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탄환을 맞지 않은 일부가 계속해서 두 사람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온은 자신들을 막고 있는 자들의 사이로 바람처럼 침투했다.
산성탄에 맞지 않은 추종자들의 수는 넷.
그들의 사이에 이온이 들어가자 추종자들은 반사적으로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이온을 포위했다.
어느 새인지 이온의 팔꿈치에는 짧은 칼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팔꿈치 안에 있는 수납공간에 숨어 있는 근접 무기로, 길이는 짧았지만 그 날카로움은 일반적인 나이프와는 다른 수준이었다.
초진동 블레이드.
초진동 블레이드는 단번에 갑옷을 갈라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이온을 앞에 두고 공격을 하려던 추종자들은 좁은 곳에서는 기다란 검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았기에 저마다 허겁지겁 허리춤에 있는 단도를 꺼냈다.
단도로 무장한 추종자들과 양 팔꿈치에 초진동 블레이드를 장착한 이온과의 싸움.
이어지는 이온의 격렬한 움직임.
그녀를 막으려는 추종자들의 동시다발적인 칼부림.
그 두 가지 움직임이 합쳐져서 그야말로 화려한 난투극이 펼쳐졌다.
이온은 자신의 전신 감각을 다 이용해서 상대들의 공격이 자신에게 닿는 순서를 계산했다.
모든 계산이 끝나자 이온은 우선 자신의 뒤에서 찔러오는 추종자를 제압하기 위해서 발을 들어 뒤쪽의 상대 무릎을 걷어찼다.
으직!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근육이 찢어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뒤쪽의 추종자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서자 이온은 비로소 앞쪽에서 달려드는 추종자를 상대했다.
그의 단도가 이온의 얼굴을 찔러 들어오자 이온은 그의 팔을 붙잡고는 팔꿈치에 달린 초진동 블레이드로 손목과 팔꿈치 부분에 있는 힘줄을 잘라 버렸다.
그다음으로 닿는 공격은 오른쪽에서 오는 발차기 공격.
이온은 상대의 앞차기 공격을 팔로 받아 내면서 동시에 그의 다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반대쪽 팔에 달린 블레이드로 그의 무릎과 발목에 있는 힘줄을 절단했다.
마지막 남은 것은 왼쪽에서 공격하는 추종자의 단도 공격.
이번엔 그 공격에 대응하는 이온의 방식은 심플했다.
마지막 추종자가 단도를 들고 이온에게 달려들자 이온은 자신의 팔을 짧게 휘두르면서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온은 더는 아무런 추가 공격을 하지 않았다.
방금 이온의 공격을 받은 추종자는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곧장 몸을 돌려 등을 보이고 있는 이온을 찌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눈이 빛을 잃었음을 느꼈다.
이미 그가 몸을 돌리기 이전에 이온이 블레이드로 그의 양 눈을 일직선으로 베어 버렸던 것이다.
“으아악!”
이온의 공격에 당한 추종자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네 명을 쓰러뜨리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0초가량.
이온의 얼굴과 옷에는 상대방의 몸에서 튄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주환에게 제압 이상의 명령을 받은 이온의 전투 방식은 훨씬 더 효율적이면서도 잔인한 면이 있었다.
그리고 전투 모드에 들어가 있는 이온의 표정과 얼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기가 느껴지게 할 정도로 차가웠다.
주환은 피를 묻힌 채로 싸움을 마치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이온을 보면서 그녀의 강력함을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주인님. 이쪽으로.”
단호하면서도 냉철한 목소리로 이온은 주환을 이끌었다.
두 사람은 쓰러져 있는 적들을 넘어 복도를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 뒤로는 더 이상 두 사람을 막는 적이나 쫓아오는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주환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목표로 하던 의료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온이 의료실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주환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들어가자 의료실의 문이 닫히면서 잠금 상태가 되었다.
적들이 그곳을 발견하더라도 쉽게 그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의료실의 안으로 들어온 이온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온은 몸을 돌려 주환을 마주 보았다.
이온은 이어서 웃음을 지으며 V자를 만들었다.
“어때요, 주인님? 저 잘했죠?”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격렬한 전투의 긴장 때문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던 주환은 이온의 웃음을 보면서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서 그녀의 머리칼에 묻은 피를 닦아 주었다.
“그래. 잘했어.”
* * *
“허어. 이거 엄청나군.”
오르페우스호의 갑판 위에서 협곡의 입구를 관찰하고 있던 클레이브는 감탄한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가 확인한 것은 협곡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을 단 한 번에 반으로 갈라 버린 데미안의 엄청난 실력이었다.
“강하네요.”
클레이브의 옆에 서 있던 소년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 역시 데미안의 실력에 시선을 빼앗긴 모양이었다.
“데미안이란 저 기사, 궁중에서의 검술 시연에서 잠깐 본 일이 있었지. 내 분야는 흑마법이지만 검에 관해서 연구하기도 했고 궁중에서 많은 대검객들을 보았으니 남들보다는 검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때 검술 시연에서 데미안을 보았을 때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우아하고 세련되고 낭비가 없는 움직임. 그렇지만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 누가 보아도 군더더기가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그것은 마치 다른 완벽을 연기하는 연기자의 느낌을 받았던 거지. 그것은 나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몰라. 나 역시도 궁중 마법사로 일할 적에는 나의 본능을 억누르고 고지식하면서 질서를 추구하는 그런 대현자를 연기했었으니까.”
