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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62화 (62/182)

62화

“나무하러 가자.”

저녁을 배불리 먹고 기분이 좋아져서 풀밭에 대자로 뻗어 있는 루카에게 다가온 이는 바로 싱클레어였다.

손에 도끼를 든 채로 자신에게 그렇게 제안하는 싱클레어를 보면서 루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었다.

“이런 밤에?”

“그래. 오늘은 보름달이니까 횃불이 없어도 앞이 잘 보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런 밤이니까 나무를 하러 가야 하는 거야.”

“그것참 이상하네.”

“이상해도 어쩔 수 없지.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싱클레어의 물음에 누워 있던 루카는 놀라운 탄력으로 물구나무를 섰다가 몸을 튕겨서 공중제비를 돌았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가지, 뭐.”

잠시 후, 싱클레어와 루카는 숲 안을 거닐었다.

루카는 자신의 참마도를 챙겨 왔으며 싱클레어의 손에는 여전히 도끼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등에는 나무를 짊어질 수 있는 지게가 메여 있었다.

“나무하러 우리만 가는 거야?”

“그래. 이 숲은 아무나 나무를 하러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그런가?”

그때, 낮에 데스티나를 공격했던 것과 같은 종의 칼날 덩굴이 두 사람을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싱클레어는 그것쯤은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들고 있던 도끼를 휘둘러서 덩굴들을 잘라 버렸다.

휘릭.

날카로운 날 부분이 잘리자 덩굴들은 싱클레어를 묶기 위해서 올가미처럼 움직였다.

그러자 싱클레어는 역으로 덩굴들을 붙잡아 팔에 둘둘 감고는 자기 쪽으로 강하게 당겼다.

“하압!”

싱클레어의 팔 근육이 불끈거리자 그 힘을 이기지 못한 덩굴들이 투둑거리며 끊어지고 말았다.

쉽게 끊어 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덩굴의 섬유는 굉장히 질긴 형태로 변이했기 때문에 일반인이라면 잘 드는 칼이 없이는 끊는 것이 불가능했다.

“오. 나도 해볼래.”

루카는 경쟁심이 생긴 듯 자신도 덩굴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양손에 힘을 주어서 줄다리기를 하듯 덩굴을 잡아끌었다.

역시나 덩굴들은 루카의 힘으로 가닥가닥 끊어져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때?”

루카가 싱클레어를 보면서 그렇게 묻자 싱클레어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진짜 힘 하나는 대단한 꼬맹이라니까.”

“농사지으면 별일이 다 있거든. 힘과 체력이 없으면 농사짓기 힘들어.”

“그런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이래서 아무나 나무를 할 수 없는 거구나?”

“그래. 보통 나무를 할 때 밤에 나무를 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 숲에서는 사정이 달라. 이 숲에서는 밤에 나무를 하는 게 효율적이지. 이런 변이된 생명체 중에서 특히 변이 식물들은 밤에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니까.”

“아. 아저씨가 그냥 심심해서 나온 게 아니었구나?”

“내가 심심해서 여기까지 나왔겠냐? 보통은 밤에 기사들이 팀을 이루어서 나무를 하곤 해. 그렇지만 오늘은 네가 있으니까 둘이서도 충분히 나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건 걱정 하지 마. 나는 내 키보다 훨씬 높게 나무를 쌓아서 옮길 수 있으니까.”

“그래. 기대해 보지.”

두 사람은 기사들이 주로 나무를 구하는 구역까지 도달했다.

그곳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야말로 경쟁적으로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쿵!

도끼를 이용해서 정석적으로 나무를 베어 내는 싱클레어와는 달리 루카는 참마도를 붕붕 휘둘러서 나무들을 거칠게 베어 냈다.

나무를 베고 있던 루카가 싱클레어에게 물었다.

“아까 밥 먹고 있을 때 데미안이란 사람의 막사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래. 나도 들었다.”

“데스티나랑 데미안이랑 싸운 건가?”

“나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좀 걱정이긴 하군. 두 분은 상관과 부하 사이이기도 하지만 서로 소꿉친구와 다름이 없는 사이이거든. 그리고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서로 언성이 높아지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별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네. 제대로 힘을 합쳐야 황제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루카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싱클레어는 곧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그래?”

“우리는 괜한 걱정을 하는 거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 두 분은 소꿉친구와 다름이 없는 사이. 잠깐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서로 믿고 의지하는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니까.”

“그럼 다행이고. 영차!”

루카의 기합 소리에 싱클레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장작의 묶음들을 지게에 차곡차곡 쌓고 있는 루카를 볼 수 있었다.

“벌써 끝난 거냐?”

싱클레어는 루카의 놀라운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더 할 수 있지만, 이 이상 쌓으면 아마 이 지게가 버티질 못할 거야. 이 정도면 내려가도 될 것 같은데.”

싱클레어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면서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나무 베는 건 내 특기 중 하나인데 대체 넌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해진 거지?”

“음.”

루카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농사? 나무 베는 건 요령이 필요하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싱클레어는 손을 내저었다.

“농사가 체력과 근력이 필요하다는 건 알아. 나무 베는 것도 요령이 있으면 더 빨리 베어 낼 수 있지. 하지만 단순히 농사만 한다고 힘이 그렇게 세질 수는 없어. 나는 전투기술뿐만 아니라 평생 근력운동을 달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그런데 너는 나보다 덩치도 훨씬 작고 몸무게도 덜 나가. 몸무게로 치면 내가 2배 이상이지.”

