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41화 (41/182)

41화

“전부 다 준비들은 된 건가?”

엘레나는 검은 탑의 앞마당에 집합해 있는 주환 일행들을 둘러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응.”

가볍게 대답하는 주환.

그는 개조된 플레이트 캐리어와 돌격 소총을 둘러멘 채였으며 완전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플레이트 캐리어에 장치되어있던 조종 장치는 이미 해체한 상태였다.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다.”

툴레오의 갑옷과 검을 착용하고 있는 데스티나의 대답.

“나도 준비 완료야.”

루카는 여전히 이삿짐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많은 짐을 바리바리 등에 메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들 여기 모여 계셨군요.”

그때, 검은 탑에서 빠져나온 타마두크가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주환은 이브의 모습을 찾았지만, 그녀는 탑에 남은 듯 나타난 이는 타마두크 혼자뿐이었다.

“스승님이 떠나는데 옷자락조차 내비치지 않는 배은망덕한 제자는 지금 어디에 있지?”

엘레나의 날 선 물음에 타마두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브 님은 몸이 안 좋으십니다.”

“어차피 꾀병이 아닐까? 그 아이는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그런 부분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배웅하러 나왔으니까요.”

루카는 미소를 짓고 있는 타마두크를 바라보았다.

‘결국 또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했어.’

[더는 당신의 아버지를 찾지 마십시오. 만약에 당신이 아버지를 찾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상처받을 겁니다.]

루카는 타마두크의 말을 떠올렸다.

어젯밤의 대화에서 타마두크는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 주지는 않았다.

루카가 계속해서 닦달하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타마두크는 힘으로 굴복시켜서 억지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기 때문에 루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모르지만. 반드시 밝혀내겠어.’

루카의 결의에 찬 눈빛을 읽은 것인지 타마두크는 루카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타마두크는 몸을 돌려 검은탑 안으로 사라져 갔다.

사라져 가는 타마두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루카는 검은 탑의 뒤쪽에서 누군가 그녀를 몰래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갈로스?”

검은 탑의 뒤에 몸을 숨기고 있긴 하지만 청동 피부와 3미터에 달하는 키는 루카가 아는 한 갈로스 밖에 없었다.

루카는 갈로스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탑의 뒤쪽에 숨어 있던 갈로스는 루카가 뛰어오는 것을 보자 반갑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다행이야. 아직 안 떠났네?”

서로 나이대가 비슷했기에 두 사람은 친구가 된 참이었다.

“지금 곧 출발할 참이었어. 근데 무슨 일이야? 설마 우리가 없는 틈을 타서 그 사악한 마법사가 너를 없애려고 한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실수할 때마다 주인님이 나를 없애 버리시지는 않을까 오랫동안 겁먹고 있었지만 이제야 깨달았어.”

“뭘?”

“주인님 사실 나한테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시단 걸 말이야. 나한테 많은 걸 바라지도 않으신 것 같아. 그냥 나 혼자 생각하고 겁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

“차라리 잘된 거야. 이제부터는 네 맘대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사실은 그럴 생각이야. 물론 여전히 주인님은 주인님이니까 이곳을 지키긴 하겠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내 맘대로 행동해 볼 용기가 생겼거든.”

갈로스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금속 조각을 루카에게 내밀었다.

루카는 그 물건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짧은 금속 피리였다.

“이건?”

“뭔가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 피리를 불어 줘. 그 피리는 루카, 네가 어디서 불든지 반드시 내가 듣는 힘을 가진 피리이니까.”

“진짜?”

“나는 텔레포트 같은 마법은 할 수 없지만, 이 소리가 들리면 온 힘을 다해서 그곳으로 날아갈 테니까.”

“알겠어. 고마워, 잘 쓰도록 할게.”

루카는 그렇게 말하며 갈로스가 건넨 피리를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 *

“나랑 같이 ‘비를 쫓는 자들’을 추적해 주었으면 좋겠어.”

