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숲속에서 서로 우연히 만나게 된 성전 기사단의 단원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서로 웃고 감격하며 한참이나 서로에 대한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어떠한 상황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던 루카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기다려 주었다.
그러던 루카는 한쪽에 서 있는 인물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 인물은 데미안, 싱클레어와 동행하고 있던 여사제였다.
루카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는 고개를 돌려 루카를 바라보았다.
루카가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자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겨우겨우 재회의 회포를 풀 수 있었던 것인지, 데스티나는 그들의 사이에서 돌아와 루카를 이끌고 무리 쪽으로 돌아갔다.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시선을 느낀 루카는 신기하다는 듯 데스티나에게 말했다.
“단장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까 데스티나 너 진짜 단장 같기는 하다.”
루카의 말에 싱클레어가 화난 표정으로 루카에게 일갈했다.
“무례한 꼬맹이로군. 이분이 누구신지 아는가?”
그렇지만 루카는 당황하기는커녕 당당한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잘 알지. 지금까지 같이 다녔는데 그걸 모르겠어? 그나저나 아저씨도 나를 잘 모르잖아?”
“뭐? 아저씨?”
싱클레어가 씨근덕대자 데미안이 앞으로 나서면서 싱클레어를 말렸다.
그러며 데미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데스티나에게 물었다.
“저분은 누구십니까?”
“내 동료 루카다. 루카와 다른 동료가 없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상호 예의를 갖추도록.”
“알겠습니다.”
데미안은 선선히 대답하였다. 그러고는 루카를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저희 단장님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 싱클레어는 다혈질적인 면이 있어 무례한 모습을 보였습니다만,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데미안?”
“그렇습니다.”
“역시 전설의 검사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 저 대머리 아저씨랑은 다르게.”
“뭐, 뭐, 대머리?”
싱클레어는 폭발하기 직전이 되었다.
“이게 어딜 봐서 대머리라는 거야! 머리가 짧긴 하지만 엄연히 머리카락이 있잖아? 이건 전투에 특화된 가장 세련된 머리 스타일이라고!”
“싱클레어님.”
데미안이 조용히 주의를 주자 싱클레어는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싱클레어는 곧 자신의 관심을 데스티나에게로 돌렸다.
“그나저나, 단장님. 이런 곳에서 뵐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반드시 단장님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요. 오늘은 정말로 축하를 할 날이군요. 이럴 게 아니라. 단장님의 무사 복귀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저희가 묵고 있는 곳에 환영식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네. 그것보다는 자네들에게 부탁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니까.”
데스티나의 말에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실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런 숲속에서 서로 우연히 만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단장님이 이곳에 계신 걸 보자마자 저희의 소식을 듣고 직접 만나러 오신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히 봤네. 그나저나.”
데스티나는 한쪽에 멀찍이 서 있는 여사제를 보면서 데미안에게 물었다.
“저 사제분은?”
“아. 아르테어 님. 이쪽으로.”
데스티나는 입고 있는 복장으로 보아 그녀가 ‘파루시아교의 사제’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데미안이 손짓하자 아르테어라고 불린 파루시아교의 여사제는 얌전한 걸음걸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분은 파루시아교의 사제이신 ‘아르테어’ 님이십니다. 저희의 여행 중에 합류해 주신 사제님이신데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계신 분이지요.”
“처음 뵙겠습니다, 단장님. 파루시아교의 사제. ‘아르테어’입니다. 이렇게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아르테어의 목소리는 청량하면서도 놀라운 기품이 있었다.
데스티나는 아르테어가 귀족가와 연관이 있는 인물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저 역시도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저희 성전 기사단을 위해서 힘을 써주고 계시다니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그리고 데미안 님께 단장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제 이야기를 말입니까?”
데스티나가 데미안을 바라보자 데미안은 멋쩍은 듯 웃음을 짓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저희에게 하실 부탁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단장님은 저희에게 그저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싱클레어의 호쾌한 대답이 이어졌다.
자신들의 목적을 말하려던 데스티나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그것을 먼저 질문하였다.
“그런데 자네들은 우리가 올 줄 알고 마중을 나온 것인가?”
그렇게 물었던 데스티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했다.
“방금 자네들의 반응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네.”
“아, 여기서 단장님을 뵌 것은 정말로 우연입니다. 저희가 찾으러 온 것은.”
그렇게 말하며 데미안은 옆에 있는 괴목을 가리켰다.
“저희는 이 나무를 조사하러 온 것입니다.”
“그럼 당신들은 저 나무의 정체를 안다는 거야?”
루카의 물음에 싱클레어는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정체를 아는 것까진 아니지만 대충 무슨 일을 하는 나무인지는 알고 있지.”
“이 나무는 하나의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데미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괴목에게로 다가갔다.
“이 나무는 다친 자들을 보살핍니다.”
