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주환은 안으로 들어온 다음 해치를 닫았다.
그리고 역시나 몸을 낮추어서 복도를 이동했다.
귀를 기울였지만, 복도에서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무사히 이온의 개인 방에 도착한 주환은 의료실에서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개인 방의 문을 열었다.
[드디어 도착했어요. 제 방에!]
이온이 기쁜 듯 그렇게 소리쳤다.
[주환 님이 없었다면 이곳에 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네 몸을 무사히 쓸 수 있어야 감사받는 보람도 있을 것 같은데. 이제 무슨 문제인지 한번 알아보자고.”
이온의 개인 방은 아까 주환이 보았던 의료실보다 훨씬 작고 살풍경한 공간이었다.
원룸 수준의 좁은 방이었지만 안에는 아무런 가구나 집기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네.”
[네. 제가 이 방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주환은 자신의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허기지는데.”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나중에 쥐라도 잡아 드릴게요.]
“쥐를 먹고 싶은 정도로 배고픈 건 아니야.”
주환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벽에 붙박이 옷장처럼 박혀 있는 문이었는데, 그 문은 불투명 유리로 되어있었으며 그 안에는 인간의 모습을 띠고 있는 실루엣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환이 그 문을 당겨 보았지만 역시나 문은 잠겨 있다.
“열리지 않는데.”
[제 몸을 보관하는 장소예요. 원래부터도 잠금장치가 되어 있죠. 이 보관함을 통해서 함선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원래는 메인 컴퓨터가 망가졌을 때 저의 의식을 이곳으로 옮겼어야 했지만 잘 되질 않았어요. 보관함과 함선과의 연결에 오류가 생긴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되지?”
[우선 아까 감시 카메라에 그 시계를 연결했던 것처럼 이 보관함에도 같은 방식으로 시계를 연결해 주세요. 연결이 끝나면 제가 보관함을 거쳐서 제 몸으로 의식을 옮길 수 있으니까요.]
“알았어. 그럼 해보자.”
주환은 이온의 지시에 따라서 시계의 코드를 보관함의 기계 부품들에 연결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계의 화면에 문으로 보이는 아이콘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문이 서서히 열리면서 누군가 그 문밖으로 걸어 나가는 애니메이션이 이어졌는데 그 문이 닫힘과 동시에 보관함의 안쪽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뭐야?”
놀란 주환은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보관함의 문을 두드리며 안쪽을 향해서 물었다.
“괜찮은 거야?”
그러자 안쪽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주환 님. 저는 괜찮아요. 전송은 성공적으로 잘 끝났어요.”
그가 지금까지 듣던 기계음이 아니라 인간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목소리였기에 주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환은 보관함에서 와이어를 회수하고는 뒤쪽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보관함의 문이 열리면서 안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붉은빛의 머리칼을 지닌 대단한 미인.
인간의 피부와 비슷하게 보이는 재질의 인공 피부를 지니고 있었지만 드러나 있는 관절 부분들은 마치 구체관절인형처럼 구획되어 있었기에 살아 있는 인간과는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온몸을 덮고 있는 하얀색의 바디슈츠는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매우 잘 드러내 주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안드로이드 이온은 주환을 향해서 미소를 지었다.
“이 몸으로는 처음 뵙는 거네요.”
“이게 진짜, 네 몸이었던 거네.”
“네. 이제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주환 님을 지켜 드릴게요.”
“날 지켜주겠다는 말이야?”
“네. 그럼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뭔데?”
“이제부터는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 * *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이온의 개인 방을 나선 뒤 주환은 이온의 뒤를 따라 함선의 안을 이동했다.
지금 두 사람의 목적지는 바로 마법사들이 실험하고 있을 실험실이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녹색의 비를 얻은 다음 그 물질을 의료실로 가지고 가 치료제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함선의 내부는 이온이 잘 알고 있었으니 그녀가 앞장을 서고 주환은 그 뒤를 따랐다.
이온의 뒤를 따르고 있던 주환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온.”
“네, 주인님?”
“어째서 나를 주인님으로 모시고 싶다는 거야?”
“그거야.”
주환의 물음에 이온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 함선 안에는 더는 주인님으로 모실 수 있는 분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죠. 주환 님을 처음 보았을 때 주환 님이야 말로 제가 새로 주인님으로 모실 만한 분이라고 느꼈어요.”
“그렇게 봐준다면 고마운 일이긴 한데…….”
주환이 말끝을 흐리자 이온은 몸을 돌리고는 눈을 빛내며 그에게 다가왔다.
“주인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이온이 그러한 말로 주환을 안심시키고 있을 때.
“이쪽에서 말소리가 들리는데.”
그때, 그들이 있던 복도 쪽으로 한 무리의 추종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복도의 꺾어지는 부분으로 곧장 돌아서 들어온 그들은 이온과 주환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주환을 마주하고 있는 추종자들은 3명.
모두가 단단하게 무장을 한 상태였다.
“너희는 누구냐!”
추종자 중 가장 앞에 있던 이가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다 뒤에 있는 다른 추종자가 주환이 입고 있는 포로 복장을 알아보았다.
“잠깐만. 뒤에 있는 저놈. 클레이브 님 명으로 특별 감옥에 가두었던 놈이잖아!”
“뭐라고? 대체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이제는 싸우지 않으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추종자가 뒤에 있는 추종자 중 한 명에게 말했다.
“우리가 잡을 테니까, 너는 빨리 가서 지원을 불러. 여기 침입자가 있는 것을 보면 잠입한 놈들이 한두 놈이 아닐 수가 있어!”
