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위잉.
포탑의 조종간에 자신의 전뇌를 연결한 이온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세 발의 소화탄과 링크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주환이 클레이브를 유인하고 있는 것을 본 이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전된 소화탄들을 발사했던 것이다.
떨어지고 있는 소화탄을 분무 모드로 전환하자 처음 발사되었던 소화탄처럼 프로펠러를 세운 세 개의 소화탄들은 적절한 높이까지 내려와 협곡의 안쪽으로 치료액들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쏴아!
소화탄들이 계속해서 치료액을 발사했지만, 방해는 없었다.
이온은 소화탄에 달린 작은 카메라를 통해서 갑판의 위쪽을 확인했다.
이온은 갑판의 위에까지 데스티나 일행이 올라와 주환을 구하고 이어서 클레이브와 대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이야. 주인님은 무사하시구나.’
클레이브의 방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온은 나머지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소화탄들을 장전하여 계속해서 하늘로 발사했다.
준비된 모든 소화탄들이 발사되고 이온이 마련했던 모든 치료액이 비가 되어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편, 바깥의 상황을 관찰하고 있던 촌장은 데스티나의 말대로 하늘에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는 뒤에 있는 정착민들에게 소리쳤다.
“자! 신호가 왔습니다! 우리 모두 이곳을 나가면 됩니다!”
촌장이 철창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나가자 갇혀 있던 정착민들이 그를 따라서 동굴을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온의 계산대로 소화탄이 발사하고 있는 치료액의 양은 협곡의 안쪽에 있는 감염자들과 로즈버드 빌리지의 정착민들을 치료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하아. 끝났다…….”
이온은 한숨을 내쉬면서 조종간과의 연결을 끊었다.
이제 소화탄이 모든 치료액을 다 발사하고 나면 소화탄들은 알아서 안전한 곳으로 날아가 폐기될 것이었다.
“이제는 주인님을 도와야 해.”
자신의 임무를 끝마친 이온은 빨리 주환과 그 일행을 돕기 위해서 포탑의 비상구로 나가려고 했다.
쿵!
그때, 이온은 오르페우스의 함선 안쪽에서 울리는 작은 진동을 느꼈다.
“뭐지?”
이온은 함선의 벽에 손을 대어 보았다.
쿵! 쿵!
그 진원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함선 전체를 울릴 수 있을 만한 엄청난 그 무언가가 함선의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떡해야 할까?’
마음 같아서는 빨리 갑판으로 나가 클레이브를 상대하고 있을 주환을 돕고 싶었지만, 이온은 지금 울리고 있는 그 진동이 심상치 않은 것임을 예감했다.
‘이 이유를 확인하지 못하면 나중에 이게 주인님에게 위험이 될 수가 있어. 이 진동의 이유가 뭔지를 확인해야 해.’
거기에 생각이 미친 이온은 포탑의 하부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내려간 이온은 다시 벽에 손을 대고 진동을 감지했다.
그 진동을 통해서 이온은 진원지가 어디쯤인지를 측량해 낼 수 있었다.
‘가장 큰 진동은 실험실 쪽에서 나오고 있어. 그러면 그쪽으로 가봐야겠는걸.’
이온은 포탑의 하부를 빠져나가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곧장 실험실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녀가 실험실에 가까워질수록 진동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 진동이 너무나 커져 이온에게 알 수 없는 공포심마저 심어 줄 정도였다.
‘대체 뭐가 기다리고 있을 걸까?’
그때, 실험실의 근처에서 추종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어딘가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며 경악에 빠진 상태였다.
추종자들은 이온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이온은 순간 그들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서 달려오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추종자들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이온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살려 줘!”
추종자들이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 순간.
함선의 복도를 가득 채우는 물결이 추종자들의 뒤쪽에서부터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이온의 눈에 들어왔다.
그 움직임은 액체와 비슷했지만, 그것은 액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액체처럼 유동성 있는 형태로 변한 살덩어리였다.
복도를 질주하는 흐르는 살덩어리의 속도는 대단히 빨라서 앞서서 달리고 있는 추종자들을 따라잡을 수가 있을 정도였다.
“아악! 살려 줘! 제발 살려 줘!”
추종자들은 이온을 향해서 애원했지만 그들의 외침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을 뒤쫓던 살덩이가 앞서서 달리고 있던 추종자들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아아악!”
마치 끈적한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살덩이에 덮쳐진 추종자들은 살덩어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손을 뻗어서 무엇이라도 잡아 보기 위해서 발버둥 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사, 살려…….”
추종자들은 그 말만을 남기고 살덩어리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빨려 들어간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 이온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대체 어디서 저런 게 나온 거지?”
이온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선 자신의 권총을 꺼내서 최대 출력으로 맞춘 다음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살덩어리를 향해서 빔을 발사했다.
파직!
엄청난 굵기의 에너지 빔 두 줄기가 살덩이를 향해서 발사되었다.
빔이 살덩이 명중하자 매캐한 냄새와 함께 빔이 명중한 부분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살덩이는 고통을 느끼는지 꿈틀거리면서 사방으로 요동을 쳤다.
