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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37화 (37/182)

37화

문을 박살 낸 루카는 문의 뒤쪽에 있던 넓은 공간 안쪽으로 데구르르 구른 다음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루카가 도착한 곳은 꽤 넓은 방이었다.

둥근 기둥 모양을 한 검은 탑의 구조가 완벽하게 반영이 된 듯, 방의 벽은 완전한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바닥에는 방의 모양에 맞추어서 자른 것 같은 고급 카펫이 깔려 있었고 벽에는 타원형으로 뚫린 창문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방에 먼저 들어와 있던 엘레나는 방의 한가운데에 있는 존재를 마주 보고 있었다.

엘레나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3미터에 가까운 청동 동상이었다.

동상은 근육질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상체는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아 다 드러나 있는 상태였으며 하의도 짧은 바지 하나만을 입은 채였다.

동상의 손에는 짧은 한손검이 하나 들려 있었는데, 동상의 비율과 비교해서 짧을 뿐 실제 길이는 꽤나 길었다.

“어째서 올라가지 않고 여기에 있는 거야?”

루카는 엘레나에게 물었다.

“저 녀석이 이곳의 수문장이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루카의 물음에 엘레나는 손을 들어서 청동 동상의 너머를 가리켰다.

청동 동상의 뒤에는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나선형 계단이 위치했다.

“저 동상이 저 계단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거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냥 돌아서 가면 되는 거잖아?”

루카는 그렇게 말하곤 동상의 주변을 빙 둘러서 계단이 있는 쪽으로 나아갔다.

계단을 향해서 가던 루카는 문뜩 청동 동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놀랍게도 청동 동상은 고개를 돌려서 루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루카가 놀라 소리를 지르는 순간 청동 동상이 육중한 몸을 움직여서 루카에게로 다가갔다.

루카가 자세히 보니 청동 동상의 관절 부분마다 구체 관절 인형처럼 틈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즉, 그녀를 쫓고 있는 청동 동상은 단순한 동상이 아니라 거대한 자동 인형에 가까웠다.

휘익!

청동 인형은 들고 있던 청동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루카는 참마도를 들어 그 검을 받아 냈다.

깡!

묵직한 타격감이 루카의 손에 느껴졌다.

그녀가 청동 인형의 공격을 막고 있는 사이, 엘레나는 여유 있게 그들의 곁을 스쳐 나선 계단으로 향했다.

“치사해. 너!”

루카가 항의했지만, 엘레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나선 계단을 올랐다.

위층으로 사라지려던 엘레나는 고개를 살짝 내밀어서 루카를 바라보았다.

“그럼 수고해.”

그 말만을 남긴 채 엘레나의 모습은 루카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 * *

터벅터벅.

뒤에 루카를 남겨 놓은 엘레나는 거침없이 나선형 계단을 올랐다.

그녀가 지금 올라가는 계단에 함정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엘레나는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이 계단을 다 올라가고 나오는 문의 뒤에 자신의 제자인 이브가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계단을 끝까지 오르자 엘레나는 목재로 된 큰 문이 자신의 앞을 막아선 것을 볼 수 있었다. 엘레나는 문의 앞에 서서 한쪽 손바닥을 문에 대보았다.

결계는 걸려 있지 않았다.

문의 손잡이는 용이 고리를 물고 있는 노커 형태를 하고 있었다.

엘레나는 고리를 잡고는 흔들어서 문에 부딪혀 노크하였다.

문의 안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나 움직임도 없었다.

“손님맞이가 형편없네.”

그때, 엘레나의 손안에서 충격파가 발사되어서 눈앞의 문짝을 완전히 박살 내 버렸다.

부서진 문짝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엘레나는 문들의 파편들을 발로 차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문의 안쪽은 꽤 별천지였다.

안에는 식물원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자연 상태로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직사각형의 화분에 담겨서 가지런히 열을 맞추어 정리된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잘 정리가 되어 있네.”

