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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43화 (43/182)

43화

“꼭 나무로 만든 성을 보는 것 같은데?”

주환 일행은 지금 로즈버드 빌리지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로즈버드 빌리지의 목책 쪽으로 가까이 다가간 주환은 위와 같이 중얼거렸다.

그가 그렇게 느낄 만도 했다.

로즈버드 빌리지를 지키고 있는 목책은 단지 야생 동물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의 단순한 형태가 아니었다.

사람 키보다 훨씬 길고 두꺼운 통나무들이 빈틈없이 둘러쳐 있었으며, 좀비들이 목책을 타고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목책의 위쪽에는 날카로운 원형 철조망이 빈틈없이 둘러쳐 있다.

그때, 누군가 목책의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목책의 안쪽에는 별도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기에 빌리지 안쪽에서는 목책의 위쪽으로 쉽게 오를 수가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지?”

그 목소리에 네 사람의 시선이 위쪽으로 쏠렸다.

목책의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로즈버드 빌리지의 정착민으로, 경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듯 낡은 가죽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경비병은 손에 길쭉한 창을 들고 있었다.

“나야. 문을 열어 줘.”

엘레나가 앞으로 나서자 경비병은 엘레나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라며 아래쪽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엘레나 님이 돌아오셨다! 문을 열어!”

경비병의 외침에 목책의 한쪽에 달린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아래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경비병이 어깨로 문을 밀고 있었다.

통과할 수 있을 만큼 문이 열리자 주환 일행은 엘레나를 따라서 빌리지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꽤 괜찮은데?”

주환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생존자들이 모여 만들어 낸 정착지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주환은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고 있는 로즈버드의 빌리지의 규모는 그의 상상 이상이었다.

나무로 이루어진 건물들의 배치가 깔끔하게 기획되어 있으며 대장간, 공용 식당, 소규모 목장 등 필요한 기반 시설까지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었다.

이 정착지를 이끌고 있는 촌장의 능력을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주환 일행이 정착지 안으로 들어서자 주변을 지나가던 정착민들의 시선이 모두 그들에게 쏠렸다. 그들의 수군거림이 주환 일행의 귀에도 들려왔다.

그들의 눈에는 주환이 입고 있는 의상과 무기가 꽤 신기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그때, 한 노인이 주환 일행을 향해서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는 바로 로즈버드 빌리지의 촌장으로 경비병의 알려온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던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가득 차 있었다.

“늦지 않게 돌아왔어.”

엘레나의 말에 촌장은 엘레나가 데려온 주환 일행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분들이 저희 마을을 구해 주실 분들이신가요?”

“그래. 급하게 구하느라 모을 수 있는 수준은 이 정도뿐이었지만.”

“이 정도뿐이라니. 말이 심하시네.”

루카가 불평하는 사이 데스티나가 일행의 앞으로 나섰다.

“귀하가 로즈버드 빌리지의 촌장인가?”

데스티나의 아우라에 놀란 촌장이 살짝 뒤로 물러섰다.

“예. 그렇습니다만.”

데스티나는 경의를 표한다는 듯 자신의 주먹을 가슴 쪽에 가져다 대었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도 많은 정착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귀하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아아. 감사합니다.”

“나는 성전 기사단의 전 단장 데스티나. 나의 명예를 걸고 사악한 이들이 이 정착지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겠다.”

“아니!”

데스티나의 말에 촌장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성전 기사단의 단장님이 오시다니! 그럼 정말 이 마을은 걱정이 없습니다. 이건 정말 기적입니다. 성전 기사단이야말로 이 나라를 지키던 보배와 같은 분들이십니다. 이런 분들이 계신다면 그놈들도 절대 얼씬거리지 못할 겁니다.”

“기적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데스티나는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꽤나 기분이 좋은 듯 얼굴에 홍조가 생겨났다.

그들을 반기며 기뻐하던 촌장은 순간 낯빛이 어두워지며 엘레나를 향해 말했다.

“그, 그나저나 엘레나 님. 큰일이 났습니다.”

“큰일?”

“우선 가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촌장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거처로 그들을 안내했다.

* * *

“사라져 버렸다니?”

엘레나가 촌장에게 물었지만, 촌장은 쉽사리 대답하질 못했다.

촌장과 주환 일행은 현재 촌장의 거처에서 루시아의 행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엘레나는 루시아가 촌장의 집에서 얌전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촌장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루시아가 로즈버드 빌리지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촌장의 이야기를 듣던 주환은 계단을 올라 루시아가 지내고 있던 다락의 문을 열고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사람이 지낸 흔적은 있었지만, 다락방의 안에는 분명 아무도 없었다.

“위에는 없어.”

주환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렇게 말하자 촌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짐작 가는 이유는?”

데스티나가 그렇게 묻자 촌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한쪽에 놓여 있던 지도를 들고 와 자신의 책상 위에 펼쳤다.

“그러고 보니 짐작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촌장은 정착민 중 한 명이 찾아와 성전 기사단의 부단장 데미안이 이끄는 공동체가 근처에 와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던 그날 밤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촌장의 입에서 데미안의 이름이 나오자 놀란 주환은 데스티나를 바라보았다.

