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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58화 (58/182)

58화

황제가 종전 협약서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위와 같은 데미안의 말에 당황한 데스티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데스티나는 지금 데미안의 의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종전 협약서의 존재를 황제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데스티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말이 되질 않아. 그럼 대체 누구와 합의하기 위한 종전 협약서인 건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데미안 협약서를 품속에 집어넣으면서 다시 데스티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토니아는 저에게 협약을 요청한 겁니다. 황제의 동의는 필요 없습니다. 이 협약서에 제가 사인을 하고 다시 이토니아에 넘기면 협약이 체결되는 것이죠.”

“자네는 그럴 권리가 없어.”

“정말로 그럴까요? 이토니아는 저희의 황제와 협약을 맺고 싶어 했지만 지금 황제와 그 측근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죠. 이러한 긴급 상황에서는 제가 황제의 대리로서 협약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월권이긴 하지만 자네 독단으로 협약을 진행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자네가 말했듯이 지금은 공식 절차를 따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협의의 내용은 우리가 바라마지 않았던 평화 협정. 그러한 협정은 빨리 이루어질수록 좋겠지. 그렇지만 마치 황제 폐하가 없는 것처럼 구는 것은 군인으로서는 불충한 모습이다.”

“황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데미안의 말에 데스티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는 느꼈다.

“무슨 그런 무례한 말을! 황제 폐하는 아직 살아 계신다!”

데스티나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아까도 말했듯 황제 폐하는 지금 ‘영원의 교차점’이라는 곳에 계신다. 그리고 그곳에 우리를 보내 줄 수 있는 안내인을 포섭한 상태고. 자네의 의무는 빨리 황제를 모시고 수도를 탈환하는 것이지.”

“영원의 교차점. 솔직히 저로서는 처음 듣는 곳입니다. 아무튼, 황제가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 황제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분은 지금 측근들과 함께 좀비들에게 저항하며 마물들을 토벌하고 계신다!”

“지금 말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황제가 저항하고 있다고 하는데 대체 어디에서 저항하고 있을까요? 데스티나 님이 아까도 말씀하셨듯 영원의 교차점은 다른 차원입니다. 심지어 자유롭게 왕래하기도 힘든 곳이라고 했지요. 황제는 그저 그곳에 숨어서 사태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황제는 좀비들의 세상이 되었을 때 곧바로 다른 차원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지요. 그에 비해서 저는 성전 기사단이 와해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물들을 퇴치하고 사람들을 구해 내었죠.”

“그것은 기사로서의 당연한 본분이다.”

“예.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제가 하는 모든 일을 황제의 이름을 걸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황제의 명성이 더욱더 드높아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은지 아시겠습니까?”

“설마 황제 폐하가 마물들을 토벌하고 백성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고 자네가 한 구조 활동이 황제 폐하의 활동으로 왜곡되어 퍼졌다고 말하는 건가?”

“단장님도 황제가 마물들을 토벌하고 있다는 소문을 믿고 계신 것을 보니 그런 왜곡이 꽤 널리 퍼지긴 했나 보군요.”

데스티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녀로서는 가장 믿고 의지하던 데미안의 이러한 불충한 행동이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하의 공은 곧 황제 폐하의 은덕. 누가 지휘하였던 그것이 황제 폐하에 대한 불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데스티나 님.”

데미안은 혼란스러워하는 데스티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덮었다.

“제가 긴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지요.”

데스티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황권은 존속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제가 구출한 생존자들, 그 누구도 황제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궁중의 마법사들을 지휘하여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이는 바로 황제입니다.”

“듣고 싶지 않다. 데미안 너는 이 틈을 노려서 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는 건가?”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대체 원하는 것이 뭐지?”

“데스티나 님. 당신이 다음 차기 왕조의 시작이 되는 겁니다.”

데스티나는 데미안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기에 데스티나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그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네.”

“아니요. 외면하시면 안 됩니다.”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거야.”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죠. 데스티나 님이 다음 왕조의 시작이 되시는 겁니다.”

“그건 반역이다!”

데스티나는 데미안에게서 멀어졌다.

“그것을 반역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데미안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러한 세계에서 말씀이십니까?”

“황제 폐하는 살아 계신다. 그분이 살아 계신다면 이 왕국은 이어진다. 그런데 어찌 기사된 자가 그런 불충한 생각을 하는가?”

“저에게 실망하셨습니까?”

“대체 언제부터 그런 마음을 먹은 거지?”

“글쎄요. 언제부터 일까요?”

데미안의 눈에 분노가 어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부터일까요?”

“자네 어머님이?”

“네. 좀비들이 수도를 점령했을 때 어머님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셨죠. 수도가 위험에 빠지자마자 황제가 측근들을 이끌고 수도에서 도망쳐 버렸으니까요.”

“어머님이 그때 돌아가셨던 건가?”

“데스티나 님의 아버님도 그때 돌아가셨지요.”

데미안의 말에 데스티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데스티나 역시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황제는 수도를 버리고 떠났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끝까지 수도에 남아서 좀비들을 막았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셨다는 것을.

