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데스티나와 루카, 엘레나는 여전히 거대한 바위와 대치 중이었다.
“아마도 저건.”
엘레나의 말에 데스티나와 루카의 시선이 그녀의 입으로 쏠린다.
“움직이는 바위일 거야.”
이어지는 엘레나의 말에 듣고 있던 루카는 인상을 썼다.
“우리가 너무 바보라서 그런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그렇지 않아.”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어째서 저 바위가 혼자서 움직일 수 있냐는 게 중요한 거겠지. 저건 그냥 바위가 아니야. 마법으로 만들어진 생물이지.”
엘레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멈추어 있던 바위의 이곳저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금들은 서서히 벌어지면서 마치 벌어지는 꽃봉오리와 같은 모습을 취했다.
“변하고 있군.”
데스티나는 검을 꽉 쥐면서 그렇게 말했다.
활발하게 모습을 바꾸고 있던 바위는 마치 변신 로봇처럼 점점 인간의 신체를 떠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몇 초 뒤, 그들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마치 프로레슬러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멋진 몸을 가지고 있는 완벽한 바위 인간이었다.
“저건 대체 무슨 괴물인 거야?”
루카가 그렇게 묻자 엘레나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저건 괴물이 아니야. 골렘이라는 거지.”
엘레나가 골렘이라고 설명한 바위인간은 천천히 세 사람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단단한 그의 발바닥이 계단에 닿을 때마다 딱딱한 물체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탑의 안쪽에 울려 퍼졌다.
“저 녀석은 우리를 방해할 속셈인 건가?”
데스티나는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데스티나는 모두가 힘을 합쳐 그 골렘을 막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엘레나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몸을 휙 돌려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봐! 잠깐!”
당황한 데스티나가 엘레나를 막으려고 했지만, 엘레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럼 이쪽은 너에게 부탁할게.”
“이럴 때는 같이 적을 무찔러야 하는 것 아닌가!”
“그건 어렵지 않지만 나는 딱히 너희의 동료가 아니잖아? 그리고.”
엘레나는 손을 들어서 데스티나가 입고 있는 갑옷을 가리켰다.
“그 갑옷을 잘 활용한다면 저 골렘을 쉽게 쓰러뜨릴 수가 있을 거야. 그 갑옷은 그렇게 시시한 물건이 아니니까.”
엘레나는 그 말만을 남기고는 훌쩍 위쪽으로 올라가 버렸다.
데스티나와 엘레나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루카는 결심하고는 엘레나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먼저 가서 미안해! 그렇지만 저 엘프가 또 이상한 짓을 벌일지도 모르잖아? 누군가는 감시해야 할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
루카는 그 말만을 남기고는 엘레나의 뒤를 따라갔다.
“잠깐. 루카!”
위쪽으로 올라간 루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복도에 남은 것은 데스티나와 골렘뿐.
둘 사이에는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돌로 된 골렘에게는 표정이 있을 수가 없기에 그녀로서는 지금 그 골렘이 무엇을 하려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데스티나는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이봐. 혹시 자네는 이름이 있나?”
데스티나가 골렘에게 그렇게 물었지만 골렘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답하진 않는군. 이름을 알려 주지 않으니 그냥 골렘이라고 부르겠다.”
데스티나는 손을 들어서 탑의 위층 쪽을 가리켰다.
“나는 굳이 쓸데없는 싸움을 벌이고 싶지는 않네. 내가 위쪽으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자네의 주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그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나?”
데스티나는 골렘을 설득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골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걸음을 옮겨서 데스티나에게 가까이 접근해 왔다.
그러자 데스티나는 골렘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무슨 의도로 이렇게 접근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 멈추어 주길 바란다.”
골렘은 멈추지 않았다.
골렘은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육중한 팔을 위쪽으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마치 철퇴를 휘두르듯이 데스티나를 향해서 내리찍었다.
쾅!
데스티나는 뒤로 잽싸게 피했다.
그러자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골렘의 팔이 충돌했다.
데스티나가 피한 것을 확인한 골렘은 천천히 자신의 팔을 들었다.
골렘이 공격했던 자리는 금이 가 있었으며 골렘의 주먹에서도 바위의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내렸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는 아니로군. 처음부터 그럴 거로 생각했지만.”
데스티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계속해서 나를 막아선다면 베어 주겠다.”
* * *
“기다려, 엘프!”
데스티나와 헤어진 루카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곧장 따라갔지만, 엘레나는 위쪽으로 제법 많이 올라간 상황이었다.
엘레나는 마치 달의 표면을 뛰어다니는 우주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저것도 마법의 일종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루카는 혀를 내둘렀다. 루카는 엘레나를 따라잡기 위해서 점점 더 속력을 냈다.
가볍게 뛰어서 올라가던 엘레나는 뒤를 돌아보면서 루카를 바라보았다.
“조심하는 게 좋을걸?”
“무슨 소리야?”
철컥!
그때, 루카가 발을 디딘 계단이 철컥 소리를 내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이미 당해 봤던 상황이기에 루카는 그것이 함정 발동의 스위치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루카가 스위치를 밟음과 동시에 바닥과 양쪽의 벽에서 구멍들이 여러 개가 생겨났다.
‘이번에도 창인가?’
루카는 그렇게 예상했지만, 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그녀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것은 강렬한 열기를 동반하는 불기둥들이었다.
“으앗!”