침입자는 이온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추종자 두 명이 검을 뽑아 들고 이온과 주환을 막아섰다.
그러자 그들의 뒤에 있던 추종자가 그들이 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뛰어가려고 했다.
그 순간, 이온은 앞으로 가볍게 말을 내디뎠다.
주환은 이온의 발바닥에서 푸른색의 불꽃이 분사되는 것을 보았다.
그 추진력을 이용한 이온은 단숨에 앞을 막고 있던 두 명의 추종자를 스쳐 지나가 멀어져 가는 다른 추종자를 붙잡았다.
“뭐야!”
그가 갑자기 자신의 옆에 나타난 이온을 보고 놀랄 새도 없이 이온은 그의 머리를 잡더니 함선의 벽에 처박아 버렸다.
쿵!
그러자 금속 벽에 머리를 처박힌 추종자는 눈, 코,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바닥으로 스르륵 쓰러지고 말았다.
“뭐야!”
“괴물이다!”
남은 추종자들은 저마다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지금 주환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온이 방금 보여 준 강렬한 공격력이 그들의 인상에 선명하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검을 들고는 동시에 이온에게 달려들었다.
두 개의 검날이 이온에게 쇄도했다.
캉!
이온은 자신의 양팔을 들어서 그들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 냈다.
주환은 이온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했다.
이온의 피부는 분명히 부드러운 재질이었지만 추종자들의 날카로운 검은 이온의 피부를 전혀 파고들어 가지 못하고 있다.
칼날이 닿고 있는 부분이 단단하게 경질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온의 몸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나노머신이 부릴 수 있는 재주 중의 하나였다.
이온은 뿌리치듯 양팔을 휘둘러서 두 추종자의 공격을 걷어 냈다.
그러고는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양손으로 그들의 머리를 하나씩 붙잡았다.
파직!
번개가 튀는 듯한 스파크 소리와 함께 이온의 손에 붙잡혀 있던 두 명의 추종자는 눈을 까뒤집고는 온몸이 축 늘어져 버렸다.
그러자 이온은 마치 쓰레기봉투라도 던지는 듯한 모션으로 두 사람을 한쪽 바닥에 던져 버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주환이 이온에게 다가가 묻자 이온은 자신의 손을 보여 주었다.
“제 손은 1만 볼트 정도의 전기 충격을 줄 수 있는 기능이 있어요. 그런 충격을 뇌에 직접 쐈으니까. 당분간은 일어날 일은 없을 거예요.”
“당분간은?”
주환은 쓰러져 있는 자들을 발로 툭 건드려 보았다.
그렇지만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이건 기절한 게 아니라 죽은 것 같은데?”
“음. 그랬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별 상관은 없잖아요? 다 나쁜 놈들이니까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하며 이온은 다시금 주환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빨리 이동해요. 동료가 없어진 걸 알면 놈들이 찾으러 올지도 모르잖아요.”
이온의 말이 맞았기에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진 적들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함선의 복도를 이동했다.
이윽고 주환과 이온은 복도를 빠져나가 함선의 중앙 통로로 진입하였다.
중앙 통로는 그들이 돌아다녔던 복도에 비해서 매우 넓었으며 중앙 통로의 안에는 많은 화물이 적재되어있었다.
짐 하나하나의 크기는 자동차 한 대 크기와 맞먹을 정도였는데 그런 화물들이 몇 개씩이나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렇지만 잘 쌓여 있는 화물들의 수는 많지 않았으며 추락의 충격 탓인지 많은 화물들이 중앙 통로의 바닥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두 사람은 화물들에 몸을 숨겨서 중앙 통로를 가로지르듯 이동했다.
중앙 통로에는 몇 명의 마법사들과 추종자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두 사람을 발견한 이는 없었다.
“저곳이 바로 실험실이에요.”
주환은 이온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작은 격납고를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문이 있었는데, 그 금속 문은 두 개의 문이 양쪽으로 수납되면서 열리는 자동문과 같은 원리의 문이었지만 지금은 절반쯤 열려 있는 상태였다.
“저 문이 닫혀 있었어야 하는데 고장 때문에 열린 모양이에요.”
“지금 저 안에서 놈들이 실험하고 있다는 거지?”
“네.”
“안에 몇 명이나 있을까?”
“보통 6명에서 7명 정도가 와서 실험해요. 전부 다 마법사는 아니고 추종자들도 일을 보조하기 위해서 참여하는 때도 많고요.”
두 사람은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이동하여 반쯤 열려 있는 문의 앞에 섰다.
주환은 살금살금 움직여서 아주 살짝 고개를 내밀어 실험실의 안쪽 상황을 살펴보았다.
의료실도 넓은 공간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실험실은 의료실보다 몇 배나 큰 공간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동차 수십 대 이상이 여유롭게 주차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에 최첨단의 실험 도구들이 가득 차 있었기에 주환은 그 규모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나 넓은 공간이었지만 실험실을 사용하고 있는 인원은 많지 않았다.
“마법사 3명에 추종자 2명.”
주환은 뒤에 있는 이온에게 안에 있는 인원들의 정보를 알려 주었다.
“녹색의 액체는 가지고 있나요?”
“잠깐만.”
주환은 그들이 실험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실험을 주도 하는 마법사들은 수술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추종자들은 바퀴가 달린 이동식 침대를 수술대 쪽으로 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누군가 잠든 듯이 누워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비를 쫓는 자들에게 납치되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