“저는 단장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무엇을?”

“단장님은 어째서 아직도 황제에게 얽매이시는 겁니까?”

“그것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황제. 그런 황제를 따르는 것에 어떠한 미래가 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단장님은 누구나 능력에 따라서 살 수 있는 그런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는 것 아니셨습니까?”

데스티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녀는 잊어버리고 살았던 바로 그 꿈.

어릴 적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 버리게 되었던 바로 그 꿈.

놀랍게도 데미안은 데스티나의 그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어릴 적 치기 어린 말일 뿐이었다. 설마 자네가 그 말에 아직도 얽매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는 그 말씀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단장님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전 왕조의 기틀과 전통이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세워질 수 있는 바로 그런 기회가 오는 겁니다. 이때야말로 단장님의 꿈을 펼칠 수가 있는 겁니다. 제가 끝까지 보좌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저희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막는 자가 나온다면!”

데스티나는 지지 않고 맞섰다.

“그런 자들이 나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동포들에게 칼을 들이댈 것인가?”

데미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데스티나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가 바로 대답하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쉽사리 대답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작은 흐름 따위는 거대한 파도를 막을 수 없습니다.”

“말을 돌리지 마. 자네는 자네의 뜻을 위해서 죄 없는 자들을 벨 것인가? 그러면서도 그런 피 묻은 깃발의 위에 나의 이름을 세우겠다는 건가?”

“피는 제가 뒤집어쓰겠습니다.”

데미안의 눈빛은 광기를 넘어선 차분함이 있었다.

“단장님은 아무런 걱정 하지 마십시오.”

“내가 알던 자네가 아니로군.”

“아니요. 저는 여전히 저였습니다. 바뀐 것은 단장님이 아닙니까? 평등을 지향하시던 단장님이 아직도 황제에 대한 충성을 관두지 못하시는 것을 보니 슬프기까지 하군요.”

“내가 어째서 그 꿈을 버렸는지 아는가?”

“기사 생활을 너무 오래 하신 탓이겠지요. 충성은 기사의 미덕이니까요.”

“아니. 데미안, 바로 자네 때문이다.”

데스티나의 폭탄과도 같은 발언에 데미안의 평온한 표정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그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있었다.

“저는 평생 단장님을 보좌했습니다. 그 일에 제 모든 인생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저 때문에 꿈을 포기하셨다고요? 지금 단장님은 황제를 변호하기 위해서 궤변을 만드신 겁니다.”

“아니야.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가 아니다. 네가 신분을 넘어서기 위해서 죽을 만큼 노력했듯 나 역시도 죽을 만큼 노력했었다. 바로 천재 검사인 너를 뛰어넘기 위해서.”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죽을 만큼 노력했지. 내가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서. 한계를 뛰어넘고 그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가 있었지.”

“그렇습니다. 성전 기사단의 여자 단장이라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었던 일이니까요.”

“내 힘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다! 성전 기사단의 부단장인 데미안의 존재와 구국의 12 가문의 일원이라는 가문의 힘으로 올라간 것일 뿐.”

“무슨 말씀이십니까? 단장님은 단장님의 힘으로 올라가신 겁니다.”

“내가 모르고 있었던 줄 아나? 나를 단장으로 올리기 위해서 자네가 뒤에서 힘을 쓴 것을?”

데스티나의 다그침에 데미안은 잠시 머뭇거렸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자네가 평생 나를 보좌하는 조건으로 나를 단장 자리에 밀어 올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나 데스티나가 아니라 바로 너 데미안이었을 뿐이다. 자네가 메인이고 나는 부속물일 뿐이었던 거지.”

“과정이 어떻든 단장님은 꿈을 이루신 겁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서 희생을 한 거고요.”

“그런 희생은 필요 없었네! 자네는 자네의 인생을 살고 나 역시 나의 인생을 사는 거야. 그렇지만 나는 내 힘이 아닌 다른 이의 힘으로 꿈을 이룰 수 있었지. 그때 깨달은 거야.”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내가 그렇게 부수고 싶었던 그 기존의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을. 그 무게감을 안 순간 나는 쉽게 그 모든 것들을 없애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네.”

“단장님은 계속 그곳에서 멈춰서 계실 겁니까?”

“자네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지만 그게 본심인가?”

“저의 진심입니다.”

“그럼 어째서 나를 새로운 왕조의 시작으로 두어서 또 다른 계급을 만들려는 건가?”

“아무렇게나 던져진 자유는 또 다른 혼돈을 낳을 뿐입니다.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구심점이 필요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죠. 단장님은 그 구심점이 되어 주시는 겁니다. 단장님 외에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죠.”

“그게 자네가 생각하는 새로운 이상적인 세상인 건가?”

“그렇습니다, 단장님.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황제가 다시 돌아온다고 하여도 이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겁니다. 단장님. 저희와 함께하시죠.”

데미안은 데스티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데스티나는 내밀어진 그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데스티나는 그의 손을 향해서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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