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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63화 (63/182)

63화

데미안이 이끄는 생존자 공동체에서의 하룻밤이 지난 다음 날.

데스티나는 자신과 루카에게 배정된 막사에서 자신의 장비들을 챙기고 있었다.

데스티나는 툴레오의 갑옷과 검을 몸을 걸쳤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성 들여서 손질을 했기 때문에 몸에 닿는 착용감이 다른 때와는 사뭇 달랐다.

데스티나가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 옆의 침대를 사용하고 있던 루카는 그제야 부스스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암. 일찍 일어났네, 데스티나.”

“내가 일찍 일어난 게 아니라 네가 늦잠을 잔 거다. 어제 막사에 늦게 들어오던데 무슨 일이 있었나?”

데스티나의 물음에 루카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싱클레어 아저씨랑 계속해서 내기했거든.”

“내기?”

“응. 팔씨름. 많이 먹기, 많이 마시기, 팔굽혀 펴기, 높이뛰기. 이것저것 많이 한 것 같은데.”

“그래서 이겼나?”

“응. 내가 다 이겼거든. 그래서 아마 싱클레어 아저씨 좀 삐쳐 있을 수도 있어.”

루카의 말에 데스티나는 웃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싱클레어는 경쟁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니까. 싱클레어는 밀리는 것이 있으면 계속해서 도전하지. 싱클레어가 두 번 이상 도전하지 않은 상대는 데미안…….”

거기까진 말한 데스티나는 말을 아꼈다.

데미안의 이름이 나왔을 때 그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데스티나는 데미안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

오히려 잠자리에 누워 그와의 대화를 깊게 생각했던 것이다.

‘데미안을 존중하고 그의 생각 역시 존중해 보려고 한다.’

장비를 착용한 데스티나는 이번에는 짐을 싸면서 생각을 이어 갔다.

‘그렇지만 우리의 본질은 기사.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기사는 충성하는 자. 불충은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생각들 역시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만약 충성을 맹세할 대상이 없어지면 나 같은 기사는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가? 대체 누구에게?’

“데스티나?”

“응?”

데스티나는 루카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짐을 싸는 건 좋은데 왜 네 가방에 내 다리를 넣고 있는 거야?”

데스티나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어느새 인지 침대에 앉아 있는 루카의 다리를 잡고 자신의 가방 안에 쑤셔 넣고 있었던 것이다.

민망해진 데스티나는 루카의 다리를 놓아 주었다.

“미안하군.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무슨 생각이길래 그렇게 깊게 생각에 잠겨 있던 거야? 혹시 어제 막사에서 데미안과 싸운 것 때문이야?”

루카의 말에 데스티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걸 들은 건가? 확실히 네 귀가 밝긴 하지.”

“아니. 그걸 떠나서 너무 큰 소리로 싸우던걸?”

“그랬나.”

데스티나는 창피해졌다.

“무슨 이야기인지 들은 건가?”

“들리긴 했는데 서로 어려운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신경을 안 썼거든.”

“너희는 신경 쓸 필요 없다. 너희에게는 최대한 피해가 안 가게 할 생각이니까.”

“음. 그래. 그것도 좋지만. 나중에 고민 상담 할 거 있으면 말해 줘.”

“그래도 되나?”

“동료니까.”

“그래. 고맙다. 그럼 어서 떠날 채비나 하자. 데미안이 곧 떠날 거라고 언질을 주었으니까.”

데스티나는 짐을 챙겨서 막사의 밖으로 나갔다.

그렇지만 떠나기 위해서 분주하게 사람들이 움직일 것으로 생각한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공동체 내부의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떠날 준비를 하는 게 아니었나?”

데스티나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데미안이 그녀를 향해서 다가왔다.

데미안은 떠날 준비가 다 된 것인지 모든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준비는 끝나셨습니까?”

“그래. 나는 이미 준비를 마쳤지만.”

데스티나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분위기는 떠나는 분위기가 아니로군. 계획에 변경이 있는 건가?”

“아뇨. 계획에 변경은 없습니다. 단지 선발대와 후발대가 나뉘어 있는 것일 뿐이죠.”

“선발대와 후발대?”