“그렇다면 데미안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요?
“저 녀석의 검의 본질은 그런 우아한 성질의 것이 아니야. 지금이야말로 확실하게 알 수 있겠군. 데미안의 검은 오히려 파괴적이면서도 살육을 즐기는 자의 기질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지.”
클레이브는 흥미롭다는 듯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같은 부류의 인간은 서로 알아보는 법이지. 놈은 나와 같은 과다. 그것은 틀림없어. 저런 놈은 내 최대의 적이 되거나 내 최대의 아군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일 테지.”
“감탄하시는 것도 좋지만.”
소년은 손을 들어서 멀리 점처럼 보이는 데스티나 일행을 가리켰다.
“그 데미안 덕분에 저들이 금세 협곡을 통과해서 이곳으로 올 것 같은데요.”
“그렇군. 그러면 곤란하지.”
클레이브는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페드로. 저들을 풀어 버려라.”
“괜찮으신가요?”
“상관없어. 어찌 되었건 저들의 본질은 기사다. 그렇다면 저들이 아주 좋은 방패막이가 되어 줄 거야.”
“알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저들을 이곳까지 끌고 온 가스파르 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법 능력이 있는 친구였지만 처분하도록 해야겠지. 그것도 너에게 맡기도록 하마.”
클레이브는 페드로라고 불린 소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할 수 있겠지, 페드로?”
“맡겨 주세요.”
* * *
파수꾼이 데미안의 공격 한 번에 쓰러진 후 데스티나 일행은 말을 몰고 협곡의 안쪽으로 더욱더 들어갔다.
협곡의 안으로 어느 정도 들어갔을 때 그들은 안쪽에 있는 절벽의 위에 불시착해 있는 오르페우스호를 발견할 수 있다.
“저게 대체 뭐지?”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가스파르를 제외하고 오르페우스호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금속으로 된 성을 연상하게 하는군.”
데스티나가 그렇게 말하자 엘레나는 다른 의견을 냈다.
“성보다는 배랑 더 비슷한데?”
엘레나의 말을 이번에는 루카가 반박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배가 저렇게 높은 땅에 올라가 있을 수가 있어? 엄청난 홍수라도 났다면 모를까.”
“저희끼리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겠죠.”
데미안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는 가스파르에게 물었다.
“저건 대체 무엇이죠?”
데미안의 실력에 완전히 눌려 있던 가스파르는 곧장 대답해 주었다.
“저건 분명히 아티팩트야. 아티팩트 중에서도 등급을 매기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지. 오파츠 등급을 넘어서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어. 저 안에 있는 도구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번 실험을 할 수가 있었지. 너희 눈에는 저게 건물로 보일 수도 있고 배로 보일 수도 있지만 둘 다 아니야.”
가스파르는 손을 들어서 하늘을 가리켰다.
“저건 하늘에서 떨어진 게 확실하거든.”
“하늘에서?”
놀란 모두가 그렇게 외쳤다.
“그래. 엄밀하게 말하자면 저건 하늘을 나는 배다. 이제야 알겠어?”
가스파르가 잘난 척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자 엘레나가 휙 하고 날아서 발로 그를 걷어찼다.
“컥!”
걷어차인 가스파르가 엘레나에게 항의했다.
“뭐 하는 짓이야?”
“하늘을 나는 배건 건물이건 왜 네가 잘난 척을 하는 거야? 네가 만든 것도 아니잖아?”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이제는 안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려 주시죠.”
데미안의 요구에 가스파르가 대답하려는 순간 뒤쪽에서 말을 몰고 있던 아르테어가 소리쳤다.
“여러분. 잠시만요.”
아르테어의 말에 모두는 말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르테어 님?”
데미안이 그렇게 묻자 아르테어는 눈을 감았다.
“소란스러움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소란스러움이라면.”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은 아르테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그렇지만 데미안과 가스파르만이 그 말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다.
파루시아 교단의 사제들은 남들이 들을 수 없는 ‘숨겨져 있는 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평생을 바쳤다.
대표적인 것이 엘프들이 정령들과 나누는 대화 등이며, 아르테어가 괴목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능력을 데스티나와 루카에게 잠시 보여 준 일도 있었다.
‘숨겨져 있는 대화’. 일반적인 인간들은 듣지도 사용하지도 못하는 대화들을 총칭하는 단어였다.
아르테어는 이 협곡에 들어서면서 협곡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명령어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녀가 처음 들어보는 언어 체계였기에 감지는 할 수 있었지만 해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그 소리가 만들어 내는 소란이 커질수록 숨겨진 언어를 조금씩 듣는 게 가능했다.
“이번에는 무엇을 들으신 거죠?”
데미안의 물음에 아르테어는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그 뜻이 또렷해지면서 그녀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죽여라!’
아르테어가 감지한 말은 분명 그것이었다.
“죽여라.”
아르테어는 홀린 것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죽여라, 라니.”
데스티나는 협곡의 안쪽을 주시했다.
데스티나는 협곡의 안쪽에서 도사리고 있는 크나큰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안쪽에서 수십 명의 사람이 협곡의 안으로 진입했다.
데스티나 일행은 그들이 비를 쫓는 자들에 소속된 용병쯤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곡괭이나 삽 등의 농기구들.
그들은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비를 쫓는 자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던 감염자들로, 지금은 오르페우스호에 있는 페드로에게 다른 명령을 받은 참이었다.
협곡의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는 침입자들을 죽이라는 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