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타다당!
주환이 방아쇠를 당기자 총구에서 불꽃이 튀기며 탄환이 발사되었다.
그러자 발사된 탄환은 주환을 향해 뛰어올랐던 변형된 추종자에게 명중했다.
“크에엑!”
그 충격에 추종자는 벽에 튕기면서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추종자는 벽에 입에서 나오는 독액을 줄줄 흘리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하아.”
주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재빨리 자신의 짐을 살펴보았다.
언뜻 보았지만 없어진 물건은 없어 보였다.
시간이 없었기에 그는 돌격 소총을 제외한 나머지 짐들을 배낭에 쑤셔 넣은 다음 자신의 몸에 단단히 맸다.
주환은 이온의 상황을 살폈다.
그의 예상과 달리 상황은 급변해 있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마법사들과 이온이 싸우고 있었지만, 지금은 마법사들이 괴물로 변해 버린 추종자와 싸우고 있었다.
“저놈은 또 뭐지?”
피험자의 움직임과 공격력은 가공할 만했다.
마법사들이 공격 마법으로 그의 움직임을 막으려고 했지만, 피험자의 단단한 피부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너 같은 실패작 따위가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마법사 중 한 명이 자신의 한쪽 손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팔은 손가락이 서로 붙으면서 길쭉하게 변하더니 빠른 속도로 거대한 언월도처럼 변화했다.
비를 쫓는 자들에 소속되어 있는 마법사들의 일부는 가스파르처럼 자신의 몸에도 실험을 진행했다.
지금 자신의 팔을 언월도로 변화시킨 마법사는 그러한 실험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명이었다.
마법사는 다른 손으로 화염 마법을 발사하여 피험자의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언월도로 변한 팔을 휘둘러서 피험자의 목을 공격했다.
푸욱!
언월도의 날이 피험자의 목에 박혔다.
그렇지만 그 언월도의 날은 피험자를 목을 자르지 못했다.
어느 정도 파고들어 가다가 피험자의 단단하게 변한 뼈에 걸리고 말았다.
“이럴 수가!”
마법사는 자신의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그렇게 외쳤지만,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촤악!
피험자가 손을 휘두르자 그 손에 달린 날붙이들이 마법사의 몸을 찢어 놓았다.
주환으로서는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참혹한 광경이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실패작에 당하다니!”
피험자에게 당한 마법사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그렇게 외치며 쓰러져 갔다.
“젠장. 이 정도일 줄이야!”
남은 한 명의 마법사 역시 실험에 참여했던 생존자였다.
위협을 느낀 그는 자신의 몸을 변형시켰다.
그의 한쪽 눈 주변이 일그러지더니 눈의 흰자위가 완전한 검은색의 흑진주처럼 변화했다.
“이거나 먹어라!”
마법사의 외침과 함께 그의 눈에서 붉은색의 레이저가 발사되었다.
그 레이저는 피험자의 어깨에 명중했다.
이번의 공격은 피험자의 어깨를 관통할 정도로 효과가 있는 공격이었지만, 피험자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멈추지 않고 그를 향해서 돌진했다.
마법사는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느꼈는지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놔둘 피험자가 아니었다.
그가 등을 돌리자마자 단숨에 뛰어들어 그의 몸을 붙잡았다.
“안 돼!”
마법사는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지금 그를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험자는 절망에 빠진 마법사의 다리를 붙잡은 다음 빙빙 돌리다가 실험실의 벽에 처박아 버렸다.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마법사는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마법사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낸 괴물에게 당하고 있는 사이, 이온은 카트 위에 올라가 있던 녹색의 비를 잡았다.
“주인님. 구했어요!”
이온이 주환을 향해서 그렇게 외쳤을 때, 갑자기 강력한 마법 공격이 이온을 덮쳤다.
이온이 가장 먼저 에너지 빔으로 쓰러뜨렸던 마법사가 지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이온을 공격했던 것이다.
“이온!”
마법 공격에 이온의 몸이 튕겨 나가고 그와 동시에 녹색의 비가 그녀의 손에서 튕겨 나갔다.
녹색의 비를 담고 있는 용기는 실험실의 바닥에 떨어졌지만, 다행히 파손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용기의 모양이 원통형이었기 때문에 용기는 계속해서 굴러갔다.
용기가 굴러가는 곳은 바로 마법사들이 열어 놓았던 바닥의 입구였다.
만약 용기가 그 안으로 떨어진다면 박살이 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을 터였다.
“안 돼!”
놀란 주환은 용기를 줍기 위해서 달렸다.
그러나 거리가 부족했기에 주환은 몸을 날렸다.
데구르르.
그리고 용기가 바닥의 입구로 추락하기 전, 주환은 그 용기를 붙잡을 수 있었다.
“다행이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주환은 순간 바닥의 입구를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한 절벽.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가 그의 눈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저게 뭐야? 어째서 이런 곳이?”
주환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그의 뒤에서 이온이 외쳤다.
“주인님. 뒤에!”
“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려던 주환은 거대한 몸체가 자신을 향해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바로 괴물로 변한 피험자였는데, 지금 이성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기에 실험실 안에 있는 누구라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지금의 목표는 바로 주환이었다.
피험자의 공격을 피하고자 주환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렇지만 그것은 좋은 대응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열려 있는 실험실의 바닥, 그리고 그 입구로 이어지는 구덩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뒤로 물러서면서 발을 헛디딘 주환은 그대로 구멍으로 빠져 버렸다.
“으악!”
“주인님!”
이온의 다리와 팔에서 작은 분사구가 열리며 푸른 불꽃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엄청난 속도로 주환을 향해 날아갔다.
