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툭툭.
기절해 있던 데스티나는 누군가 자신의 볼을 두들기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데스티나는 어떻게든 눈을 뜨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눈꺼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간신히 조금 뜰 수가 있었다.
벌어진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것은 뿌옇게 보이는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흐려져 있었기에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역시 인공호흡밖에 없나?”
‘인공호흡?’
상대의 목소리가 데스티나의 귀에 들려왔다.
그렇지만 익숙한 목소리였기에 데스티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아아, 루카인가? 둘 다 그 강물 속에서 살아남은 모양이군.’
데스티나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루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그때, 데스티나는 루카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잠깐. 아까 루카가 인공호흡이라고 했었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데스티나는 루카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루카가 풍선에 바람을 넣듯이 강하게 숨을 불어넣자 데스티나는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짜릿한 충격을 느끼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억!”
데스티나가 일어나자 루카는 황급히 그녀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뗐다.
“역시 일어났네. 이럴 때는 인공호흡이 직빵이라니까.”
루카가 기쁘다는 듯이 그렇게 외쳤다.
기절 상태에서 간신이 깨어난 데스티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온몸은 흠뻑 젖어 있었으며 똑같이 몸이 젖어 있는 루카가 그녀의 옆에 앉아 있었다.
“우린 살아남았군.”
데스티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괴물은?”
데스티나가 루카에게 묻자 루카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뒤편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집게를 잃어버린 괴물 사슴벌레가 강기슭에 누워 있었다.
“죽은 건가?”
“모르겠어. 그렇지만 움직이지 않는 건 확실해.”
“그렇군.”
그때, 데스티나는 자신의 입술에 느껴지던 루카의 입술 감촉을 기억해 내고는 얼굴을 엄청나게 빨갛게 물들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루카는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설마 첫 키스니 뭐니 하면서 난리 칠 생각은 아니지?”
“그, 그럴 생각은 없다만 확실히…….”
데스티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이었다.
“첫 키스는 첫 키스였다.”
“아, 그것참 미안하네. 데스티나 너는 첫 키스를 주고 싶은 상대가 따로 있겠지만 아까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잖아?”
“따, 따로 주고 싶은 상대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기사로서 몸가짐을 좀 더 바르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인공호흡은 노카운트로 쳐도 되는 거잖아?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볼일 못 본다구.”
스슥.
그때, 숲속에서 다수의 개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카와 데스티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 태세를 취하였다.
“이런. 조금의 쉴 틈도 없는 거냐?”
루카는 투덜거리면서도 숲속의 상대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빈틈없이 기다렸다.
샤샤샥.
두 사람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것들은 분명히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어 다니고 있었으며 다리의 움직임과 땅에 끌리는 몸통의 움직임이 만드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것들은 점점 두 사람을 향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계속 지켜보던 데스티나와 루카는 그것들 각각의 크기가 2미터를 조금 넘는다는 것과 4족 보행을 한다는 것, 그리고 한 마리가 아니라 숫자가 꽤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두 사람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멈춰 섰다.
쉭쉭.
그 정체 모를 무리에게서 들려오는 소리는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와 약간 닮았지만 묘한 이질감이 있었다.
그것들은 거대화된 자벌레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길고 단단해 보이는 몸통과 그 몸통을 받치는 4개의 다리, 검은 구슬과 같은 인상적인 2개의 눈.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질기고 단단해 보였는데 2미터가 넘는 몸통은 마디마디가 나누어져 있어서 절지동물처럼 움직일 수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베이지색의 피부에 검은색의 반점이 뒤덮여 있었으며 입은 보이질 않았다.
다리에는 각각 짧은 발가락이 3개가 있었지만 날카롭지 않아 공격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등에는 4가닥의 뿔이 나 있었는데 그 뿔은 십자가처럼 돋아나서 그 끝이 전부 다 위쪽으로 구부러져 봉오리 같은 형태였다.
이 이름 모를 괴생명체들은 지속해서 이상한 소음을 내며 서로 바라보았다가 이따금 루카와 데스티나를 힐끗 바라볼 따름이었다.
두 사람은 그들이 내뿜는 소음이 사실은 그들만의 언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던 루카는 데스티나에게 속삭였다.
“우리한테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 보이는군. 적어도 공격적인 모습은 아니다. 솔직히 지금 또 싸우는 것은 확실하게 사양하고 싶군.”
거대 자벌레들은 이내 두 사람에게서 관심을 거두고는 강의 기슭에 누워 있는 괴물 사슴벌레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은 괴물 사슴벌레의 주변에 모여 이리저리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먹으려는 건가?”
“그럴지도. 우리같이 반격할 수 있는 개체보다는 더 안전한 먹이를 고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대 자벌레들은 괴물 사슴벌레의 몸체를 몸으로 밀어서 어디론가 끌고 갔다.