구멍에서 화염방사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화염들은 루카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루카는 속도를 줄이려고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루카는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참마도로 앞을 가렸다.
멈출 수가 없다면 단숨에 돌파해 버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루카는 눈을 질끈 감고 불기둥들을 돌파해 나갔다.
“앗?”
이상한 느낌이 든 루카는 감았던 눈을 떴다.
어느 정도 화상을 입는 것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온몸에는 그 어떤 열기도 닿질 않았다. 루카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에서는 여전히 불기둥들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통과한 건가?’
불기둥들을 너무 쉽게 통과했다고 생각한 루카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몸은 지금 전신이 물로 된 방어막으로 덮여 있었다.
루카가 앞을 보니 엘레나는 멈춰 서서 루카를 향해서 손을 뻗고 있었다.
엘레나가 물의 정령을 소환하여 루카를 지킬 수 있는 물의 방어막을 만든 것이다.
“아무리 생각이 없다지만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엘레나가 손가락을 튕기자 루카를 감싸고 있던 그 물의 정령이 만들어낸 방어막은 사라져 버렸다.
“방금 그건 뭐였던 거야?”
“뭐긴 뭐야? 물의 정령이지.”
“물의 정령?”
“그래. 만약 내가 물의 정령을 소환하지 않았다면 너는 엄청난 화상을 입었을 거야.”
엘레나의 말을 들은 루카는 다시 한번 불기둥의 함정을 살펴보았다.
함정의 구간 자체는 길지 않았지만, 함정의 화력이 워낙 강력했기에 엘레나의 말처럼 물의 정령이 아니었다면 루카가 크게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큰일 날 뻔했네.”
루카가 그렇게 말하자 엘레나는 그녀가 있는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 내려왔다.
“그걸로 끝?”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루카는 몸을 일으키고는 엘레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목숨을 구해 주었으면 응당 해야 하는 말이 있잖아?”
“으윽…….”
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냥 넘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잠깐.”
루카는 앞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꼭 네 마법 때문에 다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잖아?”
“너무 구차한 말인데?”
엘레나는 여유 있게 웃었다.
루카 역시도 그 말에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자신이 지금 억지를 쓰고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증명하고 싶다면 다시 저 화염 속을 통과해 보는 건 어때?”
“너 정말로 취미가 고약하구나?”
“고약하다니. 생명의 은인으로서 응당 받아야 하는 인사 정도는 받고 싶다는 것뿐인걸.”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루카로서는 별수가 없었다.
루카는 입술을 꾹 다물고는 얼굴을 붉혔다.
“고마워…….”
루카의 입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목소리가 너무 작은데.”
“으으윽!”
얼굴이 엄청나게 빨개진 루카는 이번에는 크게 소리쳤다.
“구해 줘서 고맙다고!”
“그래, 그래. 착하다.”
엘레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서 루카를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하는 짓이야. 손 치워!”
루카는 기겁했지만 엘레나는 손을 치우지 않고 계속해서 루카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루카는 몸을 옆으로 움직여서 엘레나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너희 엘프들은 정말 이해가 안 돼.”
“너도 나 정도 나이를 먹으면 이해를 하게 될 거야. 이 세상에 있는 어지간한 것들은 다 귀엽게 보이거든.”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아. 어차피 나는 너 정도로 나이를 먹을 수도 없기도 하고.”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엘레나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지만, 루카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엘레나가 향하던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너는 나보다 앞서서 갔으면서 저런 함정에 걸리지 않았던 거야?”
“어차피 이런 종류의 함정들은 대부분 바닥에 있는 스위치를 밟으면 발동이 되는 것들이니까. 몸을 가볍게 만들면 스위치를 작동시키지 않고 올라갈 수 있어.”
“그것도 마법으로?”
“그래. 너한테도 걸어 줄까?”
루카는 걸어 달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순순히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냥 해주진 않을 생각이지?”
“물론이지. 저에게 마법의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라고 말하면 해줄 수도 있어.”
“웃기시네.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
“그렇게 말할 거로 생각했어. 그럼 나 먼저 올라갈 테니까. 알아서 천천히 따라와.”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금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위로 올라가던 엘레나는 뒤를 돌아보면서 빙긋 웃었다.
“물론, 발밑 조심하구.”
“시끄러워! 네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야!”
위쪽으로 사라져 가는 엘레나를 보면서 루카는 계단과 바닥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니까 어차피 계단을 최소한으로 밟으면 되는 거잖아? 그럼 함정 스위치를 밟을 확률이 낮아지는 거겠지.’
생각을 마친 루카는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여러 개의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랐다.
꽤 많은 계단은 단번에 뛰어오른 루카는 발이 바닥에 닿기 전에 옆쪽의 벽을 발로 차서 몸을 한 번 더 공중으로 띄웠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으로 계단을 밟으면서 올라갈 수 있어!”
엘레나에게 들으라는 듯 루카는 소리쳤다.
공중으로 몸을 날린 뒤 벽에 발을 디디면서 솟구치는 방법으로 루카는 최소한의 횟수만으로 계단을 밟아 나갔다.
그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탑을 오르던 루카는 어느덧 하나의 문이 앞을 막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엘레나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 것을 보니 그녀는 이미 그 문을 통과한 모양이었다.
‘저기가 탑의 중간층인가?’
루카는 마지막으로 몸을 날려서 드롭킥으로 눈앞의 문을 박살 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