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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30화 (30/182)

30화

데스티나가 마나를 모으고 있는 사이에 루카는 그야말로 참마도를 가지고 좀비 오크들을 도륙해 버리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참마도의 무게를 회전력으로 바꾸는 요령을 터득한 후의 루카의 모습은 그야말로 작은 태풍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왠지 엄청나게 어지러운데!”

루카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처럼 빠르게 회전하여 좀비 오크들을 베어 버리고는 비틀거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주변의 풍경이 그녀의 눈에는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이 느껴졌다.

잠시 멈추어서 정신을 가다듬던 루카는 좀비 오크 한 마리가 주환의 뒤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한 번 더 회전!”

루카는 참마도를 들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좀비 오크들과 싸우던 주환은 무언가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것을 느끼면서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두 개의 참마도를 높이든 채로 무시무시한 포스를 풍기면서 그를 향해서 떨어지고 있는 루카의 모습이었다.

주환에게 달려온 루카는 양손의 참마도를 동시에 내리쳤다.

두 개의 참마도는 주환의 왼쪽과 오른쪽을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로 지나가면서 그의 뒤에서 달려들고 있는 좀비 오크를 삼등분해 버렸다.

주환은 뒤를 돌아보았다.

몸이 잘린 좀비 오크가 세 덩어리가 되면서 쓰러지는 모습을 본 주환은 루카에게 말했다.

“방금 나 죽일 뻔한 거 알지?”

주환의 말에 루카는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동의하지 말아 줄래?”

그때, 두 사람은 주변의 공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무심결에 깨달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서 데스티나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데스티나는 온몸이 푸른 빛 에너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데스티나의 몸 전체가 마치 거대한 진공청소기라도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주변의 공기들이 데스티나를 향해서 모여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데스티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두 사람 다 엎드려라.”

데스티나가 나지막이 말했다.

두 사람은 데스티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분위기로 알아볼 수 있었다.

데스티나의 말이 다 끝난 시점에 주환과 루카는 동시에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하압!”

루카와 주환이 엎드리는 것을 본 데스티나는 단숨에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엄청난 크기의 마나 파장이 검에서 발사되었다.

파장은 날카로웠으며 닿기만 해도 모든 것을 베어 버릴 수가 있었다.

푸른색의 파장은 엎드려 있는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파장은 미쳐 피하지 않고 서 있는 모든 좀비 오크들을 관통하면서 지나갔다.

관통당한 것은 좀비 오크들뿐만이 아니었다.

정착지에 있는 모든 건물 역시 파장이 뚫고 지나갔다.

화악!

마나의 파장은 동심원을 그리며 멀리 퍼져 나가 허공에서 소멸하여 버렸다.

그리고 파장이 뚫고 나갔던 모든 것들이 날카로운 절단면을 보이면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 * *

찰칵.

주환은 문의 손잡이를 잡고 서서히 밀었다.

루카가 발로 차서 부숴 버렸던 문이지만 지금은 깔끔하게 고쳐져 있다.

주환이 들어가려는 곳은 이브의 별장이었다.

마른 진흙 부족 좀비 오크들과의 치열한 싸움이 끝나고 아티팩트를 얻은 주환 일행은 이브의 별장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바람을 쐬고 다시 돌아온 주환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안쪽을 향해서 인사했다.

“다녀왔어.”

주환이 인사를 함과 동시에 누군가가 식당 쪽에서 걸어 나왔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식당에서 나온 사람은 손에 나무 국자를 들고 있는 루카였다.

그녀는 지금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식사 시간에 맞춰서 오려고 했거든.”

“때맞춰서 잘 왔네. 이제 거의 다 된 참이었으니까.”

식당 안으로 들어간 주환은 식탁에 그릇이 2개밖에 놓여 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데스티나는?”

주환의 물음에 루카는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자기 방에 있을 거라는 의미였다.

“밥 생각 없다는데?”

“생각이 없다니. 아직도 힘이 없는 거야?”

“뭐, 그렇지.”

루카는 끓이고 있는 스튜의 맛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면 나라도 입맛이 없을걸.”

“하긴 그러네. 그 녀석으로서는 충격을 많이 받았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침묵했다.

식당 안을 채우는 것은 보글보글 스튜가 끓는 소리뿐이었다.

“데스티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먼저 입을 연 이는 루카였다.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숨길 수 없는 착잡함이 묻어 나왔다.

“이 상태라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 이제 데스티나는 더는 인간이 아니게 되어 버렸으니까.”

주환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게 말했다.

주환의 그 말에 루카도 고개를 숙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 버린 건지…….”

두 사람은 다시금 침묵에 잠겼다.

그때, 계단에서 누군가가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 장본인이 식당으로 불쑥 들어왔다.

“둘 다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 건가?”

그러자 루카와 주환의 시선이 식당의 입구로 쏠렸다.

식당의 입구에는 데스티나가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주환과 루카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두 사람의 어깨가 심하게 들썩였다.

“하하하!”

“푸하! 더 이상 못 참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루카와 주환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이게 그렇게 우스운 일인가?”

데스티나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그렇게 물었다.

지금 데스티나의 모습은 이전과는 매우 달라져 있었다.

이목구비는 전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가장 큰 문제는 그녀의 신체 조직이 전과는 딴판으로 변했다는 사실이었다.

