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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44화 (44/182)

44화

타닷!

주환과 엘레나, 그리고 촌장은 목책의 앞에 설치되어 있는 나무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나무 계단을 이용하면 목책의 위쪽으로 올라갈 수가 있어서 목책 너머의 풍경을 한눈에 바라보는 게 가능했다.

주환은 황량한 들판의 한 지점을 주시하였다.

그러자 아주 작게 보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가 로즈버드 빌리지를 향해서 걸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로 누가 오고 있는데?”

엘레나는 다가오고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과 정착지 간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계산해 보았다.

“저 속도면 여기까지 오는 데 몇 분 안 걸릴 거야.”

주환은 스코프를 이용해 상대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상대는 금박으로 장식된 검은색의 마법사용 로브를 입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환은 옆에 서 있는 촌장에게 돌격 소총을 건네주었다.

촌장은 처음 보는 물건에 어리둥절해했지만 주환이 사용법이 알려 주자 곧장 스코프를 사용해서 상대를 확인하였다.

“그때 왔던 그 녀석들이 맞습니까?”

주환의 질문에 촌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것 같습니다. 분명 저런 복장들을 하고 있었어요.”

“그 녀석들이 오기로 한 날은 오늘이 아닌 걸로 아는데.”

엘레나의 말에 촌장은 동의했다.

“맞아요. 맞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금 오고 있는 걸까요?”

다급해진 촌장은 엘레나를 보면서 간청하였다.

“엘레나 님 꼭 저희 로즈버드 빌리지를 지켜 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반드시 저희가 최대한의 사례를 하겠습니다.”

“어떤 사례를 할 생각이야?”

엘레나의 질문에 촌장은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정확히는 어떠한 사례를 할 것인지 제대로 생각해 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저희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그래? 내가 바라는 건 너희를 전부 다 노예로 삼는 건데? 그래도 괜찮겠어?”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에 촌장뿐만 아니라 옆에 서 있던 주환까지 경악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야. 엘레나!”

“노, 노예라니요?”

“노예라고 해도 별거 없어. 매일매일 엘프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신선한 과일들을 가져와서 내 입에 직접 넣어 주는 거지. 옆에서 부채질도 해주면 더욱 좋고. 바람의 정령이 있으면 언제나 시원하게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작은 일에 정령을 동원하는 것도 그렇잖아? 어때? 그 정도면 나쁜 조건은 아니지? 저 녀석들한테 끌려가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모른다고?”

엘레나의 제안에 촌장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다.

“아아.”

촌장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얼을 타고 있다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그, 그 정도라면.”

엘레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야. 그런 것들 필요 없어.”

엘레나의 말에 주환과 촌장은 허탈해짐을 느꼈다.

“대체 왜 그런 농담을 한 거야?”

주환의 물음에 엘레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기가 약한 녀석들 놀려 먹는 게 재미있거든.”

“제, 제가 기가 약한가 보군요.”

촌장은 정말로 온몸에 기가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지금 다가오고 있는 불청객의 존재를 상기하고는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빠르게 외쳤다.

“그나저나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할까요?”

촌장의 물음에 엘레나는 주환에게 다가와서 그에게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저들을 정착지 안으로 들이면 싸움이 벌어졌을 때 정착지에 피해가 갈지도 몰라. 밖에서 싸우는 게 낫지 않아?”

“네 말도 일리가 있지만 중요한 건 지금 저 녀석들의 속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거야. 약속한 날짜보다 더 빨리 왔다는 건 녀석들의 계획에 무언가 변경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니까. 우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 해.”

“붙잡은 다음에 물어보면 되지 않아?”

“밖에서 싸웠다가 놓쳐 버리면 일이 틀어질 수도 있어. 제압하려면 확실하게 제압해야 해. 제압한 다음에 놈들의 거처를 알아내 우리 쪽에서 역습을 가하는 거지.”

거기까지 말한 엘레나는 촌장에게 물었다.

“혹시 당장 여기 정착민들을 대피시킬 만한 곳이 있어?”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 파놓은 땅굴이 있긴 있습니다. 터널은 아니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용도로 사용할 정도는 됩니다.”

“그러면 당장 경비병들을 시켜서 정착민들을 땅굴에 피신시켜 줘.”

“아, 알겠습니다.”

촌장은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고개를 돌려서 엘레나에게 물었다.

“다 피신시키고 나면 저는 어떡할까요?”

“당신은 촌장이잖아? 당신은 우리랑 함께해야지.”

엘레나의 말에 촌장의 얼굴은 다시금 사색이 되었다.

* * *

비를 쫓는 자의 일원 중 한 명인 가스파르는 로즈버드 빌리지의 앞에 도착하였다.

가스파르는 고개를 들어서 목책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확한 타이밍에 목책의 위에 경비병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누, 누구냐! 아니, 누구십니까?”

경비병의 목소리에는 긴장이 잔뜩 깔려 있었다.

가스파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비병에게 말했다.

“비를 쫓는 자들에서 왔다. 문을 열어라.”

그 한마디에 경비병은 황급히 아래쪽으로 소리쳤다.

“문을 열어!”

그와 동시에 열리는 문. 가스파르는 거침없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로브의 끝부분이 바닥에 끌려 작은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가 정착지의 목책 안쪽으로 들어가자 바로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안으로 들어온 가스파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지 않은 정착지였지만 그가 전에 왔을 때는 정착민들의 움직임과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소란스러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정착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정착지의 분위기를 파악하던 가스파르는 뒤쪽의 경비병에게 물었다.

“촌장은?”

“아. 예. 지금 숙소에 계십니다.”

경비병의 대답에 가스파르는 빠르게 촌장의 숙소로 향했다.

