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데미안의 막사 안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작은 이동식 탁자가 막사의 가운데, 그리고 주변에는 간이침대와 책상만이 놓여 있는 검소함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커다란 식탁에 테이블보 그리고 그 위에 놓여 있는 맛있는 음식들.
데미안은 그 모든 것들을 직접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있었다.
데미안은 조명이 부족하지 않도록 테이블의 위에 몇 개의 초를 놓고는 불을 붙였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의자는 두 개.
데스티나와 단둘이서 식사를 할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 정도면 단장님도 마음에 들어 하시려나?”
테이블의 세팅 상태를 확인하면서 데스티나를 기다리던 데미안은 문득 데스티나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 * *
퍽!
덩치 큰 남자의 무거운 주먹이 데미안의 얼굴에 떨어졌다.
“악!”
데미안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그의 앞에는 길쭉한 몽둥이를 든 남자가 데미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프잖아!”
데미안은 부어오른 얼굴을 만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십수 년 뒤에 왕국 제1 검사로 성장하게 되는 성전 기사단의 부단장은 어릴 적에는 그저 평범한 소년일 뿐이었다.
아니. 그의 어린 시절은 사실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시절의 그는 기사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빈민 중에서도 빈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 감히 우리 집 빵을 훔쳐!”
몽둥이를 들고 있는 덩치 큰 사내는 빵집 주인으로, 자신의 집에서 빵을 훔친 데미안을 쫓아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데미안은 훔친 빵을 챙긴 채로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는 다리까지 도망쳤지만, 그 다리를 다 건너지 못하고 빵집 주인에게 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까짓 빵 좀 가져갔다고 이 난리야!”
“그까짓 빵?”
분노한 빵집 주인은 발로 데미안을 걷어찼다.
“컥!”
데미안은 걷어차인 배를 붙잡고 앞으로 몸을 숙였다.
“빵 한두 개쯤 훔쳤으면 귀엽기나 하지. 이렇게 빵을 몽땅 훔쳐 가면 나는 굶어 죽으라는 이야기냐?”
“젠장. 치사하게……….”
빵집 주인은 데미안이 꼭 쥐고 있는 주머니를 억지로 빼앗았다.
그 안에는 꽤 많은 양의 빵이 들어 있었다.
“어린놈이 욕심은 많아서. 우리 집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물건을 훔치고 다닌다고 소문이 자자한 놈이 바로 너였지? 그렇게 마구잡이로 훔치고 다니면 당연히 이렇게 걸리게 되는 거다. 멍청한 녀석아.”
“엄마가…… 일을 나가실 수가 없어. 굶어 죽지 않으려면 그 정도 양은 필요하단 말이야.”
“아아. 네 엄마라면.”
그다음 이어지는 빵집 주인의 말에 데미안은 움찔했다.
“거리에서 몸 파는 여자잖아. 몸을 험하게 굴리니 젊은 나이에도 그 모양인 거지.”
“우리 엄마를 모욕하지 마, 이 새끼야!”
데미안은 분노에 차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어른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만. 에미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애비 놈은 어떤 놈인지. 아니. 네 애비는 네 에미 손님이었겠지.”
“닥쳐! 우리 아버지는!”
데미안은 주변에 떨어져 있는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성전 기사단의 기사란 말이야!”
데미안은 양손으로 막대기를 들고 빵집 주인에게 달려들었다.
검술을 배운 적 따위는 없었다.
그저 분노에 몸을 맡기고 달려들 뿐.
빵집 주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애송이 같은 놈이.”
빵집 주인은 들고 있던 몽둥이를 가지고 데미안을 적당히 상대해 줄 생각이었다.
그는 데미안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몽둥이를 앞으로 찔러 나갔다.
본능이었는지 아니면 계산된 행동이었는지 데미안은 그것을 빠르게 쳐 낸 다음 단숨에 거리를 좁혀서 막대기로 빵집 주인의 머리를 때렸다.
빡!
막대기가 빵집 주인의 머리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렇지만 막대기의 속이 부실했던 것인지 별 타격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막대기가 부러져 버렸다.
그렇지만 그 행동은 빵집 주인을 극도로 흥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망할 놈이!”
빵집 주인은 완력을 이용해 데미안을 붙잡은 다음 다리의 바깥으로 데미안의 몸을 밀어냈다.
“으앗!”
빵집 주인이 손을 놓으면 데미안의 몸은 추락하여 강물에 빠지게 될 것이다.
“뭐? 네 아비가 성전 기사단의 기사라고? 니 에미가 그런 거짓말을 하든?”
“거짓말이 아니야! 어머니가 분명 그러셨어! 내 아버지는 훌륭한 기사라고! 성전 기사단의 기사님이라고!”
“정신을 못 차렸구만. 너 혹시 수영은 할 줄 아냐?”
“뭐?”
“저 강 제법 깊은 강이거든. 그렇지만 수영할 줄 알면 빠져나올 수 있을 거다. 찬물에 한 번 들어갔다 오면 정신을 차리겠지.”
“하지 마!”
데미안이 버둥거렸지만, 빵집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데미안을 강에 던지려고 할 때 단호한 목소리가 그를 막았다.
“그만두게!”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빵집 주인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금발 머리의 예쁜 소녀가 서 있었다.
몸이 거의 다리 바깥으로 나가 있던 데미안은 고개를 겨우 들어서 소리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손에는 목검을 들고 있었으며 특이하게도 남성복을 입고 있다.
상의는 군인들이 입는 제복이었으며 바지는 하얀색이었는데 바지의 발목 부분에 각반을 대었기 때문에 특수한 목적으로 활동성을 높인 복장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
소녀가 빵집 주인에게 묻자 그 위엄에 눌린 빵집 주인은 데미안을 다시 다리 안쪽으로 올려 주었다.