데스티나는 인간형 슬라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하면서도 매끈한 몸에 머리칼의 색이나 피부색도 전부 다 파란색의 젤리 빛을 띠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면이 다분했다.

“미안해. 미안해. 솔직히 정말로 감정을 잡고 걱정해 주고 싶었는데. 보자마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

주환은 웃느라 생긴 눈물을 닦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게 다 그 갑옷 때문이다. 그 갑옷을 입은 다음부터 그렇게 되었으니까.”

데스티나가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좀비 오크들과의 전투 때 몸 안의 대부분의 마나를 끌어모아서 기술을 사용한 바로 그 직후에 데스티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마법사도 사악하기 그지없군. 이런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지 않다니.”

“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지 않아?”

루카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지금 엄청 귀엽거든. 내 마음 같아서는 매일매일 잘 때마다 껴안고 자고 싶을 정도라고.”

“거절한다. 이 몸이 얼마나 불편한지 아는가? 이렇게 인간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엄청 힘이 드는 일이다. 내 손을 봐라. 마치 벙어리장갑처럼 변해 버렸으니까.”

데스티나는 몽글몽글한 느낌의 덩어리가 되어 버린 손을 두 사람을 향해서 펼쳤다.

“알았어. 우선 식사부터 하고 이브한테 다녀올게. 아티팩트도 전해 주고 네 소식도 알려 줘야 할 테니까.”

주환이 식탁에 앉으려고 하자 데스티나는 곧장 그에게 다가왔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식사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지금 당장 다녀오도록.”

“안 간다는 것도 아니잖아? 밥만 먹고 바로 다녀올 건데.”

그러자 데스티나는 본 적도 없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면서 슬라임 특유의 몽글거리는 얼굴을 주환에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다녀오도록. 지금 당장!”

* * *

“그게 저희가 겪었던 모험의 마지막이죠.”

주환은 만족스럽다는 듯 그렇게 말하면서 찻잔을 들어서 목을 축였다.

데스티나의 성화에 못 이겨 식사도 하지 못하고 바로 검은 탑으로 텔레포트를 한 주환은 이브와 타마두크에게 자신들의 파티가 겪었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데스티나 씨가 온 힘을 다해서 모든 것을 다 정리해 버렸다는 말인가요?”

이브는 주환이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자리 잡은 채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렇죠.”

“잘되었네요. 저희가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두 사람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타마두크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물론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 툴레오의 갑옷? 그 갑옷이 있어서 일이 좀 더 수월하게 끝난 감이 있죠. 그런데 그건 그렇고.”

주환은 이브와 타마두크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그 갑옷, 착용하면 부작용이 있는 것 같던데 그거 알고 있었나요?”

“알고 있었어요.”

주환의 예상보다 이브는 더 시원하게 그 사실을 인정했다.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데스티나에게 알려 주지 않은 거죠?”

“알려 줄 시간이 없었다…… 라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렇게 말했어도 전 믿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지금 데스티나 님은 그 부작용에 시달리고 계신 건가요?”

“아직 부작용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더군요. 혹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죠?”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그 물건을 직접 사용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스승님에게 말로만 들었을 뿐이죠.”

“이브 씨의 스승님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제자에게 준 걸까요?”

“모르겠어요. 스승님은 사랑하는 제자가 슬라임이 되는 걸 보고 싶으셨던 건지도 모르죠.”

주환은 대체 그 스승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괴팍한 성격을 가졌을 거로 생각했다.

“데스티나 씨의 몸이 슬라임처럼 변한 건 몸을 구성하는 마나까지 사용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툴레오의 갑옷은 잠재 능력을 이끌어 내주는 건데 사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죠. 잠재 능력이라는 것은 허공에서 무한정 뽑아 쓸 수 있는 힘이 아니에요. 적당한 수준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무리하게 사용하면, 원래라면 사용할 일이 없는 원초적인 마나 에너지까지 끌어다 써버리게 돼요.”

“그러면 다시 마나를 보충한다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맞아요.”

이브는 찻주전자를 들어서 찻잔에 차를 조금씩 따르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마나는 아무리 소모를 해도 자동으로 다시 신체에 쌓이게 되어 있어요. 아마 계속해서 기다리다 보면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예요.”

이브는 찻잔을 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데스타니 씨 걱정은 하실 필요 없어요. 이제 일 이야기로 넘어가죠.”

이브의 말에 주환은 테이블의 옆에 세워져 있는 샷건을 든 다음 테이블 위에 올렸다.

테이블과 금속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응접실 안에 울려 퍼졌다.

딱.

“저희는 맡은 바 임무를 잘 끝냈어요. 당신이 원하는 걸 확실하게 가져왔죠.”

이브가 손가락을 튕기자 타마두크는 샷건을 집어 이브에게 가져다주었다.

“그게 당신이 원하던 아티팩트 ‘붐스틱’이에요.”

이브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샷건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겉보기에는 주환 씨가 저에게 주었던 그 무기와 상당히 비슷하게 보이는데요?”

“제가 살던 세상에서 넘어온 게 확실한 물건이죠.”

“이것도 연구해 볼 가치가 충분할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알려 주시죠. 영원의 교차점에 도달하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는 이가 누구인지요.”

주환의 물음에 이브는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마른침을 삼킨 이브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드렸던, 바로 제 스승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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