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81화 (81/182)

81화

이온이 주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한 뒤 두 사람은 바로 실행에 착수했다.

주환은 이온의 지시에 따라서 치료액을 최대한 많이 담을 수 있도록 의료실의 안에서 커다란 액체 보관통들을 수집하여 손수레에 담아 이온에게 가져다주었다.

“이제부터 이 통 안에 치료액을 담을 거예요. 지금 치료액을 최대한 양을 늘리긴 했지만, 더 묽게 하면 치료액의 효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양은 이 정도가 한계에요. 그래서 치료액을 분실하거나 하면 안 돼요.”

이온은 치료액이 담겨 있는 탱크에서 액체 보관통 쪽으로 호스를 연결하여 치료액을 보관용 통 안으로 주입하였다.

그렇게 해서 보관통들 모두에 치료액을 주입한 다음 주환에게 다음 할 일을 지시하였다.

“이제 이것들을 가지고 저쪽으로 가야 해요.”

이온의 말에 주환은 손수레를 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밀려고 해도 손수레는 꼼짝도 하질 않았다.

액체 보관통 하나당 들어 있는 치료액의 용량은 수십 킬로그램.

그러한 보관통이 손수레 위에 다수가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주환의 힘으로서는 용을 써도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도와드릴게요.”

이온까지 붙어서 같이 손수레를 밀자 그제야 손수레의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환은 이온이 그 손수레를 의료실의 바깥쪽으로 밀고 나갈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온은 그의 예상과는 반대로 의료실의 더욱더 안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이온은 주환과 같이 손수레를 의료실의 안쪽 벽까지 밀고 들어간 다음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벽이 열리면서 그 안쪽에 있는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여긴 뭐야?”

“여기는 화물용 엘리베이터에요. 여기에 화물을 싣고 목적지를 입력해주면 거기까지 이동시켜주죠.”

“우리도 이걸로 이동할 수 있는 건가?”

“아니요. 이건 화물용이기 때문에 안에 화물이 아닌 게 들어가면 작동하지 않게 되어있어요. 안전 때문에 그렇게 설계가 되어있는 거죠. 그리고 보통의 엘리베이터와는 다르게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작동할 수가 없기도 하고요.”

두 사람은 화물용 엘리베이터 안으로 손수레를 밀어서 화물을 실었다.

화물 엘리베이터의 적재량과 방금 두 사람이 집어넣은 액체 보관통들의 무게가 딱 맞았기에 단 한 번에 목적지까지 운반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이제 이것은 포탑의 하부로 운반될 거에요. 그럼 빨리 그쪽으로 이동하도록 하죠.”

***************

“더 밀어!”

데스티나 일행과 감염자들 간의 힘겨루기는 겨우겨우 데스티나 일행이 우세한 모양새로 흘러갔다.

감염자들이 데스티나 일행을 밀어붙였지만, 그들은 역으로 감염자들을 협곡의 안쪽으로 밀어내었다.

결국 데스티나와 루카 그리고 데미안은 자신들을 막고 있는 수십 명의 감염자를 밀어내면서 겨우겨우 협곡의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감염자들 역시 자신들이 밀렸다는 것을 인지한 것인지 뒤로 물러서면서 세 사람과 거리를 벌렸다.

단 세 명의 힘으로 수십 명의 인원을 밀어낸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협곡의 안쪽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숨을 돌릴 수 있는 틈조차 없었다.

“이럴 수가.”

데스티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에서 비 오듯이 흐르는 땀을 닦아내었다.

그녀는 협곡 안쪽의 상황이 자신이 예상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가 상대한 것은 그저 일부분이었단 말인가.”

데스티나의 말은 사실이었다.

협곡의 안쪽에는 방금 그들이 상대한 수십 명보다 훨씬 더 많은 수백 명의 감염자가 그들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협곡은 좁았기 때문에 세 사람이 어떻게든 앞에서 달려드는 감염자들을 상대할 수 있었지만, 협곡의 안쪽은 훨씬 넓은 공간으로 통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데스티나 일행의 방어에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감염자들은 자연스럽게 세 사람을 포위하듯이 에워쌌다.

아르테어는 그들과 떨어져 있었기에 포위당하는 것은 면할 수가 있었지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서 축복을 내려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예전 생각이 나는군요.”

수백 명에게 포위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데미안은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무슨 생각 말인가?”

“전에도 적들에게 포위되었던 적이 있었죠. 단장님과 같이 말이죠.”

“그래. 그런 적들이 있었지.”

“그때마다 모두 해쳐 나왔기 때문에 이 자리에 저와 단장님이 있을 수 있는 거겠죠.”

“그때도 지금처럼 자네를 믿고 등을 맡길 수가 있었지. 그런 상황에서는 자네만큼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없었어.”

“분명히 그때에는 지금 같은 오합지졸들이 아니라 훈련받은 기사와 병사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는데 지금이 더 까다롭고 피곤하게 느껴지는군요.”

“그때에는 사방 모두가 적이었기 때문에 적을 쓰러뜨리는 것만 생각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러한 상황이니 그때보다 더 피로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군.”

