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쿵!
두 사람이 거울을 던짐과 동시에 주환은 바로 몸을 굴려서 탑의 옥상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거울을 던졌던 타마두크가 옥상 바닥으로 떨어진 주환을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주환 님?”
타마두크의 말에 갑옷을 입은 이도 놀란 듯했다.
주환은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그렇군요. 조금만 늦었으면 저 거울과 함께 주환 님을 같이 공중에 던져 버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주환의 시선이 갑옷을 입은 이에게 향했다.
“저 사람은?”
주환이 타마두크에게 설명을 요구하자 갑옷을 입은 이가 쓰고 있던 투구를 벗어서 얼굴을 드러냈다.
“저예요.”
“이브?”
이브는 투구를 손에 들고는 검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왜 그런 갑옷을?”
“그야…… 무서우니까요.”
“무섭다고요?”
이브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스승님이 화가 나시면 이 탑 자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체 뭘 하고 있던 겁니까?”
“보면 모르시겠어요? 텔레포트로 들어올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막아 버리는 거죠. 스승님이라면 제가 만들어 낸 마법 도구들도 다 사용하실 수 있으시니까요.”
“지금 그 스승님이라는 분은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오고 계시는데?”
“뭐라고요?”
주환의 말에 이브는 마치 ‘뭉크의 절규’를 연상하게 하는 얼굴이 되어 버렸다.
“스승님이라면 분명 제가 준비해 놓은 모든 함정을 다 부숴 버리면서 오실 텐데…….”
“우선 내려가서 생각하시는 게 좋겠군요. 엘레나 님이 꼭대기 층까지 오셨을 때를 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타마두크의 말에 이브는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렇지만 이제 다 끝이야. 지금의 스승님이라면 이 탑을 완전히 날려 버리면서 끝을 맺으실 거야. 분명히 그러고도 남으실 분이야.”
세 사람은 옥상의 계단을 통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비로소 주환에게 익숙한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테이블이 있는 방으로 홀로 내려갔을 때 이브가 주환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주환 씨는 따로 올라오신 거죠?”
“저쪽이랑 같이 행동하는 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요.”
“어째서요?”
“싫다는 사람 억지로 밀고 들어가서 괴롭히는 건 취향이 아니니까. 나머지 제 동료는 꽤 취향에 맞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죠.”
“어쩔 수 없죠.”
이브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루카 씨야 계속해서 직접 만나는 걸 원했고 데스티나 씨는 제가 한 번 골탕을 먹인 적이 있으니까요.”
“어떻게든 원만하게 마무리 짓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솔직히 원수 사이도 아니고 스승과 제자 사이인데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그냥 조금 혼나고 마는 거지.”
“그런 상황이라면 이미 그렇게 했겠죠.”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말하자면 좀 길어요. 간단히 말하자면 전 스승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하산해 버린 상태예요. 제대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결착을 짓지 못한 거죠. 이 탑에 틀어박혀 버린 게 그때쯤이고요.”
“어째서 스승님이랑 결별했는데요?”
“그건 개인 프라이버시라서 말하긴 좀 그렇네요.”
“그럼 그렇게 오랫동안 결별했던 사이인데 저희 일을 부탁했다는 말입니까?”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까 화를 좀 푸셨을 거로 생각했죠.”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주인님.”
타마두크가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지금은 확실하게 스승님을 맞이하든지 아니면 아무리 스승님이라고 하더라도 이 폭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맞서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엘레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 건 우리 쪽이잖아. 그리고 이브 씨는 영원의 교차점에 갈 수 있는 정보에 대해서 책임져야 하는 처지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엉뚱하게 일이 커지는 건 바라질 않아.”
주환은 강력하게 자신의 의견을 어필했다.
주환과 타마두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브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수밖에 없겠어.”
이브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면서 주환을 바라보았다.
“주환 씨. 저를 따라오세요.”
이브는 갑옷을 입어서 무거워진 몸을 뒤뚱거리면서 주환을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 * *
“으흠.”
검은 탑의 나선 계단을 올라가고 있던 엘레나는 뒤따라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루카와 데스티나 두 사람이 엘레나의 뒤를 따라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을 발견한 엘레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이상한 옷차림을 한 남자는 어디로 갔지?”
“글쎄. 우리를 따라오지는 않았다. 아마 따로 행동할 생각인 것 같더군.”
데스티나의 말에 엘레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미소 지었다.
“오호라. 그렇다면 그 손거울을 가지러 갔겠네. 그 아이, 내 제자와 꽤 친분을 쌓은 모양이지?”
“당신 제자이니까 잘 알겠지만, 이브는 타인과 접촉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면이 있더군. 이브와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중에 주환밖에 없었다.”
“그래? 그것참 특이한 일이네.”
그렇게 말하며 엘레나는 거침없이 계단을 올랐다.
그 뒤를 따라가면서 루카가 엘레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탑에 함정이 가득하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조금만 머리를 쓰면 알 수 있는 일이야.”
엘레나의 말에 빈정이 상한 루카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으래? 아까 입구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에도 결국 너도 아무 데에나 불 질러서 입구를 찾아낸 거잖아. 머리 타령을 하기 전에 너도 머리를 쓰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어때?”
“너희같이 문외한의 눈에는 그저 불장난같이 보였을지도 모르지. 정확한 포인트와 정확한 해체 방법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불을 지른다고 해도 의미 없는 일이야. 어차피 말해 줘도 이해를 못 하겠지만.”
루카는 펄쩍 뛰어서 엘레나의 옆에 섰다. 그러고는 엘레나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나는 엘프라는 종족을 처음 만나 보는데 말이야, 원래 엘프들은 다 성격이 너 같은 거야?”
