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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70화 (70/182)

70화

데스티나 일행이 로즈버드 빌리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정착지 안에 감돌고 있는 불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로즈버드 빌리지의 입구 앞에서 멈춘 일행들은 주변의 분위기를 살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요.”

데미안이 데스티나에게 그렇게 말하자 데스티나 역시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 것 같군. 지금 정착지가 너무 조용해.”

“혹시 이미 다 끌려간 것 아니야?”

루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누군가 목책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바로 청동 인형 갈로스였다.

“루카!”

갈로스가 말을 타고 있는 루카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외쳤다.

루카와 같은 말을 타고 있던 루시아와 옆에 있던 아르테어는 갈로스의 등장에 깜짝 놀란 모양이었지만 루카와 데스티나는 곧장 갈로스를 알아보았다.

“갈로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엘레나 님이 호출해서 여기 와 있는 거야. 그리고 엘레나 님이 너랑 데스티나 님이 돌아오면 문을 열어 주라고 명령하셨거든.”

그렇게 말하며 갈로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갈로스의 덩치도 컸지만, 목책의 높이도 만만치 않았기에 목책 너머로 갈로스의 목의 위쪽 부분만 보일 따름이었다.

“아시는 분입니까?”

데미안의 물음에 데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곳에 오기 전에 만난 마법사의 집을 지키는 수호자 같은 친구지. 우리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한 게 있어서 이곳으로 온 모양인데.”

“그럼 그가 와 있다는 것은 이 정착지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임이 분명하군요.”

“과한 걱정이라면 좋겠지만.”

갈로스는 목책의 입구에 달린 문의 위쪽을 잡고 밀었다.

그러자 무거운 정착지의 문이 쉽게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데스티나 일행은 말을 몰고 정착지의 안으로 들어갔다.

“갈로스. 무슨 일이 있었어?”

루카가 묻자 갈로스는 그들을 안내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건 엘레나 님에게 직접 설명을 듣는 게 좋은 것 같아.”

“비를 쫓는 자들이 쳐들어왔던 게 아닐까요?”

루시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서 말을 몰고 있던 아르테어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안심시켜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데미안 님이 해결해 주실 테니까.”

“그렇지만…….”

“주환은 지금 뭘 하고 있나?”

데스티나가 갈로스에게 물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저도 몰라요.”

“모른단 말인가? 어째서지?”

“지금 이곳에 없으니까요.”

“대체…….”

갈로스의 안내를 받으면서 정착지를 가로지르던 데스티나 일행은 지금 정착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불타서 없어져 버린 공용 식당에 이르렀을 때, 일행의 불안감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이건 전투가 있었던 흔적인 듯하군요.”

“그렇군. 꽤 큰 전투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는 다른 흔적들은 보이지 않아.”

루카는 갈로스에게 물었다.

“갈로스. 지금 엘레나는 어디에 있는 거야?”

“촌장님의 숙소에 계셔.”

“그래?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네가 걸을 때마다 몸에서 소리가 나는 거야?”

“몸이 좀 무거워져서 그런 게 아닐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일행은 촌장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촌장의 숙소 앞에 도착한 데스티나 일행은 말들을 한쪽에 매어 놓은 뒤에 안으로 들어갔다.

“아. 드디어 도착했네?”

안으로 들어간 데스티나 일행을 맞이한 것은 바로 엘레나였다.

그녀는 촌장의 책상에 앉아 있다가 데스티나 일행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들에게 인사했다.

“엘레나.”

루시아가 앞으로 나서면서 엘레나의 이름을 불렀다.

루시아의 얼굴에는 미안한 감정이 가득했지만, 엘레나는 루시아 쪽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엘레나는 데스티나의 옆에 서 있는 데미안에게 관심을 두었다.

“당신이 성전 기사단의 부단장인 데미안?”

엘레나의 물음에 데미안은 고개 숙여서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전 기사단 부단장인 데미안이라고 합니다. 이번 전쟁 때문에 발생한 좀비 사태 탓에 피해를 당하셨을 엘프분들에게 심심한 유감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자 엘레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런 인사치레는 되었어. 내가 엘프계의 모든 엘프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당신이 데스티나를 따라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우리를 도울 의사가 있다는 걸로 봐도 되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지금은 선발대로 저와 여기 있는 파루시아 교단의 아르테어 님만이 먼저 왔지만, 이후에 후발대로 다른 성전 기사단의 단원들이 합류할 예정이죠.”

데미안이 자신의 뒤에 있는 아르테어를 엘레나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엘레나는 아르테어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 혹시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가?”

엘레나의 물음에 아르테어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처음 뵙습니다.”

“그런가? 뭐, 나도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니까 헷갈릴 수도 있지.”

“서로에 대한 인사는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엘레나. 이곳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정착민들은 아무도 보이질 않고 주환의 모습도 볼 수가 없군.”

“너희가 없는 사이에 일이 있긴 있었어. 지금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줄게.”

엘레나는 데스티나와 루카가 정착지를 떠난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그 많은 인원을 한 번에 사라지게 하다니.”

엘레나의 이야기를 듣자 데미안은 순수하게 감탄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한 수의 인간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정말로 대단한 능력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사실 이번 전쟁에서 마법사들이 가장 바랐던 것이 그러한 형태의 군대였을 겁니다. 두려움을 모르면서 명령만을 따르는 그러한 꼭두각시 같은 병사들을 말이죠. 그것이 불가능했기에 좀비를 병사로 쓰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고 그것이 이러한 사태를 몰고 온 것일지도 모르죠.”

