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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54화 (54/182)

54화

* * *

괴목에게서 루시아를 넘겨받은 데스티나 일행은 생존자 공동체가 자리를 잡고 있는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루시아가 들어 있는 열매는 싱클레어가 짊어지고 있었으며 데미안과 데스티나는 앞장서서 걷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는 듯 그 분위기가 대단히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뒤를 조용히 따르고 있는 아르테어의 모습을 보고 있던 루카는 자신의 옆에서 걷고 있는 싱클레어를 툭 쳤다.

“왜?”

“데스티나랑 데미안은 꽤 사이가 좋아 보이네?”

“그야 당연하지. 부단장님은 단장님을 굉장히 존경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실력은 데미안이 더 낫지 않아?”

“물론 부단장님의 실력은 대단하다. 솔직히 나도 그 실력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지.”

“아저씨의 자존심 때문에?”

“아저씨가 아니야! 에라, 모르겠다.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라. 아무튼, 나 같은 경우 성전 기사단에 몸을 담은 지 벌써 25년이 넘었지. 부단장님의 나이만큼 기사 생활을 해온 거나 마찬가지야.”

“실력이 상당하겠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어지간한 싸움은 져 본 일이 없어. 특히 완력은 성전 기사단 안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할 수 있지.”

“데미안과 겨뤄 본 적 있어?”

“있지.”

싱클레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한참 늦게 들어온 후배가 나와 동료를 제치고 부단장으로 올라섰으니 반발심이 들었어. 검술이 실력이 일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질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어떻게 되었긴. 탈탈 털렸지. 제대로 된 공격을 단 한 번도 성공시키질 못했어.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전율이 일어날 정도라고.”

“데미안이 데스티나랑 겨뤄 본 적은?”

“그런 적은 없어. 부단장님이 한사코 거부했거든.”

“의외네. 데스티나는 자기 실력으로는 단장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단장님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거 측근들은 다 알고 있어. 실제로도 부단장님과 겨룰 수 있는 검사는 이 왕국 안에서조차도 거의 없을 거야. 단장님의 실력으로는 부단장님과 겨룰 수는 없으시겠지. 단장님은 단지 가문의 힘으로 자신이 단장이 된 것뿐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아니야. 물론, 그 영향력이 컸지만, 단장님의 인품과 통솔력은 단장의 자리에 오르기에 손색이 없었거든.”

“데미안은 아무런 반발도 없었어?”

“오히려 그 반대야.”

“반대?”

“데스티나 님이 단장의 자리에 오르는 데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된 분이 바로 부단장님이거든.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부단장님은 단장님을 대단히 존경하고 있어.”

“그래. 그런 사이라는 거네.”

루카는 순간 조용히 데미안의 뒤를 따르고 있는 아르테어를 눈여겨보았다.

그때, 루카는 아르테어의 뒷모습에서 보이는 처연함을 느끼면서 그녀가 가지고 있을 감정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저 사람. 데미안을 좋아하고 있구나.’

* * *

데미안 일행이 넓은 개활지로 나갔을 때, 데스티나는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갖추고 있는 군용 막사들을 볼 수 있었다.

막사의 주변에는 성전 기사단 갑옷을 입은 단원들이 빈틈없이 경비를 서고 있었으며 막사의 군데군데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데미안이 책임지고 있는 생존자들의 공동체였다.

데미안은 데스티나를 이끌고 공동체 쪽으로 이동했다.

데미안을 발견한 성전 기사단 단원들이 그에게 경례했는데 그 옆에 서 있는 데스티나를 보고는 모두가 경악에 빠진 표정이 되었다.

“단장님!”

누군가가 소리를 치자 그 외침이 이리저리 전달되면서 무리에서 웅성거림이 커져 나갔다.

“단장님이라고?”

“단장님이 돌아오신 거야?”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태산같이 굳건하게 서 있던 기사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자리를 이탈하여 데미안과 데스티나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데스티나의 모습을 확인한 기사들은 들고 있던 창을 하늘로 뻗으면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단장님이 살아 계신다!”

“단장님이 돌아오셨어!”

“다시 성전 기사단이 부활할 수 있다고!”

기사들의 사이에 흐르는 엄청난 열정의 에너지에 데스티나는 우선 손을 내밀어서 그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모두 잘 버텨 주었다.”

“단장님도 무사하셔서 천만다행입니다.”

“내 한 몸은 어찌 되어도 좋다. 자네들이 이렇게 무사한 것을 보니 조금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가 있겠군.”

“단장님…….”

기사들의 사이에서 기쁨의 기류가 흐르고 있을 때, 데미안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단장님이 돌아오셔서 모두가 들뜬 것은 알겠지만 우선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 그리고 단장님도 오랜 여행으로 피곤하실 테니 휴식을 취하게 해드려야지.”

“네! 알겠습니다!”

데미안의 지시에 기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자신들의 맡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기사들을 지나 병영 안으로 들어가자 데스티나 일행은 새로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야외에 짓는 간이 병영들은 본래 군인들이 지내는 숙소의 집합이지만 지금은 하나의 작은 마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안쪽에는 민간인들과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흙으로 만들어진 아궁이에서 음식들을 만들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숙소는 불편한 야외 막사였지만 그 안에서 생활하는 민간인들의 얼굴에는 미소와 만족감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 데스티나를 보면서 데미안이 설명해 주었다.

“저희가 돌아다니면서 구출한 사람들입니다. 다들 오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기에 저희 쪽에서 보호하고 있죠.”

