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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95화 (95/182)

95화

“무슨 뜻이죠?”

“지금의 나를 봐. 물론 나와 같은 생명체를 본 적이 없으니 적응을 하지 못하는 건 이해가 가는 일이야. 그렇지만 나는 지금 나의 새로운 육체를 컨트롤하고 있어. 점점 더 세련된 방법으로 말이지.”

가스파르는 이온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면서 말을 이었다.

“나를 봐. 나는 무한히 성장하고 무한히 나누어질 수 있으며, 무한히 재생하지. 그리고 내가 흡수하는 인간들의 기억까지도 공유할 수 있어. 나는 그야말로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된 거라고. 지금 이곳에는 흡수할 가치가 있는 녀석들이 널려 있어. 특히 나의 보스였던 클레이브. 그자의 지식은 나를 더욱더 크나큰 단계로 올려 주겠지.”

가스파르는 손을 들어서 이온을 가리켰다.

“그렇지만 너는 달라.”

이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인간이 아니야. 생명체도 아니지. 나는 너를 흡수할 수가 없어. 물론 너를 조각내거나 부수어 버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너를 그렇게 만들어 봐야 딱히 아무 이득도 없어. 그렇기에 너를 그냥 보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비켜 주세요.”

“나를 바보로 생각하는 거야?”

가스파르는 이온을 압박하듯 점점 다가왔다.

“너는 나를 보면서도 점점 안쪽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지. 보통 놈들이라면 이 배의 밖으로 나가려고 할 텐데 말이야. 그것은 나에게 뭔가 해를 끼치는 방법이 이 배의 어딘가에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 안 그래?”

“그렇다면요?”

갑자기 가스파르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손을 내저었다.

“그딴 건 잊어버려.”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야. 다 잊어버리고 이곳을 떠나란 말이지. 너 정도는 그냥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지.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너의 주인 정도는 보내 주도록 하겠어.”

가스파르는 미소를 지었다.

“나머지는 싸그리 잡아먹을 거지만 말이야. 너랑 너의 주인은 나에게 딱히 원한을 산 일이 없거든. 이건 아주 특별한 찬스야.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받아들이라고.”

가스파르는 이온의 앞에 서서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네가 좋아하는 그 주인이랑 어디로든지 가서 살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온은 가스파르의 말을 아무 말도 없이 계속 듣고 있었다.

그녀가 대답이 없자 가스파르가 대답을 재촉하려고 할 때, 이온은 양손을 들어서 그의 팔을 잡았다.

“당신 같은 사람이 이렇게 대화를 시도한다는 건, 당신은 지금 마음 한구석에서 나를 두려워한다는 뜻이겠죠? 내가 무엇을 할지 당신은 아직 알 수 없으니까.”

“바보 같은 짓 마. 나는 지금 당장 너를 박살 낼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죠.”

그 순간, 이온은 자신의 최대 출력으로 가스파르의 몸에 전기를 때려 박았다.

파직!

“크으윽!”

그녀가 붙잡고 있는 가스파르의 몸이 타들어 갔지만, 이온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가스파르의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을 때에야 이온은 그의 손을 놔주었다.

가스파르가 그녀의 앞에서 쓰러지자 이온은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주인님이 끔찍하게 당한 모습을 빌려서 내 앞에 나타난 게 당신의 실수예요. 그런 식으로 주인님의 모습을 농락한 당신을 내가 용서할 리가 없으니까.”

“크큭. 대단한 충성심이로군.”

이번에 들려오는 가스파르의 목소리는 쓰러진 가스파르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두 명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이온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살덩이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벽에 붙어 있던 살덩이들이 서로 몸을 합쳐 나갔다.

그 살덩이들은 일정한 크기가 되자 마치 물방울이 나뭇잎에서 떨어지듯 벽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살덩이들은 점점 길어지면서 인간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윽고 단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가스파르가 이온의 앞을 막아섰다.

“내 뜻을 따를 수 없다면 너를 보내 줄 수는 없어.”

여러 명의 가스파르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당신의 허락은 필요 없어요.”

이온이 입을 염과 동시에 그녀의 앞머리 위쪽에서 작은 기계 장치 두 개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마치 뿔과 비슷해 보이는 장치였는데, 그 두 개의 장치는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서 푸른색의 번개가 번쩍였다.

이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목소리로 여러 명의 가스파르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파괴자 모드로 들어갑니다.”

* * *

엘레나와 루시아는 괴물을 피해서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함선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자신들이 들어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함선을 나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분열된 괴물의 분신들이 그들이 왔던 곳의 이곳저곳을 점거하고 있었다.

“제길.”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면서 엘레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정면 돌파를 시도할 수 있었지만 지금 그녀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기에 현재로서는 도망치는 일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엘레나, 괜찮아?”

루시아가 묻자 엘레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그때, 엘레나는 괴물을 막고 있던 운디네가 버티지 못하고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 것을 느꼈다.

“운디네가 뚫렸어.”

엘레나의 말에 루시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벌써?”

“응. 좀 더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 운디네를 탓할 수는 없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가스파르는 대책 없는 괴물이 되고 말았으니까. 감이 아예 잡히지 않는 건 아니지만.”

“무슨 말이야?”

“놈을 저렇게 만든 건 아마 녹색의 비일 거야. 그 저주받은 물질이 아니라면 그 녀석의 변화를 설명할 방법이 없어.”