촌장의 숙소에 도착한 가스파르는 노크도 없이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아.”

경비원의 말대로 촌장은 숙소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촌장은 과장된 몸짓을 하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은?”

“비를 쫓는 자들에서 왔다.”

“아. 그, 그러시군요.”

촌장은 한쪽의 의자를 빼서 가스파르가 그곳에 앉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촌장이 의자에 앉도록 권유하자 가스파르는 스스럼없이 의자에 앉았다.

“오신 김에 술이라도 한잔 드릴까요?”

“술이라. 아직 술이 남아 있나 보지?”

“예. 조금이지만 제가 따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가스파르는 마음을 정했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한잔 받도록 하지.”

가스파르의 말에 촌장은 책상의 아래쪽에 있던 술병을 꺼내어 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가스파르가 촌장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손을 떠는 거지? 그러다가 술이 다 넘치겠군.”

“아. 예. 그게.”

촌장이 긴장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다락방에 엘레나와 주환이 언제든지 가스파르를 덮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다락방에 올라가 있는 주환과 엘레나는 아래층의 상황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며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지금 따르고 있는 술이 너무나도 아깝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좋은 술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가스파르에게 대접하고 있는 술은 촌장이 다른 사람들 몰래 숨겨 놓았다가 몰래몰래 먹는 그런 술이었다.

‘젠장. 이렇게나 아까운 술을 이런 놈한테 줘야 한다니.’

그렇지만 엘레나는 촌장에게 가스파르에게 술을 대접하도록 명령을 내려 둔 상황이었다.

술에 취하면 감각이 무디어져 상대가 방심할 확률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촌장이 술이 담긴 잔을 내밀자 가스파르는 그 잔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가스파르는 그 술을 쉬이 마시지 않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촌장은 안심시키듯 입을 열었다.

“독 같은 건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아니,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가스파르는 단숨에 잔을 비워 버린 다음 말을 이었다.

“우리 같은 흑마법사들은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대부분 독에 면역이 생기거든. 흑마법사들은 자신의 몸에 많은 실험을 하지. 독이나 질병에 대한 면역 실험들이 그중의 하나이고 말이야.”

“아. 대, 대단하네요.”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일이지. 그따위 실험들을 하다가 많은 수의 흑마법사들이 죽거든. 물론, 살아남는다면 암살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몸이 되지만.”

“아무튼 말씀드렸지만, 독 따위는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한 잔 더 드릴까요?”

“그러지. 괜찮은 술이로군.”

가스파르는 잔을 촌장에게 내밀었다.

촌장이 다시 찬을 채우는 동안 가스파르는 날카롭게 질문했다.

“오늘은 마을이 좀 조용하군.”

술을 따르고 있는 촌장의 손이 또다시 떨렸다.

“그게, 그러니까. 사실 지금은 낮잠 시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날이 뜨거울 때는 집에서 쉬는 게 더 효율적일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다들 자고 있을 겁니다.”

“그럼 내가 당신의 낮잠 시간을 방해한 건가?”

“아뇨. 당치도 않습니다.”

촌장은 다시 한번 술이 담긴 잔을 가스파르에게 건넸다.

“그런데 저희에게 요구하셨던 기한은 조금 남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오늘은 대체 무슨 일로 방문을 하신 것인지?”

“별건 아니야. 걸리는 소문이 있어서 한번 확인차 들른 거거든.”

“소문이라니요?”

“촌장은 혹시 이런 소문 들어본 적 있나? 성전 기사단의 부단장 데미안이 이 근처에 와 있다는 소문 말이야.”

* * *

어두운 다락방의 안에서 주환과 엘레나는 촌장과 가스파르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어떤 것 같아?”

주환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엘레나에게 속삭였다.

“저 녀석들도 그 소문을 들은 건가?”

엘레나는 촌장의 반응에 주목하고 있었다.

모르는 척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안다고 해야 하는가?

그 소문을 들었으면서도 직접 이 정착지로 찾아왔다는 것은 유사시에도 얼마든지 데미안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만약 이쪽에서 데미안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사람이 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바로 이 정착지에 실력 행사를 할지도 몰라. 지금 저자는 혼자 왔지만, 우리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놈들의 동료가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지금은 모르는 척하면서 방심하도록 유도하는 게 제일 좋아. 단숨에 제압해야 피해 없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엘레나는 촌장이 눈치껏 데미안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기를 바랐다.

“그건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로군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촌장의 대답은 엘레나가 원하는 대로였다.

“그래? 나는 혹시나 이 정착지에서 데미안에게 이미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해서 말이야.”

“그런 적 없습니다. 그리고 소식을 들었어도 못 보냈을 겁니다. 멀록 산은 괴물들 천지가 돼서 말이죠.”

“그렇군. 그런데 말이야. 분명 그 소식을 처음 들었다면서 데미안을 만나려면 멀록산 쪽을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지?”

촌장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건 치명적인 말실수였다.

촌장은 당황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주환과 엘레나가 있는 다락 쪽을 바라보았고 그 짧은 움직임을 가스파르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전에 왔을 때 이 책상의 한쪽에는 지도가 놓여 있었는데 지금은 그 지도가 보이지 않는군. 그 지도는 어디 갔지?”

“그건…….”

“내가 대신 대답할까? 데미안에게 사람을 보내면서 그 지도를 들려서 보냈겠지. 그래서 지도가 이 자리에 없는 거고. 아닌가?”

촌장은 더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가스파르는 다락방이 있는 천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대답할 생각이 없나 보군. 그럼 그 위에 숨어 있는 쥐새끼들은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나?”

가스파르의 말에 주환과 엘레나는 서로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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