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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64화 (64/182)

64화

가스파르가 청동으로 된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다면 현재 주환은 더 넓지만 역시나 금속으로 뒤덮인 공간 안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딱딱한 침대에 누워서 생각에 잠겨 있던 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로즈버드 빌리지의 숙소에서 총을 들고 침대에 앉아 있다가 깜박 잠이 들어 버린 그 순간에서 끊어져 있었다.

‘그 후로 눈을 떠보니까 이런 곳이란 말이지.’

주환은 온통 금속으로 된 감옥 같은 공간을 둘러보았다.

가지고 있던 모든 짐은 사라져 있었으며 입고 있는 것은 낡은 누더기 같은 죄수복으로 바뀌어 있다.

그가 차고 있던 시계를 빼앗기지 않았다는 것이 주환에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이 시계는 나도 벗을 수가 없는 시계이니까. 가져가지 못했겠지.’

그는 현재 자신이 모종의 방법으로 납치를 당해 감금된 상황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납치한 녀석들은 당연히 비를 쫓는 자일 텐데. 놈들이 대체 어떻게 나를 납치한 거지?’

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이 있는 공간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뭘 할 수가 있을까.’

두 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2층 침대, 한쪽 구석에 있는 오픈된 화장실.

창문은 없었으며 문은 감옥 문과 비슷한 쇠창살 문이 버티고 있었다.

문은 당연히 잠겨 있는 상황.

주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방의 천장에 달린 작은 전등이었다.

전등.

전등은 문명을 상징하는 발명품 중 하나.

지금 주환이 와 있는 이쪽 세계가 누릴 수 있는 과학력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인테리어인 것은 확실했다.

“저것도 아티팩트인가.”

주환은 그렇게 중얼거렸다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 그렇지 않아. 물론 저 전등이 아티팩트인 것은 확실하지만, 문제는 이 방 자체야. 이 방에 적용된 인테리어나 기술들은 내가 살고 있던 현실 세계의 기술과 디자인을 넘어서 있어.’

주환은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지금 아티팩트 안에 있는 거야.’

뚜벅뚜벅.

그때,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주환은 창살 문 쪽으로 다가갔다.

창살 문의 맞은편에는 그가 갇혀 있는 방과 비슷해 보이는 감금 방이 있었으며 좌우로는 통행인이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통로는 네 사람 정도가 한꺼번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였으며 창살 바깥으로 얼굴을 뺄 수가 없었기에 지금 통로를 걷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로서는 볼 수 없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목적지는 내가 있는 방인가?’

주환은 창살 문에서 물러섰다.

그러자 복도를 걷던 인물이 그의 감금 방 앞에서 멈춰 섰다.

“당신은.”

주환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일어나 있었군.”

그는 주환이 로즈버드 빌리지의 숙소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상대.

비를 쫓는 자들의 수장 클레이브였다.

“이번에는 환영이 아니고 본인인 겁니까?”

“그래. 이번에는 본인이다.”

“여긴 대체 어디죠?”

“이곳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본부 중의 하나이지. 참으로 마음에 드는 곳이야.”

“마음에 들다니?”

“우리들의 제대로 된 실험은 사실 이곳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거든.”

“그런데 제 짐들은 다 어디로 간 거죠?”

“그것들은 우리가 잘 보관하고 있다. 위험한 물건들로 가득하더군. 자네를 우리의 본부로 초대한 이상 그런 위험한 물건들을 방치할 수는 없지. 안전을 위해서 우리가 잠시 맡아 두는 거라고 생각을 해두게.”

“돌려주었으면 좋겠는데.”

“자네가 우리에게 협조해 준다면 돌려줄 수도 있지.”

“거절합니다.”

“그런가. 지금은 거절하겠지만 난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 자네는 반드시 우리를 돕게 될 거거든.”

“지금은 근데 무슨 일로 온 거죠? 나를 꺼내 주러 온 겁니까?”

“아니. 배가 고플 것 같아서 말이야. 우리들은 포로라도 정중하게 대하거든. 특히 쓸모가 있어 보이는 포로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말하면서 클레이브는 창살 문의 배식구를 열었다.

창살 문의 가운데에는 작은 문이 달려 있었으며 그 문을 통해서 음식을 집어넣을 수가 있었다.

그 배식구의 크기는 작았기에 그것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식사 맛있게 하도록.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지.”

그 말만을 남긴 채 클레이브는 주환의 감금 방 앞을 벗어났다.

복도를 걸어가던 클레이브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아. 그리고 유령을 조심하게.”

“유령?”

“글쎄. 사실 나도 무슨 유령인지는 몰라. 그렇지만 일하는 녀석 중에서 유령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친구들이 몇 있거든. 자네의 앞에 나타날지도 모르지.”

그 말만을 남긴 채 클레이브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클레이브가 떠난 것을 본 주환은 클레이브가 주고 간 식판을 확인했다.

