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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75화 (75/182)

75화

말을 몰던 데미안은 어느 순간 말이 더는 나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느꼈다.

“너 역시 두려움을 느끼고 있구나.”

데미안은 말의 갈기를 살짝 쓰다듬어 준 뒤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는 말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하르페가 들려 있었다.

쿠쿵!

그때, 협곡에 있는 모든 이들이 바닥에서 울리는 엄청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난 땅 울림에요.”

“지진인가?”

저마다 그렇게 외치고 있을 때 가스파르가 유쾌하다는 듯 소리쳤다.

“이게 바로 파수꾼이 깨어나는 소리다!”

동요하지 않는 이는 오로지 데미안뿐이었다.

콰쾅!

그때, 협곡의 땅을 뚫고 엄청난 길이와 두께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기둥이 아니었다. 그것은 땅속에서 침입자를 기다리고 있던 거대한 지네였다.

수십 미터의 길이에 바위를 연상하게 하는 단단한 푸른색의 몸체.

그것이 바로 비를 쫓는 자들의 은신처를 지키는 파수꾼의 정체였다.

“지네로군.”

파수꾼은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더니 자신의 앞에 있는 데미안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롭고 위협적인 파수꾼의 주둥이가 데미안에게 닿기 전 그는 가볍게 뛰어올라 파수꾼의 머리 위로 올라탔다.

촤악!

자신이 공격해야 할 대상을 놓쳐 버린 파수꾼은 당황한 듯 몸을 뒤틀면서 다시금 기둥처럼 꼿꼿하게 일어섰다.

파수꾼의 머리 위에 서 있는 데미안은 그 격렬한 흔들림에도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는 하르페의 검날을 만든 다음 단숨에 파수꾼의 머리를 내리쳤다.

콰직!

분명 단 한 번의 휘두름이었다.

그러나 하르페의 검날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파수꾼의 몸을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데미안이 협곡 바닥으로 내려앉았을 때, 기둥처럼 서 있던 파수꾼의 몸은 마치 도끼를 맞아 쪼개진 나무 기둥처럼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정확히 절반으로 양분되어 버렸다.

쿵!

파수꾼의 몸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바닥으로 쓰려지자 데미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으로 옷을 살짝 털면서 다시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이제 가시죠.”

그 모습을 본 모두는 그야말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등줄기에서 올라오는 소름을 느낀 루카.

감탄을 넘어 감동을 하고 있는 아르테어와 루시아.

그 자존심 강한 엘레나 역시 데미안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특히 데미안이 끼어들어도 별일 없을 거로 생각했던 가스파르의 얼굴은 그야말로 하얗게 질린 수준이었다.

데스티나는 데미안을 믿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실력을 보면서 씁쓸하게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안 본 사이에 더 강해졌군. 대체 어디까지 강해지려는 건지.’

데스티나는 그제야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이가 얼마나 자신의 수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 * *

“이걸 열 수 있다는 말이야?”

놀란 주환이 이온에게 그렇게 물었다.

“네, 주인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참 놀랍군.”

레브는 감탄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문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일 텐데.”

“맞아요. 사실 지금 저에게도 꽤나 버거운 일이죠. 그렇지만 마도 과학이라는 분야의 논리와 기술 체계를 파악할 수 있으면 그것을 청사진으로 해서 이 문의 잠금장치도 풀어낼 수 있을 거예요.”

“이온. 넌 마도 과학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는 거야?”

“아뇨. 없어요.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어떻게?”

“그럼 주인님. 우선 가지고 계신 그 물건부터 저에게 주시겠어요?”

이온이 주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엇을?”

“지금 들고 계신 거요.”

주환은 이온이 자신이 들고 있는 돌격 소총을 요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걸?”

주환은 바로 자신의 총을 이온에게 건네주었다.

주환이 준 돌격 소총을 살펴보던 이온이 입을 열었다.

“아주 예전에 사용하던 열병기의 일종이네요. 탄약은 5.56×45mm NATO을 사용하고 가스 직동식과 회전 노리쇠 방식, 700~950RPM의 발사 속도와 500m의 유효 사거리를 지니고 있는 멋진 무기죠.”

“꽤 자세히 알고 있네.”

“과거의 역사와 문화, 기술에 대한 것들이 제 기억 장치에 담겨 있거든요. 물론 지금 이 무기는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그 무기와는 좀 동떨어진 무기가 되었네요. 누군가가 이 무기에 손을 댄 모양이에요.”

“아까 말했던 그 마도 과학자가 더 좋은 무기를 만들어 준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손을 좀 봤거든.”

“의도가 어찌 되었든 이 총에 적용된 기술 체계를 제가 분석한다면 마도 과학에 대한 이해도가 생길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우선 분석에 들어갈게요.”

그렇게 말하며 이온은 돌격 소총을 붙잡고는 눈을 감았다.

“지금 제 몸에 있던 나노 머신들을 이 총 안에 침투시켰어요. 그 나노 머신들이 이 총의 내부 구조들을 파악해서 마도 과학에 대한 지식을 저에게 줄 거예요. 물론 데이터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모든 물건의 분석을 마친 이온은 나노 머신을 회수한 다음 눈을 떴다.

“어땠어? 보람이 있었어?”

“어느 정도는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어요. 이제 실전에서 적용해 보는 일만 남았네요.”

이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제의 벽의 앞에 섰다.