“왜 이렇게 힘이 세냐고 물으면 나도 사실은 잘 모르겠어. 농사 말고 딱히 다른 걸 한 적은 없거든. 그리고 오늘은 날이 좀 좋기도 하고.”

“날이 좋다니?”

루카는 손을 들어서 하늘 높이 떠 있는 보름달을 가리켰다.

“나는 저런 보름달이 떠 있는 날에는 왠지 더 힘이 강해지는 것 같거든.”

* * *

데스티나는 아르테어의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데미안의 막사 밖으로 나갔을 때, 때마침 데미안의 막사로 오던 아르테어와 마주쳤었다.

아르테어는 데미안의 막사로 들어가기 전에 데스티나에게 루시아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열매에서 꺼내진 뒤로 계속해서 수면 상태에 빠져 있던 루시아는 지금은 환자용 간이침대에 앉아 있었다.

데스티나가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루시아는 깜짝 놀라면서 데스티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데스티나는 손을 들어서 루시아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렴. 나는 네 편이니까.”

데스티나의 말에 루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 아까 저를 깨워주신 아르테어란 분에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이곳을 지휘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이야기를 다 들었죠. 그렇지만 이 숲에서 꽤 무서운 일을 당해서…… 그래서…….”

“그래. 알고 있다.”

데스티나는 근처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서 루시아의 앞에 앉았다.

“이렇게 무사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네.”

데스티나는 루시아의 팔을 확인했다.

“상처도 완전히 아물었군. 흉터가 좀 남긴 했지만.”

“흉터 따위는 아무런 상관 없어요. 저희 부모님은 죽임을 당하셨는데 이따위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가족을 생각하는 네 마음은 잘 알겠다. 그렇지만 네 몸을 좀 더 돌보도록 해라.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 다음에도 운이 좋을 거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루시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렇지만 제가 안전한 곳에 숨어 있으면 제 동생은 누가 구해 주죠? 저한테는 이제 가족은 제 동생밖에 남지 않았어요. 제 동생은 지금 그 나쁜 마법사들이 데려갔을 거예요. 저는 무슨 방법을 쓰든 동생을 구해야 해요.”

데스티나는 루시아의 손을 잡았다.

“알겠다. 너의 그 용기를 존중한단다. 그렇지만 이제 성전 기사단이 움직일 것이니 반드시 네 동생을 구할 수 있을 거다.”

“정말요?”

“그래. 성전 기사단의 단장인 나 데스티나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데스티나의 말에 루시아의 눈이 커졌다.

“성전 기사단의 데스티나 님이신가요?”

“그래.”

루시아는 기뻐하며 데스티나의 손을 들어서 자신의 볼에 비볐다.

“이렇게 존경하는 분을 만날 수 있다니 꿈만 같아요. 실종되신 줄 알고 있었는데.”

“여러 도움을 받아서 이렇게 다시 성전 기사단으로 돌아왔단다. 그런데 나를 존경한다니 쑥스럽구나.”

“저희 어머니가 데스티나 님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도 노력하면 데스티나 님처럼 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랬구나. 그렇지만 너는 너의 용기를 보여 주었다. 너는 반드시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다.”

“데스티나 님…….”

“그리고 나중에 엘레나를 만나면 감사 인사를 하도록 하거라.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엘레나의 부탁을 받아서이니까.”

“엘레나가요?? 엘레나가 로즈버드 빌리지에 돌아오신 건가요?”

“그래. 입이 험한 엘프인 것은 사실이지만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엘프인 건 사실이니까. 이제 성전 기사단과 같이 정착지로 돌아가면 만날 수 있을 거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루시아는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데스티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피곤할 테니 쉬려무나.”

데스티나는 아르테어의 막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데미안과 아르테어와 마주쳤다.

“데스티나 님.”

데미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데스티나를 불렀지만 데스티나는 차마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루시아는 깨어 있다. 들어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안 그래도 그럴 참입니다.”

데미안이 아르테어의 막사로 들어갔지만 아르테어는 그의 뒤를 따르지 않고 데스티나의 앞에 섰다.

“데스티나 님.”

“왜 그러십니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아르테어는 말을 하려 했지만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하려던 이야기를 삼키고는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데스티나 님이 가지고 계신 갑옷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마법사에게 받은 갑옷입니다. 착용자의 잠재 능력을 깨워 주는 갑옷이라고 하더군요.”

“네. 툴레오의 갑옷은 ‘툴레오 교단’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구 중의 하나입니다. 성구답게 신의 축복이 담겨 있으며 착용자의 잠재력을 깨워 주는 것도 분명히 사실입니다. 다만.”

“다만?”

“그 툴레오의 갑옷은 오래 사용하는 것은 절대 좋지 않습니다. 툴레오 교단의 신 툴레오는 축복을 내려주면 반드시 대가를 원하는 신. 성구의 힘은 강력하지만, 그 성구들을 오래 사용한 사람들의 결말은 그리 좋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사용하면서 그런 부분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데스티나는 슬라임으로 변한 자신의 몸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그 대가가 무엇이든 황제 폐하의 힘이 될 수 있다면 저는 기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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