“먹이를 저장하려는 모양인데.”
쿵!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약한 진동이 두 사람의 발바닥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두 사람은 놀라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보았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무엇이 그러한 소리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닥친 새로운 위험일 수도 있었기에 두 사람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루카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길 봐!”
그러자 데스티나의 시선도 루카가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숲이…… 숲이 움직이고 있어!”
데스티나는 루카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루카가 말하는 지점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큰 움직임은 없었지만 데스티나는 분명 하늘과 숲의 경계선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정말이다.”
데스티나의 입에서 신음에 가까운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두 사람의 시야가 닿는 곳에서 숲은 분명히 그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숲의 일부분이 점점 높아져 갔다.
그 변화를 감지한 것인지 거대 자벌레들 역시 전부 고개를 돌려 움직이는 숲을 주시했다.
갑자기 거대 자벌레들이 울음소리를 더 강하게 증폭시켰다.
그 울음소리에 데스티나와 루카는 피부 위로 찌르르한 감각이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거대 자벌레 중 괴물 사슴벌레를 옮기지 않는 개체들은 움직이는 숲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에야 데스니타와 루카는 그 소음을 만들어 내는 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몸을 일으키고 있는 거대한 나무였다.
마치 거대한 네발짐승이 몸을 일으키듯이 나무는 점점 땅에서 자기 자신의 몸을 분리했다.
움직이는 나무는 단 한 그루였지만 그 크기가 엄청났기에 루카에게 마치 숲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 나무가 땅에서 뿌리를 거두어들일 때마다 미세한 진동이 두 사람의 발에 전달되었다.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두 발로 걷는 나무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
우선 그 무지막지한 스케일에서 차이가 있었으며 동화와는 달리 이 괴목에게는 눈, 코, 입이 존재하지 않았다.
팔도 없었으며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네 군데로 뻗친 굵은 뿌리들이었다.
뿌리들이 마치 4족 동물의 다리처럼 기민하게 움직여 괴목을 일어서게 하고 있었다.
그것이 일어설 때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괴목은 자신의 몸을 완전히 땅과 분리한 후 굳건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차라리 고층 건물에 가까웠다.
압도적인 위용으로 서 있는 거대한 괴목의 꼭대기에 햇빛이 걸려 그 그림자가 두 사람의 위로 드리워지고 있었다.
데스티나와 루카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눈앞에 놓인 상황을 그저 주시할 뿐이었다.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괴목이 한 발을 뗐다.
자신의 몸을 받치고 있는 4개의 다리 중 하나를 들어 올린 후 그 옆으로 이동시켰다.
괴목이 움직이자 발바닥에 느껴지는 울림은 더욱더 심해졌다.
괴목의 머리칼이라고 할 수 있는 나뭇잎들이 흔들리고 괴목은 조금 기울어졌다.
우드득거리며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리 하나를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쪽 다리를 연달아서 이동시켰다.
그 어설픈 움직임은 마치 프로그램이 잘못된 4족 보행 축구 로봇을 연상시켰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거인이 찌뿌드드한 몸을 움직이듯 괴목은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것 같은 움직임.
괴목이 움직이는 방향은 두 사람 쪽이 아니었다.
그들과는 정 반대쪽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두 사람에게서 점점 멀어지려고 했다.
“엄청난 크기로군.”
데스티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괴목의 가지에는 수도 없이 많은 열매가 달려 있었다.
괴목의 열매들은 지름이 수 미터를 넘기고 있어서 땅에 떨어지기만 해도 밑에 있는 사람을 압사시킬 만한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데스티나는 그 열매가 다른 평범한 열매보다는 호박석을 더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타원형의 열매의 겉 부분은 단단하고 매끈해 보였으며 과일보다는 유리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 열매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루카는 그 열매들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열매, 보통 열매가 아니야. 각각의 열매마다 뭔가 들어가 있어.”
“뭐가 있는 거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이 숲에 살고 있는 생명체 들인 것 같아.”
열매들을 살펴보던 루카는 순간 깜짝 놀라며 손으로 데스티니의 팔을 쳤다.
“저 열매 안에 인간도 있어!”
“인간?”
루카의 말에 데스티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 형태로 봤을 때 어린 소녀로 보이는데.”
루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두 사람의 머릿속에 동시에 한 사람의 이름의 스쳐 지나갔다.
“루시아일지도 몰라.”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저 나무는 루시아를 데리고 무엇을 하려는 거지?”
“그게 뭐든 상관없잖아? 당장 저 아이를 구해야 해!”
그 말만을 남기고 루카는 바로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데스티나 역시 바로 지친 몸을 이끌고 루카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