엘레나는 내심 감탄하면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감상했다.

특수 제작된 화분은 기다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어 몸을 숙이지 않아도 쉽게 감상하는 것이 가능했다.

엘레나는 그것들이 대부분 마법에 사용하는 특수한 약초들이라는 것을 쉽게 감별할 수 있었다.

‘햇빛은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해 놓은 건가?’

그녀가 둘러보니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본 층은 다른 층들에 비해서 상당히 창문이 많아서 채광 상태가 꽤나 좋은 편이었다.

“버…… 벌써 오신 건가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엘레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있는 곳의 반대편에 이브와 타마두크가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도 함정을 통과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거로 생각한 거니?”

물론, 그녀가 빨리 올 수 있었던 것은 데스티나와 루카를 뒤에 남겨 놓고 왔기 때문이지만, 그녀가 직접 돌파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라오시면서 제가 준비한 함정들을 하나하나 평가하면서 오실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럴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귀여운 제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빨리 온 거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누가 보아도 전혀 반가운 표정은 아니었다.

“아니면 지금 평가를 해줄까? 첫 번째로 준비한 그 골렘 함정은 정말이지…….”

“됐어요! 됐어요! 필요 없어요!”

이브는 손사래를 치면서 엘레나의 말을 막았다.

엘레나는 방 안의 풍경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 네가 준비한 밑천도 대부분 다 떨어진 것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 날 막을 생각이지?”

그러면서 그녀는 손을 들어서 이브의 뒤에 서 있는 타마두크를 가리켰다.

“이번엔 네가 나설 참이야?”

지목을 당한 타마두크는 빙긋이 웃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주인님의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만 나설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설마 엘레나 님이 그런 일을 하실 리는 없겠지요.”

“결국에는 딱히 참견할 생각은 없는 이야기네. 그럼 이브. 네가 직접 나설 거니?”

엘레나의 물음에 이브는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다.

“스승님은 모든 관문을 돌파하셨다고 말씀하였지만, 아직 저에게는 비장의 카드가 남아 있어요.”

“오.”

엘레나는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비장의 카드라니, 기대가 되는데? 확실히 나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카드라면 좋겠는걸?”

“으음…… 그 정도까지 자신 있는 카드는 아니지만…… 어쨌든 보여 드리도록 하죠!”

이브가 외치자 타마두크는 들고 있던 컨트롤러를 이브에게 건네주었다.

이브는 컨트롤러를 붙잡고는 컨트롤러에 붙어 있는 스틱과 버튼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가라! 이세계의 군인이여!”

“이세계의 군인?”

이브의 외침과 동시에 한쪽에서 개조된 돌격 소총을 들고 있던 주환이 걸어 나왔다.

“아하. 너로구나.”

엘레나는 주환을 알아보고는 손뼉을 쳤다.

“아까 안 따라오겠다고 하더니 결국에는 저쪽에 붙은 거야?”

엘레나의 물음에 주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라고 좋아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야.”

그의 말과는 다르게 이브가 컨트롤러를 움직이자 주환의 총구가 엘레나를 향했다.

“누가 봐도 굉장히 공격적인 자세인걸?”

엘레나는 손안에서 뜨거운 불덩이를 유지한 채로 주환을 향해서 천천히 다가갔다.

“싸울 건지 물러설 건지 지금 선택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더니 엘레나는 멀찍이 서 있는 이브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어차피 선택권은 저쪽에 있을 테지만 말이야.”

* * *

계단에 남겨졌던 데스티나는 여전히 골렘과 대치 중이었다.

그녀의 검끝은 정확하게 골렘의 얼굴 부분을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물러선다면 내 쪽에서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검은 골렘에게 그다지 위협이 되지 못하는 듯 이윽고 공격이 재개되었다.

골렘은 양팔을 붕붕 돌리면서 데스티나에게 달려들었다.

데스티나는 검을 휘둘러서 골렘의 공격을 받아 냈다.

챙!