“그리고 이게 주환이 남긴 메모야.”

엘레나는 주환이 쓴 메모를 촌장의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 안에는 주환이 클레이브와 나눈 대화가 자세하게 쓰여 있었다.

일행들이 메모를 자세히 읽어 본 뒤 데미안은 아르테어에게 물었다.

“아르테어 님은 녹색의 비에 대해서 들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그런 비가 정말로 있다면 저희가 숲에서 보았던 그 많은 변형된 생물들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르테어의 말에 데스티나와 루카는 숲에서 만났던 괴물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들의 기억에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었던 것은 역시나 다친 이를 치료하는 거대한 괴목과 그에 공생하며 살아가는 기이한 자벌레들이었다.

“그런 괴상한 생명체들이 이 세상에 가득 찬다면 그것도 신기하긴 하겠네.”

루카는 감탄하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적을 칭찬하고 싶지는 않지만, 확실히 정말로 더욱더 발전만 한다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수준의 기술이기는 하군요.”

“아무튼, 내가 있었음에도 정착민들을 빼앗겨 버렸으니까 이번에는 확실히 내 불찰이야.”

“웬일로 순순히 인정하네?”

엘레나의 사과를 들은 루카가 그렇게 묻자 엘레나는 루카를 향해서 혀를 내밀었다.

“어차피 너희들이 있었어도 별다른 도움이 안 됐을걸?”

“그건 모르는 일이지.”

“정착민들도 걱정이지만 그곳으로 끌려간 주환도 걸리는군. 적진 한가운데에서 포로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대체 그곳에서 어떠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지 감조차 잡히질 않는군.”

데스티나는 주환이 걱정되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루카가 데스티나의 어깨에를 툭툭 치며 위로했다.

“그 녀석은 쉽게 죽을 녀석은 아니야. 혹시 모르잖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지내고 있을지.”

“그건 그렇지만.”

루카의 말에도 데스티나의 걱정이 풀리지 않자 엘레나는 분위기를 환기하듯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렇게 정착민들을 빼앗기고 끝난 것은 아니야. 다행히 놈들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알아냈거든.”

“거기가 어디지?”

“지금 바로 알려 주도록 할게.”

거기까지 말한 엘레나는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갈로스!”

그러자 촌장의 숙소의 문이 열리면서 갈로스가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갈로스의 덩치가 워낙에 컸기에 문의 안쪽으로 들어올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놈을 이곳으로 데려와 줘.”

“놈이라면 가스파르 씨를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

그러자 갈로스가 자신의 가슴 쪽 흉판을 당겼다.

단단해 보이는 갈로스의 몸 중에서 가슴 부분은 바깥쪽으로 당기면 열리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마치 거대한 동물이 입을 벌리듯 흉판이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가스파르가 데굴데굴 떨어져 촌장의 숙소 안으로 굴러 들어왔다.

안으로 굴러 들어온 가스파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데스티나가 엘레나에게 물었다.

“저자가 가스파르인가?”

“맞아.”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는군.”

“아. 죽지는 않았어.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고문을 좀 하긴 했지만.”

“정보는 확실히 알아낸 건가?”

“위치를 듣긴 했지만,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어. 그래서 저 녀석의 길 안내를 받아야 할 것 같아.”

“어째서 계속해서 갈로스의 안쪽에 가두어 둔 거지?”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보통 음흉한 놈이 아니거든.”

“움직이지를 않아요. 혹시 죽은 게 아닐까요?”

루시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시아의 말대로 아무리 기다려도 가스파르가 움직이지 않자 데미안은 아르테어에게 말했다.

“아르테어 님 저자의 상태를 좀 봐주세요.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데미안 님.”

아르테어는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가스파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의 눈꺼풀을 올린 다음 그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어떻습니까?”

“이 상태로 놔두면 탈진으로 죽을지도 몰라요. 우선 편한 자리에 눕혀 주시고 물을 좀 떠다 주세요.”

아르테어의 말이 떨어지자 데미안은 곧장 가스파르를 들어서 촌장의 침대로 옮겼다.

그리고 루카는 바깥으로 물을 뜨러 나갔으며 데스티나 역시 가스파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아르테어에게 다가갔다.

“회복할 수는 있겠습니까?”

“적절한 수분 섭취와 치료가 있다면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르테어는 기절해 있는 가스파르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옅은 빛이 감돌면서 그 빛이 조금씩 가스파르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저희 교단에서 내려오는 회복술입니다. 어차피 지금 상태에서는 이분에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없을 테니 이분에 대한 것은 저에게 맡겨 주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자가 깨어나면 아르테어 님에게 해코지를 할 수 있으니 저 역시도 아르테어 님과 같이 옆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분은 이 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하질 못할 겁니다. 조금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겠지요. 이곳은 제가 맡을 터이니 데미안 님과 데스티나 님은 이후의 계획에 대하여 준비해 주세요.”

평소답지 않은 고집에 데미안은 약간의 의아함을 느꼈지만, 곧 아르테어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하도록 하죠.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곧바로 저를 불러 주십시오. 단장님, 그럼 저희는 다음 일에 대한 계획을 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데미안의 권유에 데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저자는 아르테어 님께 맡기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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