식판에는 음식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녹색의 끈적한 젤리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주환은 식판 한쪽에 놓여 있는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 숟가락을 이용해 녹색의 젤리를 한술 뜨자 숟가락을 따라서 젤리가 끈끈하게 늘어졌다.

젤리를 한 수저 뜬 주환은 그 젤리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냄새는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 수상한 음식을 입에 넣을 순 없어.’

마음을 굳힌 주환이 식판을 내려놓으려고 할 때.

[저기요. 그건 먹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갑작스럽게 들려온 여성의 작은 목소리.

그는 재빨리 자신이 갇혀 있는 감금 방의 안을 둘러보았다.

감금 방에는 그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대체 누구지?’

그때, 주환은 클레이브가 말했던 유령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유령?’

그렇지만 주환은 이브의 별장에서 보았던 이브의 영체를 귀신으로 오해했던 일을 기억해 냈다.

“혹시 이브 씨인가요?”

[이브 씨는 누구인가요?]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그로서 주환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상대가 이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디에서 말을 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은 누구죠? 귀신입니까?”

[아뇨. 저는 귀신이 아니에요.]

“귀신이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 주었으면 좋겠는데. 이 상태에서는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을 것 같아서요.”

[이상하네요. 지금 상태에서도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 말을 거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제가 좀 안심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그러면 제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오시겠어요?]

“가까이라니 대체 어디에?”

주환이 재차 감금 방을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앞쪽으로 계속해서 걸어오세요.]

주환은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어느 정도 걸어가자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이제 멈추세요.]

목소리의 요구대로 주환은 자리에서 멈추었다.

[고개를 드시면 돼요.]

주환은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서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던 주환은 이윽고 벽의 위쪽 모서리에 툭 튀어나온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감금 방의 전등이 강하지 않아서 발견하지 못했었지만, 그 튀어나온 부분에는 카메라의 렌즈가 달려 있었다.

“감시 카메라?”

감시 카메라의 존재를 확인한 주환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신 지금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겁니까?”

[감시가 아니라 관찰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돼요. 이런 곳에 갇힌 분들이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제가 책임지고 돌봐 드리는 거거든요.]

지금 들려오는 소리는 감시 카메라의 옆에 설치되어 있는 작은 스피커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그때, 주환은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기, 혹시 아까 내가 화장실 가는 것도 계속 지켜보고 있던 겁니까?”

현재 이 감금 방의 화장실은 오픈형이었기에 주환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 않아요. 화장실은 감시카메라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볼 수가 없게 되어 있거든요.]

“어째서 원칙적으로라는 말이 붙는 거죠?”

[당연히 렌즈의 각을 움직여 주면 볼 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아까까지 ‘관찰’하고 있었어요.]

상대의 대답에 주환은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왜 남이 볼일 보는 것까지 훔쳐보는 겁니까?”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그건 정말로 엄연히 ‘관찰’입니다.]

“관찰이라고 이름만 붙인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관찰과 분석은 당연히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이에요. 당신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저로서는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실히 알아야 했거든요.]

“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게 무슨 뜻이죠?”

상대의 말에 주환의 화가 좀 누그러졌다.

“그나저나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저는 이 ‘함선’을 관리하고 있어요.]

“함선?”

[예. 당신은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시는가 보군요.]

“그래요. 정신을 잃은 사이에 끌려 온 거니까.”

[그래서 제가 아까 그 음식을 먹지 말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목소리의 말에 주환은 식판에 담긴 녹색 젤리들을 바라보았다.

“역시 수상한 음식이었던 건가…….”

[성분 분석을 해봐야 알겠지만, 저 음식을 계속해서 먹은 사람들은 그들의 명령에 거부할 수가 없게 되죠.]

“그렇군요. 지금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 것 같은데. 그럼 당신은 지금 나를 도와주려는 겁니까?”

[맞아요. 당신이라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여서요.]

“뭘 어떻게 해결하기를 원하죠?”

[먼저 이 함선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아야 해요. 그리고 지금 이 함선을 점거하고 있는 무리를 쫓아낼 거고요.]

“그런 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주환은 감금 방의 철창문을 바라보았다.

“지금으로서는 이 방의 방문조차 열 수가 없는 신세인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을 도울 수가 있으니까요.]

“어떻게 도울 수가 있다는 거죠?”

[우선 당신의 시계에 저를 ‘다운로드’해 주세요.]

“다운로드?”

주환은 그제야 목소리 주인공의 정체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당신은 혹시 인공 지능인 건가요?”

[인공 지능이라는 말은 저를 설계한 설계자가 저를 규정하기 위해서 명명한 개념일 뿐 저는 저 자신을 ‘의지를 갖춘 네트워크 생태계의 지적 생명체’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해요. 그렇지만 당신이 상식적인 선에서의 인공 지능의 개념에 제가 포함되는 것인가를 물으시는 거라면 그 대답은 ‘맞다’라고 대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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