그녀는 바닥의 구멍 앞에 서 있는 피험자를 밀어내며 구멍의 안쪽으로 날아갔다.
“이온!”
이온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주환을 발견했다.
그녀는 출력을 높여 주환에게 도달한 다음 한 손으로 그를 껴안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반대쪽 손으로 절벽의 벽 부분을 붙잡아서 몸을 지탱했다.
콰직!
이온은 절벽을 오르는 클라이머처럼 절벽에 매달렸다.
다른 쪽 손으로는 여전히 주환을 안고 있는 채였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이온이 주환에게 묻자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난 괜찮아. 너는 괜찮아? 아까 공격을 받았었잖아.”
주환의 물음에 이온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괜찮아요. 강한 공격이었지만 수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때, 위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실험실에 남아 있던 마지막 마법사가 피험자에게 살해당하는 소리였다.
두 사람은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어두운 밤의 보름달처럼 실험실로 통하는 문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거예요. 주인님, 꽉 잡으세요.”
이온은 에너지를 분사하면서 자신의 몸을 띄웠다.
그렇지만 지금 주환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아까와 같은 스피드를 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차근히 올라가고 있을 때, 갑자기 위해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피해!”
주환이 그렇게 외치자 이온은 떨어지는 물체를 피하면서 다시 절벽에 몸을 붙였다.
“방금 대체 뭐였지?”
“방금 떨어진 건 괴물처럼 변했던 그 피험자였어요.”
“뭐라고? 어쩌다가 떨어진 거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죽은 것은 확실해요. 생명 반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후두둑.
이어서 또 다른 물체들이 입구에서 밀려 나와 구덩이 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는 주환도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실험실에서 죽었던 마법사와 추종자들의 시체들이었다.
“대체 누가?”
“도망쳤나 했더니 그곳에 있었군.”
입구 쪽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절벽에 매달려 있는 주환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주환은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클레이브!”
비를 쫓는 자들의 수장 클레이브는 함선의 입구에 서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어린 소년이 서 있었는데, 주환으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 소년은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무감정해 보이는 차가운 눈으로 주환을 노려보고 있었다.
클레이브는 이번에는 이온을 눈여겨보았다.
“그쪽에 있는 여인은 처음 보는군.”
그러다가 클레이브는 손가락을 튕겼다.
“혹시 당신이 이곳을 떠돈다는 유령의 정체인 건가?”
그렇지만 이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클레이브 씨 당신이 벌이고 있는 그 끔찍한 실험들은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주환은 클레이브를 향해 소리쳤다.
“그게 당신이 그리고 있는 미래입니까! 이 세상을 그런 괴물들로 가득 채우는 것이?”
“너희 눈에는 그게 괴물로 보이나 보지?”
“뭐라고요?”
“그것들은 하나의 과정이네.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종착지가 아니란 말이지. 그러한 과정을 쌓아 나가면서 결국에는 완벽한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는 거야. 자네는 그러한 최종적인 결론이 궁금하지 않다는 건가?”
“솔직히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와 뜻을 같이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그 뜻은 제가 계속해서 전달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래. 그렇군. 꽤 아까운 일이야. 그 감금 방에서 탈출한 것도 그렇고, 난 자네의 능력을 높이 사는 부분이 있거든. 그렇지만 일을 망칠만한 싹을 지금 미리 잘라 놓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쪽도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지금 부하들을 보내서 자네들을 상대해 주고 싶기도 하지만 아쉽게도 자네들이 있는 그곳은 내 부하들도 절대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라서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죠?”
“지금 자네들이 떨어진 구멍은 우리가 실험체들 중에 폐기물들이나 실패작들을 버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곳이거든.”
클레이브는 손을 들어서 아래쪽의 거대한 어둠 속을 가리켰다.
“저 안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우리조차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이지. 어부들이 심해에 무슨 물고기가 있는지 다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야.”
“역겨운 짓만 골라서 하시네요.”
“아무튼 그곳에서 머리라도 좀 식히고 있는 것이 어떤가?”
그러더니 클레이브는 옆에 서 있는 소년에게 명령을 내렸다.
“페드로. 문을 닫아라. 그리고 저들이 완전히 진이 빠질 때까지 절대 이 문을 열지 말라고 전달해 둬라.”
클레이브의 명령에 페드로라고 불린 소년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함선 바닥의 문이 서서히 닫히면서 클레이브의 모습이 사라져 갔다.
실험실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사라지자 두 사람이 있는 절벽은 어둠에 휩싸였다.
“이온. 이제는 어떡하지? 저 문으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는 거야?”
“네. 저 문은 바깥에서 열 수 있는 문이 아니에요. 우선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나. 그렇지만 지금 너무 어두워서 아래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얼마나 깊은지조차도 알 수가 없는데.”
그때, 주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플래시 라이트를 떠올렸다.
“잠깐 기다려 봐. 내 짐 안에 플래시가 있을 테니까.”
주환이 버둥거리면서 자신의 배낭을 벗으려고 할 때 갑자기 그들의 주변이 환하게 빛났다.
주환은 그 빛의 광원을 알 수가 없었으나 곧 이온이 전신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정도면 주변을 식별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
“너 몸에서 빛을 내는 기능도 있는 거야?”
“네. 저는 모든 적대적 환경에서도 생존하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요.”
이온은 절벽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천천히 부유하면서 주환과 함께 구덩이의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환은 자신들이 있는 구덩이의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까 시체들이 떨어지면서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기에 그로서는 구덩이의 깊이를 대충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주환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그 구덩이가 예상보다도 훨씬 깊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