이브의 반란이 진압된 후의 식사 시간 때에 엘레나가 주환 일행에게 요청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비를 쫓는 자들?”

주환은 엘레나의 말에 그렇게 되물었다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데스티나와 루카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두 사람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환 일행이 붐스틱을 찾으러 여행을 떠났을 때 사막의 정착지에서 발견했던 양피지.

그 양피지에 쓰여 있던 글이 바로 ‘비를 쫓는 자들’이 아니었던가?

“흠.”

엘레나는 흥미롭다는 듯 말을 이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 아닌가 보지?”

“들은 적이 있어. 그냥 우연하게 얻어듣게 된 것일 뿐이고 그게 실제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뭐, 그렇겠지. 그들에 대해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은 건 나도 비교적 최근이니까.”

“그럼 그들이 진짜 존재하는 단체란 말인가?”

데스티나는 사뭇 진지하게 엘레나에게 질문하였다.

“그래. 그들은 존재하고 있어. 안타깝게도 말이지.”

‘안타깝다?’

“그럼 설명해 주도록 할게.”

엘레나는 딸기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최근에 우연히 인간 아이를 하나 줍게 되었어. 그 아이의 이름은 ‘루시아’. 딱히 내 의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돕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몰라. 뭐, 그냥 귀찮은 짐덩이 하나 떠맡은 거나 다를 바가 없지.”

엘레나는 아예 바닥에 누워서 쿨쿨 자는 이브를 보면서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주환은 사실 이브와 엘레나가 단순 사제 관계가 아닌, 더 깊은 관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세상에야 고아들이 넘쳐나니까 그런 아이들이 돌아다닌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지만 그 아이가 처한 상황은 꽤 독특해서 말이야. 그 아이에게 직접 들은 바로는 이래. 그 아이는 자신의 부모, 그리고 동생과 같이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합류하여 간이 정착지를 만들고 생활하고 있었다고 해.”

“그곳에 좀비들이 몰려든 거야?”

루카의 물음에 엘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몰려든 건 인간들이었어. 좀비 따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악질들이었지.”

살아남기 위하여 도망치던 루시아를 우연히 만난 엘레나는 루시아에게서 정착지에 벌어진 학살극을 듣게 되었다.

엘레나는 루시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지금 이 자리에서 주환 일행에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엘레나의 이야기가 다 끝났을 때 분노한 데스티나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모두가 힘을 합쳐서 이 국난(國難)을 이겨 내도 모자랄 판에 같은 인간의 정착지를 습격하는 자들이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아 있단 말인가?”

데스티나는 분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약탈의 현장에 몸을 내맡기는 생존자들을 그녀는 무수히 보아 왔다.

대의를 지키기 위하여 그런 약탈자들을 베기도 했었지만, 그들이 이겨 낼 수 없는 상황에 몰려 그런 악의 길로 들어섰다는 점에서는 동정을 품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엘레나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마법사들이다.

마법사라면 왕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

그런 자들이 다수로 몰려다니며 아무런 힘도 없는 생존자들의 정착지를 습격하고 다니는 것이다.

“무릇 힘을 가진 자라면 약한 자를 돕고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체 어째서 그런 짓을.”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환 역시도 기분이 착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놈들의 목적은 뭐지?”

“녀석들의 목적은 나도 몰라. 놈들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최근이니까. ‘비를 쫓는 자들’이라는 마법사 단체가 생존자 정착지를 습격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직접 당한 피해자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야. 루시아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문의 그놈들이라고 바로 알 수 있었지.”

“혹시 그 정착지, 직접 가봤어?”

주환의 물음에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봤지. 루시아를 안전한 곳에 맡기느라고 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내가 갔을 때는 모든 상황이 다 정리가 되어 있었어.”

“무슨 뜻이지?”

“간단히 말해 놈들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단 말이지. 다만, 그 정착지를 조사했을 때 놈들의 목적에 대해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기는 했어.”