그녀는 양손을 들어서 벽에 손을 댔다.

그리고 나노 머신을 보내서 벽 안으로 침투할 수 있는 입구를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

문을 열기 위한 노력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온이 문을 열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이온의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예감한 주환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레브에게 물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가?”

“비를 쫓는 자들의 수장 클레이브는 대체 어떤 인물입니까?”

“클레이브라.”

레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도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은 확실해. 한때 궁중 마법사로 일했었다고 하더군.”

“궁중 마법사는 어느 정도나 대단한 거죠?”

“말 그대로 궁중에서 일하는 마법사이니까 전국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라고 할 수 있겠지.”

“대단히 강한가 보군요.”

“궁중 마법사의 가치는 단순히 강함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야. 마법계에 얼마나 이바지를 했느냐가 가장 중요하지.”

“그 정도 위치에 있던 사람이 어쩌다가 저 지경이 된 겁니까?”

“글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아마 아주 예전부터 미쳐 있었는지도 몰라.”

“무엇 때문이죠?”

“클레이브는 이 세상이 좀비들의 세상으로 가득 차게 만든 마법사 중 한 명이야.”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좀비 병사 작전을 입안하고 그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게 해준 핵심 구성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거지.”

“그런 일을 벌여 놓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이런 미친 짓들을 벌이고 있는 거로군요.”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그가 일부러 이런 상황까지 몰고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무슨 말이죠? 제가 알기에는 좀비 병사들을 만들기 위해서 마족들을 소환했고 그 마족들을 컨트롤하지 못해서 이 지경이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그게 맞을 수도 있어. 그렇지만 나는 그에 대해서 미심쩍은 부분을 느낀다네.”

“어째서죠?”

“궁중 마법사들은 바보들이 아니야. 오히려 전국에서 가장 똑똑한 인물들만이 궁중 마법사가 될 수가 있어. 그런데 그들이 마족들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안전장치조차 제대로 두지 않고 마계 소환을 결행했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아.”

“그렇지만 어떠한 일이든 실수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모든 일이 완벽하게 굴러가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클레이브가 그 계획에 참여했음에도 그런 실패를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거지.”

“궁중 마법사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클레이브가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말입니까?”

“흑마법에 대해서는 최고의 이해도를 가지고 있지. 자네 클레이브의 성을 알고 있나?”

“모릅니다.”

“바로 ‘알케비젼’이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환은 머리를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알케비젼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마차에서 엘레나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마족과 계약을 해서 엄청난 힘을 누린다는 바로 그 가문.

그리고 구국의 12 가문에 속해 있는 가문이기도 한 그 가문.

‘엘레나가 말하길 이브 역시 알케비젼 가문의 일원이라고 했지. 그리고 이브는 마족과의 계약에서 볼모로 잡혀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했어. 그래서 타마두크가 이브를 돌보고 있는 거고.’

주환은 이브와 타마두크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럼 클레이브와 이브는 서로 한 가족이라는 건가?’

“알케비젼에 대해서는 들어본 일이 있나?”

“있습니다. 심지어 아까 보았던 그 손거울을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알케비젼의 사람이고요.”

“뭐라고?”

이번에는 레브가 놀랐다.

“이거 놀라운 인연이로군.”

“그럼 마족과 연결점이 있는 그러한 가문의 일원인 클레이브가 마족을 끌어들인 그런 계획에서 실수할 리가 없다는 말이군요?”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야. 자네의 말처럼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니까.”

‘확실히 이 시점에서는 클레이브가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주환은 말을 이었다.

“아까 클레이브를 봤는데 옆에 어떤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더군요. 그 아이가 누구인지 혹시 아십니까?”

“어린아이?”

“네.”

“나이대가 어느 정도였지?”

“10대 초반 정도로 보이던데요.”

“아마 내가 이곳에 내려온 뒤에 데려온 아이인가 보군. 그 클레이브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니 의외로군. 클레이브가 하는 일이니까 그 아이도 범상치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하긴 그렇겠죠.”

거기까지 말한 주환은 계속해서 문과 씨름 중인 이온을 바라보았다.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은 듯 이온은 문에 손을 댄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문이 열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 문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당장 나갈 수는 없어.”

“어째서요?”

“밖에는 감염된 포로들이 계속해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돌아다니고 있겠지. 만약 나와 이곳에 있는 변이체들이 바깥에 나가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될 거야. 또다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게 될 테니까.”

“그렇지만 당신은 변이체들을 얌전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잖아요?”

“그것도 내 정신이 유지가 될 때에 가능한 거지. 아까도 말했지만, 나의 멀쩡한 정신은 길게 유지되지 않아. 언제 이성을 잃어버리게 될지 알 수가 없지.”

“그렇다고 영원히 이 어둠 속에서 살 수는 없겠죠.”

“그것으로 속죄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 이런 일을 저질러 놓고 혼자 무사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네. 내 바람은 지금 이 동굴 안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이곳을 나가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야. 그렇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네. 그렇기에 자네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뭐죠?”

“자네들이 이곳을 나가게 되면 이곳에서 살아남은 변이체들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 줘. 만약…… 그것이 안 된다면. 이들이 누군가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그들끼리 살아갈 수 있는 곳에 보내 줘. 그것이 내 부탁이야.”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도록 하죠.”

“그래. 고맙네.”

레브가 주환의 말에 감사를 표했을 때 이온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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