“예. 비를 쫓는 자들이 찾아온다는 날짜가 코앞에 다가온 이상 빨리 움직이는 것이 맞는 듯하여 선발대와 후발대로 나누었습니다. 저희는 기사들도 많지만, 민간인들도 많으므로 한꺼번에 이동했을 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더구나 위험 지대를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지대를 통해 우회해서 이동할 예정이기 때문에 전체가 로즈버드 빌리지로 이동하면 놈들이 정한 기한을 넘기게 될 겁니다.”

“확실히 그렇군.”

“그렇기에 후발대, 사실 후발대라고 해도 공동체 인원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들은 싱클레어가 이끌고 로즈버드 빌리지로 이동을 할 겁니다. 도착해서는 그 정착지 옆에 자리를 잡을 예정이고요.”

“그럼 선발대는 누구인가?”

“선발대는 저와 단장님, 루카 님, 그리고 아르테어 님입니다.”

“수가 적군.”

“수는 적지만 실력에서 부족한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데스티나는 데미안의 목소리에서 자연스러운 자신감을 느꼈다.

데미안이 말하면 허풍이 아니다.

데스티나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희들은 말을 끌고 갈 겁니다.”

데미안이 손가락을 튕기자 기사 중 한 명이 말 네 필을 이끌고 그들을 향해서 왔다.

“말이 있었군.”

“말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네 명이서 탈 수 있을 정도는 되죠. 말을 타고 적당한 지점을 단숨에 돌파할 생각입니다. 그러면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겠죠.”

“철저한 준비, 고맙네.”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럼 아르테어 님과 루카가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출발을 하도록 하지.”

“데스티나 님!”

데스티나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데스티나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준비를 끝마친 아르테어와 루시아를 볼 수 있었다.

“루시아?”

“데스티나 님! 데미안 님! 저도 선발대로 같이 가고 싶습니다!”

루시아는 두 사람을 향해서 그렇게 외쳤다.

데미안이 아르테어를 바라보자 아르테어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후발대로 따라오라고 설득을 하였지만, 반드시 선발대로 가고 싶어 하기에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말은 네 필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 있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다. 싸움이 벌어지면 너를 신경 쓰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상관없습니다! 제 몸은 어떻게든 제가 지키겠습니다!”

“지킬 수 있었다면 그 나무의 도움을 받지 않았겠지.”

데미안의 날카로운 지적에 루시아는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용기를 내어 다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제 동생이 생사불명인데 저 혼자만 이곳에 있을 수는 없어요! 그리고 제 동생은 제가 알아볼 수 있습니다!”

루시아의 부탁을 듣던 데스티나는 데미안에게 말했다.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말은 루카와 같이 타게끔 하면 되겠지. 두 사람은 몸무게가 가벼우니까 말도 그다지 무리를 느끼지 못할 거야. 그리고 나도 한 가지 부탁하지.”

“말씀하십시오.”

“저 아이가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검을 한 자루 가져다주게.”

데스티나의 부탁에 데미안은 말을 가져온 기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이윽고 기사는 기사들이 사용하는 롱소드 보다 짧은 숏소드를 한 자루 가져와 데스티나에게 주었다.

숏소드를 건네받은 데스티나는 루시아에게 다가가 그 숏소드를 등에 찰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성전 기사단의 단장 데스티나의 이름으로 너에게 부탁하마.”

“네?”

놀란 루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데스티나는 말을 이었다.

“너의 동생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너의 의지다. 그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하는 법. 그렇기에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은 단 한 가지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살아남는 거다.”

* * *

가스파르는 자신의 주변에 가득 찬 어둠을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기절해 있던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이 좁고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양손은 꽉 묶여 있었기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가스파르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묶여 있는 손으로 자신을 가두고 있는 공간의 벽을 만져 보았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작은 방에 감금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벽면은 굴곡진 데다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봐!”

참을 수가 없어진 가스파르는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나를 대체 어디에 가둔 거야! 여긴 어디야!”

그러자 밖에서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깨어났네?”

“너희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별건 아니고. 이제부터 너한테 너희의 아지트에 대한 정보를 들을까 해서 말이야. 그것 좀 준비하느라고.”

“아지트의 정보라고? 내가 그걸 실토할 것 같나?”

