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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31화 (31/182)

31화

루시아는 눈을 떴다.

루시아는 졸린 눈을 깜빡이면서 눈앞에 있는 깊은 어둠을 응시했다.

어둠을 보고 있던 루시아는 자신이 아침이 되기 전에 깨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 더 자두는 게 좋겠어.’

루시아는 눈을 감고는 덮고 있는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렇지만 그녀는 다시 잠들 수 없었다.

다시 잠들기를 계속해서 기다리던 루시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이 되어서 다시금 눈을 떴다.

어둠은 여전히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

스르륵.

루시아가 몸을 일으키자 그녀를 덮고 있던 이불이 옆으로 흘러내렸다.

루시아는 동생이 잘 자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옆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당황한 루시아는 옆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남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간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했지만, 루시아의 마음속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왜일까? 그렇게 느껴야 할 확실한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루시아는 자신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빠질 때마다 그에 걸맞은 상황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시아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침대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부실하고 어설픈 면이 있는 만듦새였지만, 그녀와 동생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져 굳이 촛불을 켜지 않아도 앞을 보는 데 문제는 없었다.

숙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도 자리를 비우셨는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루시아는 숙소의 밖으로 나갔다.

아직은 한밤중이었기에 주변은 어두웠다. 달도 뜨지 않은 밤이었다.

“다들 어디 가신 걸까?”

루시아는 바로 옆에 있는 숙소로 다가갔다.

피난민들이 모여서 만든 숙소에는 제대로 된 문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버려진 마을에 수많은 피난민이 몰려들자 그들이 전부 묵을 수 있는 집이 턱없이 부족해졌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진 것들이 그들이 사는 이 간이 숙소였다.

그러한 간이 숙소들의 수준이 높을 리 만무했다.

그저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일 뿐.

루시아는 살짝 고개만 들이밀고 숙소 안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그 숙소에도 자는 이는 없었다.

당황한 루시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자고 있는 시간이라고 하지만 정착지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아무도 없는 마을이 된 것처럼.

‘불안해. 굉장히 불안한 느낌이야.’

루시아는 옷을 여미고는 걸음을 옮겼다.

‘우선 부모님과 동생부터 찾아야겠어.’

보통 때라면 한밤중에 가족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곧장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찾아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온 세상이 좀비 세상이 된 지금의 상황에선 가족들의 사라짐이 아주 심각한 사건의 전조일 가능성도 있었다.

정착지를 벗어나는 길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루시아는 멀리 불빛들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허공에 뜬 도깨비불처럼 보이는 그 불빛들은 사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횃불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설마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걸까?’

놀란 루시아는 걸음을 재촉했다.

횃불을 들고 있는 몇 사람의 뒤로 수많은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루시아가 그들을 향해서 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루시아의 손목을 잡아챘다.

“앗!”

루시아가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그녀의 손목을 잡은 장본인이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면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페드로!”

자신의 손목을 잡은 사람이 동생임을 깨달은 루시아는 깜짝 놀라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남동생 페드로는 계속해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누나. 지금은 조용히 해야 해.”

페드로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루시아의 목소리도 덩달아서 낮아졌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인 거야?”

“나도 모르겠어.”

페드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힐끔 보더니 루시아에게 손짓했다.

“우선 이쪽으로 와.”

페드로는 루시아를 이끌고 군중이 모여 있는 곳과 어느 정도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큰 나무 뒤에 숨어서 동태를 살폈다.

“엄마 아빠는 다 어디 가신 거야?”

“두 분 다 저기에 계셔.”

페드로는 손가락으로 군중의 가장 앞에 있는 인물들을 가리켰다.

두 사람의 부모님은 지금 횃불을 들고 군중의 가장 앞줄에 서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갑자기 무슨 일인지 두 분 다 한밤중에 깨어나셨어. 엄마 아빠뿐만이 아니야. 정착지의 어른들은 다 일어나신 것 같아. 나는 마침 화장실 가려고 일어났었는데 엄마가 절대로 따라오지 말고 숙소에 있으라고 하셨거든.”

“왜 그러셨을까?”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셨어.”

“위험한 일?”

페드로의 말에 루시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여 있는 군중의 모습은 모두 익숙한 모습들이었다.

정착지에 사는 이웃들의 뒷모습. 그들은 전부 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른들이 지금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나 봐.”

두 사람은 귀를 기울였다.

군중과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가 좀 있었지만, 집중하면 대화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는 당신들이 올 곳이 아니야!”

익숙한 목소리.

방금의 목소리는 루시아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피난민들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너희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그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낮으면서도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

피난민들이 들고 있는 횃불에 살짝 비쳐 보이는 그자는 마법사들이 입는 검은색의 로브를 입고 두꺼운 후드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야?”

루시아가 페드로에게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르겠어. 처음 보는 사람들이야.”

“당신들의 소문은 익히 들었지.”

루시아의 아버지는 위협을 하듯 횃불을 눈앞의 상대에게 겨누었다.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으면 살인도 불사하겠다.”

루시아는 아버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여 있는 군중이 저마다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검에서부터 몽둥이, 그리고 농기구들까지.

피난민들은 군인이 아니었지만 지금 저마다의 방법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무서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루시아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누나. 지금까지 다 똘똘 뭉쳐서 이겨 냈잖아. 이번에도 어른들이 알아서 하실 거야.”

