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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52화 (52/182)

52화

“여러분! 드디어 저희 정착지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촌장이 정착민들을 향해서 그렇게 외치자 그에 응하듯 곳곳에서 환호성이 오른다.

“맞습니다! 드디어 안심할 수가 있어요!”

“이제는 걱정이 없잖아요!”

뛸 듯이 기뻐하는 정착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저 저쪽의 하수인 한 명을 쫓아낸 것일 뿐인데 모두 축제 분위기가 되어 버렸군.”

걱정하는 그와는 달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엘레나는 정착민들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뭐, 어때?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거고 지금은 즐기도록 놔두는 것도 좋지.”

지금 로즈버드 빌리지는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가스파르의 분신을 쓰러뜨린 뒤 두 사람은 촌장에게 결과를 보고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본체가 아니기에 언제든 그들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촌장은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리고 정착민들에게 두 사람이 가스파르를 완전히 쓰러뜨린 것처럼 전달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엘레나와 주환은 정착민들 사이에서 한순간에 정착지를 구한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저녁, 주환과 엘레나는 촌장을 통해서 정착지의 공용 식당에 초대받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을 칭송하는 환영 파티였다.

주환과 엘레나는 공용 식당의 가장 큰 테이블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주변에서는 정착민들이 웃고 떠들면서 즐겁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때, 촌장이 두 사람의 테이블로 다가와 음식을 내려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마음껏 즐기시죠.”

“아아. 감사합니다.”

주환은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거 말고 과일은 없나?”

엘레나는 촌장이 가져온 음식의 구성에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아. 죄송합니다. 요즘 과일을 구하기가 힘들어서요.”

“음. 그래? 나는 과일이 없으면 식사하기가 힘든데. 당장 과일을 구하러 다녀와야겠네. 며칠 걸릴지도 몰라.”

“예? 지금 엘레나 님이 계시지 않으면…….”

“미안. 내가 식성이 좀 까다로워서.”

“거, 걱정하지 마십시오. 구하기가 힘들다고 했지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그 말만을 남기고 촌장은 두 사람의 테이블을 떠났다.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주환의 시선을 느끼며 엘레나는 입을 열었다.

“말했지만 나는 공짜로 일해 주는 거나 마찬가지야. 이 정도 호사는 누릴 권리가 있는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너 인간 음식도 아무 무리 없이 먹을 수 있으면서.”

“나는 식도락가거든.”

엘레나와 이야기하는 것에 지친 주환은 촌장이 가져다준 음식들을 집어 먹기 시작하였다.

식사를 하던 주환은 엘레나에게 물었다.

“데미안이라는 기사 말인데.”

“응.”

“어떤 사람이야?”

“데스티나에게 안 들었어? 데미안은 데스티나의 부하였으니까 데스티나가 가장 잘 알 것 같은데.”

“데스티나에게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엄청난 실력을 갖춘 천재 검사라는 것 정도? 그 정도밖에 들은 것이 없어.”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검사. 전설의 마수 돌렉을 쓰러뜨린 영웅. 나도 아는 건 그 정도뿐이야.”

“내가 아는 거랑 크게 다를 건 없네.”

“그렇기는 하지만 다른 소문들도 있긴 하지.”

“소문?”

“너도 알다시피 성전 기사단의 단장은 데스티나이지. 성전 기사단은 그 구성원 중에서 가장 강한 12명을 뽑아서 ‘구국의 12 기사’를 선정하는 것으로 유명해.”

“구국의 12 기사라.”

“구국의 12 기사는 구국의 12 가문을 본떠서 만든 거야. 아무튼, 구국의 12 기사 안에는 단장과 부단장이 포함되는데, 특히나 단장에는 12 기사 중 가장 강한 기사가 오르는 것이 원칙이야.”

“그렇지만 단장은 데스티나가 하고 있잖아? 데스티나 스스로 인정한 것이지만 데스티나는 자신이 구국의 12 가문에 속하는 가문이기 때문에 가문빨로 성전 기사단의 단장에 임명될 수 있었다고 말했었어.”

“본인 스스로 말한 것이니까 틀림은 없겠지.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아무리 구국의 12 가문의 일원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식의 임명은 분명한 반발을 불러오기 마련인데, 그 모든 불만을 잠재운 이가 바로 데미안이었다는 거야.”

“데미안이?”

“그래. 데미안이 데스티나가 단장이 될 수 있었던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거지.”

“음. 그러면 데미안은 그저 권력욕이 적었던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은 다른 소문도 퍼져 있어.”

“무슨 소문?”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데미안이 데스티나를 숭배한다는 거지.”

“데스티나를?”

“그래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거야. 아무튼, 데미안이 데스티나를 굉장히 신경 쓰고 있는 것은 확실해. 아마 데스티나도 마찬가지일걸?”

“그런가. 그래서…….”

주환은 루시아를 구하기 위해서 망설임 없이 정착지를 떠나던 데스티나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렸다.

물론, 데스티나가 루시아를 구하려고 하는 마음 자체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환은 그녀가 바로 움직일 수 있었던 원동력을 제공한 것이 바로 데미안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 여기 과일을 가져왔습니다.”

어디서 구해 온 것인지 촌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과일이 담겨 있는 접시를 엘레나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보던 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식사를 다 하셨나요?”

촌장의 물음에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해서 좀 쉬고 싶네요. 혹시 제가 묵을 만한 방이 있을까요?”