빵집 주인은 소녀의 복장으로 미루어 보아 그 소녀가 평민 계급이 아님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일 아닙니다. 이놈 우리 집 빵을 훔쳐서 이렇게 붙잡은 것뿐입니다.”
“정말인가?”
소녀는 데미안에게 물었다.
데미안은 자신을 잡고 있는 빵집 주인의 손을 뿌리치고는 두 사람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네가 무슨 참견이야!”
그 모습에도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빵집 주인에게 질문했다.
“그 빵은 팔 수 있는 것인가?”
“예? 아니. 이 빵은….”
“이런 먼지 구덩이에서 굴렀던 빵이니 팔 수는 없겠지. 그렇지 않나?”
“물론 그렇습니다.”
“그렇군.”
소녀는 품에서 돈을 꺼내서 빵집 주인에게 건넸다.
“이 정도면 계산이 되는가?”
“아…… 이 정도면 계산하고도 남습니다만.”
“그래. 그럼 빵의 손해에 대해서는 이 정도면 복구가 된 것 같군. 그러니 저 소년을 용서해 줄 수 있겠나?”
“아. 아니. 그렇지만.”
빵집 주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대신 계산해 주셨으니 어쩔 수가 없군요.”
그러자 소녀는 빵집 주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예? 무슨?”
“그 빵을 나에게 주게.”
“예…….”
빵집 주인이 빵을 넘겨주자 소녀는 데미안에게 저벅저벅 걸어가서 빵이 든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가져가라.”
“뭐?”
“내가 빵의 대금을 계산했으니 이 빵의 주인은 나다. 이 빵은 너에게 주도록 하지.”
소녀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데미안은 빵 주머니를 들고 있는 소녀의 팔을 쳤다.
“앗.”
그러자 빵 주머니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람 동정하지 마!”
데미안은 방향을 돌려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빵집 주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집안의 아가씨이신진 모르겠지만 저런 놈한테 신경 쓰지 마십쇼. 저런 도둑놈들은 천성이 모자란 놈들이라 그런 친절을 베풀어도 삐뚤게 받아들이는 법입니다.”
“그런가. 천성이 나쁜 친구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때, 데미안이 다시 그들 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빵 주머니를 집어 들고는 다시 도망치면서 소리쳤다.
“사람 동정하지 말란 말이야!”
빵 주머니를 들고 헐레벌떡 도망치는 데미안의 뒷모습을 소녀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것이 데스티나와 데미안의 첫 만남이었다.
* * *
‘그때는 나도 정말 어렸군.’
데미안은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막사의 밖에서 아르테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미안 님. 데스티나 님을 모셔 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안으로 모셔 주세요.”
그러자 막사의 입구가 슬쩍 열리며 데스티나가 안쪽으로 들어왔다.
아르테어에게 빌린 드레스를 입고 있는 데스티나의 모습은 데미안이 보기에 정말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거. 움직이는 데 상당히 불편하군.”
데스티나는 자신이 입고 있는 푸른색의 드레스를 이리저리 만져 보면서 쑥스럽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데미안은 매너 있게 상석의 의자를 빼서 데스티나가 앉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데스티나가 자리에 앉자 데미안은 그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블에 차려져 있는 음식들을 보던 데스티나는 막사 안을 잠시 둘러보았다.
“의자가 2개밖에 없군.”
“예.”
“다 같이 식사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같이 오신 동료분은 싱클레어 님이 잘 돌봐 드릴 거니까요.”
“그렇지만.”
“오늘 저녁은 단장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진지한 이야기인가 보군.”
“부담 갖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우선은 편하게 식사하시죠. 언제나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특별히 부탁을 해서 마련한 요리입니다.”
“그런가. 미안하군. 무리하게 한 모양인데.”
“아닙니다. 어서 드시죠.”
데미안의 권유에 데스티나는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차려진 식사들은 대체로 대단히 훌륭했다.
식사를 하면서 데스티나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들에 대해 데미안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데미안은 데스티나가 주환과 만난 다음에 겪었던 이야기들을 대단히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주환이라는 분은 다른 세상에서 온 군인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맞아.”
“강합니까?”
“강해. 강하면서도 신기한 무기들을 가지고 있어. 그 무기들로 지금까지 잘 헤쳐 나갈 수 있었지.”
“그래서 동료분들과 ‘비를 쫓는 자들’을 쫓고 계신 거군요. 역시 단장님다우십니다. 정착지를 습격하고 다니는 그러한 악한들은 당연히 토벌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성전 기사단은 떨어져 있어도 성전 기사단의 이념을 계승하기 마련이죠.”
“그렇지. 그나저나.”
데스티나는 자신을 반기던 성전 기사단의 기사들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렸다.
“구국의 12 기사들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단장님과 저, 그리고 싱클레어 단 3명뿐 입니다. 나머지는 다 행방불명이죠.”
“역시 그랬군.”
“저희가 계속해서 돌아다녔던 이유 중 하나도 다시 12 기사들을 모으는 것이었죠. 그렇지만 지금은 방침을 좀 바꿀 생각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터전을 잡고 그곳을 키워 나가면 그 소문이 퍼져서 행방불명된 옛 동료도 그 소식을 듣고 몰려들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군. 그렇다면 다시 수도를 탈환하는 게 좋지 않겠나?”
“수도 말씀입니까?”
“그래. 수도를 탈환하면 다시 황제 폐하를 그곳에 모실 수가 있네.”
황제라는 단어가 데스티나의 입에서 나왔을 때 데미안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지만 데스티나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