엘레나는 다시금 루시아의 손을 잡고 끌었다.

“아무튼 운디네가 뚫린 이상 더 시간을 끌 수는 없어. 나가는 길이 있는지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해.”

엘레나의 말과 함께 두 사람은 방향을 바꿔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운디네를 무력화시킨 괴물은 지체하지 않고 엘레나와 루시아, 두 사람을 뒤를 쫓았다.

“나에게서 도망칠 생각 따위는 하지 마라.”

계속해서 두 사람을 쫓던 괴물은 점점 자신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너무 분열을 많이 했나?”

가스파르가 녹색의 비를 뒤집어쓰고 살덩이 괴물로 변화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눈을 뜬 능력은 바로 급격한 성장이었다.

그의 몸은 놀라운 속도로 증식하였으며 그렇기에 마치 밀폐된 미로에 물을 채우듯이 성장 자체만으로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깨우친 흡수 능력과 분열 능력, 그리고 다른 인간으로 변하는 둔갑의 능력까지.

그러한 능력들이 발현되면서 가스파르는 신나게 그러한 능력들을 동시에 사용하였으나, 그 부작용인지 성장의 속도가 둔화하여 버린 것이었다.

‘성장하는 것보다는 분열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나아. 그리고 에너지를 좀 더 축적하면 다시금 성장할 수가 있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엘레나를 잡는 게 먼저야.’

괴물은 자신이 가스파르였던 때에 엘레나에게 당했던 치욕을 잊지 않고 있었다.

“너만은 반드시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 주지.”

괴물은 다시 자신의 몸을 변화시켰다.

처음에 만든 것은 거대한 입.

다음은 커다란 한 개의 눈알.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움직일 수 있는 다리로, 한 쌍의 굵은 다리가 그의 입 옆쪽에서 뭉글뭉글 솟아올랐다.

다리를 다 만든 괴물은 자신의 몸을 뒤쪽에 연결된 본체와 분리했다.

그러자 그 괴물은 뱀이 아닌 한 쌍의 다리가 달린 팩맨 캐릭터처럼 변화하였으며, 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을 가지게 되었다.

“자. 이제 사냥을 다시 시작해 볼까.”

* * *

엘레나와 루시아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두 사람의 앞에는 한층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붉은색의 조명이 만들어 낸 새빨간 빛이 가득했다.

“소름 끼치는 곳이야.”

루시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엘레나에게 바짝 붙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곳밖에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다른 곳은 다 막혀 버린 것 같아.”

두 사람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다가 이윽고 막다른 곳에 도달했다.

“막혔는데.”

“여길 봐. 문이 있어.”

엘레나는 복도의 끝에 있는 문을 발견하고는 그 앞에 섰다.

그렇지만 그 문은 잠겨 있었기에 엘레나로서는 열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잠겨 있는 문은 이온이라는 여자가 열 수 있었는데…….”

엘레나는 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그녀가 의료실에서 주환과 이온을 만났을 때 이 함선의 문을 눈여겨보았던 때를 다시금 떠올렸다.

‘보통 사람은 바깥쪽에서는 열 수 없지만, 안쪽에서는 이상하게 생긴 버튼을 누르면 쉽게 열 수 있었지.’

엘레나가 문을 여는 방법을 찾고 있을 때,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시아와 엘레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찾았다.”

그들의 뒤에 있는 것은 바로 두 사람을 쫓아온 살덩이 괴물이었다.

“금방 쫓아왔네.”

엘레나는 괴물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다리까지 생겼네? 그렇게 잘 변화할 수 있으면서 그렇게 어정쩡한 모습으로 다니는 거야? 괴물이 되더니 미적 감각도 개판이 된 건가?”

“그런 게 아니야. 이 모습이 바로 너희를 사냥하기에 가장 좋은 모습이기 때문이지. 단지 너희들을 잡아서 흡수하는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아. 잡아서 아작아작 씹어 먹어 줘야 좀 만족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무능한 주제에 욕심은 많네.”

“무능?”

괴물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난 무능하지 않아. 너희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감염자들을 조종하는 중대한 연구를 맡고 있었다고.”

“그런데 그런 중요한 일도 갑자기 나타난 어린애에게 빼앗겨 버렸지 아마?”

엘레나의 조롱이 계속되자 괴물은 참을 수가 없어진 듯 몸을 낮추었다.

“네 말은 더 들어줄 필요가 없어. 지금 당장 죽여 주마!”

몸을 낮추어서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괴물은 곧장 미친 듯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괴물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는 것을 보면서 루시아는 비명을 질렀다.

“엘레나!”

“기다려!”

엘레나는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맞서고 있었다.

그리고 괴물이 거의 도달하기 직전에 엘레나는 루시아를 옆으로 밀면서 자신은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쾅!

그러자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괴물의 몸뚱이가 마치 거대한 대포알처럼 앞에 있는 문에 충돌했다.

끼익.

그러자 금속이 긁히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괴물이 부딪친 문이 일그러지면서 그 뒤틀림 때문에 안쪽으로 통하는 아주 작은 틈이 생겨났다.

“실프!”

엘레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람의 정령을 소환하여 명령을 내렸다.

그 틈을 통하여 안쪽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 수 있는 버튼을 눌러 달라는 명령.

실프는 그 명령을 받자마자 잽싸게 문의 틈으로 들어가면서 안쪽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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