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주환이 선원들의 행방을 궁금해하자 이온은 곧바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저도 당황해서 선원들의 로그를 추적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했죠. 선원들은 이 불시착한 차원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팀을 나누어 탐사를 보냈어요. 처음에는 선발팀이 나갔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후발팀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오르페우스호를 수리해서 이 차원을 빠져나갈 것인지. 아니면 실종될 선발팀을 찾을지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됐어?”
[후발대는 동료를 구하는 선택을 했고 함선을 나섰지만 결국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죠. 그 뒤로 비를 쫓는 자들이 함선에 나타났어요. 그들은 놀랍게도 함선의 일부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키 카드를 가지고 있었어요. 아마 탐사를 나갔던 선원 중 한 명에게서 빼앗은 거겠죠. 그들이 선원들과 같이 오지 않은 걸 보면 선원들은 다 죽은 것 같고요.]
“그럼 놈들이 가지고 있는 키 카드로는 이 의료실은 열지 못했던 건가?”
[네. 그래서 다행히도 비를 쫓는 자들은 이 오르페우스호의 시설 중 일부만을 사용하고 있어요. 함선의 실험실은 추락의 충격 때문에 고장 난 것인지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실험실을 가지고 온갖 끔찍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죠. 시간이 지나면 아마 그들도 나머지 시설들을 여는 방법을 찾을 거예요. 그러면 더욱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죠.]
“빨리 놈들이 그런 미친 짓을 하는 것을 막아야겠네. 그럼 빨리 그 벌레를 꺼내도록 하자.”
[알겠어요. 저쪽으로.]
주환은 이온이 안내하는 대로 의료실의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수술 기계로 다가갔다.
수술 기계의 위쪽은 환자가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투명 원통 모양이었으며 안쪽에는 수술할 수 있는 기계 팔이 여러 개 달린 기계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쪽에는 자동으로 수술을 지정할 수 있는 계기판이 원통을 받치고 있다.
“그러고 보니까 의사는 필요 없는 건가?”
[이 기계는 전부 다 자동으로 수술을 진행해요.]
수술 기계에는 수술의 종류를 결정하고 정보를 입력하는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었는데, 주환은 이온이 시키는 대로 버튼을 눌러서 자신이 받을 수술을 결정했다.
“기생충 제거?”
[네.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는 어떠한 기생충에 감염될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기생충뿐만 아니라 이 기계로 대부분의 의료 상황에 대처를 할 수가 있어요. 지금 주환 님의 감염 상태라면 이 기계로 순조롭게 제거할 수 있을 거예요.]
수술이 결정되자 주환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원통이 양쪽으로 서서히 갈라졌다.
주환은 원통의 안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 누웠다.
등이 딱딱하기는 했지만, 불평을 할 여유는 없었다.
그가 눕자 그것을 인식한 것인지 원통이 천천히 닫혔다.
“이제 수면 가스가 분사될 것입니다. 눈을 감으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시면 수술이 끝날 터이니 긴장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수술 기계의 안내 설명이 끝나자마자 위아래의 분사구에서 수면 가스가 발사되었다.
그리고 주환이 숨을 들이쉬면서 그 가스를 냄새를 맡는 순간 그는 자신이 잠이 든다는 인식조차도 느낄 새가 없이 그대로 기절하듯이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 * *
“이게 내 몸속에 있었단 말이지?”
주환은 밀봉된 유리관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이온에게 물었다.
그가 들고 있는 유리관에는 엄지손가락의 손톱 정도만 한 기괴한 벌레 한 마리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맞아요. 저 벌레에 계속해서 영양액을 주입하면 엄지손가락 정도까지 자라죠. 자라면서 점점 숙주의 몸과 일체화가 되는데 그러면 수술 기계로도 제거할 수가 없어요. 으. 그런데 정말 징그럽긴 하네요.]
주환의 기생충 제거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수술이 끝나고 수술 기계에서 빠져나온 주환은 수술 자국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한 수준의 수술이 이루어졌던 모양이었다.
주환의 몸에서 나온 벌레는 지금 밀봉된 통에 갇혀 주환의 손에 들려 있는 신세였다.
“벌레는 다 제거했고. 그다음에 할 일은 뭐야?”
[그다음은 제 몸을 되찾는 거예요.]
“네 몸?”
[네. 저는 보통 오르페우스의 호의 네트워크 안에서 살고 있지만, 비상사태 때는 저의 개인 방에 보관되어있는 ‘안드로이드’ 육체 안에 제 정신을 전송할 수 있어요. 마치 아까 함선의 네트워크에서 이 시계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요. 그래서 후발대도 안심하고 이 함선을 떠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들은 떠나기 전에 기록을 남겼죠. 만약 제 정신이 다시 복구되었을 시 함선으로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면 안드로이드 육체로 옮겨간 다음 자신들을 추적해서 찾아 달라고 말이죠.]
“그런데 지금까지 넌 네트워크 안에 갇혀 있었잖아?”
[네. 제 정신이 복구되고 나서 로그를 확인 후에 바로 안드로이드 육체로 전송하려고 했지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저의 의식을 전송하는 게 불가능해졌어요. 제 방에는 감시 카메라도 없어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알 도리도 없고요. 아마 추락의 충격으로 뭔가가 파괴되지 않았을지…….]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겠어. 근데 그 몸이 꼭 필요한 거야?”
[물론이죠. 우선 미적 감각으로 탁월해요.]
“음. 또 다른 도움 되는 부분은 없어?”
[별거는 아닌데, 한 부대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 가자.”
이온의 말에 주환은 즉시 움직였다.
그는 의료실의 바깥으로 나가서 주위를 살폈다.
