다.

홀로그램처럼 보이는 수많은 우주의 모습.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문화. 서로 비슷한 것에서부터 극도로 다른 자연의 법칙들까지.

마치 꿈속에서는 그 꿈의 법칙이 이해가 되듯 엘레나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수많은 우주가 바로 다른 차원의 우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레나는 그 우주들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그러한 다른 차원의 비전들은 놀라운 속도로 엘레나를 스치고 가면서 이윽고 그녀의 눈앞에서 소멸했다.

“아아….”

엘레나는 신음과 함께 부유체에서 손을 뗐다.

“엘레나!”

놀란 루시아가 엘레나를 부축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엘레나는 손을 들어서 부유체를 가리켰다.

“저건 엄청난 물건이야. 아티팩트 중에서도 신급의 아티팩트. 저게 있으면 다른 차원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가 있어. 즉, 최고위 마족이라도 얻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힘을 제공할 수가 있단 말이야.”

이 세계의 주민들은 차원의 이동에 익숙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의지대로 차원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족이든 대마법사든 그들이 이동할 수 있는 차원의 수는 극도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눈앞에 있는 부유체는 그 한계를 아득히 넘어 수도 없이 많은 차원을 이동할 수 있는 기적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 부유체는 함선 오르페우스 호가 차원을 넘나들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가장 핵심적인 아티팩트였다.

끼기긱.

그때, 두 사람은 자신들이 들어왔던 문이 점점 열리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끼기긱.

쇠를 긁어내는 소리.

엘레나와 루시아 두 사람은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곧장 엔진실의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문을 여는 스위치에 살구색으로 된 거미 한 마리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거미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체불명의 거미는 다리가 4개밖에 없어 실제 거미보다 다리의 수가 훨씬 적었다.

두 사람이 거미의 다리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사실 인간의 기다란 손가락 들이었다.

즉, 지금 문의 스위치에 붙어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는 바로 인간의 손가락 네 개가 십자가처럼 붙어서 만들어진 괴상한 생명체였다.

“저게 뭐야?”

루시아의 물음에 엘레나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엔진실에 들어오기 전 엘레나는 찌그러진 문의 작은 틈 사이로 실프를 들여보내서 안쪽에 있던 스위치를 작동하게 했다.

그리고 괴물 역시 그 모습을 보았을 것이며 엘레나와 루시아가 엔진실로 들어가 버리자 억지로 문을 부술 필요 없이 그 자신도 그 틈을 이용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고 또한 분열시킬 수 있는 살덩이 괴물이기에 틈새를 통과할 수 있는 작은 분신을 만들고 안으로 침투시켜서 곧장 문을 열 수 있는 스위치를 찾은 것이다.

문이 열려서 틈새가 만들어지자 괴물은 그 좁은 틈 사이에 자신의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마치 잘 녹은 치즈처럼 그의 몸이 늘어나더니 문의 틈 사이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는 나를 막을 수 없어.”

“안으로 들어올 것 같아.”

루시아의 말에 엘레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스위치를 지키고 있는 손가락 괴물에게 불꽃 화살을 날렸다.

그러자 손가락 괴물은 기겁하면서 붙어 있던 스위치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쾅!

불꽃 화살이 스위치에 명중하자 그 스위치는 박살이 나버렸다.

그러자 열리던 문이 멈췄다.

“이런. 문이 멈춰 버렸군.”

문이 조금밖에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가동을 멈추자 괴물은 당황한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문이 멈추었다는 것은 다시 닫히지도 않는다는 뜻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괴물은 문의 틈 사이에 끼인 채로 억지로 문을 밀어서 그 틈을 넓혀 나갔다.

끼긱!

그러자 쇠 긁는 소리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천천히 문의 틈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엘레나는 곧장 문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진공의 창을 만든 뒤 문틈에 끼어 있는 괴물에게 발사했다.

진공의 창이 괴물의 몸에 박히자 창의 주변을 돌고 있는 날카로운 진공의 칼날이 괴물의 몸을 찢어 냈다.

“아프잖아!”

괴물이 그렇게 외치자 몸 일부가 길어지면서 엘레나를 향해서 쏘아졌다.

괴물이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자신의 팔로, 그 팔은 엘레나를 공격하기 위해서 앞으로 돌진했다.

“엘레나, 위험해!”

루시아는 숏소드를 뽑아 들고는 엘레나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괴물의 손바닥이 숏소드에 명중했으며,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루시아와 엘레나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 정도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결국, 문이 절반 정도 열리게 되자 괴물은 자신의 몸을 온전히 문의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엘레나는 괴물에게 진공의 창이 명중했던 곳을 다시금 확인했다.

분명히 큰 상처가 남아 있어야 했지만, 괴물의 몸에 났던 상처들은 지금 온데간데없었다.

모두 금세 재생되고 만 것이다.

지금 괴물의 모습은 이전의 다리만 달려 있던 모습과는 달리, 이제는 하나의 팔까지 돋아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나도 처음 와보는 곳인데. 더는 도망갈 데가 없나 보군? 아직도 이곳에서 나가지 못한 걸 보니까 말이야.”

“아니. 너를 이곳에서 죽여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전신의 모든 마나를 끌어모아 실프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에 회오리바람이 생기며 엔진실 안에 있는 모든 공기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엘레나가 앞으로 손을 내밀자 수백 발에 달하는 진공의 칼날들이 괴물에게 쇄도했다.

촤악!

수도 없이 많은 진공의 칼날이 괴물의 몸을 베었다.

그 하나하나의 공격은 그저 살갗을 베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단단한 물체도 자를 수 있는 날카로움을 가진 진공의 칼날들이 괴물의 몸을 조각낼 기세로 쇄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괴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두 사람과 거리를 좁혀 나갔다.

그는 자신의 살점이 베어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그 이상의 속도로 재생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를 막고 있는 엘레나 역시도 끈질겼다.

그녀 역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마나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전신에서 땀을 줄줄 흘릴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걸 봐! 이게 바로 신의 힘이야! 나는 죽지 않아! 나는 죽지 않는다고. 나는 불멸의 존재가 된 거야! 그런데 너희 따위가 나에게 반항할 수 있을 것 같아?”

“너 같은 게 신이라고? 아니. 넌 구더기만도 못한 녀석이야!”

계속해서 몸을 베이면서도 어느 순간 괴물은 엘레나와의 거리를 완전히 좁혔다.

그리고 그는 엘레나를 향해서 자신의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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