“다친 자들?”
거기까지 말한 데스티나는 그제야 어째서 거대 자벌레들이 자신의 상처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렇습니다.”
데미안은 그들에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런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나무는 다치거나 죽어가는 자들을 끌어모읍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저 자벌레들이 대신해 주고 있죠. 저 자벌레들은 상처받거나 죽어 가는 자가 있으면 이 나무에서 빈 열매를 따가 그 부상자를 열매 안에 담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 나무로 돌아와서 나무와 열매를 연결하죠.”
“마치 자연이 만들어 낸 치료소 같군.”
“그럴지도 모릅니다. 치료 자체는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편이지만 그 효능은 대단합니다. 죽음에 이르는 수준의 상처를 입은 자도 살려 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오늘 이곳에 온 것은 이 나무의 열매를 얻어서 그 열매를 연구해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군. 우리가 이곳까지 온 것은 자네들을 찾기 위해서도 있지만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거든.”
데스티나는 자신들의 사정을 데미안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데미안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사정이신지는 알겠습니다. 그럼 이 나무의 열매 안에 있는 게 그 소녀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 나무는 다친 자들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나무이니까요.”
데미안은 자신의 검인 하르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하얀색의 길쭉한 손잡이였지만 데미안이 마나를 불어넣자 녹색 빛을 띤 광선검이 솟아올랐다.
데미안은 괴목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데스티나가 말했던 소녀가 갇혀 있는 열매를 금방 찾을 수가 있었다.
“아르테어 님.”
데미안이 아르테어를 부르자 아르테어는 알고 있다는 듯 괴목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는 괴목을 껴안듯이 가까이 붙었다.
그녀는 괴목에게 붙은 채로 무언가를 속삭였는데, 그 소리가 작았기에 뒤쪽에 있는 누구도 들을 수 없었다.
“저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
루카가 싱클레어에게 묻자 그는 팔짱을 끼면서 대답했다.
“지금 저 나무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다. 파루시아교의 사제들은 자연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거든. 엘프들은 그런 기술들을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파루시아교의 사제들은 그 능력을 후천적으로 개발하는 거지.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궁극의 경지에 오른 파루시아교 사제들은 무생물과도 대화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다고 하더군.”
“무생물이랑 대화라고?”
루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확인해 줄 수도 없을 텐데. 그러면 아무 말이나 지어내도 상관없지 않나?”
“쉿. 그런 무례한 말은 하지 마. 너희같이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소한 아르테어 님의 능력은 진짜라고.”
“진짜라고 믿고 싶은 거겠지.”
루카와 싱클레어가 그러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이에 괴목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아르테어는 곧 나무에게서 몸을 떼었다.
“어떻습니까, 아르테어 님?”
“다행입니다. 나무의 말에 의하면 저 소녀는 팔에 큰 부상을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를 자벌레들이 강가에서 주워 왔고 지금까지 치료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치료가 다 끝났으니 데려가도 좋다고 합니다.”
“열매는?”
“어차피 저 아이를 데려가려면 아이가 있던 열매를 분리해야 하니 그 열매는 가져가도 좋다고 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체할 필요는 없군요.”
데미안은 곧장 자신의 하르페를 빠르게 휘둘렀다.
그 순간, 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어떠한 특정한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해당 분야에서 극한의 경지에 오른 사람의 솜씨를 보면 절로 경외심이 들기 마련인 법.
지금 루카의 마음속에 들어선 것은 바로 그 경외감이었다.
그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하르페에서 발사된 검기가 그들이 원하던 열매의 끝부분만을 정확하게 잘라 냈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정확도였다.
나무도, 열매도 상하지 않게 만드는 그 정확한 경계선을 짚어 낸 것이다.
열매가 떨어져 내리자 싱클레어와 루카는 그 열매를 받기 위해서 반사적으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싱클레어가 좀 더 앞서 있었지만, 루카는 싱클레어의 어깨를 밟으면서 앞쪽으로 뛰어올라 떨어진 열매를 받아 냈다.
“이런.”
열매를 받을 기회를 놓친 싱클레어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지만 커다란 열매를 가볍게 들고 있는 루카를 보면서 감탄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너 힘이 대단하구나!”
“이 정도야 거뜬하지.”
싱클레어는 루카가 마음에 든 듯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크하. 정말인가? 너 좀 마음에 들었다. 나는 힘이 강한 녀석들을 좋아하거든.”
싱클레어가 손을 내밀자 루카는 열매를 한 손으로 들면서 다른 손으로 싱클레어의 손을 맞잡았다.
“나중에 팔씨름이나 한번 해보자고!”
“좋지!”
의기투합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데미안은 미소를 지으며 데스티나에게 말했다.
“그럼 저희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시죠. 그곳에 가면 편히 쉴 수 있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