그렇지만 말과는 다르게 페드로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그것참 대단한 협박이로군.”

로브를 입은 남자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런 농기구들을 가지고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건가?”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뒤에서 그와 똑같은 복장을 한 자들이 서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는 끝까지 저항할 거다.”

루시아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 그렇지 않은가?”

그가 그렇게 외치자 모여 있던 군중은 손에 들고 있는 무기들을 위쪽으로 추어올렸다.

“당연하지!”

“당장 우리들의 땅에서 꺼져!”

“이 세상을 망쳐 놓은 건 너희야!”

군중들은 그렇게 아우성을 쳤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군. 아니, 너무나도 생각이 짧은 것인가?”

로브의 남자는 후드를 걷어서 민얼굴을 드러냈다.

하얗게 센 올백 머리칼에 턱을 덮고 있는 하얀 수염.

적어도 60대는 되어 보이는, 강인한 인상을 한 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내 이름은 클레이브.”

자신을 클레이브라고 밝힌 자는 엄숙한 발걸음으로 군중을 향해서 천천히 다가갔다.

“나는 너희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클레이브는 가장 앞장선 군중들의 눈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계속해서 도망치는 신세에 아무 걱정 없이 잠을 자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를 않겠지. 친구였던 사람이, 아니면 이웃이었던 자가 갑자기 적이 되어서 생명을 위협하고 가족들을 위협하는 끔찍한 나날을 보내 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군중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기 싸움을 하듯이 클레이브를 노려볼 뿐이었다.

“우리와 합류한다면 너희를 위협하는 그 모든 것에서 보호해 줄 것이다. 다시 안전한 생활로 돌아갈 수가 있는 거지. 너희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건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다.”

“거짓말하지 마!”

군중들이 소리쳤다.

“너희가 무슨 짓을 하는 놈들인지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 끌고 간 사람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들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갔다.”

클레이브는 한껏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너희도 그러한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클레이브는 군중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를 따를 자들은 앞으로 나서라.”

그러자 갑자기 루시아의 아버지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루시아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여보!”

루시아의 아버지는 클레이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앞으로 내밀고 있는 클레이브의 손에 침을 뱉었다.

“툇!”

클레이브가 침이 묻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자 루시아의 아버지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에게 줄 것은 이것밖에 없다. 이 더러운 마법사 놈들아.”

“옳소! 옳소!”

피난민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소리쳤다.

“그런가?”

클레이브는 예상한다는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

“안타깝군.”

클레이브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의 뒤에 있던 다른 마법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놀란 피난민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는 농기구와 무기들을 그들에게 겨누었다.

“몇 명은 본보기로 죽여도 좋다. 그렇지만 절대 전부 다 죽여서는 안 된다.”

클레이브의 말이 떨어진 순간 마법사들은 동시에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손을 내밀자 불덩어리들이 만들어져 피난민들에게 쏟아졌다.

화르륵!

“아악!”

“저놈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우리도 맞서 싸우자!”

마법사들이 공격을 시작하자 질세라 피난민들도 마법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무기를 손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농민 출신인 피난민들은 전투에 숙달된 마법사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사방이 완전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마법사들이 쏘아대는 불덩이들이 가장 앞에 있는 사람들을 불태워 버렸다.

피난민들은 필사적이었지만 마법사들은 여유가 있었다.

마치 동물을 사냥하듯 마법을 사용해 피난민들을 공격해댔다.

앞에서 피난민들을 지휘하고 있던 루시아의 부모님은 불덩이에 휩싸여서 순식간에 재로 변해 버렸다.

“엄마! 아빠!”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시아와 페드로는 비명을 질렀다.

두 사람은 나무에서 벗어나 달려 나갔다.

휘익.

그때, 두 사람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그는 바로 클레이브였다.

“너희는 숨어서 보고 있었던 거로구나.”

클레이브의 말에 루시아는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그러자 페드로가 루시아를 반대쪽으로 떠밀었다.

“누나. 도망가!”

“잠깐만! 싫어, 페드로!”

“빨리 도망가라니까! 여기 있으면 둘 다 죽을지도 몰라!”

“나 혼자 갈 수는 없어!”

“가야 해. 제발 여기서 도망쳐!”

절규에 가까운 페드로의 목소리에 루시아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렸다.

루시아는 필사적으로 달려서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도망가는 루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클레이브는 양팔을 벌려 자신을 막고 있는 페드로를 보았다.

“꽤 남자다운 행동을 보여 주는구나. 그 용기에 경의를 표해서 저 여자아이는 놔두도록 하마.”

페드로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클레이브를 노려보았다.

“당신들은. 당신들은 대체 누구야! 어째서 사람들을 죽이는 거야? 왜 우리 부모님을 죽인 거야!”

“딱히 너희 부모를 골라서 죽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누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거든.”

클레이브는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도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단다. 그렇지만 가끔은 본보기라는 것을 보여 줄 필요도 있거든.”

“당신은 악마야. 마족이야. 마족보다 더한 자들이야.”

페드로는 저주를 퍼부었다.

그렇지만 클레이브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주 고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란다. 너희 부모님, 그리고 저기 있는 모든 이들이 우리를 이해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클레이브는 손을 들어서 페드로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비를 쫓는 자들’이라고 불린단다.”

페드로는 움찔하면서 물러서려고 했지만,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너희는 분명히 나를 이해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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