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38화 (38/182)

38화

데스티나는 슬라임으로 변한 양팔은 감각이 없어지는 대신 역시나 고통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왠지 자신의 몸의 형태를 자신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마저도 받을 수 있었다.

골렘은 연속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 쓰러져 있는 데스티나 쪽으로 달려왔다.

데스티나는 고개를 돌려 툴레오의 검이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날아간 곳과 검이 떨어져 있는 곳과는 꽤 거리가 있었으며 그 사이에는 골렘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검을 집으러 갈 수는 없었다.

데스티나에게 쇄도한 골렘은 마치 축구 선수처럼 데스티나를 걷어차기 위해서 발을 휘둘렀다.

데스티나는 아까처럼 방어 자세를 잡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공격을 받아 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골렘의 발이 그녀의 머리에 닿는 순간에 데스티나는 온몸의 마나를 순식간에 강하게 방출했다.

검끝에서 발사되는 날카로운 파장은 아니었지만 마치 폭발의 충격파와도 같은 마나가 데스티나의 몸에서 골렘에게로 쏟아져 나갔다.

마나의 공격을 받은 골렘은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튕겨 버렸다.

튕겨 나간 골렘의 온몸에서 서서히 돌조각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몸에서 약한 연결 부위들이 점점 부서져 가면서 그 틈이 굉장히 넓어졌다.

스윽.

몸을 웅크리고 있던 데스티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강하게 마나를 방출한 탓인지 그녀의 온몸, 그리고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전부 푸른색의 슬라임화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너는 내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드러내게 하였다.”

데스티나는 자신의 몸을 변형시켰다.

그러자 그녀가 입고 있던 모든 의복이 저절로 벗겨져서 계단으로 떨어져 내렸다.

떨어진 툴레오의 갑옷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아래층으로 사라져갔다.

“기사에게 다시금 이런 치욕을 느끼게 한 너의 죄. 결코 가볍지 않다!”

충격파의 영향으로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던 골렘은 점차 몸을 추스르면서 공격 태세를 잡기 시작하였다.

푸른색의 인간형 슬라임이 된 데스티나는 골렘 쪽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데스티나 입장에서는 당당한 발걸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다른 일행들이 봤다면 푸른색의 길쭉한 젤리가 둥실거리면서 이동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기사로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몸을 해야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골렘에게 다가가며 데스티나는 자신이 처음으로 전신 슬라임화가 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는 상당한 충격에 빠져서 별장의 방 밖으로 나가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방 안에 틀어박혀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데스티나는 그런 슬라임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전투법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몸을 늘려 멀리 있는 물건을 잡는 훈련. 그 훈련 덕분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다양한 모습으로 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

데스티나는 골렘을 향해서 양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양손이 늘어나면서 골렘의 몸을 붙잡았다.

골렘은 감정이 없었지만 데스티나의 형태 변화에는 당황한 듯 양손을 들어서 데스티나의 팔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데스티나의 행동이 더 빨랐다.

데스티나는 이번에는 손가락을 늘려서 파괴된 골렘의 몸 사이사이로 집어넣었다.

그녀는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마법사들이 만드는 골렘의 안에는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한 작은 중추가 있다는 것을.

골렘의 몸 안으로 파고든 데스티나의 손가락은 그 안에 있을 중추를 찾기 시작했다.

골렘 역시 그 의도를 눈치채고 데스티나의 내부 공격을 막기 위해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렇지만 물리적 타격에는 면역이 있는 슬라임의 몸을 가지게 된 데스티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찾았다!”

드디어 데스티나의 손가락에 작은 돌같이 생긴 골렘의 중추가 걸렸다.

데스티나는 곧장 그 중추에 손가락을 칭칭 감고는 강하게 잡아당겼다.

이제부터는 둘의 힘겨루기였다.

“하앗!”

데스티나가 온 힘을 다하자 드디어 골렘의 몸 바깥으로 중추가 빠져나왔다.

그리고 몸을 유지하는 중추를 지키질 못한 골렘은 깜짝 놀라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온몸이 갈라지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데스티나는 쥐고 있던 중추를 계단으로 던져서 박살을 내버렸다.

그러자 그에 맞추어서 골렘의 몸은 자갈 더미로 변하여 바닥으로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 * *

“이거나 먹어라!”

챙!

루카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참마도와 청동 인형이 휘두르는 검이 부딪치면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카는 자신의 스피드를 충분히 발휘하여 청동 인형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했지만 의외로 인형의 움직임은 제법 민첩했다.

‘제법 빠르잖아!’

루카는 작전을 바꾸어서 최대한 몸을 낮추고 인형의 다리 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부웅!

인형의 검이 루카의 머리 위쪽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루카는 몸을 굴려서 단숨에 인형과의 거리를 좁히고는 참마도로 청동 인형의 발목을 후려갈겼다.

탱!

마치 종을 때리는 것 같은 맑은 소리와 함께 루카의 참마도는 뒤쪽으로 튕겨 나갔다.

청동 인형은 파리를 잡듯 손을 내밀어 루카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자 루카는 뒤쪽으로 몸을 날리면서 그 손길을 피했다.

루카는 청동 인형과 적당히 거리를 벌리면서 동태를 살폈다.

‘공격이 빠른 데다가 내 칼이 닿는다고 하더라도 한 방에 저 금속 피부를 뚫는 건 역부족인데.’

쭈그려 앉은 루카는 귀찮다는 듯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짜증 나네, 마법사들이란 녀석들은. 자기는 안전한 곳에 숨어 있으면서 엄한 일은 다 다른 사람한테 시키고 말이야.”