“빨리 말해 주면 우리 쪽도 편할 것 같은데?”

“식사를 제한하고 물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내 입에서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 거라면 그런 방법으로는 소용이 없을 거다. 마법의 길은 고행의 길. 며칠, 몇 주간의 단식 수행은 일상에 가깝지.”

“그래? 흑마법사들은 힘들겠네? 우리 정령술사들은 맛있는 거 다 먹으면서 편하게 수행하거든.”

가스파르는 엘레나의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고통에도 강하다. 우리는 자신의 몸에 직접 실험을 하는 것도 마다치 않는 진리의 구도자들. 자신의 몸에 변이의 실험을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그런 고통을 이겨 낸 내가 그런 정보를 쉽게 말해 줄 것 같나?”

“뭐라고 시끄럽게 떠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슬슬 바닥이 따뜻해지는 것 같지 않아?”

“뭐라고?”

가스파르는 엘레나의 말처럼 자신이 앉아 있는 부분에 점점 열기가 오르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슨 짓을?”

거기까지 말한 가스파르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봐. 지금 내가 있는 곳이 혹시 그 청동 인형의 안쪽인가?”

“정답이야. 갈로스의 안쪽은 비어 있거든. 네가 기절한 사이에 갈로스를 열고 너를 그 안에 집어넣었지.”

“그리고 지금 느껴지는 열기는…….”

“지금 갈로스를 불로 달구고 있거든.”

“뭐라고!”

놀란 가스파르가 황급히 일어서려고 했다가 천장에 머리를 부딪쳤다.

“조심해! 네가 부딪친 부분이 바로 갈로스의 등 부분이거든. 지금 갈로스는 엎드린 상태로 달궈지고 있어. 아주 커다란 프라이팬이나 다를 바가 없는 거지.”

“네놈! 으앗! 뜨거!”

이제 바닥은 그가 버틸 수가 없을 정도로 달궈진 상태였다.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던 가스파르는 최대한 바닥에 닿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서 쭈그려 앉았다.

“이 정도 고문에는 굴하지 않는다!”

가스파르가 호기롭게 외쳤지만, 엘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엘레나와 갈로스가 나누는 대화가 그의 귀에 작게 들려올 뿐이었다.

“여기 불에다가 마시멜로 구워 먹으면 참 맛있을 것 같은데.”

“엘레나 님. 마시멜로가 뭔가요?”

“아, 넌 모르는구나. 하얀색에 쫀득한 먹거리가 있는데 이게 구워 먹으면 참 달달하고 맛있거든. 몸은 좀 따뜻해졌니?”

“저는 감각이란 게 없어서 따뜻한 게 뭔지도 모르겠어요.”

“응, 그래. 아주 좋네.”

다리를 태우는 엄청난 열기와 화상으로 말미암은 미칠 듯한 고통.

그리고 내부의 공기까지 뜨겁게 데워져 가스파르는 숨을 쉴 수가 없는 수준까지 몰려갔다.

쿵쿵!

가스파르는 미친 듯이 내부의 벽을 때려댔다.

“열어! 열라고!”

“나오고 싶으면 정보를 말해. 하지만 말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아. 루시아에게 들으니까 너희들 정착지 사람들을 불덩이로 태워 죽였다고 하던데?”

그다음에 이어지는 엘레나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몸이 구워지는 고통을 겪어 보니까 어때? 너희들은 자신들의 몸에 실험이니 뭐니 하면서 고통을 극복했다고 착각하지만, 고통이라는 것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이제부터 그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게.”

“열어! 뜨거워!”

“걱정하지 마. 그게 내가 원하는 거니까.”

엘레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갈로스의 밑에 장작을 던져 넣었다.

갈로스는 마치 팔굽혀 펴기를 하는 사람처럼 자신의 배를 바닥에 살짝 띄운 채로 엎드려 있었으며 엘레나는 그 아래쪽에 계속 불을 피우고 있었다.

갈로스의 안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벽을 긁거나 두드리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절대 참을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것을 참고 있는 가스파르 역시 정신력이 대단했다.

그렇지만 엘레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너희는 절대 버티지 못해.”

엘레나가 그렇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안쪽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말할게……. 말해 줄게……. 제발 살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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