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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84화 (84/182)

84화

엘레나가 의식을 잃자 운디네 역시 힘을 잃어버리면서 페드로를 가두고 있던 물의 감옥마저 사라져 버렸다.

몸이 자유로워지자 페드로는 간신히 헤엄쳐서 수영장 밖으로 나왔다.

그 역시 자신이 발사한 번개에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몸은 마치 전기뱀장어처럼 자신의 번개 공격을 버틸 수가 있도록 변이되어 있었다.

올라온 페드로는 기절해 있는 엘레나를 내려다보았다.

“말했잖아요. 나조차 이기지 못한다면 클레이브는 어림도 없다고.”

그때, 페드로는 살기가 담긴 눈으로 자신의 벌레 다리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가 그 다리를 내리치려고 했을 때, 루시아가 뛰어들어 엘레나의 몸을 덮쳐서 방패막이가 되었다.

“누나!”

페드로는 놀라서 공격을 거둬들였다.

“페드로. 너는 착한 아이였잖아. 어째서 이렇게 변해 버린 거니?”

“누나…….”

페드로는 자신의 행동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뒷걸음질 쳤다.

“나 방금 이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거야?”

“그래. 너는 그런 아이가 아니잖아.”

“나는 죽일 생각은 없었어. 그런데 어째서 죽이려고 까지 행동한 거지?”

순간 페드로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게 바로 네가 놈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증거야. 네가 한 이야기들, 그건 다 너의 생각이 아니야. 놈이 너에게 그런 생각을 주입한 거란 말이야! 정신 차려! 페드로!”

“누나. 나는 대체 어떻게 되어 버린 걸까.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혼란스러워하던 페드로는 갑자기 눈에 다시 살기를 띠었다.

“누나. 비켜. 비켜 줘! 누나까지 해치긴 싫어!”

“그럴 수는 없어.”

루시아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노란 액체가 들어 있는 시험관이었는데, 루시아는 그것을 바닥에 던져 깨뜨려 버렸다.

“무슨 짓을?”

페드로가 당황하는 사이에 갑자기 루시아는 기절하듯이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페드로 역시 엄청난 졸음을 느끼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대체 이게 뭐지?’

아까 엘레나가 주환을 만났을 때 그에게 건넸던 것은 바로 식물의 잎이었다.

그것은 엘레나가 이브의 탑에서 몇 장 챙겨 온 것으로, 그 잎과 피르조니 애벌레의 체액이 만나면 수면 가스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엘레나는 그 방법을 이용하여 주환과 이브를 제압한 일이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애벌레 탄과 그 이파리를 이온에게 주었고 이온을 그것들을 혼합하여 일회용 수면 가스 용액을 만든 것이다.

엘레나는 가스파르가 말한 소년이 루시아의 동생일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그가 클레이브에게 협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페드로를 설득이 아니라 제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페드로를 최대한 상처 없이 제압하는 데 필요했던 것이 바로 이 수면 용액이었다.

“으윽.”

그러나 놀랍게도 페드로는 그 강력한 수면 가스를 버텨 내고 있었다.

물론,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었기에 금방이라도 잠이 들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그는 변이된 신체의 능력으로 저항했다.

페드로는 자신의 앞에서 기절해 있는 루시아를 내려다보더니 엘레나와 그녀를 놓아두고는 다리를 끌면서 수영장의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 * *

우르릉!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가 협곡의 안쪽을 가득 메웠다.

그 소리에 데스티나 일행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지만 하늘에는 단 한 점의 비구름도 보이질 않았다.

이윽고 데스티나 일행은 자신들이 들었던 천둥소리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협곡의 위쪽, 즉 절벽의 꼭대기의 한쪽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것은 다수이면서도 하나인 존재였다.

키가 수 미터에 달하는 거인.

그 거인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좀비들이었다.

