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자신을 인공 지능이라고 소개하는 상대방을 보면서 주환은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카메라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로서는 카메라 렌즈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지만 마치 그 카메라가 상대방의 눈처럼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럼 당신도 이름이 있습니까?”
주환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네. 저는 ‘이온’이라고 불러 주세요. 저도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저는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이니까요.]
“아, 그래. 그럼 좀 더 말을 편하게 하도록 할게.”
[그편이 저도 편하답니다. 그리고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나는 주환이야. 잘 부탁해. 그럼 이제부터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야?”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와 주환 님이 힘을 합쳐서 이 함선을 점거하고 있는 불청객들을 다 쫓아내는 거예요. 그러려면 몇 가지 과정이 필요한데요.]
“그 첫 번째 과정은?”
[우선 주환 님이 가지고 계신 그 시계에 저를 다운로드해 주시면 돼요.]
“다운로드라면?”
그렇게 말하며 주환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운로드를 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떤 식으로 다운로드를 할 수 있어? 와이파이처럼 무선으로 연결될 수 있나?”
[와. 와이파이란 시스템을 사용하신 적이 있나 보네요?]
놀란 것 같은 이온의 목소리에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흔한 거였으니까.”
[그렇군요. 저로서는 개념적으로 알고 있는 시스템이라서요. 아주 옛날에 쓰이던 구시대의 네트워크 연결 방식이죠.]
“오. 그러면 너는 훨씬 신식일 테니까 더 편한 전송 방식이 있겠네?”
주환은 기대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지만, 이온의 대답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아뇨. 지금은 유선으로 전송해야 하네요.]
“네가 더 미래형 기술인데 어째서 더 구식 전송을 해야 하는 거지?”
[그건 제가 지금 이 ‘함선’ 즉, 함선 ‘오르페우스’의 네트워크 안에 갇혀 있어서 그래요. 원래는 저의 의지대로 이 함선을 조종하거나 움직일 수 있었지만 메인 양자 컴퓨터에 이상이 생기면서 저는 지금 마치 미아처럼 함선의 좁은 네트워크를 헤매고 있어요. 저의 권한은 이렇게 감시 카메라로 내부를 관찰할 수 있는 게 전부인 수준이죠.]
“자세한 메커니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를 이 시계로 옮기려면 유선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잖아? 하지만 지금 주변을 봐도 연결할 수 있는 포트는 전혀 보이질 않는걸?”
[그건 제가 안내해 드리는 대로 하시면 돼요. 우선 감시 카메라의 바로 밑에 있는 변기를 딛고 위로 올라서시면 손이 카메라에 닿을 거예요.]
“알았어. 한번 해볼게.”
주환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변기 쪽으로 다가갔다.
감시 카메라는 변기의 바로 위에 설치되어 있다.
그렇기에 화장실이 오픈되어 있기는 했지만 마치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변기 쪽은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갇혀 있는 사람의 인권에 대한 배려일 터였다.
“궁금한 게 있는데.”
주환은 변기를 딛고 올라서면서 이온에게 물었다.
[어떤 게 궁금하시죠?]
“너희 함선에는 왜 이런 감옥 같은 공간이 필요한 거야?”
[저희 함선은 차원 이동을 위해서 기획된 함선이에요.]
“차원 이동?”
주환은 놀라며 그렇게 되물었다.
[네. 전 지구적인 프로젝트를 통해서 다른 차원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러한 다른 차원들을 탐사하기 위해서 개조된 것이 이 함선 오르페우스죠. 원래는 우주 탐사선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우주를 탐사하든 다른 차원을 탐사하든 항상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죠. 만약 적들이 이 함선에 침입했을 때, 그 침입자를 체포했을 때 그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항상 까다로운 문제예요. 그래서 이렇게 감금 방이 필요한 거고요.”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우선 가두어 두는 거로군?”
[그렇죠. 그리고 선원들 간에 내분이 일어나거나 선상 반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함장에게는 그러한 불순분자를 체포하거나 약식 재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그러한 불순분자들을 가두어 둘 때도 이러한 공간이 필요하죠.]
카메라를 잡기 위해서 손을 뻗던 주환은 문득 엘레나를 떠올렸다.
“혹시 나 말고 내 동료가 이곳 어딘가에 갇혀 있지 않아?”
[동료분이라면?]
“그러니까 엘프라는 종족인데. 겉보기에는 소녀지만 나이를 엄청나게 먹은 할머니거든. 검은 머리칼에 기다란 귀를 가지고 있어.”
[그런 분은 본 적이 없네요.]
“그래? 그럼 엘레나는 잡혀 오지 않은 건가?”
주환은 손을 뻗어서 카메라에 자신의 손을 대었다.
“손에 닿아. 이제 어떻게 하면 돼?”
[이제 그 시계에서 잘 찾아보시면 선이 있을 거예요. 그 선을 쭉 빼서 코드 부분을 감시 카메라에 연결하면 돼요.]
주환은 자신이 차고 있는 시계를 잘 살펴보았다.
과연 이온이 말한 대로 시계의 아래쪽 부분에 아주 작은 수납공간이 있었는데, 그가 손톱을 수납공간의 틈에 걸어서 당기자 시계와 연결된 와이어가 쭉 하고 빠져나왔다.
[이제 제 설명대로 하시면 돼요.]
주환은 이온이 설명하는 대로 와이어의 끝에 있는 코드를 감시 카메라의 안쪽에 연결했다.
그러자 꺼져 있던 시계에 불이 들어오면서 다운로드 표시가 되었다.