철퇴로 때리는 것 같은 묵직한 느낌이 데스티나의 손에 전달되었다.

보통의 검이었다면 골렘의 공격을 받아 내는 순간 이가 빠져 버렸겠지만, 데스티나가 사용하는 툴레오의 검은 그 정도 공격으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문제는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데스티나 역시도 골렘에게 상처를 입힐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데스티나도 능숙하게 골렘의 공격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골렘은 고통을 느끼거나 지치는 법이 없었기에 그녀는 공격을 막으면서 점점 뒤로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마나를 사용하면 되지만…….’

데스티나의 생각이 거기에 미쳤지만, 그녀는 쉽사리 마나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대신 신체를 슬라임으로 만들어 버리는 부작용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부웅!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골렘의 팔 공격을 데스티나가 막아 낸 순간, 이번에는 골렘의 앞차기가 동시에 데스티나의 복부로 날아왔다.

그 공격만큼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데스티나의 가슴팍에 골렘의 발차기가 명중했다.

“크윽!”

강력한 힘에 데스티나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툴레오의 갑옷이 가진 방어력 때문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순간 온몸의 힘이 빠질 정도로 강렬한 타격임은 틀림없었다.

뒤로 넘어진 데스티나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다잡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앞에는 골렘의 발바닥이 쇄도하고 있었다.

쾅!

데스티나는 고개를 움직였다.

그러자 골렘의 발이 그녀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 뒤쪽의 벽을 강타했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단 한 번에 죽을 수도 있었던 위험한 공격이었다.

“합!”

데스티나는 한 바퀴 구르면서 일어나 검을 휘둘렀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데스티나가 검을 휘두르자 마나의 파장이 검에서 발사되었다.

검에서 발사된 파장은 골렘의 손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그러자 파장이 지나갔던 골렘의 손가락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방금 공격으로 손가락만을 자른 게 고작인가?’

데스티나는 허탈함을 느꼈다.

그녀 자신도 모르게 힘을 방출할 때 최소한으로 조절을 한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데스티나의 오른손은 감각이 없어져 있었다.

스윽.

갑작스러운 강한 공격에 골렘도 조금은 놀란 듯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고통은 모르지만, 위험한 공격이라는 정도는 감지한 모양이었다.

잠깐의 시간을 번 데스티나는 착용하고 있던 건틀릿을 벗었다.

그녀의 오른손은 푸른색의 슬라임처럼 변해 있었다. 손바닥이나 손가락 등의 모습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마치 오징어가 움직이듯이 연체동물처럼 부드럽게 흐느적거렸다.

‘낭패다.’

데스티나는 건틀릿을 다시 끼우고는 오른손으로 검을 잡아보았다.

건틀릿이 손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곤 있었지만, 감각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검을 다루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태세를 가다듬은 골렘은 곧장 다시 데스티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데스티나는 바로 왼손으로 검을 옮겨 잡은 다음 아까보다 더욱더 강한 마나 공격을 시전했다.

이번의 파장은 골렘의 팔 부분을 지나갔으며, 그 결과 골렘의 팔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쿵!

바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데스티나는 양팔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데스티나는 필사적으로 계속해서 검을 쥐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데스티나의 힘없는 손가락에서 빠져나간 툴레오의 검은 바닥으로 떨어져 계단 위를 굴렀다.

“아뿔싸!”

검이 떨어짐과 동시에 골렘은 남은 팔을 휘둘러서 데스티나를 공격했다.

데스티나는 권투 선수처럼 양팔을 들어서 골렘의 공격을 받아 냈다.

깡!

야구 선수가 홈런을 날렸을 때와 비슷한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데스티나는 뒤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날아간 데스티나는 벽에 처박혔다.

등 쪽에 닿는 충격에 신음을 흘리던 그녀는 문뜩 이상함을 깨달았다.

‘분명히 이 정도 공격을 양손으로 막았는데 양팔에는 아무런 고통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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