마치 좀비들을 모아서 뭉친 다음 인간의 형상으로 만들어 낸 것 같은 그 끔찍한 모습에 데스티나 일행은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거인의 정체는 바로 좀비 골렘.

좀비 골렘은 절벽의 위에서 뛰어내렸다.

쿵!

좀비 골렘이 협곡의 안쪽에 내려서자 그의 그림자가 데스티나 일행이 있는 곳까지 길게 늘어질 정도였다.

이윽고 좀비 골렘은 데스티나 일행 쪽을 바라보더니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달릴 때마다 골렘의 발바닥 쪽에 붙어 있는 좀비의 몸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나면서 끔찍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퍽!

좀비 골렘은 자신과 데스티나 일행의 사이에 있는 감염자들에게 사정없이 충돌했다.

그러자 부딪친 감염자들의 일부가 그 충격 때문에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바닥으로 떨어진 감염자들은 크게 부상을 당했는지 입에서 피를 토해 냈다.

“네놈!”

데스티나는 분노하면서 좀비 골렘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모습을 보면서 루카가 뒤를 따르면서 소리쳤다.

“데스티나! 막무가내로 달려가지 마! 이러다가는 우리끼리 떨어져 버린다고!”

“저놈은 적군이고 아군이고 구별이 없는 놈이다! 우리가 감염자들을 구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죽고 말 거야!”

데스티나의 대답에 루카는 지금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을 공격하는 자들을 지키면서 다른 거대한 적과 맞서야 하는 이 상황.

데스티나와 루카가 감염자들과 좀비 골렘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감염자들은 그런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그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쾅!

달리던 루카는 자신의 팔을 들었다.

옆쪽에서 달려든 감염자가 그녀에게 충돌한 것이다.

루카는 방패를 들어서 그를 막은 다음 단숨에 옆으로 밀어 버렸다.

“대체 이런 녀석들을 어떻게 지키란 말이야!”

사방에서 감염자들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루카는 양팔을 모아서 마치 아르마딜로처럼 웅크린 다음 그 공격들을 받아 냈다.

협곡의 안쪽에서 싸울 때에는 수십 명 정도의 인원을 한 방향에서만 막으면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수월하게 적의 공격을 대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 많은 인원에게 사방으로 포위되어 있는 형국이었기에 괴력을 가진 루카라도 제대로 적에게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저리 다 비켜!”

웅크려 있던 루카는 단숨에 일어서면서 방패를 양쪽으로 펴고는 강하게 회전했다.

그러자 회전하는 큰 팽이에 부딪힌 작은 팽이들처럼 그 옆에 있던 감염자들이 밀려서 날아갔다.

한편, 데스티나는 감염자들을 밀치면서 좀비 골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좀비 골렘을 공격하기 위하여 허리춤에 차고 있던 툴레오의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퍽!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감염자 한 명이 데스티나를 덮쳤다.

데스티나가 방패를 들어서 그의 공격을 막아 냈지만, 워낙 갑작스럽게 들어온 공격이기에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휙!

데스티나를 넘어뜨린 감염자는 손에 들고 있던 곡괭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데스티나를 향해서 강하게 곡괭이를 찍었다.

데스티나는 방패를 들었다.

그러자 곡괭이의 끝이 방패를 뚫으면서 안쪽으로 조금 파고들었다.

아무리 단단한 파수꾼의 등껍질이라고 해도 너무나도 많은 공격을 받아 냈기에 그 내구성이 다해가는 모양이었다.

감염자가 다시 한번 곡괭이를 들었을 때, 데미안이 달려와 감염자에게 옆차기를 달렸다.

발차기에 맞은 감염자가 데스티나에게서 떨어져 나가자 데미안은 재빨리 데스티나를 일으켜 세웠다.

“무모한 짓 하지 마세요. 단장님.”

“그렇지만 저 좀비 골렘을 막지 않으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는 알고 있습니다.”

데미안은 하르페를 꺼내 들었다.