“대단히 훌륭하군. 이것이야말로 기사의 참모습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계속해서 숫자가 늘고 있기에 저희들도 적당한 자리를 잡고 정착을 할 생각입니다. 그곳에서부터 다시 차근차근 나아가려 합니다. 그때야말로 단장님의 지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부단장이 생각한 일이니 부단장이 원하는 대로 진행하도록 하게.”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는 차츰 자세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우선은 루시아라는 아이의 상태를 보도록 하죠. 싱클레어 님.”

데미안이 호명하자 싱클레어는 짊어지고 왔던 열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데미안은 아르테어에게 부탁했다.

“아르테어 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아르테어는 품속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그것은 무기로 쓰는 칼이 아니라 치료에 사용하는 칼로, 현대 의학에서 사용하는 메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칼이었다.

아르테어는 칼로 열매의 한가운데를 갈랐다.

“양쪽으로 벌려 주시겠어요?”

아르테어의 부탁에 싱클레어와 루카는 각자 양쪽을 잡고 당겼다.

그러자 열매 안쪽의 진득한 액체에 잠겨 있던 루시아의 몸이 위쪽으로 떠올랐다.

“살아 있는 게 확실합니까?”

데스티나의 물음에 아르테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 아이는 지금 잠들어 있을 뿐이에요. 이 열매의 과즙에는 상대를 더 쉽게 치료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잠이 들게 하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요. 그렇기에 지금 이 소녀는 소위 ‘마취’ 상태에 있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아르테어는 손을 넣어서 루시아의 팔을 들어 보였다.

그녀의 팔에는 기다란 흉터가 나 있었다.

“아주 큰 상처를 입었었나 보군요. 흉터가 남기는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완벽에 가깝게 치료가 된 상태예요. 상처의 위치를 보면 중요한 근육이 끊어진 상태였기에 만약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팔에 큰 장애가 남았을 수도 있어요. 정말 다행이죠.”

“이 소녀는 언제쯤 깨어날 수 있겠습니까?”

“몇 시간 뒤쯤에는 일어날 수 있을 거예요. 혹시 모르니 제 막사에서 간호하도록 하죠.”

아르테어는 이 공동체에서 치료사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싱클레어 님. 이 소녀를 아르테어 님의 막사로 데려가 주세요.”

“예. 부단장님.”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명을 따라서 열매 안에서 루시아를 건져 올린 다음 아르테어의 막사로 갔다.

루카와 아르테어 역시 싱클레어의 뒤를 따르려고 할 때, 데미안은 아르테어를 불렀다.

“아르테어 님.”

“예. 데미안 님.”

“아르테어 님께는 한 가지 더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만 하세요.”

“저희 단장님이 씻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편하게 입으실 만한 옷을 하나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데미안의 말에 데스티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르테어 님은 바쁘실 것 같으니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그러자 데미안은 자연스럽게 데스티나의 손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데미안의 행동에 데스티나는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지만,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아르테어 님이 잘 도와주실 겁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시면 제 막사에서 조촐하게나마 환영 파티를 열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내 동료는 도움이 필요하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과의 약속은 아직은 시간이 남았지요. 내일 출발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그럼 아르테어 님.”

“알겠습니다. 데스티나 님. 이쪽으로.”

아르테어가 데스티나를 안내하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데미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슥슥.

데스티나와 아르테어는 지금 아르테어의 막사에 있었다.

데스티나는 자신의 앞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행을 오래 해서 그런지 확실히 피곤해 보이는군.’

데스티나는 그렇게 자가 진단을 하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데스티나는 깨끗한 물로 목욕한 뒤 아르테어의 옷 중 하나를 빌려 입은 상황이었다.

데스티나는 아르테어의 권유로 지금 머리 손질을 받는 중이었다.

아르테어는 의자에 앉아 있는 데스티나의 뒤에 서서 빗으로 그녀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머리칼이 많이 상했네요.”

“그렇습니까. 아까 이상한 괴물에게 먹혔는데 그 영향이 남아 있나 보군요.”

“괴물에게 먹히셨다고요?”

자신이 이야기를 너무 건너뛰었다는 생각을 한 데스티나는 아까 있었던 사투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데스티나 님은 대단하시네요.”

아르테어는 순수하게 감탄한 모양이었다.

“데미안 님이 의지하실 만해요.”

“글쎄요. 실력으로는 데미안에게 전혀 상대되질 않으니까. 아까 같은 상황이더라도 데미안이었다면 웃으면서 금방 헤쳐 나왔을 겁니다.”

“그럴까요? 제가 본 데미안 님은 항상 데스티나 님의 이야기를 하고 계셨어요.”

“제 이야기를?”

“네. 데미안 님은 정말로 강하신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단장님을 더 강한 분으로 인정하고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육체적인 부분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이랄까. 사실 저로서는 그분의 의중을 다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니까요.”

“부하로서의 충심일 겁니다. 데미안은 언제나 그랬으니까요.”

“두 분은 서로 신뢰하고 계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데미안은 안심하고 제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입니다. 그 점은 확실하죠.”

머리를 다 빗은 아르테어는 끈을 이용해서 데스티나의 머리를 묶어 주며 그녀에게 물었다.

“데스티나 님에게 데미안 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방금 드린 것 같습니다만.”

“동료로서가 아니라.”

“동료로서가 아니라면?”

데스티나의 물음에 진짜 묻고 싶었던 질문을 삼켜 버린 아르테어는 머리를 묶는 것을 완벽하게 끝마친 다음 말을 이었다.

“아니요. 실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잊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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