“나 같은 게 어때서?”
“너처럼 고고한 척이 심하냐는 말이지.”
“난 고고한 척을 하는 게 아니야. 정말로 고고한 거지. 그러는 너는 뭘 하던 아이지? 손에는 큰 칼을 들고 있지만, 본질적인 적인 부분에서 넌 전사가 아니야. 손에 박여 있는 굳은살의 형태와 입고 있는 옷만 보더라도 확실하게 알 수가 있어. 넌 그저 농부일 뿐이야.”
“그래, 맞아. 난 그냥 농부일 뿐이지.”
그 순간, 엘레나와 루카가 걷고 있던 계단의 벽에서 여러 자루의 창이 튀어나왔다.
창들은 특정 계단을 밟으면 발동하는 함정으로, 그 끝이 정확하게 루카와 엘레나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자 루카는 빠르게 참마도를 휘둘러서 그들을 공격하는 창들을 잘라내 버렸다.
잘려 나간 창의 끝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고 남은 창 자루들은 벽에 나 있는 구멍들로 다시 들어갔다.
루카는 보란 듯이 엘레나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이런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농부란 말씀이야.”
“생각보다 제법이네?”
그러면서 엘레나는 손을 뻗어서 루카의 볼을 잡고 살짝 잡아당겼다.
“아야야. 뭐 하는 거야!”
루카가 놀라면서 엘레나의 팔을 뿌리치자 그녀는 피식 웃었다.
“내 나이 정도 되면 그런 반응들은 어린아이들 재롱잔치처럼 보인단 말이지.”
“네 나이가 대체 몇 살이길래 그래?”
“한번 알아맞혀 봐. 그나저나 너 같은 애들은 100 이상은 셀 줄 아는 거야?”
“무시하는 것도 정도껏 하는 게 좋아.”
루카가 성을 내려고 할 때, 엘레나와 루카의 사이에 데스티나가 적절하게 끼어들었다.
“그만. 그만 거기까지.”
그리고 데스티나는 계단에 떨어져 있는 잘린 창 중의 하나를 집어서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이브라는 마법사, 정말로 간절하게 이 탑을 지키고 싶은 모양이다. 이 창끝은 날카롭게 잘 벼려져 있다. 방심했다가는 한 번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는 함정이지.”
“그러니 서로 티격태격하는 것은 그만하고 협력하자는 이야기?”
“바로 알아들어 줘서 고맙군.”
데스티나는 들고 있던 창을 바닥에 던지고는 앞장서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서로 협력해서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거다. 일단은…….”
철컥!
그때, 데스티나가 밟은 계단 일부가 스위치처럼 아래쪽으로 꺼지면서 기계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나아가자고 하자마자 바로 함정을 밟은 거야?”
엘레나가 그렇게 묻자 데스티나는 곧장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녀가 밟은 계단이 함정의 스위치 역할을 하는 것은 확실해 보였지만 지금 눈에 띄게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없었다.
“내가 뭘 작동시켜 버린 거지?”
쿠르릉.
그때, 위층에서 작은 진동과 함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그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소음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세 사람과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설마 그런 종류의 함정인 건가?”
엘레나가 뭔지 알았다는 듯 중얼거리자 나머지 두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모였다.
“무슨 종류의 함정인 건데?”
“너무 안달하지 마. 곧 알게 될 테니까.”
엘레나의 말에 두 사람은 계단의 위쪽에 시선을 주었다.
벽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 온몸으로 느낄 정도였다.
이윽고 진동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계단의 위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 있는 생물체는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거침없이 굴러서 세 사람을 향해서 돌진하고 있는 거대한 바윗덩어리였다.
“바위다!”
“왜 저런 게 이런 탑에 있는 거야!”
루카와 데스티나는 놀란 기색이 완연했지만, 엘레나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저 정도는 되어야 함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럼 나 먼저 가도록 할게.”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어서 바람의 정령을 불러냈다.
바람의 정령이 그녀의 양다리 쪽에 자리를 잡자 엘레나의 몸은 마치 무중력 상태에 놓인 것처럼 둥실 떠 올랐다.
위쪽으로 가볍게 떠 오른 엘레나는 자신을 향해서 굴러오는 바윗덩어리를 살짝 밟듯이 뛰어넘었다.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구!”
루카는 그 자리에서 곧장 점프했다.
놀라운 신체 능력으로 높이 솟아오른 루카는 공중제비를 돌면서 바위를 뛰어넘었다.
“큿!”
혼자서 남은 데스티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데스티나의 몸놀림으로는 그 정도까지 높게 점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겐 이 검이 있다!”
데스티나는 툴레오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바위가 그녀를 덮치려고 하는 그 순간에 데스티나는 검에 마나를 모아서 단숨에 휘둘렀다.
데스티나의 예상에 의하면 지금 바위는 둘로 갈라져야 했지만.
그 순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바위가 농구공처럼 튕겨서 위쪽으로 점프한 것이다.
“대체 무슨?”
데스티나의 검을 피해서 점프를 한 바위는 데스티나를 넘어서 뒤쪽으로 착지했다.
착지를 한 바위는 더는 굴러가지 않고 계단의 한가운데에 멈추었다.
검은 탑의 나선 계단은 상당히 경사가 져 있기 때문에 굴러오던 바위가 그런 식으로 멈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보니 저건 평범한 바위가 아니야.”
엘레나는 멈춰 있는 바위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럼 대체 저건 뭐지?”
“내 예상이 맞는다면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