* * *

촌장에게 방을 안내받은 주환은 들고 있던 짐과 돌격 소총을 한쪽 구석에 내려놓았다.

‘초가 어디 있는 거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겨우겨우 초를 찾아낸 주환은 성냥을 이용해서 초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초의 불빛이 방 안을 가득 채웠는데, 그 순간 주환은 자신이 그 방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휙!

주환은 반사적으로 권총을 뽑아서 침대에 겨누었다.

침대에는 정체 모를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상대방은 가스파르와 같은 로브를 입고 있다.

후드의 안쪽에는 하얀색의 머리칼과 수염을 지닌 노인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주환의 시선을 끄는 것은 강렬함과 공허함을 함께 띄고 있는 노인의 기묘한 눈빛이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나는 클레이브.”

노인은 순순히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비를 쫓는 자들을 이끌고 있다.”

“당신이?”

주환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를 쫓는 자들이 조만간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 수장이 직접, 그리고 혼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긴장하지 마라.”

클레이브는 그렇게 말했지만 주환은 권총을 내리지 않았다.

“지금 너와는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단지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

“제가 지금 당신을 공격하지 않을 거로 어떻게 확신합니까?”

“지금 나를 공격해 봐야 소용없을 거다. 이 몸은 본체가 아니라 환영으로 된 분신이니까. 내 쪽에서도 공격할 수 없지만 너의 공격도 나에게 통하지 않지.”

지금 주환이 보고 있는 건 클레이브의 정신체.

클레이브의 정신체 분신은 이브의 영체와 비슷했지만, 거울과 같은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 이브의 영체와는 달리 그의 정신체는 특별한 매개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흑마법의 달인 중에서도 극소수만 구사할 수 있는 최상급의 기술이었다.

클레이브는 주환이 들고 있는 무기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 들고 있는 무기. 가스파르의 분신을 없앤 그 무기인가?”

“맞습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당신이 정말로 본체가 아니라 분신이 맞는지 확인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죠.”

“의심할 필요는 없다.”

주환은 권총을 겨눈 채로 클레이브에게 물었다.

“아무튼 나를 만나러 오다니, 대체 무슨 속셈입니까?”

“그 물음에 답하기 전에 나 역시도 질문을 하나 하도록 하지.”

“뭡니까?”

“너는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인가?”

“그렇다면?”

“그래. 그러면 너의 그러한 기술들이 모두 설명이 되는군.”

“그게 문제가 됩니까?”

“아니,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오히려 매우 흥미가 돋는 일이지. 네가 정말로 다른 세계에서 온 자라면 너에게 권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다.”

“뭡니까?”

“우리에게 합류할 생각은 없나?”

“그게 당신의 제안입니까?”

“우리는 다양하고도 수준 높은 기술들을 필요로 한다. 네가 가지고 있는 기술들이라면 충분히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그런 걸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합니까?”

“조건이라도 있는 건가?”

“조건 따위는 없습니다. 이제 이쪽에서 질문하고 싶은데, 지금 당신들은 생존자들의 정착지를 습격해서 사람들을 납치하고 있죠. 그렇지 않습니까?”

“납치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군.”

“그건 당신들이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겁니까?”

“그 답은.”

클레이브는 손가락을 들어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우리의 이름에 담겨 있다.”

“이름? 혹시 비를 쫓는 자들이라는 그 이름?”

“그렇다. 너는 이 세상을 좀비의 세상으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처음에는 인간의 시체를 병사로 쓰기 위한 마법사들의 계획이었다고 들었죠.”

“시체를 사용한 좀비 군단. 마법사들이 생각한 것은 그런 수준의 일이 아니야.”

“알고 싶습니다. 사실 마법사들이 계획을 위해서 마족들을 소환했지만, 그 마족들을 컨트롤하는 것에 실패했죠. 그리고 마족들이 시체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까지도 좀비로 만들어 버린 거고요. 이게 진실 아닙니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일부만을 알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머지의 진실은 무엇이죠?”

“좀비들을 만든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마족들이 만들어 낸 한 무리의 비구름이다.”

“비구름?”

“그래. 그것은 평범한 비가 아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녹색의 비. 그 비는 생명체에 닿는 순간 그 생명체의 육체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

“그렇다면 처음에 생겨난 좀비들은 그 비를 맞은 인간들이었단 겁니까?”

“그래. 그렇지만 사실 좀비들은 육체 변화의 최종 결과물이 아닌 변화에 실패한 찌꺼기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 녹색의 비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지. 그 변화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지금의 마법사들과 현자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게 당신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그 녹색 비를 얻는다는 것은 생명체를 인공적으로 진화시킬 수 있는 기적의 영약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 우리는 전 세계를 떠돌면서 녹색 비를 찾아다니고 있다. 녹색 비를 내리게 해는 비구름은 불규칙적으로 출현하기에 많은 양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실험을 하기에는 충분한 양을 가지고 있지.”

“설마, 당신들. 그 약을 납치한 사람들에게 사용하고 있는 겁니까? 인체 실험을 자행하고 있다니….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고 있는 거냐고요!”

“아니. 우리는 좀비 따위는 만들지 않는다. 아까도 말했듯이 좀비들은 제대로 육체의 변이가 진행되지 않는 쓸모없는 찌꺼기들일 뿐, 오히려 우리에게는 방해가 되는 변수일 뿐이지.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기적의 비를 이용하여 이 세상의 진화를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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