“두 사람 다 추억에 빠져 있는 건 좋은데 말이야.”

루카는 두 사람의 주의를 끌 듯이 두 개의 방패를 부딪쳐서 소리를 낸 뒤에 말을 이었다.

“솔직히 이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우선 물러서서 다시 정비해야 할 것 같지 않아?”

“그러고 싶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다. 쉽게 도망칠 수는 없어. 그리고 갈로스에게 연락을 취했으니 반드시 성전기사단들이 도우러 올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사방에서 감염자들이 좁혀오고 있었다.

세 사람은 감염자들에게서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 뒷걸음질을 쳤으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등을 맞댈 수가 있었다.

“성전기사단이 그렇게 일찍 도착할까? 후발대는 대규모로 움직이기 때문에 로즈버드 빌리지에 늦게 도착했을 거라고. 그렇다면 이곳에도 훨씬 늦게 도착할 거야.”

겁이 없는 루카이지만 지금 이 상황만큼은 그녀에게도 견디기 힘든 피로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안전까지 생각하면서 다수와 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버텨라. 버틴다면 반드시 상황의 변화가 올 테니까. 그럼 그때가 반격의 순간이다.”

“데스티나님.”

데미안이 조용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아까 엘레나님이 말씀하셨지요. 저들과 저희 중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그래. 기억하고 있다.”

“지금 그러한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데미안의 손에는 어느새 하르페가 들려 있었다.

“만약 이들을 저희가 구해야 할 백성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모든 일은 더 쉽게 풀릴 수도 있습니다.”

“데미안.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설마 저들을 베겠다는 말인가?”

“큰일에는 작은 희생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감염된 자들. 이들을 제압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놈들의 조종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이들을 베고 곧장 저곳으로 올라가 클레이브를 제압한다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데미안이 말을 마치자 하르페에서 녹색의 검날이 솟아올랐다.

만약 데미안이 적극 하르페를 쓴다면 지금 그들을 공격하는 감염자들을 전부 베어버리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데스티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기사로서의 긍지를 버리는 것.

데스티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서 데미안의 팔을 잡았다.

“데미안. 그것만큼은 절대로 기사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저들은 좀비가 아니다. 저들은 놈들의 지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그러한 가능성이 티끌만큼이라도 있다면 저들은 여전히 우리의 백성이다.”

데미안은 데스티나의 설득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하르페의 검날을 소멸시켰다.

“단장님은 여전히 힘든 길을 가시려고 하시는군요.”

데미안이 다시 하르페를 품속에 집어넣자 데스티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고맙다.”

“칭찬의 말은 나중에 듣겠습니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죠.”

*********

“이거 아까운 일이로군.”

함선 오르페우스호의 갑판 위에서 클레이브는 여전히 아래쪽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 인원으로 저기까지 밀고 들어오다니 정말로 대단하긴 하군.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야. 그리고 저 여기사.”

클레이브의 시선은 파수꾼의 껍질로 만든 방패를 들고 있는 데스티나에게 닿았다.

‘저 기사가 아마 성전기사단의 단장 데스티나이겠지. 실종되었다고 들었는데 살아있었나 보군. 꽤 끈질긴 친구야. 저들이 지금 최선을 대하서 감염자들을 다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은 아마도 저 친구의 의지이겠지.’

클레이브는 조금 전 하르페를 꺼내 들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생각보다 빨리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는 순간이었는데. 참으로 아깝단 말이야. 아마 아직도 데스티나와의 신뢰관계가 굳건하다는 증거. 그렇지만 이미 한 번 마음을 먹었다면 얼마든지 작은 불씨로도 크게 불타오를 수 있다는 뜻이지.”

클레이브는 자신의 품속에서 종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 종이 바로 협곡을 지키고 있던 파수꾼을 조종하는 바로 그 종이었다.

“자네가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도록 좀 더 압력을 주도록 하지.”

클레이브는 종을 몇 번 흔들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종은 단지 파수꾼을 부리는 데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페드로가 다수의 인간을 조종하는데 능했다면 클레이브는 녹색의 비를 통해서 변형된 괴수들을 부리는 것에 능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방울을 흔드는 것은 협곡의 안쪽에 숨어 있는 다른 괴수들을 불러내는 행위였다.

클레이브는 괴수들에게 데스티나 일행과 감염자들을 가리지 말고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들을 해치려는 감염자들을 괴수에게 지키면서 자신들의 몸까지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클레이브는 이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계획이 순리대로 진행되는 것도, 그리고 그 계획을 방해하는 변수들이 발생하는 것까지.

그 모든 질서와 무질서의 흐름은 클레이브에게는 그저 구경거리이자 놀잇거리일 뿐이었다.

괴수들에게 명령을 내린 클레이브는 미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아마 이것 너희에게 꽤나 힘든 시련이 될 것이다.”

우르릉!

그와 동시에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가 협곡의 안쪽을 가득 메웠다.

그러면서 협곡의 위쪽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아주 거대한 거인.

그 거인이 몸을 일으키자 거인의 몸에 붙어 있던 흙먼지가 아래쪽으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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