그 요동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이온은 마치 물에 떠 있는 배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빔으로 살덩이가 계속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그러한 힘 싸움을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는 없었다.
치익.
빔을 발사하던 권총이 발사를 멈췄다.
빔을 발사하면서 만들어지는 열이 워낙 강했기에 최대 출력으로 사용했을 때에는 반드시 권총이 손상되지 않도록 냉각을 시켜 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온은 빔이 살덩이에 명중한 부분을 관찰했다.
빔이 파고들어 간 부분은 상당히 깊었으며, 그 주변부는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타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멈추게 한 걸까?”
그러나 이온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살덩이의 상처 입은 부분이 점점 좁혀지면서 빈자리를 메워 나갔다.
스스로 엄청난 속도로 자가 재생을 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끝도 없겠어.”
이온은 그곳에서 살덩이와 싸움을 이어 나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덩이는 계속해서 증식하고 있었으며 상처를 입혀도 금방 재생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실험실에서 아르테어의 칼에 의해서 죽음의 직전까지 갔던 가스파르.
그가 스스로 녹색의 비를 뒤집어쓰면서 만들어 낸 거대한 괴물이 내부에서부터 함선 오르페우스 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함선 내부에서 증식하는 암세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온은 우선 살덩이에서 물러서면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지금 내 힘으로는 이 괴물을 막을 수 없어. 남은 방법은 지금 이 함선에 있는 주인님과 그 동료를 대피시키는 것뿐이야.’
거기까지 생각을 한 이온은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저 괴물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아마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빠르게 자라나겠지. 지금은 함선의 안에 몸이 갇혀 있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더디어지고 있을 뿐, 아마 이 함선을 박살 낼 정도로 커진다면 함선의 구속에서 벗어나 더욱더 커다란 괴물로 변화할지도 몰라.’
이온은 우선 몸을 돌려서 그 복도를 벗어났다.
그러자 살덩이는 다시 물결을 치면서 이온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 살덩이는 단지 이온을 추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함선의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함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진동을 통해서 이온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그녀는 단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괴물을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그렇게 덩치가 큰 괴물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온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함선 오르페우스 호는 원래 우주를 탐사하던 우주선이었지만 개조를 통해서 차원 이동을 위한 함선으로 거듭났다.
그렇기에 이온은 오르페우스 자체를 다른 차원으로 보내 버릴 수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물론, 아무 차원으로 보내 버린다면 이 괴물은 다른 차원의 존재들에게 피해를 줄 수가 있으므로, 적절한 차원을 찾는 작업이 필요했다.
오르페우스호가 여러 차원을 이동해 다니면서 만났던 차원 중에는 공허의 차원도 있었다.
어떤 생물도 살 수가 없는 극한의 환경을 가진 차원인 ‘어비스’ 차원이라면 괴물에게 점거당한 오르페우스를 보낼 수 있는 곳으로 적절했다.
한순간에 그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이온은 곧바로 자신이 목적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바로 함선의 조종실이었다.
이것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만약 살덩이가 더욱더 자라나서 조종실까지 점거해 버린다면 이온으로서도 오르페우스를 다른 차원으로 보낼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온은 쫓아오는 살덩이를 피해서 최대한 빨리 조종실 쪽으로 향했다.
* * *
“아아. 제기랄.”
엘레나는 머리를 감싸 쥐면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가 누워 있던 곳은 바로 오르페우스호의 안에 있는 수영장으로, 엘레나는 자신이 어째서 그곳에 누워 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감전에 의한 고통이 그녀의 온몸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엘레나는 전신의 근육에서 느껴지는 아픔 때문에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머리를 굴리던 엘레나는 자신과 페드로가 벌였던 싸움을 떠올렸다.
분명히 그녀가 페드로를 수영장에 가라앉혀 물의 정령의 힘으로 묶어 두었으나 그가 발한 전기 공격에 역습을 당했던 것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놀란 엘레나는 페드로의 다음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페드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엘레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일격을 날리지 않았다는 건 마지막의 양심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러다 엘레나는 자신의 옆에 쓰러져 있는 루시아를 발견했다.
“루시아!”
깜짝 놀란 엘레나는 급하게 루시아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의 몸에는 아무런 외상도 없었으며 호흡과 맥박은 정상이었다.
루시아는 단지 기절해 있는 상태였다.
엘레나는 수면액이 담겨 있던 병이 그녀의 옆에 깨진 채로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수면액을 썼구나. 그러면 이 근처에 기절한 페드로가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만 주변에는 페드로가 없었기에 그가 수면액에도 기절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수면액을 쓰자마자 숨을 멈추든가 했어야지. 그냥 모조리 다 들이마신 모양이네.’
엘레나는 자신에게는 수면액이 듣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전기 공격 때문에 기절해 있는 동안 그녀의 몸 주변을 바람의 정령이 계속 돌면서 공기를 정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시아. 일어나.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빨리 일어나.”
엘레나는 루시아를 툭툭 치면서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