엘레나의 말에 세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그 아이가 도망치기 전에 놈들의 리더로 보이는 자가 생존자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해. 물론 그건 거짓말일 거야. 거절하자마자 생존자들을 공격했으니까. 놈들은 정착지의 생존자들을 납치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그곳에 갔을 때 마법에 당한 시체들을 발견했는데 그 아이에게 들은 정착민들의 규모보다는 적은 수의 시체들만이 남아 있었어. 그 주변을 탐색했지만 별다른 시체들도 나오지 않았고.”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그놈들이 어딘가로 끌고 갔다는 이야기네?”

“그렇겠지.”

“아까 그 비를 쫓는 자들인가 하는 녀석들을 같이 추적해 달라고 했잖아?”

루카는 의문스럽다는 듯 엘레나에게 물었다.

“그럼 너 같은 고고한 엘프가 어째서 이런 인간들의 더러운 싸움판에 끼어들 생각을 한 거야?”

“솔직히 인간들이 하는 일에 간섭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번 일은 정도가 지나쳤어. 인간들이 벌인 전쟁의 후폭풍을 모든 종족이 감당하고 있는 이 상황 자체도 화가 나지만 그럼에도 반성도 없이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그런 음흉한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게 좋게 보이질 않았으니까.”

엘레나의 이야기를 듣던 주환은 중요한 부분을 질문했다.

“그럼 그 비를 쫓는 자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혹은 어디에 출몰할 예정인지는 알고 있는 거야?”

“예상가는 곳은 있어. 바로 멀지 않은 정착지 중 하나인 ‘로즈버드 빌리지’야.”

좀비 세상으로 변한 시점에서 정착지가 의미하는 것은 좀비 사태를 피해서 떠돌아다니는 생존자들이 모여 사는 다양한 수준의 임시 거처였다.

정착지들은 규모가 제각각이었으며, 좀비 사태를 훌륭하게 막아 내어 좀비 사태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생활을 영위하는 마을과 도시들도 소수지만 존재하였다.

로즈버드 빌리지는 백여 명 규모의 생존자들이 모여 사는 중규모 수준의 정착지로, ‘빌리지’라는 이름이 붙은 정착지는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루시아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 다른 곳에서도 들려오는 놈들의 소문들을 조합해 보았어. 놈들이 습격하고 있는 정착지들의 위치, 그리고 나타나는 주기. 그런 정보들을 분석해 보았을 때 그다음으로 놈들이 노릴 수 있을 만한 곳을 대충 추려 낼 수 있었지.”

“그중 하나가 방금 말한 로즈버드 빌리지?”

“맞아. 그곳에 가서 촌장을 만나 봤는데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지.”

“거기도 놈들한테 당한 건가?”

“비를 쫓는 자들 쪽에서 로즈버드 빌리지에 사절을 보내 자신들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인원들을 보내 달라고 협박했다고 해. 촌장도 그들에 대해서 안 좋은 소문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거절했지만, 거절하자마자 경비원을 포함해서 여러 명이 살해당했지. 어쩔 수 없이 촌장은 놈들과 협상할 수밖에 없었어. 사람을 보내는 대신 촌장이 지원자를 모집하여 보내는 조건으로 해서 겨우 시간을 벌어 놓은 상태야. 놈들과 약속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정착지의 병력으로는 마법사를 대적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발만 동동 구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모양이야.”

“거기에 고고한 엘프가 영웅처럼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루카가 짓궂은 목소리로 그렇게 묻자 엘레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로서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지. 우선 루시아를 그 정착지에 맡기고 촌장에게는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불러오겠다고 하곤 이곳으로 온 거야. 중간에 루시아가 살고 있던 정착지도 한 번 들러서 정보수집도 좀 했고. 이제 내가 왜 그곳을 목적지로 잡았는지 궁금증이 좀 풀려?”

“루시아라는 아이는 지금 목적지인 그 정착지에 있단 말이지?”

주환의 물음에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기를 도와줄 사람들이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