“저 괴물은 제가 맡도록 하죠. 단장님과 루카 씨가 감염자들을 맡아주시길 바랍니다.”

데미안은 그 말만을 남기고는 하르페로 무장한 채로 좀비 골렘에게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데스티나를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는 수많은 감염자와 그들의 사이에서 분투하고 있는 루카의 모습이 들어왔다.

“루카!”

데스티나는 루카를 구하기 위해서 감염자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데스티나는 방패를 앞세우고 닥치는 대로 감염자들을 밀어붙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이 부서지기 일보 직전까지 마나를 방출했다.

만약 지금 버프를 주고 있는 아르테어의 축복이 없었다면 데스티나의 몸은 버티질 못했을 것이다.

[힘을 얻고 싶나?]

그때, 데스티나의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누구냐!’

데스티나는 머릿속으로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루카는 앞에서 내려치는 공격들을 양팔을 모아서 방어한 다음 몸을 위로 띄워서 뒤에서 다가오는 감염자들에게 양발 차기를 날렸다.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는 감염자를 단순히 방패로 미는 것이 아니라 방패의 끝으로 쳐서 쓰러뜨렸다.

루카 역시 더는 상대의 사정을 봐줄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상대를 죽이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는 자신의 몸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거추장스럽네.”

루카는 자신의 손에 있는 방패를 하나씩 앞으로 던졌다.

방패들은 마치 원반처럼 날아가서 공격해 오는 감염자들에게 충돌했다.

루카의 방패 역시도 금이 가기 시작했기에 더 이상 방패를 사용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양손을 자유롭게 만든 루카는 비 오듯이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하아. 피곤해지는데.”

루카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재정비하듯 콩콩 뛰면서 스텝을 밟았다.

“그래. 아직 움직일 수 있어. 다시 한번 해보자고.”

자신에게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린 루카는 뒤에서 달려든 감염자를 공중 돌려차기로 걷어차 버렸다.

그러자 그 공격을 받은 감염자는 공중에서 회전하더니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조금 다치게 하는 것은 용서해 주길 바라. 이쪽도 필사적이라고.”

데스티나와 루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갔다.

데스티나는 방패를 들고 있는 팔로 상대를 밀어내면서 다른 쪽 손으로 상대의 옷을 잡은 다음 땅바닥으로 쓰러뜨렸다.

그녀가 기사 학교에서 배운 실전 레슬링 기술 중 하나였다.

데스티나가 그러한 방식으로 루카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던 그 순간.

퍽!

감염자가 뒤에서 휘두른 삽이 데스티나의 등에 명중했다.

“큭!”

데스티나는 격통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공격한 상대의 다리를 걷어서 바닥에 쓰러지게 했다.

그러나 한번 드러난 빈틈을 감염자들은 놓치지 않았다.

쾅쾅!

이어지는 몇 번의 공격은 방패로 막을 수 있었지만, 방패가 부서지면서 그녀 역시 들고 있던 방패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허벅지에 삽의 끝이 날아와서 부딪쳤다.

“아앗!”

데스티나는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신을 마나로 방어하고 있었지만, 극한의 상황까지 마나를 쥐어짜 내고 있었기 때문에 마나의 방호력은 조금 밖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

데스티나는 급한 대로 양손에 끼고 있는 건틀릿을 이용해서 공격들을 막아 냈지만 다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앞쪽에서 강력한 앞차기가 날아왔다.

데스티나는 말을 들어서 그 공격을 받아 냈지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데스티나는 재빨리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체력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자 감염자 중 한 명이 달려들어 발로 그녀의 가슴팍을 밟았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감염자들이 쓰러져 있는 데스티나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서 농기구를 높이 치켜들었다.

감염자들이 그것을 내리치는 순간 데스티나의 목숨은 끊어지고 말 것이다.

데스티나는 이를 악물며 자신에게로 떨어지는 농기구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여기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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