투덜대던 루카는 인형이 자신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루카는 슬그머니 옆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인형 역시 그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맞추어서 움직였다.

가까이 가면 가까이 오고 떨어지면 거리를 벌린다.

인형의 목적은 오로지 뒤에 있는 나선 계단으로 침입자가 오르는 것을 막는 것인 듯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루카는 기가 찬 듯 인형을 향해 소리쳤다.

“야! 너는 아까 들어간 엘프 하나 못 막으면서 나만 이렇게 붙잡고 있는 게 대체 무슨 의미야?”

움찔.

‘움찔?’

인형은 그녀의 호통에 반응한 듯 뒤로 살짝 물러났다.

루카는 순간 우연이라고 생각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나라도 막아서 어떻게든 실수를 수습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제일 큰 거물을 놓쳤으니까 그런 건 아무런 소용도 없단 말이야. 내 말이 틀려?”

움찔.

분명한 반응이 있었다.

루카는 확신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청동 인형은 무감정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말에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을.

루카는 마치 야구 방망이를 둘러멘 불량배처럼 참마도를 뒤쪽으로 걸치고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인형의 반응이 달랐다.

원래는 그녀가 가까이 가면 인형도 그에 맞추어 가까이 왔지만, 지금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었다.

인형에게 가까이 다가간 루카는 참마도를 들어서 인형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너 솔직히 말해 봐. 내 말 알아듣고 있지?”

인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카는 본능에 따라 지금이 승부처라는 것을 느꼈다.

“너.”

루카는 인형을 올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변명이라도 해보시지?”

루카의 말이 끝나는 순간 단단하게만 보였던 청동 인형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 * *

“싸웁니다.”

이브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그 모습이 자랑스러운지 타마두크는 그녀의 옆에서 작게 손뼉을 치고 있었다.

“주인님. 성장하셨군요.”

“응. 나 성장한 것 같아.”

이브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주환으로서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저기. 직접 싸우는 건 당신이 아니잖아? 결국, 싸우는 건 난데 왜 당신이 감동에 빠진 거야?”

“아무튼, 주환 씨. 대의를 위해서라고 생각해 주세요.”

“이딴 일에 대의가 있을 리가.”

티격태격하고 있는 주환과 이브의 모습을 보고 있던 엘레나는 그사이에 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마쳤다.

“윈드 스피어!”

엘레나의 손에서 바람의 창이 만들어져 주환에게 쏘아졌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이브가 잽싸게 컨트롤러를 움직여서 주환이 그 공격을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진공 상태가 만들어질 정도로 초고속 회전을 하는 바람의 창이 주환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자 주환은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을 노렸겠다?”

“딱 봐도 네가 입고 있는 옷에 방어 마법이 걸려 있잖아. 그러니까 효율적으로 끝내려면 당연히 얼굴을 노리는 게 맞지 않겠어?”

엘레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렇게 설명해 주었다.

이브는 주환을 조종해 돌격 소총의 총구가 엘레나를 향하게 했다.

“죽어 주세요. 스승님!”

주환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퉁퉁퉁!

마치 작은 북을 때리는 것 같은 기묘한 소리와 함께 애벌레 탄이 발사되었다.

날아가는 애벌레의 속도는 5.56mm 탄환에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느렸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엘레나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빠르게 옆으로 몸을 피했다.

퍼석!

빗나간 애벌레가 벽에 부딪히자 노란색의 체액이 퍼지면서 그 주변을 부식시켰다.

“그만, 멈춰!”

주환이 소리쳤지만, 이브는 아랑곳하지 않고 엘레나를 향해서 총을 갈겨댔다.

“제발 죽어 주세요. 스승님!”

그렇게 말하며 주환을 조종하고 있는 이브의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타마두크는 감격을 했는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엘레나의 움직임은 이브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분명 마법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엘레나의 움직임을 따라가려다가 한 탄창을 다 써버린 이브는 곧바로 다음 탄창을 재장전했다.

“아직 예비 탄창이 많이 남아 있다고요!”

이브가 마구잡이로 쏴대는 통에 주변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계속해서 쏴대던 이브는 손을 멈췄다.

그러자 비로소 주환도 총 쏘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다.

“스승님. 그렇게 계속 도망 다니시는 건 의미가 없어요.”

이브의 도발에 엘레나는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는 제자리에 섰다.

움직임이 워낙 빨라 주환의 눈에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보였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그녀의 형태를 분간할 수 있었다.

“확실히 위력적인 무기이긴 하네. 거대한 대포를 이 정도로 소형화시킨 걸까? 심지어 단발이 아닌 연속적인 사격이 가능한 것도 놀라워. 물론, 이 정도의 기술을 우리 귀여운 제자가 가지고 있었을 리는 없을 텐데.”

엘레나의 말에 이브는 자존심이 상한 듯 항변했다.

“무…… 물론 원천 기술은 제 것이 아니지만 다중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친 건 저의 실력이에요.”

“그럼 그 기술을 제공한 쪽은?”

“그건 나야.”

주환의 대답에 엘레나는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그거 재미있네.”

이브는 엘레나에게 다시 총을 겨누었다.

“결판을 내죠.”

총구를 앞에 두고서도 엘레나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쏠 테면 쏴보라는 식으로 이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 얼마든지 쏴보렴. 이번에는 피하지 않을 테니까.”

“……정말이신가요?”

이브가 조심스럽게 그렇게 물었지만, 주환은 엘레나를 믿을 수 없었다.

“이브 씨. 이거 아무리 봐도 함정이야. 아무 생각 없이 저런 말 할 이유가 없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