빈 막대가 점점 차오르는 아이콘이 지나간 후 시계의 화면에 이모티콘을 연상하게 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짠. 성공적으로 이사 왔습니다.]
시계 화면 안의 얼굴 모양 이모티콘이 움직이면서 주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온, 너야?”
[네. 저 맞아요. 와, 근데 여기는 정말 정말 넓은 네크워크를 가지고 있네요. 제가 있던 함선의 양자 컴퓨터보다도 더 큰 잠재력이 있어요.]
좋아하는 이온의 목소리를 들으며 주환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너는 대체 어떻게 이 시계의 사용법을 알고 있는 거지?”
[음. 듣고 보니 그러네요.]
의문스러워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주환은 당황했다.
“잠깐. 뭔지도 모르면서 이 안에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던 거야?”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사용법이 팟 하고 떠올랐을 뿐인걸요.]
이온의 말을 들으며 주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시계는 이온 혹은, 이온이 살던 쪽의 차원과 뭔가 관계가 있는 건가?’
주환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이온이 그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이 함선의 잠긴 문들을 열 수가 있어요. 이 시계의 능력이라면 해킹 정도는 일도 아니니까요. 한번 해보도록 해요.]
“어떻게 할 생각인데?”
[우선 잠겨 있는 문 쪽으로 가까이 가주세요.]
주환은 이온이 시키는 대로 감금 방의 잠겨 있는 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우선 주변에 돌아다니고 있는 적들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시계가 있는 손목을 문의 오른쪽 가운데 부분에 가져다 대주세요. 그쪽에 전자식 자물쇠가 있을 텐데 제가 그것을 해킹해서 열 수가 있어요.]
주환은 이온이 말한 부분에 손목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잠시 후 철컥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감금 방의 문이 자동문처럼 스르륵 열렸다.
주환은 고개를 내밀어서 복도를 지나가는 이가 있는지 다시금 확인했다.
복도는 조용했다.
“이제 그다음 과정은 뭐야?”
[우선 의료실을 찾아야 해요.]
“의료실? 거긴 왜?”
[당연히 주환 님 때문이죠.]
“나?”
주환은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지금은 딱히 아무런 이상도 없어.”
[주환 님은 이곳까지 끌려온 기억이 없으시죠?]
“맞아. 아마 놈들이 부리는 벌레에 감염되어서 그런 걸 테지.”
[맞아요. 아까 그들이 준 음식은 그 벌레를 키우는 영양제예요. 지금은 벌레가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상태라서 정신 조종이 불완전하지만, 그 영양제를 계속해서 먹으면 벌레가 성장하고 그때부터는 완전히 놈들의 노예가 되는 거죠.]
“그럼 나는 지금 벌레에 감염되긴 했지만, 완전히 지배당하는 상태는 아니라는 건가?”
[네. 지금은 억지로 특정 방향으로 걷게 하는 수준? 그 정도밖에는 조종할 수 없지만 감염된 건 감염된 거죠. 그래서 의료실로 가야 하는 거예요. 거기에 있는 수술 기계라면 주환 님에게 기생하고 있는 벌레들을 제거할 수 있어요.]
이온의 설명을 듣고 있던 주환은 자신의 몸에 기생하고 있으면서 성장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벌레를 상상하고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그곳으로 바로 안내해 줘.”
[알겠습니다. 길은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제가 안내하는 대로만 가시면 돼요.]
주환은 이온이 이끄는 대로 함선의 복도를 나아갔다.
* * *
“여기야?”
[네. 여기가 맞아요.]
주환은 잠겨 있는 문 하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문의 옆에는 ‘의료실’이라고 쓰여 있는 안내문이 박혀 있어 그곳이 의료실임을 주환으로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잠겨 있는 기계식 금속 문은 그가 갇혀 있었던 감금 방의 차가워 보이는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의료실의 문은 같은 금속 문이긴 했지만 밝은 하얀색으로 디자인되어있었으며 손잡이가 있는 부분에는 푸른색의 전등이 달려 은은한 불빛이 세련된 느낌을 부여하고 있었다.
주환이 의료실의 손잡이에 시계를 가져다 대자 감금 방의 문과 같이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열렸다.
주환이 그 안으로 들어가자 그의 등 뒤에서 문이 닫히면서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해.”
주환은 의료실 안을 둘러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의료실의 규모를 작은 진찰실 정도라고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의료실의 규모는 굉장히 거대한 수술실에 가까웠으며 주환으로서는 본 적도 없는 수많은 기계 장치가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수술실이면서 연구실 같기도 해.”
주환이 그렇게 감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주환은 주변의 기계들의 용도를 잘 알지 못했지만, 그것들이 약품들의 실험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오르페우스 호의 내부에는 실험실이 따로 존재하긴 하지만 이곳에서도 규모가 작은 실험 정도는 진행을 할 수가 있어요.]
“이곳은 놈들이 사용하지 않은 것 같은데? 최근에 사용한 흔적이 없는 것 같아.”
[맞아요. 오르페우스호가 차원을 넘나들다가 불시착을 했을 때 추락 탓에 메인 양자 컴퓨터에 이상이 생기고 대부분 주요 시설들이 잠겨 버렸어요. 양자 컴퓨터가 문제가 생기면서 네트워크 안에 있던 저도 컴퓨터의 오류를 직접 뒤집어써서 가동 중단 상태가 되어 버렸죠. 인간들의 상황으로 치면 기절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제가 오류에서 겨우 복구되었을 때 이 함선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선원들은 다 어디에 간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