함선의 복도는 좁았으며 미로처럼 구성되어 있었는데 바닥이 단단한 재질이었기에 주변에 사람이 지나다닌다면 발소리를 듣기에 쉬웠다.
주환은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 상태였기에 그의 발소리는 상대에게 거의 들리지 않을 터였다.
이온의 안내에 따라서 주환은 살금살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데 이온. 너 감시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었잖아? 지금 복도에 누가 지나다니는지 볼 수 있지 않아?”
[아까까지는 그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저의 의식을 이 시계로 완전히 옮긴 상태라서 감시 카메라를 보는 건 불가능해요.]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복도를 이동하던 도중 주환은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린 것이다.
주환은 우선 자신의 몸을 최대한 낮췄다.
몸을 낮춘 주환은 복도의 꺾어지는 부분에서 고개를 바깥으로 내밀었다.
그가 통과하려던 구역 쪽에 세 명의 남자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들은 가스파르가 입고 있던 것과는 다른 회색빛의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이 주환이 있는 쪽을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주환이 이온의 개인실에 가기 위해서는 그 복도를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들은 뭐야?”
[저들은 ‘추종자’라는 자들이에요. 비를 쫓는 자들의 마법사들을 돕고 있죠. 일종의 용병들이 아닐까요?]
주환은 시계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이쪽으로는 못 가겠는데? 다른 길은 없어?”
[좀 기다려보는 건 어때요?]
“글쎄. 기다린다고 저 녀석들이 이동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리고 여기서 계속 있다가 다른 녀석들이 오면 포위되어 버릴 수가 있어.”
[확실히 그렇네요. 그럼 조금 돌아가겠지만 다른 길을 알려 드릴게요. 그곳으로 가죠.]
이온은 주환을 다른 길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추종자들이 버티고 있던 복도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 주환은 곧 막다른 길에 봉착하고 말았다.
“여긴 막힌 곳인데?”
[아뇨.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이온의 대답에 주환은 막혀 있는 벽을 다시 한번 자세히 보았다.
벽에는 움푹 들어간 부분이 규칙적으로 나 있어서 마치 사다리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벽으로 가까이 다가간 주환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는 작게 위쪽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었으며 그 문을 열 수 있는 핸들 모양의 손잡이가 있었다.
[그 해치를 열어서 상부 갑판 쪽으로 나갈 수가 있어요.]
주환은 사다리를 올라 해치의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꽤나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것인지 뻑뻑하긴 했지만, 그가 힘을 주자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핸들을 완전히 돌리고 밀어 올리자 해치가 열리면서 햇빛이 비쳐 들어왔다.
눈부심에 잠시 얼굴을 가린 주환은 해치의 바깥으로 나갔다.
위쪽은 바로 함선의 갑판이었다.
갑판으로 올라선 주환은 함선의 규모에 압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함선의 길이는 어림잡아도 수백 미터가 넘었으며 적을 격추할 수 있는 포탑들이 여러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갑판 위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주환은 잠시 마음을 놓고 갑판의 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가 갑판의 주변부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지금 자신이 있는 오르페우스호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오르페우스호는 지금 깊은 계곡의 위쪽에 추락해 있는 상태였다.
계곡은 아래쪽으로 수십 미터나 하강하는 낭떠러지에 가까웠으며 그 계곡 쪽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협곡을 통과해야 하는, 그야말로 천연의 요새와도 같았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주환은 계곡의 밑바닥에서 움직이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손에 괭이나 삽과 같은 도구들을 들고 있었으며 땅을 파거나 벽을 깎아 내는 등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모두 비를 쫓는 자들에게 잡혀 온 사람들일 거예요.]
“저렇게나 많단 말이야?”
[그들은 전국에 퍼져 있으니까요. 전국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들을 속여서 모집해 오거나 억지로 납치해 오고 있죠.]
“그런데 다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 계곡을 요새화하는 거죠. 지금 저기서 일하고 있는 대부분은 벌레로 말미암은 감염이 완전히 진행된 상태예요. 그래서 지금 자신이 일하고 있다는 자각도 없이 최면에 걸린 것처럼 계속해서 일하고 있을 뿐이죠.]
“저렇게 나 많은 사람이 감염된 상태라니…… 네가 아까 저 정도로 심하게 감염된 사람들은 수술로도 벌레를 없앨 수가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아예 방법이 없는 건가?”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아요.]
“무슨 방법이 있는 거야?”
[비를 쫓는 자들이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있는 것을 관찰해 봤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실험에 반드시 녹색의 액체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아마 그게 가장 중요한 실험 재료인 것 같은데 그걸 얻을 수 있다면 의료실에서 실험을 진행해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요.]
“녹색의 액체라면.”
주환은 그것이 클레이브가 자신에게 말했던 녹색의 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실험을 하려면 반드시 저의 몸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제가 주환 님에게 원격으로 알려 드린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로 정밀한 실험은 불가능하니까요.]
“좋아. 어찌 되었건 희망은 있다는 거네. 그럼 이제는 어디로 가면 돼?”
[함장실이 있는 곳으로 거슬러서 올라가면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다른 해치가 있어요.]
“그쪽에는 아무도 없기를 바라야겠네.”
[그곳에 있는 시설들은 다 잠겨 있어서 아마 지키고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주환은 오르페우스호의 갑판을 가로질러서 목적하는 해치로 다가갔다.
해치의 위에는 아까 주환이 보았던 핸들 모양의 손잡이가 있었으며, 주환은 바로 핸들을 돌려 해치를 열었다.
주환은 해치의 구멍으로 머리만을 내밀어서 안쪽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안쪽의 복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