데스티나의 얼굴은 놀라움, 그리고 환희, 그중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데미안이 살아 있단 말인가?”

“물론 소문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데스티나 님이 이렇게 찾아오셨으니 데미안 님도 분명 살아 계실 게 틀림이 없습니다.”

주환은 데스티나와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금 떠올렸다.

[“100년에 한 번 나올 천재라고 불리는 기사다. 이미 10대 때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괴물 중의 괴물이지.”]

‘그 데미안이 살아 있다는 말인가?’

“아무튼 저희의 그 이야기를 루시아가 듣고 있었나 봅니다. 다음 날에 당장 사람들을 꾸려서 데미안 님을 찾아가자고 하더군요. 물론 데미안 님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촌장은 거기까지 말하며 손가락의 지도의 한 부분을 짚었다.

“소문으로 들려오는 그 공동체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이 ‘멀록산’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괴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금지 구역입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병력으로는 데미안 님을 만나기는커녕 이 멀록산 산중에서 전멸당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루시아에게는 지금은 갈 수가 없다고 말을 해두었죠. 분명히 제 이야기를 이해한 듯 보였습니다만, 어느 순간 모습을 감춰 버렸습니다.”

“가출해 버린 거네. 이야기의 흐름으로는 자기 혼자 데미안이란 사람을 만나러 간 거 아니야? 그런데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하다니. 엘레나. 너 그 아이의 믿음을 얻지 못한 것 같은데?”

루카의 말에 엘레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했던 말이 꽤나 마음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네.”

“무슨 일이 있었어?”

“별건 아니야. 그 녀석이랑 이야기하다가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좀 화가 나서 나는 엘프니까 인간들이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상관없고 딱히 인간들을 돕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해버렸으니까.”

“어린애한테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었어?”

“뭐, 반쯤은 진심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런 무모한 일을 벌이다니. 인간이란 종족은 항상 그렇게 별생각이 없이 행동한단 말이지.”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 아닌가?”

데스티나는 모두를 둘러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루시아가 이미 멀록산으로 들어갔다면 지금 위험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구하러 가지 않으면 루시아는 죽을 수도 있어.”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내가 가도록 하겠다.”

데스티나의 말에 가장 놀란 이는 바로 촌장이었다.

“그, 그렇지만 기사님은 이곳을 지켜주셔야…….”

“원래라면 그랬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리고 한 가지 더. 간다면 단지 루시아를 찾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내가 직접 데미안을 찾아가겠다.”

“데미안을?”

“그래. 그는 나의 동료였다. 나의 요청이라면 곧바로 움직여 줄 것이다.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보증하지.”

거기까지 말한 데스티나는 책상 위의 지도를 집어 들었다.

“이건 빌려 가도록 하지.”

데스티나는 그 말만을 남기고는 주저 없이 몸을 돌려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루카는 하품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주환을 바라보았다.

“그럼 나는 데스티나랑 같이 다녀오도록 할게.”

“너까지?”

이번에는 주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무리 데스티나라고 할지라도 누군가는 뒤를 봐줘야 할 테니까 말이야. 어차피 놈들이 올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고 그사이에 어떻게든 일을 성공할 테니까.”

루카는 말을 마치고는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엘레나에게 던졌다.

엘레나는 그 물건을 받아들고 살펴보았다.

그것은 갈로스가 루카에게 주었던 청동 피리였다.

“만약 우리가 늦으면 그걸 불어서 갈로스를 불러. 그럼 도움이 될 테니까.”

피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루시아 쪽은 너희에게 맡기도록 하지.”

갑작스럽게 두 팀으로 나누어지려고 하는 주환 일행을 보면서 촌장은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말문이 막히는지 붕어처럼 입술을 뻐금거릴 뿐이었다.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다.”

그 말만을 남긴 데스티나는 촌장의 집을 나섰다.

루카는 남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그대로 데스티나를 따라서 문밖으로 사라져 갔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리다니.”

촌장은 허탈하다는 듯 자신의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

주환도 데스티나를 말리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팀이 흩어져 버리는 것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안 말려도 괜찮겠어?”

주환이 엘레나에게 묻자 엘레나는 약간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제멋대로인 건 인간들의 특징이니까.”

“너도 사실은 그 루시아란 아이가 걱정되는 거잖아. 그래서 말리지 않은 거 아니야?”

“제멋대로 멍청하게 행동하는 인간까지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어.”

얼마 뒤 촌장의 숙소 문이 활짝 열렸다.

주환은 데스티나가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아까 그들이 정착지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던 바로 그 경비원이었다.

“촌장님!”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무슨 일인가?”

“지금 누군가가 멀리서 이곳을 향해서 오고 있습니다.”

경비원의 말에 촌장은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또 누군가가 오기로 했습니까?”

“아니. 우리뿐이야.”

촌장은 경비원에게 물었다.

“지나가던 나그네인가?”

“아직은 멀어서 모르겠습니다만 행색을 보았을 때 ‘그놈들’ 중 한 명인 것 같습니다.”

그놈들.

주환이 보기에 그 말은 비를 쫓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경비원의 말에 숙소에 있던 모두가 황급히 밖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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